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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은 여성스럽지 않잖아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질병의 이미지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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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글에 등장하는 사례는 동의를 거쳐 인용하였습니다. -편집자 주

 

그녀가 자신의 질병을 밝히지 못하는 이유

 

“저런 사진들 볼 때마다 끔찍해요. 저런 지저분한 게 내 몸 속에 있었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나빠져. 내 몸에 저런 흉측한 게 있었다는 걸 사람들이 아는 게 너무 싫어, 나는 여잔데.”

 

식당 TV에선 담배갑 포장지에 폐암 등 질병 사진을 게재하는 것에 관한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폐암환자였던 그녀는 폐암 사진이 나오자 몸서리를 치며, 저런 흉측한 사진을 자꾸 보여주면 어떤 여자가 폐암 환자라는 걸 말할 수 있겠냐고 했다.

 

▶  올해 12월부터 답배갑 포장지 상단에 흡연 경고 이미지를 부착해야 한다.   ©출처: 보건복지부 

 

그를 처음 알게 된 건, 몇 년 전 한 종합병원에서 실시한 중증환자를 위한 무료 치유 프로그램에서였다. 나처럼 병원에 정기 검진을 왔다가 들른 사람도 있고, 방사선 치료를 받으러 왔다가 진료를 마치고 들르는 이들도 있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데에는 이름도 병명도 묻지 않았고, 서류를 작성할 필요도 없었다. 큰 병원이라 환자들 집이 서울이 아닌 경우들도 꽤 있었다. 환자라는 공감대 때문인지, 일상에서 마주칠 일이 없기 때문인지,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이 우리를 순하게 만든 건지, 다들 사적인 이야기를 훌쩍 훌쩍 꺼냈다.

 

강사가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에 대한 질문했을 때, 그는 샤워 후 온몸 가득 향기 좋은 바디로션을 바르는 시간이 제일 행복하다고 했다. 여자니까 몸에서 좋은 냄새가 나야한다는 말도 덧붙였던 것 같다.

 

질병에 대한 자신의 느낌을 물었을 때, 그는 자신의 병이 너무 더럽게 느껴진다며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아이가 고등학생인데 다른 엄마들에게 자신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면서, 자신이 폐암인걸 알면 분명 수군덕거릴 거라며 화난 목소리로 약간 핏대를 세웠다. 영혼이 깊게 상처 받은 자가 갖는 남루한 슬픔이나, 방향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분노 같은 게 느껴졌다.

 

‘빈혈이나 갑상선암은 여성스럽잖아’

 

몇 년 만에 우연히 다시 만난 그는 예전보다 한결 편안해 보였다. 우리는 아픈 사람들이 만나면 예의 그렇듯 서로의 건강 상태를 물었다. 그는 내년 봄이 되면 수술한지 5년이 된다면서 드디어 완치 판정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나는 요즘 현기증이 다시 심해져서 좀 울적하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는 나에게 다소 진지한 표정으로 부럽다고 했다. 몇 해 전 치유 프로그램에서 만났을 때 나에게 약간의 질투심 같은 걸 느꼈다고 했다.

 

“폐암은 여성스럽지 않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가진 출혈이나 갑상선암 같은 병들은 다 여성스러워. 현기증이나 빈혈도 영화 속 여자주인공들이 갖고 있는 병이잖아. 나는 병에 걸려도 꼭 폐암같은 남자병에 걸려, 안 그래도 덩치가 커서 여성스럽기 힘든데 말이야.”

 

놀라웠다. 질병에도 여성스럽다는 말이 붙을 수 있다는 게. 그러니까 자궁이나 전립선 질환이 아니라 폐암, 간암, 위암 같은 질환에 대해 여성스러운 질병과 남성스러운 질병으로 구분하고 있는 상상력이 당혹스러웠다.

 

“나는 그때 자기 봤을 때, 자그마한 몸에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니 하늘하늘한 원피스만 입으면 딱 영화 속 주인공이겠구나 싶었어. 근데 왜 저렇게 화장도 안하고, 칙칙한 색깔의 옷을 입고 있는지 이해가 안되더라구.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아프기 때문에 더 여성스럽고 예뻐 보일 수도 있는 거잖아. 나는 노력해도 안 되는데, 자기는 타고난 신체 조건도 그렇고 질병도 그렇고 다 여성스러워서 좀 질투심 같은 게 생기더라구.”

