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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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몸을 통해 바라본 나의 삶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몸을 인식하다③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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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내 자아상(自我像) 안에 ‘몸’은 없었다

 

내 몸의 역사를 펼쳐놓고 보니 무슨 ‘잔혹사’(殘酷史) 전시 같다. 나는 내가 받은 대우대로 내 몸을 대우하며 살았다. 아니, 더 잔인하게 대했다. 난 몸이 싫었다. ‘몸’이 없는 고귀한 ‘정신’이 되고 싶었다.

 

나는 마음의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얼마나 지독하게 몸을 학대하고 착취했는지 비로소 알 것 같았다. 허기진 마음이 너무 커서, 물질적 의미에서 나 자신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런데 내가 느낀 허기와 고통이 마음만의 것이었을까? 몸의 허기와 고통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몸의 고통이 먼저였을 것이다. 학대받은 몸, 그것이 마음의 고통의 근원이었을 것이다.

 

내가 어릴 때부터 느낀 슬픔은 거부당한 몸의 슬픔이었을 게다. 내가 느낀 혐오와 수치도 몸의 것이었다. 내 안에 켜켜이 쌓인 분노, 울화 또한 몸의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을 향해 “괜찮다” 했다. 괜찮다고 해야 살 수 있었다. 괜찮지 않은 데 괜찮다 하다 보니 몸은 고통에 익숙해졌다.

 

가끔씩 몸은 엉뚱한 데서 자신을 드러내곤 했다. 그리 슬프지도 않은 영화를 보고 통곡이 터져 나왔다. 별로 화낼 일도 아닌데 머릿속이 뿌예지고, 심장이 쿵쾅대며 호흡이 얕고 빨라졌다. 나 아닌 분노가 나를 삼키는 듯 했다. 술이 만취해 소위 ‘필름이 끊어지면’ 비로소 몸은 자신을 드러내기도 했다. 의식이 끊어지면, 몸은 울었다. 언제나 격렬한 제 울음소리에 술이 깼다.

 

하지만 나는 ‘누추한 몸’을 거부하고 ‘빛나는 정신’을 향해 가느라 몸이 느끼는 허기와 고통을 외면했다.

 

문학은 나를 구원하는 이상이었다. 문학이 제시하는 고귀하고 이상적인 인간상, 빛나는 정신이 없었다면 나는 어린 시절의 학대나 추행을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가야만 하고 반드시 가고 싶은, 빛나는 정신을 향한 열정은 현실이 어둡고 힘들수록 더욱 타올랐다. 나는 문학 속에서 ‘현실의 몸’ 대신 ‘상상의 정신’을 만났다. 그 힘으로 나는 나의 현실을 견디고 건너왔다.

 

그러나 모든 사물에 이면(裏面)이 있듯 문학의 그림자는 내 몸에 깊게 드려졌다. 나는 몸이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린아이가 헝겊인형을 질질 끌고 다니듯, 나는 몸을 끌고 다니며 그게 나라고 인식하지 못했다. 내 자아상(自我像) 안에 몸은 없었다.

 

이제 마음이 살만해졌는데 몸은 죽어가다니

 

▶ 생존자 몸. 김점선 그림 ‘하늘에서 자다’에서 모티브를 얻다. ⓒ김혜련

부끄러움과 슬픔, 회한과 참담함으로 몸을 바라본다. 그리고 처음으로 몸을 안는다.

 

태어나자마자 거친 군용 담요에 둘둘 말려 구석으로 밀쳐졌던 여린 아기의 몸, 돌봄 받지 못하고 매 맞는 어린 몸, 친구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외롭고 두려운 아이의 몸, 성적 수치로 죽고 싶었던, 오이지 같이 졸아든 소녀의 몸, 아침마다 살아있는 자신을 저주했던 이십대 몸, 성적으로 무력하기만 한 젊은 여자의 몸, 세상이 두려워 몸을 방탄복으로 만들어버린, 딱딱하게 굳은 이혼한 여자의 몸, 지나치게 써서 다 타버린 착취당한 몸, 비온 뒤 허물어 내린 흙벽 같이 푸석푸석 무너진 나이든 여자의 몸… 몸, 몸, 몸을 안는다.

 

그 몸들을 내가 만든 ‘어머니 집’에 눕힌다. 백년 된 집이 전쟁과 산업화의 잔혹한 세월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듯, 내 몸 또한 잔혹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제발… 죽지 마. 지금 죽으면 안 돼!~”

 

죽어도 괜찮다한 것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몸은 아니었다.

