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위안부’ 국가 손배소송의 네 가지 쟁점

기지촌 성매매 문제 국가 책임 인정될까…선고공판 앞둬

나랑 | 기사입력 2017/01/18 [12:32]

미군 ‘위안부’ 국가 손배소송의 네 가지 쟁점

기지촌 성매매 문제 국가 책임 인정될까…선고공판 앞둬

나랑 | 입력 : 2017/01/18 [12:32]

미군 기지촌 ‘위안부’들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1월 20일 선고 공판을 앞두고 있다. 2014년 6월 25일에 소송이 제기된 지 2년 반만의 일이다.

 

122명의 미군 기지촌 ‘위안부’들은 “국가가 직접 기지촌을 형성하고 ‘기지촌 정화대책’ 등을 통해 기지촌의 정비, 발전을 주도했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기지촌 여성들에게 성매매를 권유하고 조장했다”고 주장해 왔다. (관련 기사: “국가가 미군 상대 성매매 조장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성병 관리를 명목으로 여성들에게 강제로 성병 검진과 치료를 받게 하였고, 마치 수용소 같은 성병관리소에 감금하는 등 기지촌 여성들의 인권을 침해해 왔다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이다. 또한 정부는 애국교육을 실시해 ‘외화를 벌어들이는 애국자’라고 여성들을 치켜세우며 미군 상대 성매매를 권유, 조장하기도 했다는 것.

 

국가의 이러한 행위들은 당시 성매매를 금지하고 있던 국내법, 국제법 등을 위반한 불법 행위이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 침해와 정신적 고통 등에 대해 한 사람 당 최소 1천만 원의 위자료를 지급할 것을 원고들은 요구하고 있다.

 

대부분 60~70대인 고령의 원고들은 매번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직접 공판을 방청했다. 그러나 소송이 제기된 후 두 명의 원고는 이미 운명을 달리했다.

 

지난 해 11월 18일 서울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는 원고 대리인 김진 변호사(법무법인 지향)가 최후 변론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이번 소송의 네 가지 법적 쟁점을 정리해 봤다.

 

①위험 관리했을 뿐 vs 국내/국제법 어긴 불법 자행

 

▶ 1977년 5월 2일,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 서명한 “기지촌 정화대책” 문건 (유승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3년 공개 자료)

피고 대한민국 정부 측은 불법 행위를 자행했다는 원고 측의 제기에 대해서 “여성들의 생계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서 당시 만연하던 성매매를 국가가 일정범위 내에서 묵인했다. 그리고 성매매로 인해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위험, 특히 성병을 국가가 관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병 관리 경우, 성병 피해의 큰 파장을 고려해서 국가가 예방 조치와 교육을 실시했으며, 기지촌 여성이 성병에 감염되었을 때 강제로 치료했던 행위 등은 전염병예방법(1954)에 의거해 법적 근거를 갖고 시행됐다는 것이다. 이렇듯 기지촌 성매매를 ‘묵인’하고 ‘위험을 관리’한 국가의 행위가 배상책임을 져야 하는 불법 행위로 간주될 수는 없다는 것이 피고 측 주장이다.

 

그러나 원고 측은 당시의 국내법, 국제법을 모두 어긴 명백한 불법 행위라고 주장한다. 헌법은 국가의 의무로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규정하고 있다. 또한 현행 성매매방지법은 성매매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부여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는 기지촌 ‘위안부’들을 보호하기는커녕 기지촌을 형성하고 성매매를 조장해 이들을 위험으로 내몰았다는 것.

 

1961년에 제정된 ‘윤락행위 등 방지법’(2004년 폐지)과 2004년 제정된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은 성매매를 권유, 알선하거나 장소를 제공하는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성매매가 위법이라면, 기지촌에서 국가가 성매매를 조장하고 권유한 것은 국가의 명백한 법령 위반인 셈이다.

