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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젊은 엄마’로 산다는 것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⑲ 기혼여성으로 살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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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일다>는 새로운 페미니즘 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청년여성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결혼은 미친 짓?’ 나는 다를 줄 알았다

 

남녀를 불문하고 최대한 결혼을 미루고 또 미루는 요즘, 심지어 비혼(非婚) 인구도 급증하는 이 시대에 살면서도 나는 ‘결혼하지 말아야지’ 라든지 ‘결혼은 최대한 늦게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행복한 결혼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었냐고? 글쎄, 그보다는 ‘결혼=독립’이라는 바보 같은 믿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에게서 빨리 독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해왔고, 혼자 살기보다는 내 가족, 내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 방법으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결혼뿐이었던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며 꼭 결혼을 해야만 내가 원하는 독립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때가 지난 뒤였다.)

 

▶ 나는 내 어머니처럼 집과 아이들에게 매여 내 삶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지켜본 내 부모님의 결혼 생활은 행복해 보이지만은 않았다. 그런 어머니의 결혼 생활을 지켜보며 나는 이 세상 딸들의 가장 흔한 래퍼토리인 ‘나는 엄마처럼 안살아!!’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자랐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처럼 살지 않기 위한 나의 방법이 ‘결혼하지 않는 것’이 아닌, ‘엄마와는 다른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스물여섯, 요즘으로 치면 아주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하며 ‘나는 다를 거야’ 하는 이유모를 확신을 갖고 있었다. 나는 내 어머니처럼 집과 아이들에게 매여 내 삶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가사와 육아는 남편과 함께 해나갈 수 있으니 문제될 것이 없으리라 믿었다. 내가 만나서 결혼하게 된 사람도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일 것이라는 순진한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 같다.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결혼을 하면서 나는 독립을 했고, 내 가정을 꾸려가며 살고 있으니 내가 바라왔던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엄마와는 다른’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지는 아직 딱 잘라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그러기 위해 지나온 2년 동안 많은 걸 느꼈고,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더 시행착오를 겪어 나가며 스스로 그런 결혼 생활을 위해 많이 노력할 것이라는 점을 밝혀야 겠다.

 

낯선 이와 ‘가족’이 된다는 것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 가족을 만든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 중에서도 25년이 넘게 (남편의 경우 35년이 넘게) 모르고 살았던 ‘낯선 존재’와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야 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이지만 꼰대 같지 않고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기에 연애 기간이 짧았음에도 결혼을 생각했다. 이 사람이라면 내가 그리는 가족을 함께 만들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였는지 결혼 전, 그리고 신혼 초에도 가사나 육아 분담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해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석은 낭만이었지만 그 때엔 남편도 ‘당연히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당연히 집안일은 내 일, 네 일의 구분 없이 서로 함께 해야 하고, 상황에 맞게 가사와 육아를 나눠 맡으며 함께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갈 것이라고 말이다. 그런 믿음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결혼 초반 신혼이라는 이름이 주는 달콤함 때문이었는지, 결혼이 현실로 다가오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다.

 

결혼하고 처음 몇 달은 마치 소꿉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일이 늦게 끝나 집에 돌아가면 남편이 먼저 집에 와 저녁을 해 놓고, 저녁을 먹은 후에는 내가 설거지를 했다. 주말에는 함께 집을 정리하고, 밖에 나가 데이트를 하고…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임신을 하고 회사를 쉬게 되어 집에 있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이상과 현실 사이에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집안일은 점점 내 몫이 되어갔다. 아이가 태어나자 내 몫에 육아가 더해졌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은 ‘효율’을 따지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효율이라는 것이 ‘엄마(여자)가 육아를 전담하는 게 더 효율적이고, 집에 있는 시간이 긴 사람이 집안일을 도맡는 게 효율적’이라는 논리였다. 내가 직장 일을 할 때에는 둘 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으니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인 셈이었다. 여기서부터 남편과 나는 부딪히기 시작했고, 아직도 부딪혀가며 맞춰 가는 중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연애 기간의 길고 짧음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부부가 결혼을 하고 신혼의 단꿈이 서서히 현실로 바뀌어가는 시기에 이런 갈등의 과정을 겪어 나간다고 한다. 우리 부부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던 것일 뿐이다. 당연히 겪어야 할 과정이라는 생각이 드는 동시에 아차 싶었다. ‘나는 다를 거야’ 하는 생각이 얼마나 철없고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나만 달라서 될 일이 아니었구나. 결혼이 현실이라는 말의 의미를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 25년간 모르고 지내던 ‘낯선 존재’와 가족이 되어 함께 살아간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귤

 

우리 집에 주부는 어디 갔어?

