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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의 기억이 없는 소녀에게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밥의 역사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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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밥상머리의 오순도순’ 같은 평화는 없었다

 

내 밥의 역사에는 ‘따뜻한 밥’의 기억이 없다.

 

이 사실 앞에 충격을 받는다. 설마, 그렇게까지 내 삶이 황폐하단 말인가…. 기억이 있다. 다섯 손가락이 다 안 꼽힐 만큼 예외적으로. 엄마와 광산촌 사택 지붕에 달린 긴 고드름을 따 먹던 어린 시절 기억이 가장 따뜻하다. 바가지에 고드름을 가득 따 담아 덜덜 떨면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와드득 와드득 깨물어 먹던 기억. ‘와드득’ 거리는 고드름 소리만큼이나 경쾌하고 기쁜 기억이다. 엄마와 난 어린아이로 함께 놀았다.

 

‘밥을 하는 사람’으로 있을 때, 엄마는 늘 화가 나 있었다.

 

내게 밥을 먹는 행위는 화가 난 엄마가 언제 뒤통수를 갈길지 몰라 빨리 먹어치워야 하는, 불안한 일이었다. 어쩌다 맛있는 반찬이 상위에 올라 왔을 때, 두어 번 손이 가면 엄마의 부릅뜬 눈과 마주치는 일이기도 했다. 언제부턴가 나는 나의 식욕을 부끄러워하기 시작했다.

 

▶ 소풍 때면 어김없던 터진 김밥.    ⓒ김혜련

 

집안일을 할 때의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화가 잔뜩 나, 눈과 입이 앞으로 몰려 튀어나온 얼굴. 소리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거친 호흡과 쿵쿵거리는 발소리, ‘툭 두두둑 툭툭툭’ 거칠고 둔탁한 도마 소리, 설거지통이 탕탕 튕겨지는 소리, 연탄집게 팽개치는 소리, 부엌문을 쾅 닫는 소리, 어린 내 가슴이 불안에 떨며 쿵닥거리던 소리, “놀지 말고 일해라!” 고함치는 소리, 교복 입은 단발머리 위로 내리쳐지던 양은 밥상의 소리…. 늘 나던 냄새도 따라온다. 밥 타는 냄새, 시큼하게 쉬어가는 음식 냄새, 먹던 데 넣고 또 넣어 끓인 짜디짜게 졸아 붙은 된장찌개 냄새, 퉁퉁 불은 수제비의 밀가루 냄새….

 

밥에 대한 아픈 기억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초등 때 점심을 굶거나 옥수수죽을 받아먹던 기억, 남의 집 마루에 작은 고구마가 있기에 몰래 주워 먹으려고 잡았더니 아이 똥이었던, 오래 부끄러웠던 기억, 소풍 때마다 어김없던, 죄다 터져 버린 김밥을 아이들 틈에서 벗어나 혼자 먹던 기억. 한 여름에 물에 빤 쉰밥을 화난 엄마와 함께 먹던 기억. 고 3 일 년 내내 엄마 몰래 부엌에 서서, 후루룩 마시고 도서관으로 달아났던 물에 말은 찬 밥덩이의 기억…

 

마음 놓고 먹는 밥, 따뜻한 밥, 밥상머리의 오순도순 같은 평화는 내 밥 역사에 없다.

 

엄마는 평생 밥을 했지만 그 밥하기의 주인이 아니었다. 내 밥의 역사에서 엄마는 주인인데, 주인공 역할을 하지 않(못)았다. 이 주인공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될까.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를 갈았던 소녀

 

▶ 1970년대 부엌.    ⓒ그림- 김혜련

내 기억 속의 엄마는 수십 년 밥을 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된 밥을 하지 않았던 사람, 집안일을 남의 일을 억지로 하듯 대충 때우던 사람, 주로 내게 그 일을 떠넘기거나, 툭 하면 화를 내고, 파업을 하던 사람이었다.

 

학교에 갔다 집에 오면 집안일이 쌓여 있었다. 공동 수도에 가서 물을 길어오고 설거지통 가득한 그릇들을 씻고, 난장판인 방을 정리하고 수북이 쌓인 어린 동생들의 똥기저귀와 옷가지들을 빨아야 했다.(바로 밑의 동생과 나는 나이 차이가 9년이나 된다. 그 아래로 연년생으로 남동생만 셋이다) 내일 시험이어도 “놀지 말고 일해라!” 소리를 버럭버럭 질러댔다. 아버지와 싸운 날은 아예 머리를 질끈 동여매고 드러누워 버렸다. 집에 오면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울고 있는 동생들과 난장판이 된 방에 연탄불은 꺼져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씨발.”

 

내 안의 어린 아이는 서러움 가득하고, 조금 더 자란 소녀는 욕설과 분노에 차 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아이나 소녀가 아니다.

 

엄마를 이해하게 된, 아니 엄마와 내가 똑같다는 것을 절망스럽게 깨달은, 나이 든 여자다. 그 여자는 ‘씨발’, ‘조또’ 하는 내 안의 어린 여자들을 달랜다. “그게 이런 걸 거야…”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씨발…” 눈물을 훔치며 씩씩대는 소녀의 등을 어루만진다.

 

엄마 스스로 자기 삶을 서술하면 어떨까? 엄마 스스로 말을 하라고, 자신을 변론하는 가상의 자리를 마련해 본다.

