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 ‘직장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돌봄의 세대 전가>④ 장시간 노동 체제가 변해야 한다

김양지영 | 기사입력 2016/10/01 [17:03]

워킹맘 ‘직장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돌봄의 세대 전가>④ 장시간 노동 체제가 변해야 한다

김양지영 | 입력 : 2016/10/01 [17:03]

※ 취업부모의 양육 책임과 부담이 조부모에게 전가되는 이른바 ‘조부모 양육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돌봄의 세대 전가’ 현상이 왜 발생하였으며 어떤 문제를 대두시키고 있는지,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진단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기사를 연재합니다. 필자 김양지영 님은 여성주의 연구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워킹맘과 워킹대디의 극명히 다른 현실

 

장시간 일하는 한국의 노동 시스템에서 취업부부는 자녀 양육에 조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시장중심의 일상을 살아내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시장노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여기서 ‘이들’에 해당하는 취업여성과 취업남성은 동질적인 집단이 아니다. 한국사회에서 자녀가 있는 취업남성들은 ‘생계부양자’로 지지되어 왔기 때문에, 이들이 일을 지속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에 반해 자녀가 있는 취업여성들은 어머니로서의 돌봄 책임을 갖고 있어, 대리양육자가 있어야 일을 지속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듯 조부모의 돌봄 지원을 받는 많은 취업부부들은 남성보다 여성이 장시간 일하는 경우가 더 많다. 즉, 장시간 일을 하는 여성이 일을 지속할 수 있도록 조부모 돌봄 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조부모의 돌봄의 지원은 곧 워킹맘의 시장 생존을 연장하는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조부모 지원을 통해 남성만큼 장시간 노동을 할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취업여성은 남성만큼 시장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그녀들은 자신의 시장노동 수명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한다. 많은 여성들이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시기에 일을 그만둔다.

 

▶ 조부모와 같은 대리 양육자의 지원을 받으며 직장생활을 해온 여성들도, 자녀가 초등학교 입학 시기가 되면(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 김양지영

 

37세인 이수영 씨는 ‘30대 후반’이라고 하는 워킹맘들의 퇴직 시기에 있다. 그녀는 이제 선배들이 아닌 또래들의 퇴직 소식을 접한다. 또래들의 퇴직이 남 일 같지 않아 하루에도 수십 번 일을 ‘지속해야 하나, 아이들을 돌봐야하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

 

“불행하게도 최근에 또래가 회사를 많이 그만뒀어요. 이유인즉슨 육아 때문에. ‘버티다 버티다’ 한계가 온 거죠. 기점이 마흔 전후라고 얘기를 하더라구요. 그쯤 인제 아이가 초등학교를 갈 때 고때 많이들 그만두는데, 제 나이 주변의 나이들이 딱 그때인거 같애요. 최근에 많이 그만둬서 대개 기분이 우울했어요. 남일 같지가 않은 거에요. 저두 뭐 하루에도 수십 번 이 길이 맞는 길일까 저 길이 맞는 길일까…”

 

전일제로 일하는 워킹맘들의 ‘40대를 전후한 퇴직’은 통계 자료를 통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여성의 시간당 임금은 30대 후반(1만800원)에 가장 높고, 정규직 여성의 월 임금 또한 30대 후반(238만원)에 가장 높다. 여성 가운데 고임금 계층은 30대 후반(19.7%)에 정점을 찍고 하락한다.(김유선, 2014) 한국의 임금 체계는 20대에 정규노동 트랙에 진입해 연차에 따라 임금을 쌓아가는 연공급이다. 30대 후반의 시점에 여성임금이 가장 높다는 것은 노동단절을 겪지 않은 전일제 여성들이 이 시기에 일을 그만두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반면 남성들의 평균적인 시장노동 퇴출 시기는 50대 중반이다.(금재호, 2012)

 

자녀의 ‘교육’을 위해 끊임없이 호출되는 취업여성

 

자녀가 있는 여성들, 그것도 조부모의 돌봄 지원받는 여성들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시기에 시장노동을 그만두는 이유는 무엇일까? 남녀를 불문하고 직장 내에서 직급이 높아짐에 따라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연령은 직장 내 상위 직급을 두고 경쟁이 치열해지는 때다. 여성들은 이 시기가 업무 뿐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 쌓기를 통해 직장에 헌신성을 보여야하는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시기에 워킹맘들은 조부모의 돌봄 지원을 받는다 하더라도 아이에 대한 돌봄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남성’들처럼 시장에 헌신하기 어렵다.

 

한국 사회는 아이의 취학을 기점으로, 취학 전은 ‘돌봄’의 시기로 파악하는데 반해 취학 이후는 ‘교육’의 시기로 파악해 어머니의 교육적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교육이 계급 재생산의 통로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신명호, 2011) 한국의 가족은 경제적 생존의 단위이자, 계층 상승을 꾀하는 전략적 투자의 장소가 되었고, 가족 내에서 ‘어머니’에게 요구되는 역할은 더욱 복합적이고 모순적이기까지 하다.(황정미, 2005)

 

자녀를 둔 여성들은 어머니 노릇 가운데서도 ‘교육’에 방점을 찍고, 가족의 생존과 계급 재생산을 목표로 교육적 역할을 전담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취업여성들 또한 어머니의 교육적 역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취업여성들은 어머니로서의 교육적 역할에 대한 책임을 함께 가지면서, 시장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 속에 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교육적 역할은 무엇인가. 그것은 아이의 학습을 비롯해 아이의 또래관계까지 아이와 관련한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다. 자녀가 있는 취업여성들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전업주부 위주로 형성된 학부모 네트워크에서 소외되는 어려움을 이야기한다. 전업주부 중심의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아이들의 또래관계와 다양한 교육활동과 정보가 공유되기 때문이다. 취업여성들은 그 네트워크에 끼기 어렵고, 결국에는 그것이 아이와 자신에게 어려움이 된다고 말한다.

