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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몸 문화 ‘나는 이제 벗는다’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몸해방 프로젝트③
<여성주의 저널 일다> 하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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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에 거주하는 20대 후반 여성 하리타님이 심리치료 과정을 거치며 문화적, 사회적, 제도적 차이 속에서 새로운 관계 맺기와 삶의 변화를 통해 탐색한 섹슈얼리티 이야기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독일에서 심리치료하기” 편에 이어 “몸해방 프로젝트” 편이 이어집니다. –편집자 주

 

고마운 독일의 누드문화

 

독일에 오고 나니 벗을 일이 종종 생긴다. 특히 물놀이와 일광욕의 계절 여름엔 호수나 개천에서 완전히 알몸이 된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독일에는 일명 FKK(Freikörperkultur; 자유로운 몸 문화)라는 고유의 누드문화가 있다. 기독교 문화가 많이 남아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남쪽보다는 북쪽에 더 많이 퍼져있고, 요즘 세대보다는 중장년 층의 생활양식이다.

 

▶ 독일 누드협회에서 발간한 잡지들. 출판물은 꽤 예전에 나온 듯하다. 무슨 얘기들이 있을까? 사진만 잔뜩 있으려나? 호기심이 인다. ⓒ출처: buchfreund.de

 

다른 유럽 국가가 아니라 독일에 FKK가 생긴 연유에 대해서는 독일인들도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다. 동독 사회주의 당시 개인에게 억압적인 제도와 분위기 때문에 그나마 별 제재가 없었던 공공장소에서의 누드가 사람들에게 심리적 분출구가 되어주었다는 설, 그래서 북쪽 지역에 FKK가 흔하다고 설명한 이도 있다. 어떤 친구는 게르만 신화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독일인들이 자기 뿌리로 간직하는 게르만족 신화에 묘사된 신과 인간들은 특히 야성적이고 자유분방하단다.

 

다른 문화권에서 날아온 나로서는 이들의 전통적인 생활양식이 어떤지 잘 모르고 역사를 파고들 생각도 없지만, 벗을 수 있는 자유가 참 좋다. 넌 독일 사람도 아니면서 굳이 왜 벗어? 사람들이 손가락질해도 상관없다. 어디서 어떻게 자랐는지는 좀 접어두고 나는 이제 벗는다.

 

왜 집에서까지 옷을 챙겨입고 있어야 해?

 

지금은 따로 살지만, 1년 반 정도 동거했던 내 애인은 좀 유별나다. 직장이 격식을 따지는 곳이라 출근할 땐 어쩔 수 없이 정장 흉내를 내고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도 얌전히 하나로 묶어 넘기지만, 퇴근하고 집에 들어오면 진저리를 치며 옷부터 홀라당 벗는다. 계절과 날씨에 무관하게 다 벗어버려야 ‘퇴근=자유’ 공식이 성립되나보다. 게다가 십대 중반부터 이제까지 속옷, 그러니까 팬티를 입어본 적이 없단다. 격렬한 운동을 할 때는 성기가 덜렁대는 걸 방지해서 스포츠 쫄바지를 입어주긴 하지만.

 

웃통을 벗는다거나 팬티만 입고 있는 것도 아니고, 홀라당 벗고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는 게 처음엔 못마땅했다. 나에 대한 예의 따위는 챙기지도 않나. 그러다 갑자기 누가 오면 어쩌나. 이웃들이 창문 사이로 다 보는 건 아닌가 등등. 집에서도 옷을 입고 있어야 할 이유는 많아 보였다. 물론 애인에게는 내가 드민 이유가 하나도 안 통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바깥기온이 40도에 육박하자 보통은 습하지 않고 그늘에 가면 시원한 이곳도 못 견디게 더웠다. 나는 한참 재택근무 중이었다. 일을 마쳐야 했기 때문에 창문을 열고 냉수 한잔 가져다놓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벗고 컴퓨터 앞에 다시 앉았다. 체온이 한 5도는 쑥 내려간 듯 시원하고 가뿐했다.

 

이제는 나도 집에 있다가 몸이 덥거나 마음이 답답하면 지체 없이 벗는다.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애인의 ‘탈인간론’에 완전히 동화되었다. 애인 왈, “인간으로 산다는 건 너무 큰 속박 아냐? 도대체 왜 집에서까지 굳이 옷을 꼭꼭 챙겨 입고 살아야 해?”

