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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혹한 동화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세월호와 함께 사는 사람들(9) 희생자 가족들의 1000일
<여성주의 저널 일다> 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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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릿수 날짜가 되기 전엔 만날 거라 했는데…’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바다 속에 남겨진 다윤이의 엄마는 매일 청와대 앞에서 ‘다윤이를 찾아 달라’는 피켓에 적힌 날짜를 고치며 아이를 영영 찾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셨어요. 네 자릿수 날짜가 되기 전엔 다윤이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말이 위로가 되던 때도 있었는데, 어느새 네 자릿수 날짜가 되었습니다.

 

아직도 세월호는 바다 속에 있습니다. 단원고 조은화,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학생과 고창석, 양승진 선생님, 권재근, 권혁규, 이영숙 님도 바다 속에 방치되어 있습니다. 바다 속에 숨겨진 진실 또한 끊임없이 훼손되고 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도록, 승객들이 탈출하지 못하도록, 침몰과 참사의 원인을 밝히지 못하도록, 수많은 원칙을 어기고 책임을 방기한 ‘높은 사람들’은 온 국민이 보는 앞에서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뻔뻔하게 이야기합니다.

 

▶ 2017년 1월 9일 세월호 참사 1000일째 총리공관 앞에서 피켓팅을 하는 필자.  ⓒ촬영: 김주휘

 

‘세월호 진상규명 촉구’를 위한 서명운동을 하면, 요즘은 노인들도 미안하다면서 서명에 많이 참여해주십니다. 그런데 국민 세금으로 높은 월급을 받으면서 국가 최고의 권한을 가지고 평일 낮에 청와대 관저에서 쉬고 있었다는 한 사람은 자신은 “할 일을 다 했다”며 세월호 참사가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헷갈려합니다. 국민 304명이 한꺼번에 수장된 사건을 그렇게 하찮게 여길 수 있다는 사실이 경악스럽습니다.

 

그 한 사람과 달리, 미수습자 가족들에게는 1000일이 흘러도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입니다. 상상치 못한 참사가 일어났고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는데, 시신을 찾지 못했습니다. 찾아야 합니다. 그 시커멓고 차가운 바다에 사랑하는 이를 내버려두고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함께 분노하고 슬퍼하던 사람들이 바다 속 아홉 명의 미수습자를 잊는 것 같아서, 가족을 영영 만나지 못하게 될까봐서 두렵습니다. 찾아야 합니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천일동안 해온 일

 

그 천일동안 미수습자 가족들과 유가족들은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을 했습니다. 참사 소식을 듣고 달려간 진도 팽목항에서 언론의 왜곡과 조작을 목격하고, 항의하다가 공권력에 포위되어 꼼짝 못하게 갇히고, 사복경찰의 추적과 감시를 받으면서도 진실을 밝히기 위해 전국을 다니며 6백만이 넘는 국민의 서명을 받아냈습니다.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목숨을 걸고 단식농성을 하다 병원에 실려 가셨습니다. 국회 본청과 청운동 주민센터 앞, 정부청사 앞과 광화문 광장에서 혹한과 폭염, 장대비를 온몸으로 견뎌내며 노숙농성을 했습니다. 20일 동안 안산에서 팽목까지 도보행진을 했습니다. 돈으로 능욕하는 정부에 항의하며 삭발식을 했습니다. 팽목에서 광화문까지 111일 동안 1500리 거리를 세월호 모형을 끌고 삼보일배를 했습니다.

 

▶ 2017년 1월 4,5일 성미산마을극장 <그와 그녀의 옷장> 공연 포스터. 세월호 가족극단 '노란리본'의 엄마-배우들이 출연했다.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언론에서 외면하는 소식들을 직접 전했고, 언론에서 관심 갖지 않는 진실들을 카메라로 기록하고 방송했습니다.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위해 동거차도 산꼭대기에서 야영하며 인양 작업을 감시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12월 31일에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나온 시민들에게 4160그릇의 카레컵밥을 만들어주셨습니다.

 

이뿐 아닙니다. 사회의 여러 다른 투쟁 현장에 응원을 가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꽃누르미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정성스럽게 만든 물건을 팔아 더 어려운 이웃들을 돌보았습니다. 이 사회의 약자들과 연대하며 합창을 하고, 이제는 연극 공연을 통해 부정의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힘과 위로를 전하는 역할까지 하고 계십니다.

 

저는 솔직히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국가가 제 역할을 못해서(안 해서) 억울하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었는데, 정치인들과 언론에 의해 모욕을 받았는데, 공권력과 양심도 없는 사람들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든 일들을 다 해내야 하는지 속상했습니다. 촛불집회에서 유가족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행진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정말이지, 유가족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삶을 돌보는 것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세월호 희생자 어머니들의 공연을 보고서 조금 달리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노란리본 극단이 무대에서 전한 말 “감사하다”

 

지난 4일과 5일에 세월호 가족극단 ‘노란리본’이 오세혁 작가의 코믹 옴니버스극 <그와 그녀의 옷장> 공연 차 성미산 마을극장에 왔습니다. 다른 곳에서도 공연 소식을 들었지만, 어머니들이 코믹 연극을 하는 것을 볼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수요일에는 망원역 세월호 피켓팅을 평소보다 일찍 시작해서 마치고, 부랴부랴 마을극장으로 향했습니다. 자리에 앉아서도 긴장을 풀 수 없었는데, 저의 예상과는 달리 무대 위에 선 엄마-배우들이 이끄는 대로 웃고 울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 역시도 유가족들을 2014년 4월 16일에 고정시켜놓았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연극에 출연한 일곱 분들은 이 세상에 어떤 목소리를 어떻게 내야 하는지 분명히 알고 있는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객석에 고스란히 전해주었습니다. 제가 거리에서 뵙게 되는 유가족들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엉망인지 먼저 경험하고 각성한 ‘선배’로서 ‘이제 더 이상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다짐을 실천하고 계시는 분들입니다. 하지만 언론이 보여주는 ‘울부짖는 유가족’의 모습을 더 자주 접하게 되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내가 직접 경험한 모습보다도 피해자 프레임 속 유가족의 모습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오세혁 작가의 코믹 옴니버스극 <그와 그녀의 옷장> 공연 중.  ⓒ촬영: 성문협

 

연극이 끝난 후 무대 인사에서 온몸으로 이야기하셨던 엄마들의 메시지를 일부 전합니다.

