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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잘못이 아니야
<질문교차로 인문학카페36.5º> 순결한 피해자는 없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홍승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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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천에서 인문학카페36.5º를 운영하는 홍승은 씨가 기존의 관념과 사소한 것들에 의문을 던지는 ‘질문교차로’ 칼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헤어지던 날, 데이트 성폭력을 당하다

 

“나 정말 힘들었어. 지금도 힘들어. 잠도 잘 못자고 그 순간이 자꾸 떠올라. 나는 성폭행 당한거야. 그러니까 제발 내 앞에서 걔에 대해서 좋게 얘기하지 말아줘.”

 

몇 년 전, 후배에게 울면서 했던 말이다. 내 말을 들은 후배는 “언니가 그렇게까지 힘든지 몰랐어요. 미안해요” 라며 그 뒤로 내 앞에서 ‘그’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만났던 그와 나는 2년 조금 넘는 시간을 사귀면서, 50번은 넘게 헤어지고 다시 만났다. 그를 만날 때 내 모습은 내가 봐도 무척 낯설었다. 서로를 사랑했기에 좋을 때도 있었지만, 그때 나는 대체로 사납고, 우울하고, 변덕스러웠다.

 

사귀고 얼마 후 그가 나에게 처음 언어폭력을 가했을 때, 처음 겪는 상황에 당황하면서도 ‘그만큼 나한테 서운했구나’ 생각하고 그를 달래주었다. 하지만 사소하게 넘겼던 우발적인 행동을 시작으로 폭력은 한 단계씩 높아졌다. 그 단계에 따라 나도 점차 폭력에 적응했고, 적응뿐 아니라 함께 폭력적으로 변해갔다.

 

격하게 싸우던 어느 날, 그가 내 주위로 책들을 집어던졌다. 나는 똑같이 그의 책과 필통을 집어던졌다. 그는 나를 밀쳤고, 나는 “네가 뭔데 내 몸에 손을 대, 이 새끼야. 다시는 내 눈 앞에 나타나지마”라고 말하며 그를 똑같이 밀쳤다. 그렇게 싸우고 헤어졌을 때, 나는 무엇보다 어제까지도 사랑을 속삭이던 그가 나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면서도 헤어지는 게 마음아파서 너덜너덜해진 상태로 눈물만 흘렸다.

 

싸움 뒤에 그는 언제나 나를 찾아왔다. 길거리에서 무릎 꿇고 꽃다발을 주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집에 찾아와서 꽃다발과 함께 편지를 주었다.

 

마지막으로 그와 ‘진짜’ 헤어졌던 날, 헤어지자는 내 말을 듣고 그가 다짜고짜 집에 찾아왔다. 문이 잠기지 않은 틈에 들어온 그는 나를 강간했고, 콘돔을 끼지 않은 채 사정을 했다. 나는 칼을 들고서 다시 내 앞에 나타나면 내가 죽을 거라고 그를 위협했다. 그가 가고 혼자 남겨져서 오랫동안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그 순간에도 나는 내가 당한 폭력에 대한 분노나 슬픔보다, 임신 가능성을 걱정했다. 다음 날 바로 산부인과에 가서 처방을 받고 사후피임약을 먹었다.

 

사귀었던 사람에게 당한 강간 ‘너도 좋았던 것 아냐?’

 

함께 운동을 했던 동료들에게 이 사실을 말했을 때, 그들은 심각한 성폭력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와 내가 으레 그래왔듯이 전처럼 싸우고, 헤어지고, 싸우고, 헤어지는 연장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를 떠올리면 수치스럽고 마음이 울렁거려서 힘들었지만, 주위 사람들은 원래 헤어질 때마다 너네는 그러지 않았느냐는 식으로 말했다. 그 남자애가 욱하는 성질인 걸 알면서 왜 진작 헤어지지 않았느냐고도 물었다.

 