 

집에서 벗고 있으면 좋은 점이 하나 더 있다. 나의 애인, 한 남성의 나체를 자꾸 보다보니 나의 남성성기 혐오가 많이 누그러졌다. 쭈글쭈글 주름진 호두나 털 난 코끼리 코, 잘못 만든 순대, 뭍에 나와 죽어가는 개불 같은 걸 연상케 하는 남성의 성기는 나의 미적 기준에선 여전히 아름답지 않지만 그래도 면역요법이랄까, 자꾸 보니 괜찮다.

 

▶ 사실 나는 젖은 수영복, 그 축축한 감촉이 늘 싫었다. 여러모로 이들처럼 안 입는 게 낫다. ⓒ출처: prisma-hsg.ch

 

자기 긍정을 위한 누드 관찰

 

각종 미디어와 사회 통념에 의해 대상화된 여성의 몸은 언제나 소수의 모범답안에 의해 규정되어왔다. 무엇이 아름답고 섹시한지에 관한 소수의 답안에 어긋나는 ‘평범한’ 우리의 몸들은 억압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우리 몸을 억압한 공범에는 실은 우리 자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고 말하고 싶다.

 

나부터 반성해본다. 내 몸에 대해 객관적이다 못해 혹독한 평가와 그로 인한 자신감 부족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내가 몸매가 좋은 편은 아니지. 일단 키가 160cm도 안 돼. 상체가 길고 다리는 짧고. 다른 데는 말랐는데 골반이 넓어서 엉덩이는 퍼졌고. 고3때 살찌면서 허벅지랑 엉덩이에 튼 살 자국도 잔뜩 생겼지. 운동을 별로 안하니 근육이 빈약하고, 자세가 안 좋아서 벌써 목주름 배주름도 있네. 선크림에 소홀해서 얼굴만 탄 데다가 허연 가슴은 심한 짝짝이야.”

 

몸을 가꾸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아니면서 만족은 못한 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뜨뜻미지근한 태도도 있었다. 섹스 욕구가 일어나거나 삶이 지루하게 여겨질 때는 남의 누드를 보며 흥분할지언정 내 알몸을 봐주고 만져주고 구석구석 기쁘게(?) 음미하진 않았다. 그렇게 나부터가 내 몸을 소외시켰다.

 

알몸이 드러나는 순간들, 옷을 갈아입을 때나 샤워를 할 때는 또 어땠는지? 서둘러 닦아버리고 가려버렸다. 물론 여건이 안 되긴 했다. 서울에 본가가 있는 행운 같은 불운 때문에 생활비를 아낀다는 명목으로 가족들과 함께 살았고, 5인 가족인데 우리 집 아파트는 방 세 개에 화장실 하나짜리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외적, 물적, 심적 악조건에도 내 몸 긍정에 특효가 있는 활동 한 가지는 하고 있었다. 은밀하고 뻔뻔하고 발칙한 몸 해방 작전. 셀프 누드사진 찍기.

 

▶ 우리 스스로도 내면화하고 있는, 여성의 몸에 대한 사회적 시선. 오른쪽 여성처럼 좀 통통하면 ‘게으르고 불안정하고 자기관리 못하고 주의력이 부족하고 수동적’ 등등의 딱지를 붙인다. ⓒ출처: girlsgonestrong.com

 

짜릿한 놀이로서의 셀프 누드사진 찍기

 

나는 못해도 매년 한 차례는 누드사진을 남긴다. 7년째다. 누드사진 모델이 되는 것은 전문배우의 업이거나, 몸매 좋은 연예인이 반라 정도를 인기몰이로 찍는 거지 보통 여성들이 왜 그런 걸 하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술 취해 나르시스가 강림하지 않고서야. 그러나 나는 누드사진 모델이 되는 행위가 가진 재미와 힘을 믿는다. 섹슈얼리티 탐구 및 진흥 차원에서 해볼 만한 놀이요 의식이다.

 

피사체 혹은 촬영 보조로 애인의 협조가 있을 때도 있었지만 보통은 혼자 즉흥적으로 한다. 그냥 문득 누드사진을 찍고 싶다는 마음이 동할 때 마침 시간과 여건이 맞아떨어지면 지체 없이 카메라를 세우는 것이다. 장소는 아무래도 밀폐된 공간. 소품으로는 촛불, 호랑이 그림, 독특한 무늬의 천, 그림자, 물, 꽃, 보라색 모자 따위가 쓰인 적 있다.

