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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할이 아닌, 있는 모습 그대로 엄마와 만나기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 엄마와 함께 여행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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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 위의 음악가’가 되어 새로운 장소와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 이내의 기록입니다. -편집자 주

 

휴가를 맞은 엄마와 여행을 기획하다

 

▶ 통영 공연을 앞두고, 엄마가 휴가를 맞았다며 연락을 해왔다.  ⓒ이내

이번에도 엄마가 전화를 해왔다. 올 여름에는 휴가가 없을 줄 알았는데, 며칠 짬이 났다며 또 휴가 아이디어를 달라는 것이었다. 엄마는 지난 휴가 때 내가 제안했던 ‘3일간의 기차여행’이 맘에 들었나보다. 나에게도 그 여행은 두고두고 떠오르는 좋은 기억이 되어 있었다.

 

엄마가 얘기한 날짜를 달력에서 확인해 보니 통영 공연이 잡혀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엄마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안동에서 출발하여 통영에 노래여행 가는 길에 진주에 들르는 루트를 말했더니, 그때처럼 역시나 좋다고 하신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얼굴도 잘 보여주지 않는 딸이 어딜 가자고 하든지, 엄마에게 장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말이다.

 

오랜만에 안동 부모님댁에 들렀다. 청소노동자인 엄마, 농사짓는 아빠의 방에는 언제부터인지 파스 냄새가 가득하다. 로션으로 된 파스를 온 몸에 발라야 잠이 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찔끔 났지만, 들키지는 않았다.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몸을 움직이는 노동이 필요한 거라며, 아빠의 건강이 더 좋아진 것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냐는 둥 모진 소리만 입에서 나온다.

 

두 분이 직접 기른 채소들은 먹음직스러운 반찬이 되어 밥상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식물을 유독 좋아하는 엄마는 가지가 밭에서 반찬이 되어 상에 올라오기까지의 역사나 이제 막 노랗게 변하기 시작한 벼이삭이 얼마나 신기한지에 대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엄마의 영역을 떠나서, 내가 만든 인연의 지도

 

벌써 10년이 넘은 엄마의 운전 솜씨는 훌륭했다. 엄마가 운전을 막 시작했을 때, 방학을 맞아 집에 와있던 대학생 딸이 영어학원 다닌다고 매일 지하철역까지 데려다주었다.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긴장해서 운전대를 잡고 있던 엄마의 모습이 이상하게도 생생하게 기억 속에 남아있다. 이제는 베테랑이 된 엄마의 운전 솜씨에 감탄하며, 그 때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웃었다. 엄마는 언제나 지도 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오기 전부터 엄마는 진주로, 통영으로 가는 적당한 길을 미리 알아두고는 내비게이션도 없이 목적지에 척척 도착한다.

 

엄마에게 초행길인 경상남도 진주가 나에게는 어느새 제2의 고향 같은 곳이 되어 있었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그곳에 자주 공연을 하는 장소들이 생기고 친구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2집 앨범 <두근두근 길 위의 노래>는 진주의 여러 장소들에서 노래를 녹음하기도 했다.

 

걷는 것을 좋아한다는 유일한 공통점이 있는 우리 모녀는 특별한 계획 없이 진주 시내를 걸어 다니다가 내가 만나온 장소들에 들렀다. 아마도 나는, 내가 만든 인연의 지도를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었나보다. 나는 엄마의 뱃속에서 나와서 엄마의 영역 안에서 자라다가 이제는 엄마의 바깥에 있는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그 모습을 본 엄마의 마음은 어떨까.

 

▶ <다원>의 34주년 기념 공연 시리즈 중 세 번째 시간, 전통예술공연 “아주 오래된 여름밤”  ⓒ다원

 

저녁에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러 <다원>에 들렀는데, 생각지도 못한 공연이 막 시작되고 있었다. <다원>의 34주년 기념 공연 시리즈 중 세 번째 시간으로 “아주 오래된 여름밤”이라는 제목의 전통예술 공연이었다. 설장구의 다양한 장단과 풍물과 소리가 어우러진 시간에 엄마와 나는 함께 어깨를 들썩였다.

 

무엇보다 그 동안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준 사장님 부부의 모습을 엄마에게 보여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사람을 유독 좋아하는 나는 진주에서 만난 인연들을 어떻게 만났으며 어떤 소중한 시간을 보냈는지 엄마에게 재잘재잘 들려주었다. 그리고 진주에서 숙소가 필요할 때마다 예술인 할인을 해주는 <뭉클게스트하우스>에서 편안하게 하룻밤을 보냈다.

 

비슷한 종족을 찾아내는 ‘인연제비’

 

다음날 서둘러 출발해 통영에 도착했다. 공연이 있는 날이면 나는 잔뜩 긴장을 한다. 엄마에게 미리 말했더니, 당신은 조용히 책을 읽으면 되니까 나에게 충분한 준비의 시간을 가지라고 배려해주었다. 엄마는 계획을 철저히 그리는 사람이지만 또 상황에 맞추어 그 계획을 조정할 줄도 아는, 함께 여행하기 참 좋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예전에는 알지 못했다.