 

“축구팀을 아홉 명 짜리를 조직을 해서 저한테 넣어 준거죠. 팀에. ‘합류를 시켜줘서’ 다행히 우리 아이는 축구팀에 합류를 한 거에요. (웃음) 합류를 했는데… 그러고 나서 한참 있다 보다보니까 여기에서 스포츠가 파생이 또 된 거에요. 스케이트가 또 파생이 돼서 어떤 아이는 스케이트를 타러가고 이렇게 됐는데. 그러다보니까 그냥 안하면 되는 거잖아요. 마음 편히. 근데 문제는 애가 하고 싶어 한다는 게 문제인거에요. 애가 하고 싶어 하는데 그거를 ‘링크’를 해줄 수가 없다보니까, 여기에서 인제 괴로움이 생기는 거에요… 물론 육아의 힘겨움, 조부모님에 대한 고민 이런 것도 있지만,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고민에 앞서서 내 눈앞에 닥친 이것들을 해결하기가 너무 쉽지가 않은 거에요.”(이수영/37세)

 

워킹맘들 가운데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를 견뎌낸 사람들은 그 위기가 초등학교 입학 때만 오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이들은 아이 출생 후 아이의 성장 단계에 따라 시장노동 단절의 위기에 처한다. 여성들은 아이가 영유아 시기에는 아이와의 애착 형성을 위해, 초등학교 시기에는 아이의 학습의 기초를 다지기 위해, 초등학교 고학년에서 중학교 시기에는 아이의 사춘기에 대응하기 위해, 고등학교 시기에는 대학 진학을 위해 ‘어머니’로 호명된다.

 

그러니 자녀가 있는 취업여성들의 시장노동은 아이들의 성장에 따른 돌봄 요구에 따라 켜켜이 위기가 아닌 시기가 없다. 아이는 여성, 바로 어머니의 책임이 되고 있으며, 워킹맘들은 아이의 상태와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호출된다.

 

▶ 자녀의 성장 단계에 따라 워킹맘들은 양육과 교육의 책임자로 호출되며 시장노동 단절 위기에 처한다.  ⓒ김양지영

 

‘성차별 결혼퇴직’ 시절보다 얼마큼 나아졌나?!

 

취업여성들은 조부모의 지원을 받으며 자녀 돌봄을 최소화해서 시장영역에서 버텨낼 수 있었지만, 돌봄 책임을 갖고 있기 때문에 돌봄을 전혀 하지 않고 시장에 헌신할 수는 없다. 결국 워킹맘들은 개인의 모든 자원을 동원해 돌봄을 최소화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생존할 수 있을 때까지 생존하다 사라지고 있다.

 

자녀가 있는 여성이 시장에서 한시적으로 생존하는 현상은 우리 노동시장이 돌봄을 하지 않는 이들만의 장소라는 것, 노동시장이 돌봄과 분리된 곳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김은선 씨는 노동시장의 이러한 현실이 ‘성차별 결혼퇴직’ 관행이 있던 1980-1990년대와 별반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분석한다. 기혼여성이 직장에서 끝까지 갈 수 없다는 본질은 같다는 것.

 

“옛날하고 똑같은데 그냥 그게 쪼금 더 늦춰진 거 뿐이에요. 그 본질은 똑같애요. 끝까지 갈 수 없고. 근데 옛날에는 그게 결혼이었고, 그 다음에 애 하나 낳을 때까지였고, 지금은 어느 정도 한 초등학교 갈 수 있을 때 정도까지…. (그럼 사무실에 남아있는 여성들이 대부분 싱글이겠네요.) 그렇죠. (결혼해도 애가 없거나?) 애가 없거나, 있어도 잠깐 이렇게 누군가의 그거를 빌려서 5,6년 잠깐 연장하는…”

 

자녀가 있는 취업여성의 한시적 생존은 노동시장 영역에 돌봄이 통합되는 전략을 취하지 않고서는 시장의 남성중심성이 변화하지 않으며, 시장과 돌봄의 분리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남성중심적인 노동시장에 변화를 추동하지 않은 채 이뤄지고 있는 여성의 시장노동은 남성만큼 시장에 헌신할 수 있는 이들만의 생존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즉, 여성의 시장노동은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 없이는 한계를 갖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에게만 한정되는 돌봄 책임, 남성은 생계부양자로 적극 지지되는 현실. 이는 성별분업의 결과이다. 노동시장 내 성평등은 성별분업을 해체하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성평등한 시민상으로 제시해 온 ‘함께 돌보고 함께 일하는’ 삶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아무도 돌보지 않는 남성’을 모델로 하는 장시간 노동 체제를 변화시켜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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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고래 2016/10/22 [16:09] 수정 | 삭제
  • "여성의 시장노동은 노동시장 구조의 변화 없이는 한계를 갖는다"는 주장에 공감합니다만, 한편, 양육에 그토록 지대한 돌봄이 요구된다는 점 또한 함께 문제시해야 할 부분이 아닐까요? 계급 재생산이 비공식 네트워크, 사교육, 그리고 이것을 요약하는 '정보력'을 그토록 많이 필요로 한다는 점 역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인 것 같습니다.
  • 물고기 2016/10/05 [14:19] 수정 | 삭제
  • 가슴 답답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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