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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생들이 부럽지 않아요”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여성들>④ 학교밖 청소년 태희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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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업이라고 하기엔 불안정하고 열악하며, 아르바이트라고 하기엔 장시간 일하고 급여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이른바 ‘생계형 알바’를 하는 10대, 2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빈곤-비(非)진학 청년들의 진로 탐색과 자립을 돕는 협동조합 <일하는 학교>와 은평구청소년문화의집 <신나는애프터센터>와 함께하는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누군가의 지나온 삶에 대해 물어 보고 기록하는 행위는 흥미로운 작업인 동시에 상당히 조심스럽기도 하다. 지나온 삶이란 드러내고 싶기보다 감추고 싶은 영역이 더 많기 때문이리라. 그런데 나의 이런 생각과는 달리 태희(가명)는 조심스러운 내 질문에 주저하거나 망설임 없이 시원시원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태희도 순탄치 않았던 자기 삶의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쉽지만은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지난 시간들의 기억들을 세세하게 끄집어내어 솔직하고 재미있게 전해 준 태희에게 감사한다. 가능한 그녀의 이야기를 그대로 전달하는 것으로 스무 살 태희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엄마는 조선족, 아빠랑 16살 차이에요’

 

▶ 태희는 2년 전, 학교밖 청소년으로 성남의 한 대안학교에서 교사였던 나와 만났다.  ⓒ 이환래

“성남 차병원에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제가 태어날 때가 되었는데 배에서 아무런 요동이 없어 급하게 병원에 갔는데 제가 엄마 배 안에서 똥을 쌌더래요. 그때 엄마가 임신중독증도 있었고 잘못하면 저도 숨을 못 쉬게 되는 급한 상황이어서 응급실로 급하게 들어가 이물질 제거하고 저를 꺼냈대요. 그런데 엄마가 오랫동안 의식이 돌아오지 않다가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애기는 어떻게 됐냐’고 저의 안부부터 물어 봤대요. 엄마는 지금도 술만 먹으면 이 얘기해요. 저도 엄마가 대단하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태어나기도 전에 똥부터 쌌대요. 하하하.”

 

먼저 태희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에서 출발했다. ‘태어나기도 전에 똥부터 싼 아이’라며 재미있게 말했지만, 하마터면 태희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는 위급하고 아슬아슬한 순간이었고 반대로 엄마에 대한 태희의 깊은 사랑과 신뢰가 시작된 사건이었다.

 

“아빠가 나이가 많으세요. 엄마랑 열여섯 살 차이에요. 아빠가 중국에 가서 엄마를 만나서 그곳에서 결혼해서 엄마와 같이 한국에 와 이곳에서도 다시 결혼을 하셨어요. 엄마가 조선족이고 하얼빈에 살았거든요. 그리고 언니가 태어났고요. 이후에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이모, 외삼촌들이 연이어서 한국으로 왔어요.”

 

그러니까 태희네는 조선족 엄마와 한국인 아빠가 만나서 꾸린 전형적인 다문화가족이다. 다문화가족의 다수가 그렇듯이 부모님의 결혼 생활은 초기엔 행복했지만 점차 갈등이 커졌다고 했다.

 

“어릴 때는 성남 시흥동에 살았는데 이때는 엄마 아빠가 사이가 좋았어요. 그 이후에 수진동으로 이사 왔어요. 이때 가족 내에서 일들이 많이 일어났어요. 아빠가 엄마랑 나이 차도 많이 나고 성격도 차이가 나고 하니까 자주 싸우셨어요. 그러다 5년 전쯤, 어느 날 두 분이 엄청 싸우신 날이 있었어요. 외할아버지도 오시고, 엄마는 엄청 울면서 집을 나가셨고 아빠가 엄마를 뒤따라 나가셨어요. 우리 세 자매는 방 안에 있었는데, 늦게 외할머니가 오셔서 우리를 외할머니 집으로 데리고 갔어요. 그래서 그 뒤에 벌어진 일은 모르겠는데 그 이후로 엄마는 집을 나가셔서 지금까지 아빠와 따로 살아요.”