당장 경찰에 신고하라는 지인도 있었다. 하지만 당시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온전히 ‘순진한 혹은 순결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와 나는 원래 섹스를 했던 사이고, 그가 욕을 하거나 밀칠 때 함께 언성을 높인 내가, 굳이 그와 2년을 만나왔던 내가, 남들이 보기에 성폭력 피해자일 수 있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성폭력을 미리 조심해야 한다는 조언을 들어왔다. 그런데 이번 사건은 내가 조심하지 않았던 일이었다. 나는 가해자를 사귀었고, 자취를 했고, 문을 잠그지 않았고, 그에게 친절하게 이별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그가 우발적이게끔 만들었다. 정말? 정말 그런가. 끝없이 이어지는 의심은 나를 망설이게 했다. 더 이상 그와 엮이고 싶지 않다는 핑계를 댔지만, 나는 알았다. 성폭력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과 피해여성을 향한 비난과 의심어린 눈초리들을. 그것은 나에게는 너무 익숙한 공기였다. 나는 그 공기를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그를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자, 당시 나에게 호감을 보였던 남자가 술에 취해서 나에게 말했다. “사실은 강간이 아니라, 너도 좋으니까 받아들였던 거 아니야? 내 친구가 그러는데 그런 일 있고도 경찰에 신고 안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대. 여자가 진짜 저항하면 애초에 당하기 어렵지 않나?” 그는 신고를 하지 않는 내 태도가 자신에게 상처가 됐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그의 말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당당하게’ 피해 사실을 밝히지 않고, ‘합법적으로’ 신고하지 못하는 나의 세계를 그 남자는 언제까지나 이해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당했던 데이트 폭력에 대한 글을 올렸을 때, 한 남성이 댓글을 남겼다. “근데 글에서 보니까 남자친구랑 싸우다가 휙 돌아서서 갔다고 하는데, 그것도 폭력적인 행위 아닙니까?” 늦은 시간에 고함을 지르면서 집까지 쫓아왔던 그보다, 그를 도발한 내가 폭력적이라는 댓글을 읽으며 다시금 내 안의 작은 목소리가 죽는 게 느껴졌다. 딱 이정도가 가장 은밀하고 친밀한 폭력인, 데이트 폭력에 대한 인식의 거리감이다. 피해자와 그 외 사람들의 거리, 피해자와 가해자의 거리. 닿을 수 없는 걸 설명해야하는 아득한 거리감.

 

몇 년이 지났다. 함께 운동을 했던 동료들은 그 후로도 종종 나에게 그의 안부를 전했다. “OO오빠 잘 지내고 있더라고요”, “OO는 공부한다고 어디 간 거 같아” 라며 나에게 안부를 전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설명하지 못할 부대낌을 느꼈다. 그는 나에게 상처를 준 가해자였지만, 여전히 그들에게는 좋은 동료였다.

 

하루는 후배가 내 앞에서 그에 대해 이것저것 편하게 이야기를 했는데, 참다못한 내가 말했다. 나 정말 힘들었고, 지금도 힘드니까 내 앞에서 제발 그의 이야기를 좋게 하지 말아달라고. 내 피해를 피해로 봐달라고, 내가 당한 일을 폭력으로 봐달라고 후배에게 간절하게 부탁했다.

 

나에게 해주고 싶던 말을 그녀에게…“네 잘못이 아니야”

 

▶ 그녀와 나.   ⓒ 그림: 홍승은

최근 논란이 된 한 데이트 성폭력 사건에 대해, 가해자의 지인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다. “이 사건을 남자(가해자)만의 잘못이라고 보기엔 찜찜한 구석이 있어”, “피해자는 왜 진작 합리적으로 대처하지 않은 거지?” “피해자 갑질…” 다시금 피해자와 그들의 위치 사이의 아득한 거리감을 느꼈다.

 

데이트 폭력은 언제나 무 자르듯 단순한 구도로 나눠지지 않는다. 순결하고 합리적인 피해자는 없다. 함께 욕하고, 대응하고, 저항하는, 심지어 ‘나쁘기도’ 한 복합적인 존재이다. 피해자를 수식하는 말이 무엇이든, 어떤 여자도 폭력이나 강간을 당해선 안 된다. 그것만이 절대적인 원칙이다. 또한 피해자에게 합리적 대처를 요구하는 것도 터무니없는 기계적 잣대라는 걸 나는 안다. 데이트 폭력은 낯선 남자에게 폭력을 당한 일이 아닌, 가장 믿었던 사람에게 당하는 은밀하고 친밀한 폭력이다.

 

만약 내가 겪었던 데이트 폭력을 공적으로 문제제기 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답은 이미 글을 쓰면서 나왔다. 내가 겪은 피해를 공론화하는 과정은 데이트 폭력 자체보다 더 큰 상처로 내게 돌아왔을 것이다. 이미 그걸 알고 있었던 나는 방어하기 위해서 폭력을 외면했을지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목소리를 내는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소중하고, 고맙고, 미안하다. 그때 내가 먼저 겪고 부딪치며 공론화했더라면, 지금은 조금 달라졌을까.