 

늦은 오후 커튼 친 방의 침침한 공기 속에서, 가족들이 다 잠들고 난 뒤 걸어 잠근 문 뒤의 은은한 촛불에서, 천정거울과 빨간 조명이 있는 모텔 방에서, 여행지 숙소의 환한 창가를 배경으로, 샤워하고 난 뒤 온몸이 아직 촉촉할 때 나는 현대무용수처럼 과감한 춤동작이나 잡지모델 같은 포즈, 혹은 생각에 잠긴 얼굴로 카메라 앞에 섰다. 혓바닥이나 젖꼭지, 귓불과 배꼽을 클로즈업하거나 장기간 노출기법으로 여러 몸체가 겹친 괴기한 이미지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그냥 알몸이 되는 것과 자기의 알몸을 타자의 시선(카메라)으로 바라본다는 건 엄연히 다르다. 사진을 찍는 행위, 찍힌 사진을 후에 본다는 것은 내가 내 몸을 관찰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나의 섹시함을 목격하고 내 몸에 의해 섹슈얼한 에너지가 다시 일어난다. 혹은 성적인 자극 없이 몸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치밀하게 관찰하기도 한다. 마치 명상에 들어간 상태처럼 잡념 없이 온 감각을 내 몸과 몸을 기록하는 일에 집중한다. 평소 의식하지 못한 내 몸의 특성들을 새롭게 발견하거나 낯설게 다시 본다. 처음에는 ‘알몸을 찍는다’밖에 없었다면 경험이 쌓인 지금은 어떤 사진을 찍고 싶다는 구체적인 발상이 떠오르기도 한다.

 

내 생애 첫 누드사진

 

내 첫 ‘셀프’ 누드사진 프로젝트는 스물한 살 때 3주간 떠난 배낭여행에서 시작됐다. 유럽여행을 꼭 가보고 싶어서 알바 세 개를 뛰고 친구들과의 술자리를 마다해가며 악착같이 모은 돈으로 떠난 길이었다.

 

당시 최저가 비행 편은 일본을 경유하고 다음날 유럽행으로 환승하는 것이라, 공항 옆에 있는 비지니스 호텔 투숙권이 같이 나왔다. 앙증맞을 정도로 작고 간소하지만 효율적인 공간 활용 덕에 있을 건 다 있는, 참 일본스러웠던 1인용 객실에 들어섰다. 카펫이 깔리고 방음이 잘 된 실내는 정말 조용했다. 주변에 사람 하나 없었다. 여행길에 올라 종일 정신없다 갑자기 조용한 곳에 오자 기분이 참 묘했다.

 

거대한 배낭을 내려놓자마자 방을 살펴 내게 주어진 객실용품을 하나씩 확인하며 즐거워했다. 목욕가운으로 제공된 유카타(호텔로고가 무늬로 찍혀있었다)로 갈아입고 커튼이 길게 쳐진 커다란 창문 사이로 노을을 지켜봤다. 무더운 한낮 더위가 꺾이고 선선해질 무렵, 분홍빛 보라빛이 뒤섞인 노을은 환상적이었다. 구름 사이사이로 비행기가 유유히 지나갔다. 문득 깨달음이 왔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쫙 훑고 지나가는 진짜 ‘느낌적인 느낌’이었다.

 

아, 처음이구나. 이렇게 오래 집을 나와 보는 것, 그것도 홀로 여행한다는 것, 한국 땅을 벗어나보는 것. 인천에서 나리타로 날아온 짧은 비행도 내 생애 첫 비행이었다. 카펫과 커튼, 닫힌 문으로 조용한 프라이버시가 보장된 호텔이라는 곳에서 처음 묵어보는 거였다. 갑자기 기분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 몸에 맞지도 않아 대충 허리띠를 둘러맨 유카타의 덜렁거리는 두 소매를 쥐고 맨발로 카펫이 깔린 좁은 호텔방을 깡충깡충 뛰어다녔다. 주체할 수 없는 해방감이었다. 이제 진짜 ‘어른 여자’가 된 느낌. 앞으로는 뭐든 이렇게 혼자 해낼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

 

지금 같으면 당장 나가서 맛난 와인 한 병 구해와 홀라당 다 마실 텐데, 그때만 해도 순진했던 난 혼자 어떻게 이 째지는 기분을 풀까 잠시 궁리했다. 그리곤 다음 순간 잽싸게 카메라(언니한테 잔소리를 들어가며 힘들게 빌려온 당시 막 보급되던 디지털카메라, 일명 똑딱이)를 꺼내 TV에 세우고는 셀프 모드로 해놓고 침대 위에 앉아 찰칵, 한 장 기념사진을 남겼다. 한두 장으로 끝내긴 서운했다. 다음엔 나도 모르게 유카타를 벗고 알몸이 되었다. 즉흥적으로 여러 포즈를 취해가며 찍고 또 찍고, 카메라를 이리 저리 옮겨 놓기도 하며 시간을 잊고 놀이에 빠져들었다.