 

엄마가 집을 나간 이후 지금까지 세 자매는 아빠와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자주 이웃에 살고 있는 외할머니 집을 오가며 지냈고 가끔은 엄마와도 만났다.

 

“엄마는 집 나가신 후 한 4년간은 다른 남자와 살았어요. 그러다가 얼마 전에는 그 남자와 헤어지고 외할머니 집으로 들어오셨어요. 지금은 우리들이 두 분 길을 터 주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어요. 아빠에게는 엄마 이야기하고 엄마에게는 아빠 이야기하고 그래요. 엄마도 ‘아빠 아직도 술 많이 드시냐’, ‘담배 많이 피우시냐’ 물어보면서 아빠에게 관심이 있기는 한데. 자존심도 세고 고집도 있어서 같이 사시지는 않으신대요. 그리고 고모들이 여섯 분이나 계신데 ‘집 나간 여자’라고 모두 엄마를 싫어해요. 아빠보고 이혼하라고 막 그래요. 아빠는 이혼은 안 하겠다고 하시는데, 그렇다고 같이 사실 생각은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어린 나이에 부모의 갈등과 별거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태희는 이런 가족 환경에 대해 ‘그럴 수도 있다, 괜찮다’고 담담하게 받아 들였다.

 

“저는 엄마, 아빠가 따로 사시는 거에 대해 특별하게 불행하다거나 부모님께 원망 같은 거는 없어요. 성격이 맞지 않으면 할 수 없잖아요. 요새는 이혼하는 것도 흔한 일이잖아요. 그래도 두 분 같이 사시면 좋겠어요. 그러면 저도 술도 안 마시고 매일 일찍 들어가서 부모님이랑 맥주 마시며 이야기도 하고 할 텐데요. 그런데 그게 쉽겠어요? 지금도 서로 욕하고 그러시는데. 그래도 이혼하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언젠가 같이 사실 수도 있으니까.”

 

다문화가족 구성원이고 별거 부모를 두었다고 하면 보통 불행한 가족환경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태희는 엄마와 아빠 모두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고, 낙천적인 태도로 자신의 가족 환경을 받아들이며 살아왔다. 태희가 지니고 있는 이러한 낙천적 긍정성은 그녀가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이라는 생각이 든다.

 

‘학교를 그만둔 거, 조금도 미련 없어요’

 

태희는 2년 전 ‘학교밖 청소년’으로 성남의 한 대안학교에서 교사였던 나와 만났다. 그리고 지금도 검정고시 준비를 하는 학교밖 청소년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공부를 그런대로 했어요. 학원도 다니고요. 그런데 중학교 들어가서부터 공부를 안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막 놀았어요. 그때는 정말로 철이 없었어요. 학교도 잘 안 나가고 당연히 성적이 엉망이었죠. 수업 시간에 뭔 소린지 도대체 알 수가 없더라구요. 고등학교를 가야하는데 저는 언니가 다니고 있던 성일정보에 가고 싶었어요.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방송고를 쓴 거예요. 나중에 확인해보니 성일정보가 미달이더라구요. 너무 억울하고 화도 나고 그랬어요. 제 바람이나 생각과는 무관하게 강제로 방송고에 가면서부터 이미 학교생활이 꼬인 거죠.”

 

원치 않은 고등학교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강제로 진학한 후, 학교생활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방송고를 한 3개월 다녔어요. 그때 같은 반 애들 세 명이 너무 괴롭히는 거예요. 특별한 이유도 없이 그냥 못생겼다,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못살게 구는 거예요. 참다 참다 엄마한테 울면서 자퇴하고 싶다고 말했어요. 엄마는 집 나가서 살고 있을 때인데, 자퇴는 학부모 동의가 필요해서 아빠한테는 말 못하니까 할 수 없이 엄마에게 연락을 했죠. 엄마가 아무 말 없이 학교에 오셔서 자퇴를 시켜줬어요. 아빠한테는 자퇴했다고 말을 못해서 1년 가까이 아침에 교복 입고 나가서 외할머니 집에서 자다가 오후에 집으로 돌아가곤 했어요. 그러다 고모들한테 학교 안 가는 걸 들켜서 아빠가 아시고는 엄청나게 화를 내시는 거예요. 아빠가 무서워서 두 달간 집에 안 들어가고 외할머니 집에서 지냈어요.”