 

사회적 인식, 통념, 제도적으로 불리함에도 불구하고, 위험을 감수하고 더듬더듬 피해를 말하는 목소리에 귀 기울인다. 지금도 3일에 한 번씩 여성이 친밀한 관계로부터 살해되고 있다고 하지만, ‘데이트 폭력’이라는 언어가 생긴 건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았다. 일상적 폭력을 설명할 언어는 여전히 부족하다.

 

피해자의 증언이 ‘폭로’로만 나올 수밖에 없는 환경, 어렵게 꺼낸 증언이 ‘무고죄’의 위협에 놓이는 불균형한 법적 토대에서, 나는 폭력에 대한 ‘불확실한 증언’을 존중하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사회에서 피해자의 증언은 언제나 불확실성을 수반한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데이트 폭력, 데이트 성폭력 피해자들은 항상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못했다. 사회적으로 소외되는 폭력이므로. 위험을 감내하면서 자신이 피해자임을 입증해야하는 어려운 과정이므로. 이제 조금씩 말을 꺼내는 피해자들에게 ‘그러게 왜 그런 사람을 만났어, 왜 진작 헤어지지 않았어, 왜 그때 그렇게 행동했어, 그러게 왜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어.’ 라는 소리도 여전히 공기처럼 존재한다. 나는 그 소리들에 그녀의 목소리가 사라지지 않길 바란다.

 

이제라도 나는 용기를 내서 그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동참한다. 스스로에게도 꼭 해주고 싶었던 말을 그녀에게 건네고 싶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 네 잘못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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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2/07 [16:42]  최종편집: ⓒ www.ildaro.com
 
새벽 16/12/08 [10:47] 수정 삭제  
  강간을 당했는데도 힘이 되어주지 않는 주위 시선 때문에 피해자가 갈등해야 하는 상황은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네요. 순결이데올로기가 사라지면서 달라질 줄 알았는데요. 사귀었다는 이유로, 피해자의 행실 탓하고 가해자의 심리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는 것을 느낍니다. 다른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는 필자의 글이 세상을 조금은 바꾸었으면 좋겠네요.
독자 16/12/08 [16:06] 수정 삭제  
  슬프고 아픈 글 잘 읽었습니다. 다시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ㅇㅇ 16/12/09 [12:21] 수정 삭제  
  슬프고 아픈 글 잘 읽었습니다2...
16/12/09 [17:36] 수정 삭제  
  네 잘못이 아니야
16/12/10 [10:42] 수정 삭제  
  왜 이글은 성장기 비행청소년의 일기로 느껴질까요.글쓴이를 아끼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상처가 될까요.특히 이성친구가 있다면 몹시 수치스러울것 같네요.너무 자극적인 이야기라 보는 이에 따라서는 글쓴이를 다시보게 하는군요.물론 생각이 전부 다르겠지만 꼭 적나라하게 표현할 필요는 없을것 같은데요.제가 보기에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재의 빈곤 때문아닌가봅니다.
소리 16/12/10 [14:45] 수정 삭제  
  이 연재 열심히 보고 있어요. 필자가 자신의 사적인 경험을 진솔하고 세세하게 이야기 하는 용기(엄청난 용기지요)는, 그것이 '일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운동'이라고 믿기 때문이라는 걸 알아요. 그의 언어가 불편하다면 그건 우리에게 아직 '여성의 언어'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여성의 언어는 불편합니다. 불편한 삶들을 살고 있으니까요. 그 삶을 사적인 차원으로, 숨겨야할 이야기로 치부하는 한 세상은 바뀌기 힘들겠지요. '대한민국 유사 이래 가장 급진적인 혁명'(한겨레 이진순)을 하고 있는 승은씨를 지지합니다.
바람지기 16/12/11 [10:31] 수정 삭제  
  제게는 이 글이 비행청소년의 일기로 보이지 않습니다. 아끼는 사람에게 상처가 될까봐, 이성친구에게 수치스러울까봐, 너무 자극적으로 보일까봐 등등 글에 적힌 피해자들을 침묵시키는 사회적 시선을 댓글에서 그대로 보게 되네요. 한 사람이 가진 삶의 경험을 소재가 빈곤하다느니 평가할 수 있다니... 이 글은 남들 보기 좋으라고 쓰여진 소설이 아닙니다.
바람 16/12/13 [19:46] 수정 삭제  
  너무 공감되고 아픈 글 잘 읽었습니다. 승은님 글을 읽으며 늘 기운을 받아요. 저도 계속 목소리를 내겠습니다. 저기 서미라는 분 댓글은 참 글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본문에서 말하는 그 폭력을 저지르고 있네요. 저런 목소리들에 위축되지 않고 저도 계속 증언하렵니다. 감사합니다.
유나 16/12/14 [06:26] 수정 삭제  
  섬/지랄한다 진짜ㅋㅋㄱㅋㅋㅋ너 혹시 가해자냐? 너같은 놈때문에 피해자들이 상처받고 2차피해 받는거거든???? 본문 열심히 감동받으면서 읽었더니 뭐이런 지랄같은 댓글이ㅋㅋㄲㅋㅋ너야말로 청소년소설 쓰지말고 빨리꺼져라 지구 산소가 아깝다
일본근대 이에제도를 계승한 도착된 가해자/동조자 심보 16/12/19 [19:51] 수정 삭제  
  평소 강* 성폭* 간*사 교복(?) 등의 단어들 검색하고 살다가 이 기사를 우연히 봤다해도, 운좋게 정상적인 저널사이트에 들어왔으면, 현실의 사람들의 진짜 목소리를 듣는 계기로 삼았으면 매력적인 남자사람이 될수있을터인데,
진실을 사실을 직면할 용기가 너무 없어 "(실상은 열폭 무개념)남자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는듯이" 되려 굴절된 도착된 심보로 병리적인 댓글다는 *님들 가끔 있긴하나,