 

이는 또한 국제조약을 위반한 것이기도 하다. 1962년에 발효된 ‘인신매매 금지 및 타인의 매춘 행위에 관한 착취 금지에 대한 협약’은 “성매매를 목적으로 타인을 합의 여부에도 불구하고 소개하거나 유혹 또는 유괴하는 자, 합의 여부에도 불구하고 타인의 성매매 행위를 착취하는 자를 처벌해야 한다”(제 1조)고 적시하고 있다. 또한 “성매매 장소를 소유하거나 경영하고 그에 필요한 재정을 의식적으로 제고하거나 또는 제공하는 데 관여한 자, 타인의 성매매를 목적으로 가옥이나 장소 또는 그 일부를 대차 또는 제공한 자를 처벌해야 한다”(제 2조)고 규정하고 있다.

 

원고 측은 이 모든 조항이 대한민국 정부가 저지른 위법 행위에 해당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②개인의 선택이지 국가 책임 아냐 vs 국민보호 의무 방기

 

피고 대한민국 측은 “원고들이 ‘자발적으로’ 기지촌에 들어가서 성매매를 했는데 왜 국가에 배상 책임을 묻는가”라고 질문한다.

 

그러나 원고 측은 ‘자발성’이라는 개념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임의로 개시한 행위라고 하더라도 언제라도 자유로이 그 행위를 중지하고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계속된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규범적으로 자발적 행위라 볼 수 없다”는 것. 이는 현행법상 성매매가 불법임에도, 성매매 피해자를 처벌하지 않고 성매매를 전제로 한 선불금 채권을 무효로 규정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원고 대리인 김진 변호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매매라는 행위에 내재된 위험성, 즉 인권이 침해되고 개인의 존엄성 훼손될 것이라는 것을 국가는 충분히 인식할 수 있었고, 윤락행위방지법이나 국제협약 등 관계법령에 따라 보호 조치를 취해야 했음에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한민국 정부는 기지촌 성매매를 권유하고 조장했으며, 이를 활용하면서까지 한-미 관계를 유지하면서 원고들이 벌어들이는 달러 수입으로 인한 이익을 향유했다.”

 

김진 변호사는 “국가의 이러한 행위가 과연 사회 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것인가”라고 일갈했다.

 

▶ 몽키하우스라고 불린 성병관리소. 1970년대 초부터 운영됐으며 수용자의 다수가 기지촌 여성들이었다. ⓒ두레방

 

또한 스스로 위험을 초래한 국민에 대해서도 국가에게는 보호 의무가 있다는 것이 원고 측의 주장이다. 누군가 실수로 불을 냈다 하더라도 소방관들이 와서 불을 끄고 그 사람을 보호하는 것이 그 예다. 원고 측은 “만약 국가가 과실로 국민을 보호할 의무를 위반했다면 국가는 과실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원고들이 스스로 위험을 초래한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성매매 피해자를 방지하고 피해자를 보호할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국가 배상 책임을 부정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③소멸 시효 지났다 vs 소멸 시효 주장은 ‘권리 남용’

 

세 번째는 소멸 시효를 둘러싼 논쟁이다.

 

대한민국 측은 “원고들은 주로 1950년대부터 1970~1980년대까지 국가의 행위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20~30년 전 얘기다. 각종 관공서나 관할청 등에 있는 관련 문서들의 보존 기간(길어야 10년)이 지나 (증거로 삼을 만한) 문서가 대부분 폐기됐다. 소멸 시효 법리가 적용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고 측은 정부의 ‘소멸 시효 항변’이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고 얘기한다.

 

우선, 국가에 의한 피해가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규모는 축소되었고 방식은 달라졌을지라도 기지촌은 여전히 남아있으며, 대한민국의 불법 행위로 인한 원고들의 정신적 피해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불어 “‘소멸 시효 항변’은 권리 남용”이라는 것이 원고 측 주장이다. 국민 보호 의무를 위반하고 대규모로, 조직적으로 장기간 불법 행위를 해 온 국가가 이제 와서 시효 항변을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 성범죄 피해자의 특성-피해를 인지하거나 자신의 피해를 말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소멸 시효를 주장하는 태도 또한 권리 남용이라는 것이다.