 

태희는 자퇴한 다음 해에 복학 신청을 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복학 신청을 받아주는 것에 까다로운 ‘조건’을 걸었다.

 

“한 달 청소를 잘 하면 복학을 허락해 준다는 거예요. 그때가 겨울이라 되게 추웠거든요. 그래도 바닥에 껌 떼고 물걸레질하고 걸레 빨고 했어요. 그러다 한 일주일 쯤 지났을 때 몸살이 나서 하루 못 나갔는데, 하루 안 갔다고 바로 잘렸어요. 아픈 게 죄는 아니잖아요? 그때 복학 신청한 애들이 많았는데 겨우 두 명만 살아남았대요.”

 

그렇게 태희는 학교와는 완전히 작별했다. 학교를 그만 둔 것에 대해 본인의 심정을 묻자 태희는 그때도, 지금도 학교를 그만 둔 것에 대해서 조금도 미련이 없다고 단호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학교밖 청소년이 된 태희는 성남에 있는 대안학교에 다니게 되었다.

 

▶ 태희는 공예수업 시간에 만든 팔찌를 지금도 차고 다닌다. 

“친구가 처음에 상담복지센터를 소개해 줬어요. 거기에서 지금의 대안학교를 소개시켜줬구요. 그런데 정말 새로웠어요. 공부도 학교에서처럼 억지로 시키지 않고, 그래도 할 때는 정말 열심히 하고. 재미있는 수업도 정말 많았어요. 음식 만드는 요리수업이 재미있었고 공예수업 시간도 좋았어요. 선생님들과 수다 떨면서 뭘 만드는 게 좋았어요. 당구수업, 볼링수업도 좋았고 아무튼 학교 다닐 때는 제대로 나가지 않았는데, 수업이 재미있어서 대안학교에서는 매일 안 빠지고 다녔어요. 이게 그때 만든 팔찌예요.”

 

인터뷰 도중에 태희는 공예수업 시간에 만들었던 팔찌를 지금도 차고 다닌다며 내게 보여주었다. 태희의 즐거워하는 모습에 대안학교 교사였던 나 자신도 덩달아 즐거워진다.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은 다 같이 여행 간 거요. 강릉하고 제주도 간 거. 그리고 작년 다 같이 검정고시 보러 가서, 쉬는 시간마다 다 같이 모여 채점하고 도시락 먹고 한 것도 기억에 남고요. 제일 안타까운 것은 아직도 검정고시 통과 못한 거! 그래도 3과목은 통과했으니 4과목만 이번에 통과하면 되는데 제가 공부 머리는 아니어서 걱정이에요. 이번에 보면 네 번째 보는데 이번에도 합격 못하면 그냥 포기할래요. 하하하.”

 

지금까지 내가 만난 학교밖 청소년들은 많은 경우 중학교 때부터 공부와 멀어져서 학교를 자주 결석하다가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자퇴를 한다. 공부에서 멀어진 학생들을 위한 공교육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태희 역시 우리 사회 공교육이 가진 한계의 피해자이다. 그렇지만 역설적이게도 학교에서 자퇴한 것이 태희에게는 행운이었는지도 모른다. 공교육에서 맛보지 못한 새롭고 즐거운 경험을 대안학교를 통해 접하게 되었다니 말이다.

 

‘난 어디서든 중학교 졸업했다고 떳떳하게 말해요’

 

태희는 고등학교를 자퇴한 이후 알바를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다양한 일 경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학교 다니면서는 돈이 없어 너무 힘들지는 않았어요. 준비물 사는 돈처럼 꼭 필요한 돈은 아빠한테 타서 썼어요. 그런데 용돈은 주시지 않았어요. 초등학교 다닐 때는 외할머니한테 하루 천 원씩 받았어요. 이걸 쓰지 않고 모았다가 일주일에 한 번씩 친구들과 놀았어요. 용돈이 모이지 않으면 친구들과 놀지 않고 집에 일이 있다고 둘러 대고 바로 집으로 왔어요. 중학교 때도 엄마나 외할머니한테 용돈을 그때그때 조금씩 받아서 썼어요. 그런데 학교를 자퇴하니까 학교 다닐 때보다 돈이 훨씬 많이 필요한 거예요. 그래서 알바를 시작했어요.”

