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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산복도로 프로잭트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동네 카페와 이웃사촌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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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도시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꿈같은 장소

 

부산이 고향이지만, 지금 살고 있는 부산의 서구 동대신동은 낯선 동네였다. 작년에 이 곳으로 이사하기로 마음먹기까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장소와 사람들이 있다.

 

▶ 부산의 서구 동대신동에 있는 카페 산복도로 프로잭트 앞에서.  ⓒ 이내

 

2012년 나는 녹색당 당원이 되었다. 당에 가입할 만큼 정치를 믿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이 속속 창당을 준비하던 녹색당에 가입했고, 언제나처럼 사랑하는 사람들의 권유는 그 어떤 것보다 내게 크게 작용했다.

 

녹색당은 기존의 정당과 달라 보였다. 젊은 사람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움직이는 듯 보였다. 그래서 친구들과 함께 부산에 어떤 젊은 녹색당원들이 있는지 찾아서 한번 모아보기로 했다. 그때 동대신동의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카페 산복도로 프로잭트>에서 많지 않은 수의 젊은 녹색당원들이 모였다. 그 모임이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날은 내 인생의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 어떤 중요한 순간이 되었다.

 

카페의 주인장 ‘은수언니’(늘 존칭을 쓰는 사람들도, 가끔은 남자들도, 그녀 앞에서는 이상하게 언니라는 말이 튀어나와서 ‘은수언니’가 고유명사처럼 되었다)는 동대신동에서 나고 자란 신랑(우리는 그를 ‘동재센세’라고 부른다)을 따라 부산의 오래된 이 동네에 자리를 잡고 예쁜 카페를 시작했다. 미술을 전공한 부부의 손길이 구석구석 세심하게 닿은 따뜻한 장소라는 게 첫인상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카페 산복도로 프로잭트>는 나와 내 친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은수언니’와 ‘동재센세’는 이웃사촌이 되어 형제가 없는 나에게 친정언니, 오빠의 역할을 기꺼이 해주고 있다.

 

내가 노래를 계속 부를 수 있게 된 것도 두 사람과 이 카페가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에 나는 집에서 핸드폰으로 녹음한 앨범을 팔며 여행자금을 모으고 있었는데, 마침 카페 1주년을 맞아 동네잔치를 여는데 와서 노래해 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으로 외부 행사(?)에 초청을 받게 된 것이라고 할까. 직접 만든 노래를 불러서인지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온 마음으로 아마추어 음악가를 응원해주었고, 들고 갔던 어설픈 앨범도 모두 구입해 주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서 <카페 산복도로 프로잭트>는 프로가 아니라도 이웃 친구들의 작업물을 전시할 수 있는 전시장, 어떤 음악이든 연주할 수 있는 공연장이 되어주고 있다. 모임 장소와 작업실의 역할뿐 아니라 동네 친구들의 그림수업, 기타수업의 교육장도 되어준다. 부산 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인 ‘은수언니’ 덕분에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주문해 받기도 하고, 평일 낮에 집을 비우는 사람들을 위한 택배 보관소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이 동네의 문화, 예술, 교육, 복지, 친목, 생활 전반의 ‘센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꾸준하고 번거로운 역할에 대해 어떤 금전적 보상도 없었다. 5년 째 은수언니는 도시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꿈같은 장소를 만들어가고 있다. (쓰다 보니 마음이 울컥해지네.)

 

▶ 게릴라 공연을 마치고 다 함께.  ⓒ 이내

 

나의 첫 방송 출연, 게릴라 공연을 하다

 

최근에 방송 촬영 의뢰가 들어와서 갑자기 게릴라 공연이 필요해졌다. 그럴 때는 자연스레 <카페 산복도로 프로잭트>를 떠올리게 된다. 언니에게 부탁을 하고 친구의 손글씨로 쓱싹쓱싹 포스터를 만들면 공연 준비 완료! 전혀 낯선 관객이 찾아오지는 않았지만, 가까이에서 늘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방송국 카메라 공포증에도 불구하고 게릴라 공연에 찾아와주었다.

