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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는 ‘씨앗 페미니즘’에 주목한다
전환의 시대를 여는 농생태학 이야기①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신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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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변화, 생태계 파괴와 자원 고갈, 식량안보의 위기, 빈부 격차와 인간 소외 등이 지금 세계화 시대의 위기를 읽는 키워드입니다. 여성주의 연구활동가 김신효정 님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농생태학 이야기를 3회에 걸쳐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여성문제, 폭력 이후의 삶을 질문하기

 

▶ 2008년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시작된 촛불집회에서, 나는 페미니즘 운동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김신효정

나는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페미니스트이다. 당신에게 한국 사회의 여성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어떤 이슈가 먼저 생각나는가? 아마 성폭력이나 가정폭력과 같은 젠더 폭력과 섹슈얼리티의 문제를 먼저 떠올릴 것이다. 요즘 같은 시절에는 여성혐오를 떠올릴 수도 있겠다. 비정규직이나 경력단절과 같은 노동 문제 또는 성소수자 문제를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

 

10년 전의 나라면 ‘성매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으로 여성단체에 취직했다. 성매매 여성들을 지원하는 단체였다.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성매매를 경험한 수많은 여성들을 만났다. 또 성산업을 통해 돈을 버는 수많은 업주와 포주들, 성매매방지법을 집행하는 경찰과 검사들도 만났다.

 

여성단체 활동을 하며 매일매일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폭력과 착취를 목도했다. 한편으론 월 100만원 남짓 받는 활동가들과 함께, ‘자활’이란 이름으로 최소한의 생계비를 지원하는 정부를 믿고 성매매를 그만둔 여성들의 앞날을 책임져야 했다. 참으로 막막하고 답답했다.

 

퇴직한 후 성매매 문제를 더 깊이 고민하고자 여성학 대학원에 진학했다. 한편으론 단체 활동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었다. 스물다섯, 내 인생만으로도 벅찼기에 누군가의 삶을 책임져야한다는 무게감을 덜고 싶었다. 그냥 행복해지고 싶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매 수업마다 성매매와 관련된 글을 작성했다. 성노동, 이주 성매매, 인신매매, 성매매 여성의 자활, 탈성매매, 성매매 당사자 운동 등 ‘성매매 문제’를 열심히 고민했다.

 

그러던 어느 날, 커다란 벽에 부딪히고 말았다. ‘성매매 문제’가 정말 ‘성매매’의 문제인지 헷갈렸다. 또 여성들의 성매매 이후의 삶이 상상되지 않았다. 성매매를 그만 두고 난 이후의 삶, 자활도 탈성매매도 아닌 다른 삶을 그려보고 싶었다.

 

10년 뒤, 20년 뒤의 페미니즘 상상하기

 

누군가에게는 오히려 성매매를 할 때가, 혹은 매 맞는 아내로 살 때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덜 열악한’ 삶을 사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열악한’ 생활일지라도 온전한 내가 되기 위해 성매매를 그만둔다면, 남편의 폭력에서 벗어난다면, 페미니즘은 어떠한 삶의 선택지를 제안할 수 있을까? 여성이 폭력을 벗어나서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니더라도 페미니즘은 종결되어선 안 된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페미니즘은 여성들에게 어떠한 말 걸기를 할 수 있는가? 나의 10년 뒤 페미니즘, 20년 뒤 페미니즘은 어떤 것일까? 성매매 문제를 고민하던 나는 언젠가부터 ‘그 이후’의 삶을 고민하는 페미니즘에 몰두했다. 피해자 담론을 넘어서, 한계가 많은 법 제도의 프레임을 넘어서, 다중적으로 교차되는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페미니즘으로 전환이 필요했다.

 

이러한 전환은 내가 행복해지기 위한 노력이기도 했다. 매일 과도하게 일하고, 그래서 아프고, 또 다시 일하고, 시간에 채찍질 당하는 내 삶에 대한 반성이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내가 겪은 폭력과 고통의 문제를 서서히 지나가며 삶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한 때이기도 했다. 겨우겨우 생존하는 것이 아닌 삶, 더 많이 일해서 조금 더 돈을 버는 것이 아닌 삶, 내가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삶. 결국 내가 자급할 수 있는 삶에 대한 목마름으로 가닿았다.

 

씨앗 페미니즘을 만나다

 

그러던 중 2008년, 친구들과 함께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 반대하며 광화문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었다. 사실 촛불집회가 있기 전까지 먹거리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적은 없었다. 나는 아이가 없는 비혼 여성이었고, 아토피 같은 질환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엄마가 생협 조합원인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촛불집회 이후, 안전하지 않은 수입산 먹거리뿐 아니라 GMO(유전자변형식품) 문제에 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 전세계 몬산토 반대의 날을 맞아, 몬산토코리아 앞에서 GMO 반대운동 진영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몬산토는 세계 최대의 유전자변형작물(GMO)을 연구 개발하는 다국적기업으로,  세계 종자시장의 27%를 차지한다.   ⓒ김신효정

 

그리고 GMO의 대안으로 ‘토종씨앗’ 운동(유전자조작 종자가 수입, 보급될 경우 토종씨앗을 지키고 있어야만 GMO의 방패를 삼을 수 있다)을 하는 여성농민들을 알게 되었다. 이들은 한국 사회가 도시 중심의 급속한 개발과 산업 사회로의 전환 속에서, 무가치한 존재로 치부해버린 ‘할머니’ 농민들로부터 씨앗을 전수받았다. 그리고 씨앗에 담긴 지식을 기록하고 있었다. 여성농민들은 또 할머니들과 함께 생산자 공동체를 꾸려서, 토종씨앗으로 농사지은 건강한 유기농산물을 매주 도시소비자들에게 꾸러미로 보내주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했다.

