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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바닥 좁다…쉬쉬하던 ‘출판계 성폭력’ 공론화
언론노조 서울경기 출판지부, 실태와 대책 발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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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내 성폭력, 출판계 내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가 피해 사실을 폭로하는 것을 넘어 ‘구조’를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흐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SNS에서 출판계 여성종사자들이 성폭력 피해 경험을 털어놓기 시작한 지난 10월 말,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는 온라인으로 ‘출판계 성폭력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11월 10일 언론노동조합과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공동으로 <‘예민’과 ‘까탈’을 넘어 폭력 피해를 증언하다 -2016년 출판계 성폭력 실태조사 발표> 자리를 마련했다.

 

▶ 11월 10일 전국언론노동조합과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공동으로 <‘예민’과 ‘까탈’을 넘어 폭력 피해를 증언하다 -2016년 출판계 성폭력 실태조사 발표> 자리를 마련했다.   ⓒ 일다

 

이번 실태조사에는 전현직 출판계 노동자 257명이 응했는데, 설문 내용이 누락된 4건을 제외한 253 건을 분석의 표본으로 삼았다. 이중 여성이 79.8% 남성이 20.2%였다.

 

출판계에 종사하면서 성폭력을 직접 경험한 적이 있는가에 대한 분석에서, 여성 응답자의 77.1% 남성 응답자의 39.2%가 성폭력을 겪은 적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구체적으로는 언어적인 성폭력(53.7%) 신체적인 성폭력(32.0%) 성적 서비스를 강요하는 경우(27.5%) 순으로 나타났다. (중복응답)

 

“저자 술 따르는 것도 너희 업무야”

 

출판계 내에서 겪은 성폭력 중에서 가해자가 ‘저자나 역자인 경우’는 44.6%에 달했다. 탁수정 서울경기출판지부 조합원은 이번 실태조사에 접수된 다음과 같은 사례를 발표했다.

 

<저자가 여성 편집자에게 “회사가 잡아준 호텔이 좋던데 혼자 자기 싫다. 나랑 같이 자자.”>

 

<모 언론사 기자 출신 작가를 단란주점에서 접대함. 사장은 작가가 요청했다면서 직원들을 단란주점으로 몰고 감. 출판사 여성 직원들은 단란주점 마담들과 섞여 앉아서 각종 술자리 게임을 함. 작가는 여직원들에게 스킨십을 했고 블루스를 강요함. 작가는 “내가 오늘 홍콩 보내줄게, 같이 자러 가자”는 말도 함.>

 

남성 저자에게 출판사의 여성 직원들이 술자리 접대를 하는 것은 출판 산업의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이만재 서울경기출판지부 사무국장은 “출판 산업 중에서도 특히 문학 장르의 경우, 저자가 기존에 지니고 있는 명성이 판매력을 좌우하는 주요 기준이 되기 때문에 상당한 권위나 명성이 있는 필자에 의한 성폭력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유명 저자들이 이른바 ‘갑질’의 일환으로 출판사 직원에게 성적인 접대를 서슴없이 요구하는 배경에는, 성접대를 비롯하여 성폭력이 발생해도 은폐하려 하고 저자를 옹호하는 일부 출판사 사장들이 버티고 있다.

 

탁수정 조합원은 “최근에 SNS에서 문단 내 성폭력이 연이어 폭로되자, 한 출판사 사장이 직원들에게 ‘너네 그 작가(가해 지목자)랑 일해 본 적 있는데 그런 일 없었다고 빨리 SNS에 올려라’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또 모 출판사 직원이 베스트셀러 작가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사실을 회사 안에서 알리자, 사장이 “선생님(작가) 덕분에 너희들 월급 나오는데, 선생님이 취해서 네 허벅지 좀 만진 게 그렇게 문제냐”라고 말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아예 출판사 사장들이 저자에게 성적인 접대를 하도록 분위기를 조성한 사례도 있다. 저자 접대를 하는 술자리에서 사장이 일이 있다면서 슬그머니 먼저 자리를 뜨고, 결국 저자에게 성추행을 당한 여성도 있다는 것. 인사고과를 논하는 자리에서 사장이 편집자에게 “저자 접대 자리에서 끝까지 남아서 저자 술 따르는 것도 너네 업무다”라고 말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성적인 접대를 지시한 출판사도 있다.

 

▶ 문단 내 성폭력은 출판계 성폭력과도 맞물려있다.  © 전국언론노동조합,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 공동주최 <2016년 출판계 성폭력 실태조사 발표> 웹자보 중에서

 

원인은 ‘갑을관계’, 사장과 상사의 성폭력도 빈번

  

이번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저자 이외에 직장 상사(56.5%)와 출판사 사장(40.4%)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경우도 많다. 