 

그렇다면 십대여성이었을 태희가 그동안 일해 온 곳들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그 일들과 노동환경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처음 한 일은 열여덟 살 때였는데 백화점에서 주차정산 일을 했어요. 한 2개월 하다가 그만두고, 고기 집 서빙일도 한 3주 했구요. 다시 그전에 일하던 백화점에서 3개월 정도 일했고. 지금은 편의점에서 3월부터 5개월째 주말 알바를 하고 있어요. 주차정산은 앉아서 일하니까 특별히 힘들지 않았어요. 가끔 진상고객이 있어서 영수증 없이 주차비 안내려고 할 때가 짜증나기는 하지만…. 고기집 서빙이 제일 힘들었어요. 특히 숯불 갈 때가 위험하고 힘들어요. 재가 튀기라도 하면 손님이랑 주인한테 욕먹고, 죄송하다고 계속 말해야 하고 옷도 더러워지고…. 편의점도 서 있어야 하는 게 좀 힘들기는 하지만 참을 만해요. 2시간마다 계단 타고 올라가 물건을 갖고 내려와서 채워 넣는 게 조금 힘들긴 해요. 진상 손님도 가끔 있어요. 밤 10시쯤 되면 술 먹고 들어오는 손님이 막 반말하는 경우도 있고,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는데 아무데나 쓰레기 버리고….”

 

▶ 고기집 서빙은 숯불을 가는 일이 위험하고 힘들었다. 

학교밖 청소년들은 노동시장에 나와서 부당한 경험을 많이 겪는다. 다행히 태희는 급여를 못 받거나 고용주로부터 무시를 당하는 등의 부당한 일들을 특별히 겪지는 않았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기가 제일 힘들었어요. 그리고 체력적으로, 여자라서 (남자들에 비해) 체력이 빨리 떨어져요. 퇴근할 때는 거의 힘이 남아 있지 않아요. 저는 팔 힘은 강한데 다리 힘이 딸려요. 그러니 서서 일하는 것이 좀 힘들더라구요. 몸무게가 좀 나가니까 더 그런가 봐요. 어서 몸무게 좀 빼야하는데. 하하하. 다행히 제가 여자라거나 나이가 어리다고 깔보거나 무시당한 경험은 없어요. 저는 어딜 가서도 그냥 중학교 졸업했다고 떳떳하게 사실대로 말해요. 이걸로 나를 무시하는 경우는 이제까지는 없었어요. 다행히 좋은 사람들을 만난 거지요. 만약 일하면서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따질 건 따져야지요.”

 

‘검정고시 붙어야 해요, 알바만 할 순 없잖아요’

 

태희의 현재 가장 큰 고민은 검정고시다. 8월 검정고시를 앞두고 있어서 평일에는 공부하고 주말에만 알바를 하고 있다. 주말 알바로는 한 달에 겨우 30만원 조금 넘게 벌 수 있다. 저축은커녕 생활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돈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급하다. 이번에는 검정고시에 꼭 합격해서 평일에도 일해서 돈을 더 벌고 싶다고 했다.

 

“합격하면, 컴퓨터 배워서 회사에 들어가고 싶어요. 제대로 일하고 제대로 돈 벌고 싶어요. 알바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이번 검정고시 꼭 붙어야 해요.”

 

검정고시에 합격해서 고졸 학력을 취득하게 된다면 그 이후 계획은 어떨까? 많은 이들이 그렇듯이 태희도 대학에 진학할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금은 대학에 갈 생각은 없어요. 당장 돈도 없고 대학 갈 점수도 못 받을 거 같아요. 저는 대학생들이 부럽지 않아요. 그들은 그들이 하는 일을 하는 거고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일단 회사 다니면서 돈 벌다가 나중에 공부 더 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때 가면 되죠.”

 

스무 살. 한창 외모나 연애에 대해서 관심을 가질 시기이기도 하다. 태희는 자신의 외모나 연애관에 대해서도 유쾌하게 말을 이어갔다.

