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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알바!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여성들>⑩ 보육교사를 꿈꾸는 초록이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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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른바 ‘생계형 알바’를 하는 10대, 2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빈곤-비(非)진학 청년들의 진로 탐색과 자립을 돕는 협동조합 <일하는 학교>와 은평구청소년문화의집 <신나는애프터센터>와 함께하는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두 개의 알바 뛰며 보육교사 공부중인 초록이

 

스물두 살 초록(가명)이는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기 위해 보육교사교육원에 다니고 있다. 앞으로 몇 달을 별 일 없이 잘 보내면 내년엔 어린이집 교사가 될 것이다.

 

아침이면 헐레벌떡 버스를 타고 교육원에 가고, 수업이 끝나면 어린이집 보조교사 알바와 파이가게 알바를 차례로 뛰느라 정신없고 지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래도 열심히 포기하지 않는 걸 보면 진짜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고 싶긴 하나보다, 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온 초록이가 난 참 대견하다.

 

▶ 현재 하고 있는 알바는 어린이집 보조교사. 몸은 힘들어도 진짜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에 재밌고 즐겁다.  ©초록

초록이는 아빠와 오빠랑 함께 생활하고 있다. 거의 일을 하지 못하시는 아빠를 대신해 스물네 살인 오빠가 일해서 한 달 30만원 월세와 기타 집에서 필요한 비용을 해결하고 있다. 그러니 보육교사교육원 학비며, 매일 드는 교통비, 식비, 그 어떤 것도 집에 기댈 수 없다. 초록이는 매달 분납하는 학비와 차비, 식비 등을 해결하기 위해 두 가지 알바를 뛸 수밖에 없다.

 

엄마는 초록이가 중학교 때 집을 나갔다. ‘정말 미안하지만 더 이상 살다가 죽을 것 같다’고, ‘엄마는 할 만큼 했다’고 어린 두 아이들에게 울며 사과하고 나갔다고 했다. 그래서 초록이는 엄마가 이해가 되고 밉지 않다.

 

“아빠가 엄마를 때린다는 것을 처음 알았을 때가 초등학교 5학년인가, 6학년 때에요. 우연히 보게 되었어요. 아주 어릴 땐 어려서, 그리고 그 뒤엔 엄마가 잘 숨겨줘서 몰랐어요. 그리고 그렇게 저한테 들키고 난 후, 아빠는 더 이상 숨기지 않고 엄마를 때렸어요. 대놓고. 엄청. 아휴~ 그래서 (엄마를) 이해해요. 그리고 감사하죠. 제가 아주 어릴 때 그렇게 엄마로부터 사랑을 엄청 많이 받아서 지금의 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전 아이들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선생님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확실한 꿈이 있는 초록이지만, 사실 난 늘 걱정스러웠다. 작년 봄, 초록이는 ‘일하는학교’에서 막 시작했던 프로그램 오리엔테이션에서 자기소개를 하다 울어버렸다. 너무 떨려서 말을 못하겠다고. 그리고 다시 가을에 시작한 아동복지 교육 및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에도, 발표를 해야 하거나 주장을 내야 할 때면 어김없이 목소리가 작아지고 고개가 숙여졌다.

 

초록이가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도, 자기표현을 강하게 하는 것도 본 적이 없는 나는 ‘꿈이라는 어린이집 선생님을 어떻게 하려고 저러나’ 걱정이 되었다. 저렇게 마음이 약해서 어쩌나 하고… 하하하, 이렇게 한방 먹을 줄은 모르고!

 

민짜(미성년자)라 써주는 데가 없으니까…

 

주유소, 고깃집, 전단지, 백화점 여성의류매장, 편의점, PC방, 호프집, 핸드폰 부품공장, 파이가게, 어린이집 보조교사.

 

초록이가 열다섯 살 겨울부터 시작해서 스물두 살인 현재까지 해온 알바의 종류다. 그 중 일 년을 넘게 한 알바도 있고, 간신히 일주일을 채운 알바도 있다고 한다. 그 기간이 얼마건 종류와 수만으로도 그녀의 빠듯하고 허덕였던 삶이 보이는 것 같았다.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이라는 얘길 들었을 때, 처음 딱 떠오른 이가 초록이었다. 지금 알바를 두 가지나 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알바비를 못 받아서 아는 분들을 통해 힘(?)을 써서 받아내기도 했던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초록이랑 그녀의 알바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첫 알바는 열다섯 살 겨울, 주유소였다.