 

마음의 허기를 해결하기 위해 나는 갈 데까지 갔다. 그리고 그 허기가 진정되자 비로소 몸이 보였다. 이제 결핍 없는 마음으로 ‘그냥’ 살 수 있어졌는데, 몸은 죽어가고 있다.

 

‘이제 살만해졌는데 죽어가는구나…’

 

평화를 위한 오랜 전쟁 끝에 드디어 승리를 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온통 피로 물든 폐허의 땅 위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전장(戰將)처럼 깊은 한탄과 비애로 망연히 내 몸을 바라본다.

 

몸이 없는 나는 누구인가? 몸을 무시한 건 결국 자기 존재를 거부한 것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거부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그토록 목말라 했다니… 타들어 가는 몸에게 물 한 방울 주지 않으면서, 온전하고 충만한 존재가 되고자 그토록 애쓰다니….

 

몸 일기를 쓰다

 

몸을 돌본다는 게 뭘까? 약을 먹고, 좋은 음식을 먹고, 건강에 좋은 운동을 하고…. 그러는 것이 몸을 돌보는 것일까?

 

몸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일은 너무도 낯설다. 그러니 몸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 모른다. 아니, 몸이 뭔지 모른다. 이제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기-이 ‘아무 것도 아닌’ 일을 배워야 한다.

 

몸에 대한 둔감함은 내 몸의 생명력에 대한 둔감함이다. 감각의 상실이고 삶의 기쁨과 풍요로움을 느낄 창구를 닫고 있다는 의미다. 나는 내 몸 심층에 언뜻언뜻 보이는 명랑성, ‘근원적 명랑성’을 불러내야 할 것이다. 따뜻하고, 부드럽고, 가볍고, 유쾌한 몸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몸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우선은 망가진 육신을 살려야 했다. 몸을 관찰하는 낯선 일을 시작했다. 면역력을 강화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식단 프로그램을 짰다. 생활 계획과 실천의 목록들도 짜고 운동도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녹즙을 짜고 효소들을 챙겨 먹는다. 생전 처음 내 몸을 위해 정성스러운 음식을 준비한다. 눈물이 핑 돈다. 이런저런 것을 준비하고 챙기면서 든 생각. 이 과정이 삶을 바꾸겠구나. 깊이 있는 바라봄, 자신의 생명에 대한 정성과 존중. 이게 바로 수행이겠구나. 몸을 돌보는 과정 자체가 삶의 오롯한 의미가 될 때 삶은 깊은 차원에서 존재에 가까워지겠구나. 자신과 멀어지려고만 한 삶에서 돌이켜지겠구나…” (2009년 일기)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무언지 모르는 삶

 

밥과 몸을 성찰하면서, 나는 내가 밥도 없고 몸도 없는 기괴한 인간이라고 느꼈다. 있으되 의식하지 않는 영역, 있지만 아무 것도 아니라고 여긴 영역. 아니, 없으면 좋겠다고 부정한 영역, 그것이 밥이고 몸이었다. 자기 인식이 없으면 있어도 없는 것이다.

 

내가 일상을 살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도 알 것 같았다. 단지 일상이 지루하고 단순 반복이어서만은 아니었다. 몸의 감각을 잃은 것은 일상을 잃은 것이다. 관계의 감수성을 잃은 것이다. 웃음을 터뜨리고, 서로 시시덕거리고, 볼을 부비고, 함께 노래하고…. 밥하고, 청소하고, 잠자리에 들고, 아침에 일어나는 감각의 리듬, 살(肉)의 느낌을 잃은 것이다.

 

나는 일상을 모르는 사람, 일상이 없는 사람이었다. 일상의 사소한 기쁨, 몸의 움직임을 통해 삶의 즐거움과 삶을 신뢰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일상의 즐거움과 든든함은 없고 일상의 부정적 측면만 있는 사람. 그건 삶의 기쁨은 없이 고통과 무거움, 견뎌내야만 하는 그 무엇으로 삶을 사는 것이다.

 

늘 진지하기만 하고 재미없는 삶, 쓸데없이 처절한 삶, 일상의 소소한 기쁨이 무언지 모르는 삶…. 밥과 몸을 통해 바라본 나의 삶이었다.

 

▶ 생존자 집.   ⓒ그림: 김혜련

 

“집은 나를 안고 긴 부화(孵化)에 들 것이다.”

 

나는 내가 만든 우주, 집에서 밥을 회복하고 몸을 회복하는 새로운 부화기에 들어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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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03 [10:21]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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