 

폭력 이후의 삶을 고민하던 나에게 여성농민들의 실천은 너무도 신선하게 다가왔다. 지금 당장의 이익도 중요하겠지만 10년, 20년, 30년 이후의 미래를 위해서, 다음 세대를 위해서 토종씨앗을 심는 일은 단순히 돈으로 매겨질 수 없는 크고 깊은 가치가 담겨있었다. 전쟁과 가난, 근대화와 산업화를 온 몸으로 살아낸 할머니들의 존재를 지식의 보고이자 공동체 경제의 주체로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전환의 페미니즘’이었다.

 

우리는 매일 ‘먹는다’

 

국가의 경계와 온라인/오프라인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시대이자 정보의 시대 속에서 이미 인구학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여성농민들은 소수자가 되어버렸다. 이런 시대에 내가 여성농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때로는 토종씨앗이나 대안 경제, 공동체 경제를 이야기할 때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소소한 이슈로 치부하는 경우를 종종 경험하기도 했다. 사실 도시에서 소비자로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농업과 먹거리의 문제는 자신의 문제로 잘 와 닿지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매일 먹는다. 미국 하버드대학에서 발표한 한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 경제의 50% 이상이 식량 체계와 관련되어 있다. 이미 우리가 먹는 음식의 절반 이상은 네슬레를 비롯한 초국적 식품기업에 의해 가공 판매된다. 우리는 스툴에 갇혀 GMO 사료와 항생제를 먹고 자란 돼지고기에 유기농 상추를 싸서 먹기도 한다. 또 수많은 탄소를 발생시키며 수천 킬로미터를 날아온, 석유에 절여진 포도를 싸게 사먹는다.

 

종종 ‘공정’무역 커피를 사마시지만, 매일 버려지는 일회용 종이컵과 플라스틱 컵이 어디로 사라지는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 가게가 진짜 맛집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만, 어떤 재료를 사용하는지는 크게 상관하지 않는다.

 

▶  밥상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구성된 결과이다.     ⓒ김신효정


그러나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내가 먹는 밥상이 어떻게 차려진 것인지를 말이다.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취향 문제가 아니다. 밥상은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구성된 결과이다. 농민 생산자가 어떠한 환경 속에서 먹거리를 생산하는지는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기적으로 생산된 건강한 음식을 소비할 수 있는 권리는, 꼭 더 많은 돈을 벌어서 더 많이 지불하면 되는 문제가 아니다.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공론의 장에서 지속가능한 삶을 위해 치열하게 말하고 설치고 떠들어야 하는 우리 삶의 문제이다.

 

삶의 방식으로서의 농생태학, 전환의 페미니즘

 

건강하고 좋은 먹거리가 반드시 비싸야할 이유가 없다. 대부분의 농업 보조금이 농기계 회사와 농기업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바꾼다면, 농민들의 소득을 제대로 보장하고 대기업 중심의 농업 유통망을 개선한다면, 유기적으로 생산된 양질의 농산물을 시민들이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한편으론 지속가능한 방법론이 필요하다. 기후변화의 시대, 농업의 여성화와 고령화, 빈곤화의 위기 속에서 농생태학은 중요한 방법론이 될 수 있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 사회에서는 이미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농생태학의 중요성을 천명해왔다.

 

농생태학은 농민의 전통 지식과 지혜를 통합시킨 ‘과학’이다. 또 농민에서 농민으로 전해져온 지속가능한 농업 실천이기도 하다. 동시에 산업농을 넘어 식량주권을 실현하기 위한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전환운동이다.

 

 사회전환 운동으로서 농생태학의 방법론에서 여성농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텃밭농사 중인 필자.   ⓒ김신효정

 

농생태학이 기존 사회를 혁신하고 전환시키는 것이라고 할 때, 그 방법에 있어 여성농민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게 평가되어야 하며 더욱 촉진하고 발전시켜야 한다. 농생태학이 농민에게 식량에 대한 생산 주권과 통제권을 찾아주는 것이라고 할 때, 여성농민들은 농생태학을 통해 기존의 성별 권력화된 식량 체계로부터 권리를 되찾고 자기결정권과 자원의 접근성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유엔식량기구의 한 연구에 따르면, 여성이 남성과 동일한 농업 자원에 접근할 수 있을 경우 현재 농업 생산량의 20~30% 이상을 더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라 한다. 그리고 전세계 농업 생산량의 4%를 높일 수 있으며, 17%의 기아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발표했다.

 

결국, 여성들을 위한 더 많은 ‘다른 경제’의 새 판이 짜여져야 한다. 그것이 협동조합이든 사회적 기업이든 더 많이 비주류 경제판을 넓혀야 한다. 그 새 판에 더 많은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실천들을 통해 페미니즘의 영토를 넓히는 전환의 시대를 열어야갈 수 있으리라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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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7/23 [23:50]  최종편집: ⓒ 일다
 
ㅇㅇ 16/07/24 [14:19] 수정 삭제  
  자기 삶을 돌보고 지구를 돌보는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갈수록 느끼게 되긴 해요. 좋은 정보 읽었습니다.
16/07/25 [14:44] 수정 삭제  
  좋은 글이었어요! 페미니즘적인 실천의 확장이 의미있는 곳을 저도 생활속에서 찾고 싶어요. 매맞는 남편☞ 매질하는 남편 의 문맥으로 해석하며 되겠지요?
독자 16/07/26 [22:35] 수정 삭제  
  힘이 느껴지는 기사에요. 씨앗페미니즘이란 말도 신선하고 좋고요..
마야 16/12/15 [02:37] 수정 삭제  
  너무 훌륭한 글이에요...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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