일본근대 성평등지수를 추락시킨후 패전 직후 제도적으로 강제해체되었음에도 아직까지도 일본 정치후진성을 공고히하는데 영향을 끼친 '이에'제도가 일제강점기때 한반도에 강제이식되고 해방 후에는 기득권한국남성들 스스로 손에서 못놓고 물고빨아오다 (여자사람 한의사 두분이 시작)시민들의 노력으로 2008년에야 법적으로는 호주제도가 폐지되었으나,
MB정권이후 다시금 온라인 대중매체 일부(?)남성집단 등을 통해 고착되어가는 한국남성문화라는 이름의 페니스파시즘이 열폭남성들의 도착된 쨍알거림의 원흉이겠소만,

성폭력 겪은신 분이 묵인된 범죄사실을 세상에 알리고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지지하기위해, 또한 가해경험자/동조자들이 범죄사실을 인정-과거청산-할수있도록 도와 진정한 인식변화와 범죄예방을 위해, 이런 환경 이런 시절이기에 더더욱 힘겹게 용기내서 쓰신 글 밑에

'섬'님..
왜 되도않는 님이 글쓰기소재(?) 빨간펜시늉을 하는거요? 이곳은 '인권''저널'사이트요. 모르는 단어들 표현들 있으면 사전 검색해서 찬찬히 공부해가며 읽어보면 되잖소? 무개념이 잘못이아니라 대충 아는척하며 피해자보다는 자신이 유리하다는 심보로 이참에 가르치는 시늉해보려는게 비루한거요.
위 기사에서 글쓴이가 "학생운동" 때였음을 분명히 밝히셨는데, 대학생시절을 뜻하는것을 모를정도로 '섬'님이 글읽기 글쓰기의 기초상식이 없는건 알겠소만,

도대체 '섬'님은 왜 위 글이 "비행청소년의 일기" 즉 소위 '탈선한 미성년자의 성적 묘사'로 느껴지는거요? 그거 병이오. '섬'님의 어떤 성적 망상이 위 글을 읽고 '탈선한' 미성년자를 떠올린건지 그 괴이한 망상이나 당장 치료하오. '섬'님의 망상이 "제가 보기에 내용이 너무 자극적이어서 소재의 빈곤 때문아닌가봅니다." 라오.

게다가 가해자인 이성친구의 수치스러움? 폭력적인 방법으로 게다가 콘돔도 안하고 정액 쌀땐 언제고 그 잘못된 짓을 글로 알려주니 이제와서 수치스럽소? 어떻게 '섬'님은 성폭력 겪은 미성년자에게 '사람들이 너를 이상하게 볼거다' 그러니 주변어른들이 상처받지않게 피해사실을 숨기라고 넌지시 협박하면서 가해자의 수치심을 배려하라는 *소리까지 하는거요?

'섬'님의 이런 *같은 댓글 하나라도 (미성년)성범죄피해자에게 '탈선한 네가 잘못이니 입다물라' 협박하는것인 동시에 (미성년자 대상)성범죄를 조장하는거라오.

'섬'님은 글쓰기시늉은 잠시 중단하고 정상적인 글읽기 생각하기 최소한의 자존감 갖추기 배워야하오. 용기내어 노력한다면 '섬'님도 조만간 반드시 성범죄 피해자분들께 "당연히, 당신 잘못이 아닙니다!"라고 함께할수 있을거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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