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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맞이하고 싶은 ‘죽음’
<반다의 질병 관통기> 죽음, 의료화 그리고 백남기
<여성주의 저널 일다> 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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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지난 몇 주 동안 현기증이 심해져서 자주 집에 머물렀다. 담요를 들고 소파에서 책상의자로 그리고 다시 방바닥으로 삼각형을 그리며 다닌 날이 많다. 현기증은 그 자체로 통증이나 위 험을 만들지 않지만, 쉽게 무력감에 빠지게 한다. 심각하게 아픈 것도 아닌데 딱히 다른 무엇을 하기도 어려운 상태가 답답하다. 그래도 잠을 충분히 자라는 한의사의 말을 떠올리며, 게으름 피운다는 자책감 없이 낮잠을 자기도 한다. 누워있는 시간이 많아지면 생각도 많아진다. 영원히 잠드는 영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누구나 최선을 다해 도망치고 싶어 하는 질병이라는 녀석. 그 질병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한쪽 끝자락에 죽음이 있다. 당장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심각한 증세가 아닐지라도, 질병은 한 없이 멀리 있을 것 같은 죽음과의 거리를 줄어들게 할 것 같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생명체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인간은 생각의 동물인지라 막연한 두려움은 실체 없는 불안을 한없이 부추긴다. 이따금 죽음을 둘러싼 나의 감정이나 기억, 이상적 죽음을 떠올려 보는 시간은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내 삶을 좀 더 안정감 있게 만들어 준다.

 

죽음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두려워 한 게 언제였나. 고등학교 시절 자습 시간이었던 것 같다. 성수대교 붕괴 소식(1994년 10월 21일)이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추락한 버스 안에는 등교 중이던 무학여고 학생들도 있다고 했다. 당시 친한 친구가 그 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쉬는 시간이 되자 공중전화를 향해 전력질주했고, 삐삐를 치고 또 쳤다. 친구로부터 괜찮다는 연락을 받기까지 그 몇 시간, 무서웠다. 헤르만 헤세나 괴테 소설에 나온 던 죽음이 우리에게도 벌어 질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 사건 이후 친구들 사이에서,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자는 말이 유행했다. 쓰임도 없는 공부하다 죽지 말고, 하고 싶은 거 하다가 죽자는 뜻이다. 각자 그림 그리는 것에,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는 것에, 책을 읽고 사색에 빠지는 것에, 매점을 가고 노래 부르는 것에 집중했고, 즐겼다.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는 것을 최소화하고, 소중하다 여기는 것에 집중해 봤던 경험이다. 겨우 일주일 만에 이전의 일상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생의 유한성을 알게 된 아이들의 현명한 행동이었다. 역시나 죽음을 생각하는 건 삶에 대한 혜안을 갖는 일이다.

 

▶ 죽음을 생각하는 건 삶에 대한 혜안을 갖는 일이다.   ⓒ제작: 조짱

 

죽음을 준비하고 사랑을 전하고 떠난 할머니

 

나의 죽음은 어떤 모습일까. 잘 상상이 안 된다. 내가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죽음은 나의 할머니다. 나는 할머니 손에 많이 자라서 아직도 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리면 눈물을 참기 힘들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 있다. 3년 전 봄, 할머니의 죽음은 내가 닮고 싶은 죽음이었다.

 

그해 할머니는 여느 때와 달리 자주 두통이나 어지럼증을 호소했고 입원하셨다. 의사는 몸의 이곳저곳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할머니 몸에 연결되는 사소한 기계가 하나 둘 늘어났다. 심지어 검사를 위해 89세 노인의 팔에서 매일 피를 뽑았고, 손등이며 발등이 온통 푸르고 붉은 멍이었다. 할머니는 ‘치료 같은 거 필요 없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하셨지만, 의사는 안 된다고 했다. 할머니는 나의 어머니나 아버지에게도 집에 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지만, 부모님도 의사가 안 된다는 데 할머니를 퇴원시킬 수는 없었다. 의사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검사를 멈추게 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우리 할머니는 의지가 강하신 분이라, 자신 몸에 손대지 말라며 의료진을 상대로 투쟁을 벌였다. 여러 상황 끝에, 의사는 할머니 몸에 연결된 기계를 제거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손수 링거 바늘을 뽑아 병실 바닥에 던지곤 당당히 퇴원에 성공했다.

 

집에 돌아오신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메주콩을 사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예전보다 느려진 손으로 어느 해보다 많은 양의 된장을 담궜다. 그렇게 얼마간 된장 담그기를 마치고, 장독대 정리까지 마쳤다. 그리고는 평생 아들에게만 의지해온 당신답게, 이번이 아들에게 담궈주는 마지막 장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얼마 뒤, 할머니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아침에 일어나 찬거리를 위해 시금치와 콩나물 같은 걸 잔뜩 다듬으셨다. 그리고 정작 본인은 입맛이 없다며 끼니를 건너고 누우셨다. 어머니가 죽을 챙겨드렸지만, 한모금도 들지 않으시고 그렇게 꼬박 하루 반을 보냈다. 이틀째 저녁 할머니는 찬물 한잔을 아주 맛있게 드시고, 그날 밤 주무시다가 영면에 드셨다.