 

“그 즈음, 엄마와 아빠가 용돈을 안 줬어요. 나도 막 뭐 사먹고 싶고 애들이랑 놀고 싶은데 돈이 하나도, 진짜 하나도 없었어요. 그런데 일주일 정도 먼저 주유소에서 알바를 한 친구가 너도 돈 필요하지 않냐며 같이 해보자고 해서 시작하게 되었어요. 지금은 하나도 안 무섭지만, 그때 처음엔 차에 기름 넣는 것이 너무 무서웠어요. 경유, 휘발유, 이런 거 구분해서 넣어야하고. 그리고 진짜 추웠어요. 벌벌 떨면서 일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요.”

 

“첫 월급은 오십 만원인가, 육십 만원인가였어요. 제가 민짜(미성년자)였으니까, 시급이 완전 적어서 삼천 원 정도였는데, 매일 저녁에 6시간 정도씩 일했어요. 그래서 그 정도 받은 것 같아요. 그리고 월급 받아서 애들이랑 노래방 가서 놀고. 그냥 집에 안 들어가는데 다 쓴 것 같아요. 찜질방 숙박비로. 하하하! 그때가 집이 한창 안 좋을 때잖아요. 아빠가 엄마 때리는 게 극에 달했을 때. 집에 들어가기 싫었어요. (집에 가면) 막 불안하니까…”

 

석 달 정도 주유소 알바를 하고 난 후, 아파트 우체통에 마트 홍보물을 넣는 전단지 알바를 거쳐 만나게 된 알바가 초록이 알바 역사에서 가장 힘들었다는 고깃집이었다. 물론 이후에 하게 된 핸드폰 부품공장 일도 만만치 않게 힘들었지만, 가장 힘들었던 알바로 고깃집을 꼽는 이유는 사장님 때문이다. 인생에서 처음 만난 ‘알바 등쳐먹는’ 사장이라나!

 

“고깃집 서빙하는 일을 했는데, 그런데 (서빙을 하지 않을 땐) 계속 앞에 서 있으라고 했어요. 서서 손님들이 올 때마다 안녕하세요! 하면서 90도로 인사를 하라고. 사장님이 계속 똑바로 서있나, 인사는 잘하나 지켜보고 있었어요. 불판을 갈아주는 일도 하는데, 갈 때 소리하나 내면 안 된다고 하고. 그리고 그 은색 쇠쟁반! 그거 엄청 무거운데, 거기에 반찬이 엄청 많이 올라가 있잖아요. 그걸 막 부들부들 떨면서 나르고.”

 

“민짜라 써주는 곳이 없으니까 간신히 2,3주 견디며 했는데 도저히 못하겠는 거예요. 그래서 그만둔다고 했더니, (줄 돈에서) 자세 안 좋았다고 깎고, 뭐해서 깎고, 또 뭐해서 깎아서 준다고 하는 거예요. 완전! 결국 제가 막 따졌어요. 미친 듯이. 그렇게 막 싸우니까 그냥 줘버리고 끝내버리자 이런 식으로. 그래서 받을 거 다 받고 나왔어요!”

 

열여섯 살 초록이가 그런 고약한 사장님과 막 큰소리 내며 싸우는 장면이 상상도 되지 않았지만, 그리고 그때 심정이 어땠을까는 상상도 하기 싫지만, 그래도 싸워서 받을 거 다 받아 나왔다는 말에 갑자기 마음이 뿌듯해졌다!

 

장기방이 뭔지 아세요?

 

▶ ‘일하는 학교’에서 동네 놀이터 활동을 준비하는 초록이. “이 안에 꼬마들에게 나눠줄 사탕이 들어있어요!” ©일하는 학교

그리고 열일곱 살. 결국 학교를 그만둔 초록이는 집에서도 나왔다. 엄마도 집을 나가고 더 이상 집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장기방이라고 아세요?”
“모텔에 사는 거죠. 한 달에 35만원 내고 살았어요.”

 

그 장기방을 시작으로 2년 정도 혼자 살면서 PC방 알바를 시작했다.