 

“남자친구가 지금은 없어요. 좀 외로워요. 그런데 저는 이상하게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남자는 내가 싫은 그런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외롭기는 하지만 빨리 급하게 남자친구를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연애는 부질없는 것 같아요. 그냥 진짜로 나도 좋아하고 그 사람도 나를 좋아하는 경우가 생길 때까지 기다릴 거예요.”

 

“저는 제가 살아온 환경에 대해 억울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럴 수 있는 거죠. 다만 제 얼굴이 억울하다는 생각은 많이 했어요. 하하하. 제가 세 자매 중에 키도 제일 작고 얼굴도 제일 못 생겼거든요. 저만 엄마를 쏙 닮아 얼굴에 광대뼈 나오고 눈 작고 눈썹 별로 없고 살집도 통통해요. 그래도 성형수술은 안할 거예요. 부모님이 물려주신 얼굴은 그대로 지켜야죠. 그런데 얼굴에 점은 뺄 거예요. ‘먹을 복’ 주는 점 하나는 남겨 두고요. 하하하.”

 

▶ 제주도에 캠프를 갔을 때.  바다와 하늘을 향해 선 태희.  

 

태희는 다문화가족원이고, 별거 부모를 두었고, 학교밖 청소년이다. 어쩌면 이 세 가지는 별개의 것이 아니고 세트메뉴처럼 그녀의 삶에 붙어 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외부에서 봤을 땐 녹록치 않은 삶인데, 그녀는 ‘그럴 수도 있죠.’ 라며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환경을 수용하고 해석한다. 그녀보다 상대적으로 훨씬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늘 불만투성이였던 나의 과거를 돌아보게 되고 부끄럽게 만드는 인터뷰였다. 타인의 삶을 구태여 자세하게 듣고 기록하며 공유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으리라.

 

“살아오면서 가장 고마운 사람은 외할머니에요. 외할머니도 저희만 보면 ‘내가 있어서 그래도 너희들 밥 안 굶고 살았다’ 그래요. 사실 외할머니가 곁에 계셔서 어려울 때 잘 이겨내고 이렇게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 거예요. 저도 외할머니 은혜를 잘 아니까 조금이라도 잘해드리려 해요. 알바해서 번 돈 중에서 용돈도 조금씩 드리고, 힘든 일은 대신하고 그래요. 외할머니 돌아가시면 1년 내내, 아니 평생 울 것 같아요. 외할머니가 파출부 일을 하시는데, 연세가 벌써 68세여서 걱정이에요. 앞으로 20년은 더 사셔서 제가 결혼하고 애기 셋은 낳아 크는 거 다 보고 돌아가셨으면 해요. 그리고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가족여행이에요. 엄마, 아빠, 외할머니와 우리 세 자매가 같이 가는 여행을 꼭 하고 싶어요.”

 

오랜 시간 늘 태희의 곁에서 그녀의 든든한 비빌 언덕이 되어 주신, 한 번도 뵌 적 없는 외할머니에게 나 역시 깊은 감사를 드린다. 그리고 검정고시에 합격해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태희의 소박한 꿈과 엄마, 아빠, 외할머니와 세 자매가 같이 하는 가족여행이 이루어지길 응원한다. 인터뷰 내내 나를 돌아보게 하고, 많이 부끄럽게 만들고, 그만큼 많은 것을 배우게 해준 태희에게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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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22 [11:11]  최종편집: ⓒ www.ildaro.com
 
피뢰침 16/07/23 [10:04] 수정 삭제  
  주위에 있지만 어디에도 들리지 않는 이야기의 주인공이네요. 태희씨 이야기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독자 16/07/23 [20:35] 수정 삭제  
  알바 환경 많이 공유되면 조케써요. 급여나 일하는 내용같은 거도요..
dachen 16/07/25 [12:19] 수정 삭제  
  멋진 분 인터뷰네요~ 힘 냅시다!
버섯 16/07/28 [23:49] 수정 삭제  
  태희씨의 앞날을 응원합니다!
16/08/01 [14:13] 수정 삭제  
  응원합니다 태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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