 

탁수정 조합원은 “출판계에서 일하는 여성들에게 공포 중의 공포는 바로 유부남 사장이나 유부남 상사가 연애를 하자면서 구애 행위를 해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상사가 임신한 직원에게 “배 불룩해서 재수 없게 계속 돌아다니고 그러냐”, “(임신 초기니까) 티도 안 나고 임신 걱정도 없을 때 이 놈 저 놈들이랑 많이 자둬라”라고 말하는 등, 성희롱 성차별 발언을 일상적으로 들으며 일하는 출판노동자들도 있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성폭력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려는 피해자들을 위축시키는 건 바로 “이 바닥 좁다”는 말이다. ‘이직해도 계속 이 소문이 따라 다니는 건가?’ 망설이게 된다는 것. 

 

탁수정 조합원은 한 대형출판사의 여성편집자가 이직하려고 하자, 상사가 이직하려는 출판사 관리자에게 전화해 “쟤 꽃뱀이야, 뽑아주지 마”라고 말한 사례를 전했다. “이 바닥 좁다”는 말이 실제로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예다. 

 

“성폭력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싸우면 피해자가 (취업이 안 돼서) 경제생활이 끊기게 돼요. 경제생활이 끊겨야 하는 사람은 가해자여야 하지 않나요? ‘이 바닥 좁다’는 말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말입니다.” 

 

이재만 사무국장도 “취업 시장이 한정돼 있는 폐쇄적인 출판업계 분위기로 인해 피해 당사자가 피해를 고발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영세 규모, 출판 외주화…성희롱 예방교육 부재

 

이번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88.4%는 출판계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에 대해 ‘저자, 거래처, 상사 등 가해자와의 불평등 관계(갑을관계) 때문’이라고 답했다.(중복응답) ‘문단 및 출판계 인적 네트워크의 폐쇄성 때문’(61.2%), ‘성희롱 예방교육이나 대응 매뉴얼 등이 부재하기 때문’(44.4%), ‘비정규직 확대나 해고 일상화 등 고용 안정성이 낮기 때문’(43.2%)이란 응답이 그 뒤를 이었다.

 

이만재 서울경기출판지부 사무국장은 이렇게 성폭력이 발생하기도, 은폐되기도 쉬운 출판 산업의 특성 중 하나로 ‘영세한 사업장이 많은 현실’을 꼽았다.

 

“2014년 기준, 노동자가 10인 미만인 출판사는 82.3%이며 5인 미만은 64.4%에 달합니다. 그런데 1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교육 자료나 홍보물을 배포하는 것만으로 직장 내 성희롱 예방교육을 갈음할 수 있습니다.”

 

이번 조사에서도 ‘성희롱 예방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답변이 응답자의 45.1%나 차지하며 ‘받았으나 실효성이 없었다’는 답변이 39.3%에 달했다.

 

▶ 2016 출판계 성폭력 실태조사 개요   © 전국언론노동조합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

 

출판계에 아웃소싱(외주화)의 비중이 매우 높다는 점 또한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를 어렵게 만든다. 이번 실태조사의 응답자 중에서도 정규직이 63.7%, 비정규직이 5.5%였으며, 13.8%는 외주노동자였다. (나머지는 전직 출판노동자)

 

이만재 사무국장에 따르면 출판 산업에는 외주출판노동자의 규모가 크며 이 중 여성의 비율은 무려 77.2%에 이른다.(외주출판노동자 노동실태 연구보고서, 외주출판노동자 실태조사 사업단, 2013) 그러나 “외주출판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직장 내 성희롱 규정이 포함된) 남녀고용평등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외주 작업을 하면서 성폭력을 당했을 때 적절한 사후 조치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출판사용자 단체는 언제까지 성폭력에 침묵하나

 

이날 발표회 참가자들은 “출판계 내에서 성폭력 사건이 터지고 다양한 대책이 제기돼 왔음에도 제대로 실현된 적은 없는 현실이 바뀌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만재 사무국장은 “대한출판문화협회와 한국출판인회의는 각각 600, 448개의 회원 출판사를 거느린 양대 출판사용자 단체임에도 불구하고, 이권이 개입된 문제에만 목소리를 낼 뿐, 출판계 안의 성폭력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입장을 낸 적이 없다”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들 기관이 “정관에 성폭력 관련 규정을 마련하는 등 사용자단체로서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가 나서서 출판 산업 노사정 협의체를 신속하게 꾸릴 것”을 주문했다.

 

“성희롱 예방교육 의무가 없는 10인 이하 출판사는 노동조합과 양대 사용자단체가 협력해서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대면(對面) 성희롱 예방교육 참석이 어려운 외주출판 노동자들이 활용할 수 있는 성희롱 예방교육 콘텐츠를 개발, 보급하는 데 재정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이외에도 ▶외주출판노동자처럼 ‘비전속적 특수고용 노동자’에 대한 성희롱도 규제할 수 있도록 남녀고용평등법을 개정해야 한다 ▶정부 유관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출판 산업에 다양한 지원을 할 때, 남녀고용평등법을 준수하지 않은 출판사는 제외시켜야 한다 등 다양한 대책이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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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16 [20:46]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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