 

“PC방 알바가 가장 오래 한 알바예요. 일 년 넘게 일했고 진짜 (하루에도) 길게 일했어요. 그런데 거기가 문제가 좀 많았죠.”

 

“그거 아세요? 불법 머니! 머니라는 게 있어요. 사장님이 그걸 하니까 일반 PC방에서 그걸 한 건데. 뭐냐면, PC방 컴퓨터를 켜서 한게임 바둑이를 들어가요. 들어가면 포커게임인데, 하프하프 콜콜콜 다이~ 막 이런 거 하는. 하하하. 그런 완전 도박이에요. 그런데 머니상 사무실이 있어요. 거기에 전화를 해요. 10만원이요 이러고. 그리고 그 손님이 저한테 10만원을 줘요. 그러면 거기서 그 손님 ID로 돈을 넣어주는 거예요. 게임 돈을. 그렇게 게임을 하면서 (실제) 돈이 오가는 거죠!”

 

장기방! 불법 게임! 하프하프 콜콜콜 다이!

 

열일곱 열여덟 살의 초록이가 매일매일, 매순간순간 만나야 했을 사람들과 겪어야 했을 일들이 무엇들이었을지 생각하기도 겁난다. 어두컴컴한 장기방을 홀로 나서서 다시 어둡고 불온한 PC방을 매일 오가며 무슨 생각을 했고 어떤 마음이 들었을지…

 

“그래도, 거기 남자사장은 알바생이 손님이랑 싸우는 일이 생기면 일단 알바생 편이긴 했어요. 일할 때 손님들이 성희롱 같은 거 하는데, 그러면 사장이 쫓아냈어요. 그게 거기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이유였던 것 같아요.”

 

밀린 월급 받아내기…진짜 “그지 같았던” 경험

 

초록이의 알바 인생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사건은 백화점 여성의류 매장에서 막내로 일할 때 일어났다. 정확히 말하면, 그 일을 그만두고 일어났다.

 

친구 소개로 들어가게 된 백화점에서는 일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 월급은 근무 시간이나 근무 기간이랑 크게 상관없이 매장 막내는 120만원, 이렇게 정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 120만원을 받기 위해 아침 9시에 출근을 해서 연장이 없을 땐 저녁 8시 30분, 연장을 할 땐 일이 끝날 때까지 박스 까대기(박스 풀어서 상품정리)부터 창고 정리, 매장 근무까지 하루 종일 정말 빡세게 일해야 했다.

 

“그런데 그만두게 된 이유는 일이 많고 힘들어서가 아니에요. 그 백화점 매장 직원들 점심시간은 매니저가 12시에서 1시까지, 둘째가 1시에서 2시까지, 그리고 막내가 2시에서 3시까지 이렇게 돌아가요. 모든 매장이. 그런데 우리 매장 매니저는 (12시에 가서) 1시 반에 와요. 그러면 둘째가 2시 반에 오죠. 그런데 막내인 저는 그때 가서 3시안에 들어와야 하는 거예요. 밥을 먹으라는 건지 어쩌라는 건지. 2시 반에 매장에서 출발하면 3시까지 하는 직원식당에서 밥을 먹을 시간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한번은 (일부러) 3시 반에 들어갔더니 그 매니저가 미쳤냐고 욕을 하는 거예요. 손님들 다 나간 후에. 그런 일이 있은 뒤부턴 거의 점심을 먹으러 못 갔어요. 하루 종일 커피만 몇 잔씩 마시고.”

 

“한 달 반 정도 지난 어느 날, 너무 가기 싫은 거예요. (아침도 못 먹고 가니 하루 종일) 밥도 못 먹고, 만날 욕만 듣고. 일도 힘들어서. 그래서 매니저한테 솔직히 이런 곳에선 더 이상 일 못하겠다고 전화통화를 했죠. 그랬더니 막 개념 없다고 욕하면서 돈 안주겠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끝났어요. 그 후에도 다시 돈 달라고 연락하니까 못 주겠다고 했어요.”

 

초록이가 그때 받아야 할 알바비는 약 140만원 정도였다. 주휴수당이니 야간수당이니 이런 건 말해볼 수도 없이, 그냥 막내는 한 달에 120만원인 상황에서 이 한 달 월급도 받지 못한 상태로 다음 달이 되었고, 그리고 얼마못가 그만두게 된 것이었다. 당시 초록이가 다니던 비인가 대안학교 선생님들이 초록이의 상황을 딱하게 생각해, 청년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정의당 선생님 한 분을 소개했다.

