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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원전 피난민’들의 고통을 말하다
겐카이원전 재가동 중지 소송 진술인 요시다 치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와사키 마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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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르포 모자피난>의 저자 요시다 치아 씨 ⓒ사진: 오치아이 유리코

“국가나 현에게 내쳐지고, 지자체의 대응은 다 제각각입니다.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는지도 모르는 채, 피난민들은 계속 표류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8일, 저널리스트 요시다 치아 씨는 규슈 겐카이원전 재가동 중지 소송의 진술인으로 일본의 사가 지방재판소 법정에 섰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의해 지금도 피난생활을 강요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취재해온 사람으로서, 피난민들의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원전 사고가 발생하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난할 수밖에 없습니다. 갑자기 생활을 빼앗기고, 고향에도 돌아가지 못하고, 제대로 된 보상도 받지 못하고 표류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돕고 싶어도 도울 수 없는 제 자신에 너무 화가 납니다. 눈앞의 이 사람(판사)은 미리 사고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인데! 어떻게 이 생각을 전할 수 있을까요? 피해자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해줄 수 없습니까?”

 

곤경에 빠진 ‘자발적 피난민’들

 

요시다 치아 씨는 전국 각지의 여성들이 직접 방사능 현황을 조사하고 전달하는 계간지 <마마레보>(Mom’s Revolution, 엄마들의 혁명이라는 뜻)와, 사이타마현 내 원전 피난민들을 위한 정보지 <후쿠타마 소식> 등에 집필, 편집 활동을 하고 있는 저널리스트다. 요시다 씨가 사이타마현에서 원전 피난민들의 교류모임을 기획한 것은 2012년 4월이다.

 

“사고 당시 저 역시 여섯 살, 두 살짜리 아이 둘을 데리고 피난을 갈까 생각했지만, 결국 못 갔습니다. 하지만, 만약 내가 피난을 했다면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만나고 싶을 것 같았어요. 제게는 아무 힘도 없지만, 만남의 장을 마련하는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그들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후쿠시마 사람들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피난해도 지옥, 피난하지 않아도 지옥” 속에 살아가고 있다.

 

▶ 하야카와 유키오 군마대학 교수가 작성한 방사능 감염 지도 5차 정정판 (2011년 12월 9일 기준)  ⓒ출처: kipuka.blog70.fc2.com/blog-entry-445.html

 

원전 피난민들 중에서도 특히 국가가 지정한 피난구역 이외 지역에서 피난한 사람들, 소위 ‘자발적 피난민’의 곤경은 글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집, 가족, 일, 친구, 사고 전에 갖고 있던 것들을 놓고 아이들만 데리고 피난했다. 피폭 한도 기준이 사고 전의 스무 배로 높아진 곳에서 아이를 키우는 선택은 절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일 때문에 떠날 수 없는 남편을 남겨두고, 주택마련 대출금을 떠안은 채 가혹한 피난생활을 하다 심신 모두 지칠 대로 지쳐 어쩔 수 없이 다시 살던 곳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한 사람도 있다.

 

내팽개쳐지고 우롱 당해온 원전 피난민들의 괴로움을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는 생각에, 요시다 씨는 올 2월 <르포 모자피난 -지워져가는 원전 사고 피해자>(이와나미신쇼)를 출간했다.

 

원전 사고 피해자 문제가 남의 일입니까?

 

하지만 후쿠시마현은 ‘자발적 피난민’에 대한 주택 지원을 내년 3월에 중단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자발적 피난민은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어떻게든 그것만은 막고 싶다는 심정으로 요시다 씨는 취재와 행정 협상에 분주한 하루하루를 보낸다.

 

“원전 피난민에게는 일분일초의 유예도 없습니다. 목숨이 걸린 문제입니다. 국가나 도쿄전력에게 보상을 요구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그것만 기다렸다가는 타이밍을 놓칩니다. 우선 눈앞에서 절망한 사람들을 위해… 그런 가까운 싸움(接近戰)을 계속해왔습니다.”

 

아무리 이들의 목소리를 전하려 해도 전해지지 않는다는 생각에 초조해져서, 국가의 담당자에게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기회를 버리는 겁니까?”라고 따진 적도 있다. 국가나 현이 피난민을 내팽개친다면 ‘자발적 피난민’이 살고 있는 지역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 피난민과 함께 피난민이 살던 지역 행정과도 몇 차례나 담판을 지었다. 부단한 노력이 결실을 맺어 사이타마현은 관련 조례 개정을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도쿄도 역시 도영주택에 자발적 피난민 우선 입주 제도를 마련했다.

 

“그렇지만 아직 부족합니다. ‘자발적 피난은 자기 책임’이라는 편견은 여전히 뿌리 깊습니다. 지자체를 향해 지원 요청의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피난민도 많고요. 후쿠시마에 주민등록을 남기고 피난한 사람들은 피난 간 지자체의 ‘주민’으로도 인정받지 못해 행정 서비스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원전 사고가 언제든 다시 일어난대도 이상할 것 없는 지금의 일본에서, 원전 사고 피해자 문제는 전국의 지자체가 당사자의 일로서 대응해야 합니다. 이제야 각 지자체가 그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 엄마들의 혁명이라는 이름의 잡지 <마마레보>는 각지의 여성들이 생활반경을 돌며 직접 방사선량을 측정하여 정보를 공유한다.  ⓒ마마레보(Mom’s Revolution)

 

‘귀찮아’ 해버렸다가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원전 피난민들의 고통은 언제 내게 닥쳐도 이상할 것 없는 일, 즉 ‘내 일’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요시다 씨를 부추겼다. 그러나 한편으로, 피난민의 괴로움과 슬픔을 타자인 자신이 대변할 수 없다는 생각도 강하다. ‘알고 싶다, 모르겠다, 다 아는 것 같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생각의 대치가 요시다 씨에게 혼신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원천이 되었다.

 

“계속 그런 생각을 하는 일은 고되지만, 저는 언제나 아이들에게 말합니다. ‘귀찮아’ 해버렸다가는 사람이 죽을 수도 있어, 라고요. 행정창구 담당자가 피난민 이야기를 귀찮다고 흘려버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움직여준다면 바뀔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권한도 없는 사람조차 필사적으로 호소하면 내 앞의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요시다 씨는 큰 눈으로 이쪽을 들여다보며 빙그레 웃는다. 눈앞의 한 사람 한 사람과 마주하는 ‘귀찮음’을 꺼리지 않고 무관심이라는 문을 두드린다. 요시다 치아 씨는 그저 그것을 계속해온 사람이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언론 <페민>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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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6/12/20 [10:47]  최종편집: ⓒ 일다
 
가나 17/09/04 [02:12] 수정 삭제  
  행정처리 꼬라지가 우리나라와 별 다를게 없네요사람이 하는일인지이라 비슷하군요 이들은 집을 떠나어땋게 지내가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미래의 우리나라를 보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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