 

기가 막혔다. 이 지긋지긋한 질병이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는 게 어이없기도 하고, 여성스럽다는 것에 대한 그의 집착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나는 최근 현기증 때문에 버스 의자에서 일어나다가 휘청해서 버스 바닥을 구를뻔한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하철에서는 고개를 살짝 흔들어서 머리를 옆으로 넘기려다가 현기증이 일어서 휘청했다며, 개그 프로그램 장면처럼 우스꽝스럽고 모양 빠져 보이는 증세가 현기증이라고 말해줬다. 그리고 낭만적 현기증은 어지러워서 휘청 댈 때 옆에서 보호해주려는 사람이 있을 때에야 완성되는 장면일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런 보호를 원하지 않을 때, 현기증은 그냥 불편하고 위험한 증세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에게 내 말은 잘 수용되지 않는 것 같았다. 보호를 원하든 아니든, 창백한 얼굴과 현기증은 그 자체로 낭만적이고 여성스럽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나는 여성스럽다는 건 실체가 없는 거라고,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 여성스럽다는 건 명백한 실체로 존재하고 있으며, 반드시 가 닿고 싶지만 닿을 수 없는 무엇이었다. 그가 자신의 시원한 키와 다부진 몸매를 여성스럽지 않다고 미워하는 게 안타까웠다. 식당 의자에 앉아 있는 내내 바지 입은 다리를 최대한 모아 붙이고, 어깨를 움츠려 앞으로 숙이는 모습이 몸의 면적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인 것 같아서 애처로웠다.

 

▶ 질병이 주는 통증 때문만이 아니라, 질병 이미지에 때문에 아픈 이들이 더 고통 받고 있다.  ⓒ이미지 제작: 조짱

 

창백한 얼굴과 현기증은 낭만적이다?!

 

그렇게 여성스러움에 집착하는 그의 모습이 숨 막히도록 답답해 보였지만, 조금은 이해되기도 했다. 몇 년 전 치유 프로그램 때, 그는 조금 뜬금없이 매우 빠른 목소리로 이런 얘기를 했었다. 남편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적이 있었고, 그것 때문에 몹시 마음고생을 몇 년 하고 난 뒤 폐암 진단을 받았다고 말이다. 당시 남편은 여행 가방을 들고 태연한 표정으로 ‘집에서 여자냄새가 나지 않는다’며 현관을 나섰다고 했다. 그는 너무 창피하고 자존심이 상해서 친정 엄마에게도 누구에게도 이 말을 하지 못했었다고 했다. 아마도 그날 그는 무척 용기를 내서, 눈을 질끈 감고 토하는 심경으로 말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몇 년 전 그날 그에게 하지 못했던 말을 해주고 싶었다. 여성에게 고결한 성녀이면서 섹시한 요부, 일 잘하는 노예이면서 꽃과 같은 공주 모습을 원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냐고. 누구도 그런 ‘여성’이 될 필요가 없고, 될 수도 없다고. 키가 크든 아니든 여성스러운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만약 여성스럽다는 게 있다면, 자신이 정말 원하는 걸 하는 거라고. 그런데 그와 헤어질 때까지 한마디도 꺼내지 못했다. 그에게 이런 말은 비현실적인 교과서의 당위로밖에 안 들릴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미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자신의 고통과 상처를 정리해내는 중인데, 그것에 다시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다. 종교에 매달려 문제를 어거지로 봉합하고 있더라도, 일단 살고 볼 일이니까.