 

▶ 첫 키스를 한 베를린 근교 포츠담의 그 호숫가.  ⓒ하리타

 

내 영혼이 기획한 성인식

 

당시 섹스도 해보기 전이고 포르노를 본 것도 아닌데 그런 발칙한 생각이 어디서 술술 나왔는지 모르겠다. 내 영혼이 지금 이 순간을 기념하는 성인식을 치러야한다고 내게 신호를 보냈었나 보다. 그렇게 처음 스스로를 당당한 ‘성인 여자’로 느꼈을 때-옷이나 화장, 남의 시선 때문이 아니라 자립감과 해방감에 의해서-나는 알몸을 드러내며 한껏 섹시해졌다. 그리고 그 은밀하게 경이로운 순간을 기록했다.

 

그렇게 에너지를 한껏 충전하고 떠난 길이라 그랬을까, 배낭여행은 순조로웠다. 아니 실은 통통 튀는 공처럼 발랄하게 사고치고 다녔다. 암스테르담에서, 비엔나에서, 뮌헨에서 낯선 사람들과 허물없이 어울렸고 베를린에서는 짐 캐리를 꼭 닮은 동유럽 유학생과 3일을 붙어 다녔다. 그와 포츠담의 호숫가 잔디밭에서 첫 키스를 했고 진한 애무를 나눴다. 마치 늘 하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가끔 외장하드 깊숙이 자리한 나의 첫 누드사진 폴더를 열어본다. 지금도 전율을 일으킨다. 흑백으로 찍힌 사진 속 나는 취한 듯 몽롱한 표정과 과장되지 않은 포즈로 스물한 살 여자의 완벽하지 않으나 생생한 곡선들을 내보이고 있다. 거기서 나는 부끄러움도 어색함도 없이 자연스럽다. 포토제닉하지 못한 평소와는 전혀 달랐다.

 

나중에 친한 친구나 (그 동안 몇 번 바뀐) 애인들에게 그 사진들을 보여준 적이 있다. 친구들과는 페미니즘 동지애를 다지고, 애인에겐 포르노 대신 심어줄 이미지를 위해서였다. “이게 스물한 살 때 너야?” “이거 진짜 셀프로 한 거 맞아? 예술적인데?” 스스로 이룬 해방에 대한 만끽, 지금 자기 몸에 대한 찬사, 꾸밈없는 욕망과 몰입이 들어간 순도 100% 섹시함. 내 사진들 앞에서 그들은 뭘 느꼈을까? 물론 성욕을 느꼈단다.

 

▶ 다음 번 누드사진을 위해 미리 물색해둔 장소. 예전에 살던 집 인근의 숲이다. ⓒ하리타

 

내 몸이니까 그냥 예쁜 거다

 

꼭 거창한 뭔가를 할 필요는 없다. 일상생활에서 단 5분이라도 우리 몸을 탐구하고 긍정하고 나아가 도취하자고 제안한다. 사회가 어떤 꼼수를 써서 어떻게 우리를 주둑들게 하고 세뇌시키든 내 몸은 내 몸이니까 그냥 예쁘고 귀한 거다. 그렇게 마음먹고 자꾸 보면 ‘이만하면 내 몸, 생각보다 괜찮은데? 꽤 섹시한데?’라고 흐뭇해진다. 그리고 그것은 분명 일종의 테라피, 치유경험이 된다.

 

올해 누드 프로젝트는 가을쯤, 숲에서 하고 싶다. 벌써 봐둔 장소가 있어 답사를 가서 구도를 좀 잡아봤다. 날씨가 너무 화창하면 안 된다. 좀 흐려야 초록 색감이 사진에 선명히 나오고 흐린 날 조용한 숲이어야 은밀하게 자연과 교감을 할 수 있으니까. 비 내리고 난 후면 더 좋다. 촉촉하게 젖은 숲에서 맨발로 땅을 느끼고 가슴으로 숲 바람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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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09/17 [10:54]  최종편집: ⓒ www.ildaro.com
 
16/09/19 [11:39] 수정 삭제  
  이번 기사도 흥분되네요. 해방감이 느껴집니다!!
전망대 16/09/20 [14:03] 수정 삭제  
  참으로 한국적이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의 글이라 이 연재 재밌게 보구 있습니다. 몸에 대해 전보다 더 깊이 그러면서도 편하게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같아요....
이일 16/11/04 [01:11] 수정 삭제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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