 

2년 동안 가사와 육아 분담 문제로 우리 부부도 무던히도 많이 부딪혔다. 내가 직장 일을 하기 전에는 육아는 온전히 내 몫이었고, 가사도 대부분 집에 있는 나의 몫이었다. 남편은 주말에 집안 정리와 청소를 맡아주고, 내가 일이 있어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하면 한나절 정도 아이를 봐주는 정도였다. 그나마 내가 직장 일을 시작하고 나서 상황이 좀 달라졌지만 그럼에도 가사와 육아에서 내가 담당하는 비중이 훨씬 컸다. 무엇보다 ‘책임’이라는 면에서 남편보다는 나에게 훨씬 무게가 실려 있는 느낌이었다.

 

다시 직장 일을 시작하고부터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거기에 집안일까지 이전처럼 신경 써서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집에서 아이를 키우던 때의 관성에 젖어있던 나는 일도, 육아도, 집안일도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는 부담감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도 힘들었지만, 물리적으로 나보다 더 힘든 일을 하고 오래 근무하는 남편을 위한 내 나름의 배려라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런데, 내가 일을 다시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말했다.

“우리 집에 주부는 어디 갔어?”

 

빨래가 밀려 입고 나갈 옷이 없자, 남편은 그 나름대로 기분 나쁘지 않게 농담을 섞어 돌려 말한다고 한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들은 순간 뭔가에 한 대 크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집안일에 대한 내 책임감과 부담감을 싹 벗어 던져버리기로 했다. 남편이 나에게 일하는 엄마인 동시에 내게 ‘주부’이길 바란 것은 내가 스스로 주부의 역할까지 떠안고 가려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그냥 나의 일, 그리고 아이에만 집중하고 집안일은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신경 쓰기로 했다. 요리에는 거의 손도 대지 않았다. 설거지가 밀리면 밀리는 대로 두었다. 빨래는 모을 수 있을 만큼 최대한 모아뒀다가 한 번에 했고, 청소는 아예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태도를 바꾸자, 백번 싸우고 부딪힐 때보다 더 자연스럽게 남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녁을 알아서 챙겨 먹고(심지어 내 저녁까지 챙기기도 하고), 널려있는 빨래를 보면 개어놓고, 아이가 한바탕 휩쓸고 간 거실과 방을 정리하고 바닥을 닦고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은 일상이 되었다. 내가 아등바등 모든 걸 짊어지려 하면서 나 힘든 걸 전혀 알아주지 않는 남편을 원망할 때보다 훨씬 편해졌다. 요즘에는 주말에 아이와 남편이 둘이서만 시간을 보내도록 일명 ‘슈퍼맨이 돌아왔다’ 시간을 자주 만들려고 노력 중이다. 이렇게 나는 내 나름대로 남편만 ‘나쁜 놈’으로 만들지 않으면서 나도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가고 있다.

 

가혹한 용어…‘팔자 좋은 여자’와 ‘맘충이’

 

내가 사는 지역은 신도시여서 어딜 가나 아이들 천지인 동네다. 타지에 사는 친구들이 놀러 오면 하나같이 ‘여기는 정말 애 키우기 좋은 동네다’ 라고 할 정도로 식당이며 카페마다 아이들이 없는 곳이 없다. 어린 딸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어딜 가도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이 동네가 오히려 편하다. 식당에 앉아 돌고래 소리를 지르거나, 밥알을 온 사방에 흩날려도 조금은 덜 눈치가 보이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면 아이를 데리고 배회하는 젊은 엄마들을 어딜 가나 만날 수 있어서 조금 안심이 된다.