 

어머니는 그 이틀 내내 할머니 곁에서 손과 다리를 쓰다듬어 드렸다. 그러면서 혼자 속으로 50년 가까이 당신의 며느리로 살면서 서럽고 맺혔던 일에 대해 한없이 말했다고 한다. 어머니의 말씀에 따르면,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직전에 그 모든 일에 대해 사과하셨다고 한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밤, 난생 처음으로 할머니는 어머니 손을 꼬옥 잡아 주셨다고 한다.

 

할머니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죽음을 준비했고, 다른 가족과는 평소와 다름없는 인사만 나눴으나, 자신이 가장 많은 상처를 줬던 사람에게는 나름대로 사과하고 조금은 가벼이 떠나셨을 것이다. 인간이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지. 자신이 떠나갈 때를 알고, 살아온 세월을 마무리하고, 사랑과 사과와 이별을 전하고 떠나는 죽음은 얼마나 온전함으로 충만한 일인가!

 

어느새 죽음을 관장하게 된 의료시스템

 

하지만 할머니처럼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건, 이제 드문 일이 되었다. 현대의학은 노화조차 질병으로 규정하고, 죽음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중환자 다루듯 치료하려 든다. 노인이 죽음과 가까워지며 겪는 자연스런 몸의 변화에 대해, 표준 수치를 들어‘비정상’으로 규정한다. 이제 죽음이 가까이 오면 집에 머물다가도 입원하는 경우가 흔하다. 병원에서 치료 중에 죽음이 가까이 오면 요양병원이나 호스피스 병동으로 이동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병원이 아닌 집에서 죽기를 간절히 염원하지만, 실제로는 서걱거리는 환자복을 입고 익숙하지 않은 병원 침대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심지어 소생 불가능한 임종과정의 환자에게 인공호흡기와 약물 등으로 치료 효과도 없이 생을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환자는 결국 중환자실에서 혼자 쓸쓸히 죽어가기도 한다. 그나마 연명치료를 원하지 않는다면 평소 거부 의사를 밝혀 놓을 수 있게 됐으니, 다행이다. 어쨌거나 이 모든 건 일상이나 종교 영역에 머물던 죽음을 의료가 관장하면서 생긴 문화다.

 

나도 할머니처럼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죽음이 삶을 마무리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몸으로 가늠하며 준비하고 싶다. 선명히 찾아온 죽음을 첨단의료로 지연시키지 않고, 살아온 나날 속 사람, 관계, 공간과 작별을 전하고 싶다. 병원이 아닌 나의 집에서 몸의 흐름에 따라 가볍게 곡기를 줄이고 홀가분히 생을 떠나고 싶다. 그게 바로 오랫동안 인류가 맞이해온 존엄한 죽음일 것이다.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일반적이던 죽음의 모습이다.

 

이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우선 죽음 과정에서 의료와의 긴장이 필요하다. 어쩌면 나도 할머니처럼‘자연의 흐름대로 죽어갈 권리’를 의료에 뺏기지 않기 위해, 투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삶에서 자기결정권이 중요하듯 죽음 과정에서도 자기결정권이 필요하다. 그런데 요즘 보면, 죽음에 대한 주도권을 그 죽음의 주인이 아닌 의료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의료는 죽음을 무조건 지연시켜야 하는 무엇으로 만든 것 같지만, 우리가 어떻게 죽느냐에 따라 죽음은 삶의 완성일 수 있다. 죽음을 삶의 일부로 다시 들여와야 하는 이유다. 의료와 죽음의 관계가 무엇인지, 사회적 질문이 필요하다.

 

내가 병원침대가 아닌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또 하나는 돌봄노동이다. 나의 할머니에겐 일방적인 헌신을 감내한 며느리가 있었지만, 그건 나의 할머니가 마지막 세대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대여야 한다. 병원에서의 죽음이 보편화된 이유는 죽음이 삶의 한 과정이 아니라 의료의 과정으로 흡수된 게 가장 클 것이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를 돌보는 역할을 집에서 하기 어려워진 것도 이유일 것이다. 요양보호사 등 가정에서 이용할 수 있는 사회적 돌봄 서비스가 조금씩 자리잡아 가고 있지만, 돌봄노동을 백프로 사회화하는 건 불가능하다. 집안 내 여성이 도맡아온 돌봄노동을 재구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죽어가는 이를 돌보고 애도할 시간을 존중하는 사회적 태도도 중요하다.