 

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신인 음악가들의 오픈마이크 자리까지 만들어졌다. 언젠가 우연히 지하철에서 만나 “혹시 가수 이내씨 아니세요?” 수줍게 인사를 건네 온, 이제 막 <소음발광>이라는 밴드를 시작한 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흔쾌히 게스트를 맡아주었다. 당일 점심 때 은수언니가 판매하는 도시락을 먹으러 왔던 청년도 저녁 공연 게스트 요청에 흔쾌히 수락했다.

 

1년 전부터 카페의 공연 기획자 역할을 자진해 맡고 있는 동네음악가이자 나의 연인인 규택도 내 노래의 기타 세션을 맡아주고 자신의 노래들도 불러서, 게릴라 공연은 더욱 풍성해졌다. 우린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같은 장면을 여러 방향에서 찍기 위해 같은 노래를 여러 번 부르고 관객과 게스트는 인터뷰 요청에 시달리게 돼 나는 내내 미안했지만, 다들 나의 첫 방송 출연을 응원해줬다.

 

지구에 해를 덜 끼치는 ‘호미씨’ 친구들과

 

▶ 도시락을 준비 중인 자연농 지향 <호미씨>  ⓒ 이내

요즘 <카페 산복도로 프로잭트>에는 은수언니에게 중요한 가치인 ‘생태적인 삶’, ‘동물의 권리도 인정하는 삶’, ‘지구에 해를 덜 끼치는 삶’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이 자연스레 모여든다. 근처에 자연농 텃밭을 실험하고, 길고양이들을 돌보고,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도시락을 만들어 나의 작업실인 “따뜻한 시도” 앞에서 팔기 시작했다.

 

이들은 작은 작당을 모두 다 좋아하기 때문에 <호미씨>라는 이름부터 만들었다. 농사 자금을 마련하겠다며 매주 금요일마다 자연농 지향 ‘호미씨 도시락’ 이벤트를 열(지만 워낙 좋은 재료를 쓰고 싼 가격에 팔고 있어서 수지가 맞지는 않는다)고, 손으로 그린 로고를 지우개에 파서 스템프를 만들고, 도시락 재료의 출처를 담은 찌라시를 (손으로) 그려서 도시락과 함께 나누어주고 있다. 플라스틱이 아닌 종이용기, 나무젓가락이 아닌 억새젓가락을 쓰는 등 할 수 있는 한 지구에 해를 덜 끼치려 애를 쓰면서.

 

우리의 첫 만남이 녹색당 모임이었다는 것이 새삼스럽다. <카페 산복도로 프로잭트>와의, 아니 은수언니와 동재센세와의 인연이 3년 쯤 이어지는 동안, 많은 크고 작은 일들을 함께 했다. 별일이 없을 때에도 늘 가까이서 서로를 지켜봐주고 있다는 것이 더욱 소중한 일이다.

 

처음 만남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어떻게 하면 도시에서 버틸 수 있을까’ 끊임없이 의논해왔다. 하지만 언제나 돈과는 거리가 먼 선택들을 하며 녹색당의 ‘기본소득 정책’이 해답이라는 결론을 내리고는 함께 웃는다. (울기도 한다.) 늘 떠돌이처럼 살아온 나에게, 동네 카페가 생기고 이웃사촌이 생겼다. 나도 그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 주고 싶다는 기도를 매일 하게 된다.

 

※ <호미씨> 페이스북 페이지 http://facebook.com/homis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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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05 [00:48]  최종편집: ⓒ www.ildaro.com
 
ㅇㅇ 16/08/13 [14:53] 수정 삭제
  기사로만 봐도 즐겁네요 ㅎㅎ
짜증왕 16/08/17 [23:08] 수정 삭제
  아름답고 소소한 이야기네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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