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에 재개된 페미니즘 비엔날레 ‘페미 3.0’

‘페미니즘 미디어 아티비스트’는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

이충열 | 기사입력 2016/10/23 [23:50]

6년만에 재개된 페미니즘 비엔날레 ‘페미 3.0’

‘페미니즘 미디어 아티비스트’는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

이충열 | 입력 : 2016/10/23 [23:50]

매일같이 업데이트되는 여성혐오 범죄와 사건들도 모자란 것인지, 보건복지부가 9월 22일 입법예고한 <의료관계 행정처분 규칙 일부 개정령안>에서 의료인 처벌을 강화할 ‘비도덕적 진료행위’로 임신중절시술을 포함시켜 여성들의 분노를 샀다. 산부인과의사회가 반발하고 여성들이 ‘검은 시위’를 열어 강력히 문제 제기하자, 정부는 처벌 계획을 재검토하기로 했다고 했지만, 여전히 대한민국은 ‘낙태죄’가 있는 국가다. 여성의 몸을 국가가 통제한다. 또한 대중매체는 끊임없이 여성혐오를 부추기는 이미지를 생산해내고 있다.

 

여성인권이 바닥을 치는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한 분노와 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페미니즘 미디어 아티비스트 비엔날레’가 6년 만에 개최된다는 반가운 소식이 있어 전시장을 찾았다.

 

▶ “당신은 어떤 여자인가요?” 윤영주 작가의 Can you hear me?(Sound Installation | 31m 38s | 2015)

 

여성은 자유롭게 자신을 예술로 표현할 권리가 있다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이 주최한 올해 비엔날레의 주제는 ‘페미 3.0’(FEME 3.0)이다. 지난 5월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비롯해 여성혐오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성주의 관점을 가진 예술작품을 통해 여성의 현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겠다는 기획의도를 담았다고 주최 측은 밝힌다.

 

‘페미 1.0’은 회화, 조각, 사진, 퍼포먼스로 목소리를 내었고, ‘페미 2.0’은 DV영상, 설치, 사운드, 블로그, 로컬커뮤니티아트 방식으로, 그리고 2016년 ‘페미 3.0’은 HD영상, 네트워크, 빅데이터, SNS, 스마트폰을 통해 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기획자인 김장연호 디렉터는 “사실 2010년을 마지막으로 이 비엔날레는 앞으로 더 지속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한다. “불안정적인 예산도 그렇거니와, 2007년 6월 27일 호주제 폐지 시행일을 기점으로 여성운동이 많은 동력을 상실했다”고 보았기 때문. 호주제 폐지 후 법적으로는 여남 간의 평등이 드디어 이루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새로운 여성주의 비전을 담은 비엔날레를 기획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올해 6년 만에 ‘페미니즘 미디어 아티비스트 비엔날레’를 재개하게 된 것은, 한국 사회에서 부각되고 있는 ‘여성혐오’ 논란과 젊은 페미니스트들의 행보가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페미니즘 미디어 아티비스트 비엔날레’를 관통하는 정신은 무엇일까. 김장연호 디렉터는 “어떠한 경우에서도 비윤리적 차별과 폭력은 사라져야한다는 게 여성주의의 미션”이며, “여성은 자유롭게 자신을 예술로 표현할 권리가 있다. 여성이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기 전까지 ‘페미니즘 미디어 아티비스트’라는 용어는 끊임없이 재생산될 것”이라고 선언한다.

 

▶ 이시하라 노리코 작가의 <‘답게' 굴기를 위한 때밀기>(Single channel video & installation | 6m18s | 2016)

 

여성 미디어 아티스트들은 현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페미니즘 미디어 아티비스트 비엔날레 2016은 세 개의 공간에서 각각 다른 기간 동안 진행되고 있다.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을 통해 ‘여성혐오’를 인식하게 된 사람, 이제 막 여성주의에 눈뜨기 시작한 사람, 오래 전부터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공부해온 사람 등 다양한 여성주의자들이 있듯이,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품들의 언어와 깊이와 접근법도 다양하다.

 

10월 17일~19일 레인보우큐브갤러리에서 전시된 윤영주 작가의 Can you hear me?(Sound Installation | 31m 38s | 2015)는 “당신은 어떤 여자인가요?”라는 질문에 엄마, 딸, 부인, 며느리로서의 이야기가 아닌, 한국여성 105명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녹음해 만든 작품이다. 그리고 타인에 의해 형성된 자아와 원래의 자아 사이의 갈등을 표현한 이시하라 노리코(Ishihara Noriko) 작가의 <‘답게' 굴기를 위한 때밀기>(Single channel video & installation | 6m18s | 2016)를 비롯해 여섯 개 작품이 전시되었다.

 

10월 22일~27일까지는 미디어극장 아이공에서 욕망의 주체이면서 대상일 수밖에 없는 여성의 이중적 위치를 드러낸 최민경 작가의 <소녀를 위한 러브레터>(Single channel video | 7m32s | 2013)와 한국의 20대 여성으로서 느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비디오와 오브젝트 설치로 표현하는 권희수 작가의 <나 같은 여자>(Video installation | 4m44s | 2015) 등 세 개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1월 2일과 3일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대안주의 여성영화제’가 열린다. ▶삼인삼색전 ▶젊은 여성 작가전 ▶여성적 글쓰기전 등 세 개의 섹션에서 열여섯 작품이 상영된다. 비극적 가족사를 가진 고려극장 여성예술가들의 삶과 노래를 담은 음악 다큐멘터리 <고려아리랑: 천산의 디바>(김정 감독 | 88min | color | 2016)와, ‘국가’를 형성하는 데 필요한 두 요소–대지와 물- 사이의 대화를 공간적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 <베트남 말하기: 베트남 잊기>(트린 T.민하 감독 | 90min | color | 2015) 등이 주목된다.

 

▶  최민경 작가의 <소녀를 위한 러브레터>(Single channel video | 7m32s | 2013)

 

페미니즘에 대한 오해가 크고, 성별 이분법의 문제를 거론하기조차 어려운 대한민국에서 국내 페미니스트 작가들은 ‘여성적’이라는 고정관념에 어떻게 반응/대응하고 있는지, 남성의 언어와는 다른 여성의 언어를 어떻게 구현해내는지 해석해보는 것도 관람 포인트가 될 수 있겠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여성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현실을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페미니즘 미디어 아티비스트 비엔날레’를 다시 열어준 기획자와 스테프, 작가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더불어 한국영상자료원 시네마테크 2관에서 11월 3일 오후 5시 30분에 열릴 심포지엄 <시각예술로서 페미니즘 미디어의 위상>에 많은 이들이 참여해 목소리 내준다면 좋겠다.

 

※ 페미니즘 미디어 아티비스트 비엔날레 2016 <페미 3.0>
▶ 일시: 2016년 10월 17일 ~ 11월 3일
▶ 장소: 미디어극장 아이공, 레인보우큐브갤러리, 한국영상자료원
▶ 전시: 권세정, 안정윤, 유영주, 박혜란, 이시하라 노리코, 황휘, 권희수, 최민경, 한상임 등
▶ 상영: 트린T민하, 노라 멀비, 김정, 심혜정, 흑표범, 엘레나 나사넨, 제인 진 카이젠 등
▶ 주최: 대안영상문화발전소 아이공 (igong.org)
▶ 후원: 한국여성재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미디어극장 아이공

이 기사 좋아요
  • 도배방지 이미지

관련기사목록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