 

▶ 문화센터.  아이를 데리고 어딜 가든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들이 따라다닌다. ⓒ귤

 

하루는 동네에서 사귄 아기엄마 한 명과 유모차를 밀고 근처 카페 거리를 산책하는데, 그 친구가 말했다. “남편 출근시켜놓고 애들 데려와 카페 앉아서 노닥거리는 팔자 좋은 여자들 진짜 많다.” 내 귀를 의심했다. 아기를 키우는 같은 엄마의 입장에서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자기 일을 잠시 포기하고 아이를 키우는 많은 엄마들의 ‘최소한의 사회생활’이자 하루를 버텨낼 힘을 주는 그 잠시의 시간을 두고 ‘팔자 좋은’이라는 단어를 쓰다니.

 

그 친구의 입장에서는 자신은 남편이 벌어오는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 알뜰한 살림꾼이라는 걸 은근 내비치고 싶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같은 아이 엄마의 눈에도 카페에 앉아있는 엄마들이 팔자 좋은 여자들로 보였다면, 남자들이나 아이가 없는 여자들 눈에는 ‘육아의 힘듦’은 싹 지워진 채 그저 아이를 데리고 여유를 즐기는 사람들로 ‘요즘 엄마들’을 인식하지는 않을까.

 

지역 맘 카페에 올라온 글 중에는 이런 글도 있었다. “식당에 갔다가 맘충이를 본 것 같아요.” 자기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지만 식당에서 아이가 밥 먹고 난 뒤 턱받이를 컵에 담긴 물을 부어가며 씻어내는 걸 보니 너무 불쾌하고 입맛이 떨어졌다며 ‘이런 맘충들 때문에 그렇지 않은 엄마들까지 욕을 먹는다’는 이야기였다. 그 글에는 자신도 그런 ‘맘충’을 봤다는 목격담과 자신은 어딜 가든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신경을 쓴다는 엄마들의 항변 아닌 항변 댓글이 줄을 이었다.

 

‘맘충’이라는 단어는 한 커피전문점에서 아이 엄마가 카페 안에서 일회용 커피잔에 아이가 오줌을 누게 했다든지, 아이 똥기저귀를 식당 테이블에 그대로 올려놓고 갔다든지 하는 공공질서나 도덕 개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엄마들에게 붙여진 신조어다. 그런데 이 ‘맘충’이라는 단어가 요즘에는 아주 쉽게 붙는 것 같다. 초보 엄마이기에 흔히 할 수 있는 실수, 아이를 키우다보면 한 번쯤 겪을 법한 일들에까지 맘충이라는 이름이 붙곤 한다. 그와 더불어 아이를 데리고 어딜 가든 그다지 좋지 않은 시선들이 따라다닌다.

 

이렇게 아이 엄마들이 많은 동네에서조차 아이를 키우는 요즘 젊은 엄마들은 ‘남편 돈으로 여유부리는 팔자 좋은 여자’, ‘개념 없는 맘충이’라는 오명을 쓰고 살아가고 있다. ‘엄마’로서의 삶과 ‘나 자신’으로서의 삶, 그 두 가지를 모두 지키려고 고군분투하는 요즘 엄마들에게 ‘팔자 좋은 여자’, ‘맘충이’는 너무 가혹한 이름 아닐까.

 

나 역시도 ‘맘충’으로 어딘가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 말라는 법이 없기에, 어딜 가든 신경이 쓰이고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다. 특히 같은 엄마들끼리도 서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누는 상황이다 보니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다른 엄마들이 동지처럼 느껴진다기보다는 왠지 모를 적대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같은 엄마들끼리 이런 비난을 하는 이유는 그럼으로써 ‘나는 맘충이 아니다’, ‘나는 개념 있는 맘이다’라는 증명이 된다고 생각해서일까. 어떤 이유에서든 ‘팔자 좋은 여자’와 ‘맘충이’ 이 두 단어는 참 불편하고도 안타까운 말들이다.

 

‘엄마’로 살다가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를

 

이전 세대의 어머니들은 엄마가 되는 순간 온전히 ‘누군가의 엄마’로서의 삶을 살았을지 모르지만, 나를 비롯해 요즘 젊은 엄마들은 ‘엄마’인 동시에 내 이름 석 자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세대가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엄마로서의 정체성과 나 자신의 꿈과 삶, 그 사이에서 끊임없이 고민했고 지금도 여전히 고민 중이다. 내 원래 직장으로 돌아가자면 엄마로서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할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내 딸의 엄마로만 살아가고 싶지는 않았다. 내 아이가 20대가 되었을 때, ‘00엄마’보다는 ‘000씨’로 불리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중간 지점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일을 시작했다. 엄마로 살다가 나를 잃지 않기 위한 내 최선의 수단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아직 이 선택이 최고의 선택이라고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하루하루 나는 엄마인 동시에 내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려고 부단히 애쓰고 있다.