 

‘난 여섯 살 때 엄마를 잃었다. 아버지도 곧 세상을 떴지. 6.25때 언니 오빠를 따라 피난을 나와 떠돌아 다녔다. 난 따뜻한 집이 없었다. 따뜻한 밥도 없었다. 밥을 배불리 먹은 기억도 없다. 자식들을 어떻게 기르고 밥을 해 먹이는 건지 본 바도 없고 배운 바도 없다. 내겐 가족이 없었다. 늘 외로웠다. 그러다 하나님을 만났다. 그 분을 만나고 내 삶은 달라졌다. 세상에서 날 사랑하는 유일한 분. 난 그 분을 위해 살리라 결심했다. 선교사가 되어 그 분을 전도하고 다니는 꿈을 꿨다. 그 꿈으로 나는 살았다.’

 

대개의 인생이 그러하듯 엄마의 삶도 다른 길로 흘러갔다. 결혼을 하고 ‘첫날밤의 웬수’가 들어서고, 고된 시집살이를 해야 했다. 더구나 남편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교회 다니는 일로 박해까지 받았다. 엄마의 꿈은 좌절됐다.

 

엄마의 특이한 지점은 그 다음이다. 보통 좌절하면 체념하거나 타협하기 마련이다. 엄마에겐 그게 없었다. 체념이나 타협이란 말은 엄마 인생 사전에 없었다. 주어진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엄마의 하나님 사랑은 억척스러워졌다. 예수님의 박해와 고난을 자신의 것과 등치했다.

 

엄마의 삶은 교회를 중심축으로 돌아갔다. 평생 새벽기도를 빠지지 않았고, 집사에서 권사로 교회의 직분을 성실히 이행했다. 없는 살림에도 반드시 십일조를 바쳤고 건축헌금을 했다. 대부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교회 일에 썼다.

 

집안일은 엄마에게 빨리, 대충 해치워야 할 것이고, 자신의 길을 가는 데 방해물이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하고 있으면 울화통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렇게 싫었으면, 그만 뒀으면 되잖아. 집을 나가서 전도사가 되든지 했으면 되잖아!!!”

 

내 안의 소녀가 씩씩거린다.

 

“아버지와 싸우고 하루 종일 머리 싸매고 드러누워 ‘으흐응, 끄으으흥’ 앓는 소리를 내며 누워 있는 당신을 발로 밟고 싶었어. 제발, 소리만 내지 말라고 입을 봉하고 싶었어. 학교 갔다 오면 집은 난장판, 동생들은 울고불고. 꺼진 연탄불 붙여 밥을 하면서 당신을 증오했어. 죽이고 싶었어. 핑계 많은 당신이 치 떨리게 싫었어!!!”

 

그 소녀는 파랗게 질려 있다.

 

“당신을 죽이고 싶어 하는 내가 괴물 같았어. 당신의 교회에서 말하는 ‘사탄’이 바로 나인 것 같았어. 그런 나를 증오했어. 죽이고 싶었단 말이야, 씨발~”

 

그 소녀의 아픔을 품고 있는, 나이든 여자는 고개를 숙인다. 소녀에게 용서를 빌어야 할 사람은 이제 나인 것 같다. 나는 그 소녀가 증오했던 엄마로부터 가능한 멀리 떠났다. ‘나는 당신처럼 살지 않을 거야’ 이를 갈았다.

 

그러나 결국 엄마와 똑같은 삶을 살았다. 엄마가 평생 ‘하늘’을 바라보며 ‘땅’의 삶을 살지 못했듯 나 또한 그러했다. 그걸 이제야 아주 구체적으로 깨닫고 있다.

 

“미안해, 미안해…”

 

따뜻한 밥을 먹어 본 기억 없이 서럽게 울고 있는 소녀에게 내 잘못이라고, 정말 잘못했다고 빈다. 엄마가 밥의 주인이 되지 못한 것처럼 나 또한 그랬다. 나는 나 자신에게 한 번도 따뜻한 밥을 해주지 못했다. 그래서 삶이 황폐해졌다는 걸 이제야 겨우 이해하게 되었다.

 

▶ 타거나 설거나 삼층밥이거나 했던 밥의 기억.   ⓒ김혜련

 

세상의 서럽고 황폐한 밥을 향해 흘린 눈물

 

밥 이야기를 쓰다가 여러 번 눈물이 났다.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한 어린 나에 대한 측은함이이었다. 밥의 따뜻함을 몰랐던 엄마의 삶에 대한 연민이었다. 그 밥의 역사를 대물림 받은 아들에 대한 눈물이기도 했다. 황폐한 밥은 대를 물리고 또 물렸다.

 

눈물은 잘 그치지 않았다. 따뜻한 밥을 먹어보지도 못하고, 평생 누군가를 위한 밥을 하는 어떤 여자들의 삶에 대한 눈물, 밥하는 일이 일방적 의무로 지워져 때로는 밥을 지긋지긋한 것으로 여길 수밖에 없는, 숱한 여자들을 향한 눈물이기도 했다.

 

자신의 밥에 대해 무어라 말할 수 있는 언어를 갖지 못한 사람들, 밥이 부끄러움이나 치욕인, 보이지 않는 얼굴들. 보이지 않아, 없는 취급을 받는 경험들을 향한 눈물이기도 했다.

 

나는 세상의 서럽고 황폐한 밥을 향해 곡비(哭婢-장례 때 곡성이 끊이지 않도록 양반을 대신해 울어주던 여자 종)처럼 울고 또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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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0/05 [12:37]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16/10/09 [12:52] 수정 삭제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16/10/18 [17:53] 수정 삭제  
  어린선생님을 따뜻한 가슴으로 안아주고 싶네요. 실력은 없지만 그 소녀에게 따뜻한 밥도 해먹이고 싶고요. 그 길들을 지나 따뜻한 지금의 선생님이 되어주셔서 고마워요^^
해선 16/11/19 [00:05] 수정 삭제  
  저도 가슴 아프게 읽었습니다. 제 도시락통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나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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