 

“그 선생님이 와서 물어봐서 그 동안의 얘기를 했죠. 솔직히 제가 안 나간 것은 잘못한 거라고 인정하고. 그랬더니 그 선생님이 일단 같이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같이 갔어요. 가서 선생님은 우선 1층에 계시고, 제가 먼저 올라가서 그 매니저 만나서 그냥 안 나간 건 제가 잘못한 거니까 죄송하다고 사과드리고 유니폼도 반납했어요. 제가 유니폼도 완전 다 빨아서 예쁘게 개서 쇼핑백에 가져갔었어요. 그랬더니, 매니저가 막 욕을 엄청 하는 거예요. 그래도 어차피 제가 잘못한 것도 있으니 다 그냥 들었어요. 다 듣고 나니 매니저가 그래서 할만이 뭔데? 이래요. 그래서 월급 넣어달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저한테 뻔뻔하다고 못준다고 하면서 제가 가져간 유니폼을 봐요. 그러더니 실밥 진짜 조금 나온 것 가지고 옷 망가졌다고 하면서 유니폼을 저한테 던지는 거예요. 다시 빨아와! 라고 소리 지르면서. 세탁소에 맡기든, 어떻게 해서라도 새 옷처럼 만들어오라고. 그래서 저도 열 받아서 막 욕하고 1층으로 내려갔어요.”

 

“그 정의당 선생님이 제 얘기를 듣고 혼자 올라갔는데, 얼마 안돼서 매니저한테서 전화가 와요. (상냥한 목소리로) 잠깐만 올라와볼래? 라고 하면서요. 진짜 재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올라갔더니 내가 지금은 못 부쳐주고 백화점 끝나고 8시에서 8시 반 정도에 보내줄게~ 라면서 상냥하게 말하는 거예요. 계좌번호 알려주고 가라면서. 유니폼도 놓고 가라고. 완전! 무슨! 그 선생님이 정당에서 활동하시잖아요. 그 명함보고 그러는 거잖아요! 진짜!!”

 

정말로 그 명함 하나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다른 이야기들이 오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초록이는 그 날 저녁 바로 밀린 월급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은 초록에게 단순히 밀린 월급을 받아낸 것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을 알게 해준 것 같다. 그래서 진짜 ‘그지 같은’ 경험을 했다고.

 

직장에선 알바생 대하듯 함부로 하진 않겠죠?

 

▶ 초록이는 아동복지 공부를 하며, 엄마가 얼마나 자신을 사랑으로 키워주셨는지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일하는 학교

“이젠 더 이상 알바를 하지 않을 거예요!”

 

물론 지금은 학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알바를 하고 있지만, 내년에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면 다신 알바의 세상에 뛰어들지 않을 거라고 한다. 그렇다면 초록이가 생각하는 알바와 직장의 차이는 무엇일까?

 

“일단. 알바는 시간제고요. 그리고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에요. 그냥 돈만 보고 해야 하니까 하기 싫죠. 솔직히. 하지만 직장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될 테니까…. 그리고 알바는 월급도 잘 안 나올 수 있는데, 직장은 월급도 잘 나올 거고요. 또 직장에선 알바생들에게 하듯이 함부로 하진 않겠죠? 알바하면 손님들도 장난 아니에요. 손님들도 알바생들에게 어마어마하게 함부로 해요. 개무시하고. 그래서 카페 알바생이 다른 카페 가서 불친절하게 못한다 하잖아요. 하하하!”

 

모든 사장님들이 다 나쁜 사람들은 아니었다. 전단지 사장님은 고생한다고 얼마씩 더 챙겨주시기도 하고, 호프집 사장님은 밥도 열심히 챙겨 먹여주시고 손님들 상 치우고 있으면 와서 도와주시기도 했다. 그래도 알바 현장에서는 당연히 받아야 하는 월급을 받는 일조차 눈치싸움이었고, 일하는 공간에서 끊임없이 무시와 모욕을 느껴야 했기 때문에 초록에겐 알바란 현재를 버티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리고 이젠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려한다.