 

통영에서 언제부터인가 나의 1집 앨범 <지금 여기의 바람>을 좋아해 주어서 정기적으로 구입해주시는 카페 사장님이 있다. 다른 일을 하시다가 이제 자신의 버킷 리스트를 하나씩 이루어 나가는 중이고, 그래서 용감하게 <블루마운틴>이라는 작은 카페를 시작했다는 이 분은 엄마보다 한 세대 아래 여자분이다. 마침 또 앨범을 주문해주셔서 엄마와 함께 그 곳을 찾았다.

 

<블루마운틴>에서 엄마는 책을 읽었고, 나는 기타를 연습하며 공연에서 부를 노래 선곡을 하는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사장님은 엄마와 함께 찾아온 모습이 좋아 보인다며 다양한 커피며 샌드위치를 선물해주신다. 공연장으로 향할 때는 내일 마실 커피를 예쁘게 포장해 손에 쥐어주신다. 세상에는 대가없이 자신의 것들을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구석구석 포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또 이렇게 깨닫게 된다.

 

▶ 통영의 작은 카페 <커피로스터스 수다>에서 열린 내 공연 모습.  ⓒ커피로스터스 수다

 

공연은 <커피로스터스 수다>라는 작은 카페에서 열렸다. 출발하기 전, 진주의 <다원> 사장님은 통영 공연의 관객들은 마음을 활짝 열고 공연을 맞을 것이라고 예언해주셨다. 알고 보니 <커피로스터스 수다> 사장님과 <다원> 사장님은 서로를 지지하는 친한 선후배 사이였다.

 

전국을 돌아다니며 노래여행을 한 지 3년이 되면서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이 참 많이 닮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때마다 웃음이 난다. 가끔 서로를 소개해 줄 기회가 있는데, 그들은 한 번에 친구가 되곤 한다. 그럴 때마다 나를 ‘인연제비’라고 부르는 <다원> 사장님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어쩌면 그의 말처럼 나에게는 돌아다니며 비슷한 종족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나, 솔직한 서로가 되고 싶다

 

공연장은 통영 항구 옆 오래된 골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좁다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면 벽에 곱게 붙어 있는 백석의 시들을 계속해서 만나게 된다. 그 중에 백석의 ‘바다’를 발견했다. 언젠가 그 시를 외워보겠다고 곡을 붙인 노래가 있는데, 그걸 이 공연에서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백석이 걸었을지도 모르는 그 길들을 걸으며 그가 지은 시들을 찬찬히 보면서 공연 전 긴장되는 마음을 달래보았다. 시를 노래로 만들어 부르는 작업을 더 많이 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공연에 오신 관객들은 대부분 나를 알아서 온 게 아니라 <커피로스터스 수다>를 좋아하고 자주 찾는 분들이다. 내가 찾는 공연장들이 대부분 그렇듯 말이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나 또한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나는 내 공연이 그런 모양일 때 가장 기분이 좋다.

 

▶ 엄마를 예쁘게 찍어주고 싶어서 한 컷.   ⓒ이내

이번 공연의 특이했던 점은 공연이 끝나고 관객으로 오신 분들이 공연과 노래에 대한 피드백을 가장 적극적으로 해주셔서 큰 용기를 얻었다는 것이다. 거기에는 우리 엄마도 포함된다. 어릴 때는 엄마가 응원의 말보다는 지적의 말을 더 많이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 불만이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엄마는 노래할 때 내가 너무 눈을 많이 깜박인다는 분석을 내어놓아서 나는 섭섭한 마음이 되었다. 하지만 엄마는 내가 더 잘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말이라고 했다. 그 이후에 동영상을 보니, 내가 눈을 많이 깜빡이기는 했고 그 모습이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여행이 끝날 무렵, 엄마는 우리가 많이 달라진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엄마에게 우리는 한 번도 비슷한 적이 없었다고 (조금 못되게) 대답했다. 나는 엄마에게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거짓말을 하지 않아도 되는 지금이 좋다. 어떤 역할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한 서로가 되고 싶은 것이다.

 

오래전 엄마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운전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편안하게 나의 드라이버가 되어 준 것처럼, 나도 할머니 포크가수가 되어 있을 그 때에는 더 편안한 모습으로 노래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 그 사이에서 서로 다른 우리들이 나누는 솔직한 이야기들을 마음으로 듣는다면, 분명 그것은 응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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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8/27 [17:50]  최종편집: ⓒ 일다
 
16/08/27 [20:00] 수정 삭제  
  부럽 부럽..
조슬기 16/11/11 [16:55] 수정 삭제  
  이내, 글 재미있게 잘 읽고 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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