 

▶ 딸내미의 발.  내 또래 엄마들은 ‘엄마’인 동시에 자신의 이름 석 자를 잃지 않기 위해 애쓰는 세대다.  ⓒ귤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부부가 공동으로 육아를 하는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대다수의 가정에서 육아는 엄마의 몫이다. 이 사회에서 젊은 엄마들이 정말 행복해지기 위한 길은 아직도 멀었다.

 

그럼에도 누군가 나에게 ‘지금 행복한가요?’ 하고 물어본다면, 나는 ‘행복할 때가 더 많아요’ 라고 이야기한다. 결혼 생활은 내 맘 같지 않고, 육아는 전쟁 같기만 하고, 현실은 만만치 않지만, 함께 마음 맞춰 나갈 수 있는 파트너가 있어 든든할 때가 더 많다. 전쟁 같은 육아를 잊게 해 주는 딸내미의 애교에 웃을 일이 더 많아졌다. 그리고 나는 엄마인 동시에 나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

 

나처럼 20대에 결혼을 고민하고 있는, 혹은 아이를 낳아야 할 지 고민하고 있는 여성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불행하게도 한국 사회에서 ‘엄마의 행복’은 누구도 대신 찾아주지 않는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철석같이 믿었던 남편도 나의 행복을 책임져주지 않고, 이 사회도 결코 엄마의 행복을 진정으로 찾아주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과 출산, 육아를 선택하는 모든 여성들이 엄마로 살아가면서도 자신을 잃지 않기를, 스스로 행복해지는 길을 현명하게 찾아나가기를, 그래서 부디 행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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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1/28 [12:02]  최종편집: ⓒ 일다
 
눈사람 16/11/29 [01:10]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독립=이름을 잃지 않는 삶'이라면, 독립은 물리적으로 부모에게서 떨어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 끊임없이 해야하는 것인가보다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로를 맘충이라 비난하는 여성들의 심리란...이름없는 삶을 사는 공허함과 불안함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ㅇㅇ씨라 불릴 수 있는 직장생활과 더불어서 돌봄노동의 공적인 가치를 서로서로 긍정해주는 부모들끼리의 관계도 잘 만들어 가면 좋겠네요.
ㅇㅇ 16/11/29 [17:14] 수정 삭제  
  맘충이니 그런 말은 없어져야 합니다
파충류가 문제인데 16/11/30 [02:01] 수정 삭제  
  한국은 남자애는 자라서 어른나이가 되어도 심리적으로는 여자애 수준에 머물러도 (10살 이하 여자애들도 유치하거나 폭력적이기도하고 사회구조적인 통찰은 잘 못하죠.) 되는반면, 여자애는 일찍부터 ‘집사’역할을 강요받는듯합니다.
꼬맹이수준에 머물러있는 남편들은 스스로 어른역할을 하는건 불가능하고 위의 예처럼 특단의 훈육을 해야만하는군요(이 훈육법 국가가 가가호호 알려얄듯합니다.). 남편의 아버지가 지역사회가 진작에 가르쳤어야하는일을 개인적으로 하시느라 너무나 수고가많으십니다. 눈물겹습니다.

돌봄노동 가사노동은 아예 자기일 아니라고 내팽개치고 운동가고 모임나가는 (일부는 조건만남? 미성년성매수까지하는) '파충류'들 많은 한국에서 '맘충'이라니요.
한국이 아직도 후진국 못면하는 이유 민주주의 시민의식 요원한 이유가 이러한 어머니성별=무임금노예노동으로 고착화된 문제(일본 근대 이에제도에서 이식된 호주제도 폐해를 손에 쥐곤 안놓는 꼬맹이같은 한국남성문화)와 이에 대한 민주적 변화를 지입에는 쓰다고 못삼키겠다고 여성혐오로 뱉어내기만하는 병리적 심보에 있는듯합니다.

감기에 결려도 앓을 여유도 없다고들하시는 한국의 엄마들 파이팅입니다~
쭈양 16/12/02 [11:34] 수정 삭제  
  너무 공감가는 내용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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