 

“어릴 땐 (뭘 할 수 있는지 몰라서) 그냥 돈만 보고 알바를 했는데, 이젠 돈만 보고 알바를 하는 일이 더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어린이집 보조교사는 몸은 힘들어도 정말 재미있어서 진짜 힘든 것 같지 않아요.”

 

“전 진짜로 어린이집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아이들을 정말 사랑해요! 그리고 그 아이들은 사랑 받아야 하는 나이니까 사랑을 듬뿍 주는 것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보조교사를 하면서 보면) 가끔 미운 짓을 하는 애들이 있긴 한데요. 말하면 들어요. 안 좋은 습관은 미리 미리 잡아줘야 해서 계속 말하는데 그러면 듣고 애들이 변해요. 신기하게 애들이 변해요! 아직도 어려운 점들이 많긴 하지만 애들이 너무 예뻐서…!”

 

이런 초록이의 마음을 들으면서, 알바랑 직장은 다를 거라고 생각하는 그녀의 기대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아슬아슬한 마음이 생겼다. 알바도 직장도 사는 일이 다 그렇게 ‘그지 같다’고 생각하게 되는 일은 없어야할 텐데. 그게 그렇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더 진심으로 열심히 기원해야겠다.

 

키다리 아저씨 없이 기적처럼 살아내다

 

자신의 알바 역사를 길게 풀어나가다 거의 끝나갈 즈음, 불현듯 무심코 그녀가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 진짜 (알바) 많이 했네. 신초록, 진짜 힘들게 살았다! 엄청 고생했네~”

 

그래, 초록아, 고생했다! 진짜 장하다!
그리고 미안하다.

 

지금 돌아보면 부끄럽게도, 나는 초록이를 좀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믿었다. 몇 년간을 짬짬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만났으며, 특히 작년 가을 프로그램은 초록이도 빠지지 않고 몇 달을 충실히 참여했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또, 초록이가 다른 참여자들보다 여리고 소극적이고 몸도 약해서 좀 더 손이 가는 아이기도 했다.

 

그런데, 인터뷰를 하면서 내가 안다고 했던 아이는 어디에도 없고, 그야말로 ‘산전수전공중전’을 겪고 운좋게 살아남은 독한 그녀가 내 앞에 앉아 있었다. 이제 22년도 채 되지 않는 삶을 살면서, 그녀는 도대체 무슨 일들을 겪어온 것일까? 몇 시간 되지 않는 이 인터뷰를 통해서 말해지지 않은, 이미 잊혔거나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순간순간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

 

▶ 초록이는 알바생이 아닌, 정식으로 어린이집 선생님이 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초록

 

오늘도 우연히 TV를 켜면 드라마에선 어떠한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늘 씩씩하고 꿋꿋하게 자신의 꿈을 이뤄가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들이 등장한다. 이런 캔디들 옆엔 늘 큰 키에 멋진 외모와 엄청난 부를 가진, 그리고 오직 그녀만을 아끼며 위험에 처한 그녀를 구해내는 키다리 아저씨들이 득시글하다. 드라마를 보는 우리도 그녀들의 씩씩함과 순수함, 혹은 건강함에 대한 당연한 보상인양 영원한 행복을 바란다. 그런데 만약, 그 캔디 옆에 그녀를 믿어주고 지원해주고 구해주는 키다리 아저씨들이 없다면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까?

 

<일하는학교>가 처음 만들어질 때, 우리의 모토는 ‘온 마을이 학교다’였다. 그리고 아직도 그 모토를 홍보물에 사용하고 있고,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번에 초록이 인터뷰를 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마을이 초록에게 학교였다면, 이 학교에서 초록이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키다리 아저씨도 없고, 보이지 않는 지원자들도 없었던 삶 속에서 초록이가 이만큼 자신을 지켜온 것은 어쩌면 기적이 아닐까?

 

혹시 여기까지 오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초록이는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조용히 독기를 키워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더욱더 진한 독기를 품기를! 부디 독기 창창하여 자신을 지키고, 하고 싶은 일을 잘 해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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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0/27 [12:23]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토루 16/10/28 [15:15] 수정 삭제  
  아 잘 읽어 보았어요! 급여도 안주고 갑질하는 사람들 혼좀 났으면.
six 16/10/29 [11:53] 수정 삭제  
  드라마에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그래도 즐겁게 산다. ^^ 초록씨도 힘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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