 

백남기 농민의 ‘훼손된 죽음’을 보며

 

내가 맞이하고 싶지 않은 죽음이 있다. 죽음을 인식하지도 못한 채, 사고사로 순식간에 떠나는 것이다. 그리고 무의미한 연명치료다. 이 두 가지가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죽음의 모습이다. 그런데 최근 그런 죽음을 보았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 비탄한 故 백남기 농민의 죽음이다.

 

▶ 故백남기 농민과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의 훼손된 죽음은 사회적으로 복원되고 있다.   ⓒ제작: 조짱

 

백남기 농민은 물대포라는 외인(外因)으로 자연사할 기회를 빼앗겼다. 게다가 무리한 연명치료가 1년 가까이 진행되고, 육신이 점차 훼손되면서도 이생에 붙들려 있었다. 수많은 목격자, 동영상 자료, 다른 의사들의 판단에도 불구하고! 본인 죽음에 대한 진실이 여전히 판명되지 않았다. 존엄하게 죽어갈 권리를 총체적으로 박탈당한 것이다.

 

백남기 농민도 자신의 소중한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사랑과 이별을 전할 수 있는 죽음을 꿈꿨을 것이다. 죽기 전 누군가에게 꼭 하고 싶은 말도 있었을 것이다. 작년 11월 이후 백남기 농민과 그 유족들의 고통을 감히 상상해 본다. 유족에 따르면 백남기 농민은 평소,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중환자실 치료는 절대 받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얘기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민중대회에서 서울대 응급실에 실려 갔을 때, 당시 담당의사는 소생이 불가능하다며 집 근처 요양병원을 권했고, 가족들도 마음의 준비를 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청장의 전화가 병원에 걸려오고 한 시간 뒤, 외과과장이 수술을 제안했다고 한다. 수술 이후에도 환자는 한 번도 의식을 찾지 못했다. 유족은 평소 백남기 농민의 뜻대로 담당의사에게 연명치료에 반대하는 의사를 여러 차례 피력했다. 그러나 연명치료는 지속되었다. 이‘사려 깊은’의료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

 

317일간의 연명치료. 그 긴 시간은 백남기 농민의 인생에서 무의미한 고통의 총량을 증대시킨 시간이 아니었을까. 그의 존엄한 삶도 존엄한 죽음도 보장하지 않은, 더 정확히는 살인과 은폐의 국가 권력이 지배한 시간. 백남기 농민의 사고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평소 의지도 가족의 소망도 철저히 소외된 채, 신(神)과 같은 의사만 존재했던 것 같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신은 인간의 생과 사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 존재로 형상화되었다. 현대 사회에서 신과 가장 가까운 능력을 발현하는 존재는 의사다. 병원에서 환자와 가족은 의사 말에 절대적으로 순응한다. 생명이 흔들리는 위기 상황을 관장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복종할 수 밖에 없지만, 믿음 때문이기도 하다.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좋은 것을 수행할 것이라는 믿음, 즉 의료윤리에 대한 믿음이다. 환자의 고귀한 죽음을 보장하고 그 죽음의 진실을 말하는 건 의료윤리에 해당한다. 윤리가 흔들리는 의료는 재앙이다.

 

▶ 죽어가는 이를 돌보고, 고인을 애도할 시간을 존중하는 사회적 태도도 중요하다.  ⓒ제작: 조짱

 

故 백남기 농민이 진실 안에서 영면하시길

 

故 백남기 농민의 죽음은 총체적으로 훼손되었으나, 경찰의 부검영장 집행으로부터 그의 죽음을 지키고자 장례식장에 모여든 시민들로 인해 사회적으로 복원되었다. 마치 강남역 살인 사건 피해자의 죽음을 구조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불행으로 몰고 가려는 사회를 향해, 여성들이 ‘나는 우연히 살아남았다’는 공동의 외침으로 그 죽음의 의미를 지켜냈던 것처럼 말이다.

 

죽음은 그 개인의 삶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어떤 ‘과정’ 안에 놓여 있는 행위인 것 같다. 내가 할머니의 죽음을 보며 나의 죽음을 보다 안온히 상상할 수 있게 되었듯이. 강남역 살인사건 피해자의 죽음과 故백남기 농민의 죽음을 목격한‘우연히 살아남은 자들’이 지금의 현실을 재구성해가고 있듯이.

 

故 백남기 농민이 진실 안에서 영면하시길 기원한다. 언젠가 맞이할 우리 모두의 죽음이 자연에 스미는 평온함이길 기원한다.


※ 참고 문헌: 조병희 <의료개혁과 의료권력>(나남,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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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01 [20:56]  최종편집: ⓒ www.ildaro.com
 
sometimes 16/11/02 [12:35] 수정 삭제
  슬프고.. 위로가 되는 말씀입니다.
jello 16/11/06 [16:15] 수정 삭제
  오늘은 눈물이 나네요. 백남기 농민의 장례를 보면서 기쁜 것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기억하고 추모하고, 유족들도 위로를 받고 백남기 선생님의 영혼도 안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국가권력과 병원권력의 횡포를 잊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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