 

사실 나도 그가 말하는 게 어떤 건지 대략 안다. 19세기에는 결핵이라는 질병에 대해 ‘예술가들이 걸리는 병’으로 낭만화했다는 글을 읽은 적 있다. 결핵으로 인한 창백함, 쇠약함, 무기력, 저체중 등이 숭상의 대상이 되었고, 19세기 한 프랑스 시인은 45kg가 넘는 사람이 서정시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한다.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창백한 혈색과 가냘픈 몸을 여성의 이상적 용모로 인식하는 이들이 많은 건, 19세기 결핵 문화의 영향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생각해보니 질병 중에 보다 여성스러운 질병이 있다는 그의 주장이 과도한 게 아닐지도 모르겠다. 이를테면 낭만적 사랑을 그리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병으로 죽음에 이르게 될 때, 감독은 주인공이 어떤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할지 병명을 고민할 것이다. 사람들이 질병에 따라 다르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음에 이르는 게 여자주인공인지, 남자주인공인지에 따라 선택하는 질병이 다를 것이다. 어떤 질병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게 더 여성스럽거나 더 로맨틱하게 보일지 고민할 것 같다.

 

문득 궁금해졌다. 만약 암 환자들에게 자신의 암 종류를 고르게 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암에 걸리는 건 필연이고, 모든 암에 따른 위험과 치료 과정과 비용이 동일하다고 가정할 때, 어떤 암을 선택할까? 성별에 따라서, 여타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선호하거나 기피하는 암 종류가 다르게 나올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망위험보다 편견이 더 큰 공포를 만드는 AIDS

 

질병은 생물학적 실체지만 세상의 온갖 편견, 환상, 감정, 이야기들이 돌아다니는 장이기도 하다. 만약 더 여성스럽고 더 로맨틱한 질병이 있다면, 그렇지 않은 질병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는 여성의 몸을 스펙과 자본으로 여기고, 성형수술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듯 여성의 몸을 평가, 통제, 서열화하는데 익숙하다. 따라서 여성들은 몸에 대한 수치심을 더 쉽게 내면화하고 있다. 질병이라는 몸이 겪는 사건에 들러붙는 ‘질병 이미지’는 아마도 여성환자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물론 다른 사회적 소수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에이즈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예방하기 위한 레드리본 캠페인. 에이즈는 만성질환일 뿐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출처: 질병관리본부

질병 중에서도 사회적 편견과 이야기가 가장 극단적으로 들러붙어 있는 건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결핍 증후군)일 것이다. 한국에서 연간 발생하는 HIV(에이즈를 일으키는 인간 면역결핍 바이러스) 감염인은 8백 명이 채 안 된다. 그로 인한 사망은 약 1백여 명 정도라고 한다. 이에 비해 결핵환자는 연간 약 3만5천 명이나 발생하고, 관리가 쉽지 않아 매년 약 3천 명이 사망한다. 심지어 결핵 발생률은 OECD 가입국 중 가장 높다. 그럼에도 결핵을 무서워하는 이는 많지 않은 반면, 에이즈에 대한 공포는 매우 크고 깊다. 에이즈가 남성동성애자들의 질병이라는 잘못된 명명과, 동성애 혐오 정서가 만들어낸 질병 이미지 때문이다. 아직도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은 질병 자체의 고통만큼이나 질병에 대한 사회적 시선 때문에 고통 받고 있다.

 

개인이 어떤 질병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소수자이기 때문에 어떤 질병을 근거로 차별과 배제에 쉽게 노출된다. 분노가 용암처럼 흐르고 있는 이 사회는 언제든지, 어떤 질병과 사회적 차별을 결합시켜서 새로운 ‘질병 이미지’를 생산해 낼 수 있을 것 같다. 여성에 대한 차별이 나아지지 않고 혐오가 심화되는 가운데, 이후에 어떤 질병에 대해 에이즈처럼 부정적 질병 이미지가 생산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방향을 제대로 설정하지 못한 분노가 여성과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해, 또 어떤 식의 엽기적인 차별과 혐오를 계발해 낼지 문득 문득 두려워 진다.

 

질병이 주는 생물학적 통증 때문이 아니라, 질병 이미지에 때문에 그렇지 않아도 아픈 이들이 더 고민하고 고통 받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질병에 대한 생의학적 정보와 논의 이외에 질병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부정적 질병 이미지를 생산하는 것을 예방하고, 아픈 이들의 고통을 확장시키지 않기 위해, 질병에 들러붙어 있는 여러 시선과 문화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한다.

 

※ 참고문헌: 조병희 <섹슈얼리티와 위험 연구> 나남,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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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6/26 [18:24]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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