 

“우리 아들을 제가 10년 만에 낳았어요. 저를 엄마로 만들어준 아이를 끝까지 못 지키고 떠나보냈는데… 참사 전에는 살림만 하는 사람이었어요. 이렇게 밖으로 나돌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게 되게 막 부끄럽고, 말도 안 나왔어요. 진상규명하는 거며, 밖에 활동하는 거며, 저 혼자서는 이 자리까지 못 왔을 거 같아요. 우리가 앞으로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 죽기 전까지 이게 밝혀질지, 아니면 그걸 못보고 갈지 모르겠지만, 항상 함께 해주시고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동행해주시는 분들 모두 감사드립니다. 정말 훌륭하시고 대단하신 분들은 저희가 아니라 여러분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수인엄마

 

“지금 제 현주소가 어딜까 생각을 해봤어요. 그랬더니 잔혹한 동화 속에서 끝까지 살아남아야 되는 가장 연약한 무리가 세월호 유가족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우리의 가장 큰 사명은 끝까지 살아남아서 결과를 봐야 된다는 것이에요. 그게 여러분들을 통해서, 그리고 많은 여러 생각지도 않은 일들을 통해서 빨라질 것 같기도 해요. 여기 무대에 서기까지 참 엄마아빠들이 많은 고민도 했었고, 힘든 일들도 굉장히 많았거든요. 근데 지금처럼 매번 공연을 하면 마지막에 이렇게 서서 얘기를 할 때는 ‘아,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들 끝까지 버틸 겁니다. 그리고 저희가 꼭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동혁 엄마

 

“제가 416 이전에는 정말 유머도 많고, 재미있게 살았던 사람이에요, 다들 그렇겠지만. 근데 416 이후로는 자식을 못 지켰다는 그 죄책감 때문에 사람들을 피하게 되고 숨게 되고 가까운 거리도 걸어서는 못가고, 그러던 찰나에 주변 사람들이, 지금 여기 앉아계신 분들이 손을 내밀어 주시고, ‘진실을 꼭 밝혀야 하지 않냐’고 같이 손 내밀어 주시고, 지금까지 와주셨기 때문에 천일 가까이 되는 동안 저희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 얼마나 더 버텨야 될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엄마이기 때문에 절대 포기할 수 없거든요. 그리고 지금 남아있는 아이들도 지켜야 되잖아요. 저희는 이 사회의 부정부패를 정말 뿌리를 뽑고 싶습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너무너무 밝히고 싶습니다. 저희 가는 길에 지금처럼 쭉 손잡아주시고 보듬어주시면 진실은 꼭 밝혀질 것이라고 믿고요. 그때까지 건강하시고, 끝까지 같이 가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정말 너무 가슴 깊이 감사드립니다!” -예진 엄마

 

수인 엄마도, 동혁 엄마도, 예진 엄마도, 영만 엄마도, 동수 엄마도, 애진 엄마도, 주현 엄마도 모두 객석을 향해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진심으로 말하고 계셨습니다. 그 말씀들을 들으며, 세월호 유가족은 우리가 미안해하고 마음 아파할 분들이 아니라, 우리의 안전과 행복을 위해 함께 손잡고 가는 ‘동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그와 그녀의 옷장> 상연 후. 세월호 가족극단 노란리본과 관객들이 함께.  ⓒ촬영: 성문협

 

세월호에 응축된 대한민국의 적폐 청산을 소망하며

 

세월호 참사 1000일이 지났습니다. 저는 유가족들이 견디고, 싸우고, 쌓아온 1000일을 존중하고 또 존경합니다. 이제는 유가족의 싸움에 기대면서 ‘미안하다’, ‘잊지 않겠다’고 하지 말고 세월호 참사가 우리의 일이라는 것을 알고, 더 큰 목소리로 우리의 알 권리와 안전을 보장받을 권리를 주장하면 좋겠습니다.

 

인양에도 더욱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 미수습자 가족들이 어서 가족들을 찾아서 진실을 위해 함께 싸울 수 있도록 응원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유가족과는 또 다른 끔찍한 진실들을 낱낱이 경험해왔을 미수습자 가족들이 고립되지 않길 바랍니다.

 

1000일 동안 서로 다른 삶을 살아온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과 유가족, 그리고 단지 운이 좋아서 희생자나 희생자 가족이 되지 않은 개인들이 앞으로 1000일 후에는 2014년 4월 16일에 응축되어 드러난 대한민국의 적폐들을 청산하고, 각자의 평온한 일상을 누리고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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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1/10 [20:57]  최종편집: ⓒ www.ildaro.com
 
물고기 17/01/11 [21:34] 수정 삭제  
  세월호는 구조되지 못한 죽음 이후에도 의문사도 많습니다. 살아남는다 라는 말이 예사롭게 들리지 않고, 정말 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굳게 들어요. 이런 공연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기회가 된다면 꼭 보고 싶네요.
독자 17/01/12 [16:48] 수정 삭제  
  연재 잘 보고 있어요~
trust 17/01/13 [00:09] 수정 삭제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유가족들 목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오는 상상을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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