 

김진 변호사는 이어서 “소멸 시효 기산점(계산을 시작하는 일정한 시점)의 미(未)도래에 관한 판례가 이 사건에 적용된다”고 말했다. “청구권자가 권리의 발생 여부를 객관적으로 알기 어려운 상황에 있고 과실 없이 이를 알지 못하는 경우에는, ‘판결의 확정’처럼 객관적으로 청구권이 발생한 사실을 알게 될 때를 그 시점으로 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례가 있다”는 설명이다. 원고 측은 “이 사건 역시 이번 소송의 ‘판결’에 의해서 비로소 소멸 시효가 기산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④객관적 증거 없다 vs 집단 진술의 신빙성과 가치 인정돼

 

▶ 미군 ‘위안부’ 기지촌 여성의 첫번째 증언록 <미군 위안부 기지촌의 숨겨진 진실>(새움터 기획, 김현선 엮음, 김정자 증언, 2013년 개정판, 한울) 

피고 대한민국은 소송이 진행되는 내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는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고 얘기해 왔다. “본인들 진술 외에 원고들의 구체적인 기지촌 내에서의 생활이 어떠했는지, 국가의 불법행위 책임에 대해 원고들 개개인이 어떻게 관여돼 있는지 등을 입증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것.

 

그러나 김진 변호사는 120명 기지촌 여성들의 진술에는 신빙성과 객관적인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이들의 진술이 매우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며 진술 내용이 대부분 서로 일치하고, 공문서 등 객관적인 내용과도 일치한다는 점, 이들이 사회적 낙인을 감수하고 허위진술 할 이유가 없었다는 점, 자신이 기지촌 ‘위안부’였다는 걸 밝힘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추산하기 어려운 반면 사회적 평가 저하, 가정불화 등 불이익은 막대할 수 있음에도 진술을 했다는 점 등이 그 이유다.

 

“원고들의 삶은 개인적인 것임에도 당시 사회의 구조적 모습을 반영한 매우 유사한 양태로 진술서에 서술되어 있다. 이러한 원고들의 경험이야말로 바로 피고 대한민국이 기지촌 성매매를 묵인, 방조, 조장한 결과가 다수의 피해자들에게 동일하고 유사한 피해를 남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증거다.”

 

김진 변호사는 “원고들의 진술은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자신의 인생 모든 것을 털어놓은 매우 어려운 결단이었다”고 밝히며 “다른 증거보다도 원고들의 진술서를 면밀히 검토해 달라”고 재판부에 호소했다.

 

이상 네 가지 법적 쟁점 이외에도 “개별공무원의 구체적 위법 행위를 특정해야 한다”는 피고 측과, “이 사건은 개별 공무원의 위법 행위에 대해 국가 책임을 묻는 것에 한정되지 않으며 국가 공무원의 위법한 정책 기획과 수립, 시행 과정 모두를 포괄하는 국가의 총체적 불법행위로 봐야 한다”는 원고 측의 주장이 맞서고 있다.

 

선고 공판은 1월 20일 오후 두 시 서울 중앙지방법원 466호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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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2017/01/21 [03:19] 수정 | 삭제
  • 기사 감사합니다.

    어제 "...국가 권력기관의 국민에 대한 불법 수용 등 가혹행위는 결코 일어나서는 안될 위법행위일 뿐만 아니라 다시 되풀이돼서도 안 될 중대한 인권침해... ...국제적으로도 이같은 중대한 반인권적 행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 적용을 배제해야 한다는 논의가 지속..." 등으로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일부 인정하여 57명에 대해 500만원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네요.
    일단 당사자분들의 '집단 진술의 객관적 신빙성'이 일부 인정된 성과로 봐야하겠습니다만,

    "...성병 감염자들을 격리수용해야한다고 규정한 옛 전염병예방법 시행규칙이 시행되기 이전에 격리수용된 여성들에 대해서만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점과
    "...국가가 기지촌을 설치하고, 환경개선정책 등을 시행한 행위가 불법이라고 인정하기 부족... ...개인의 성매매업 종사를 강요하거나 촉진·고양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등 개념적인 문제들을 다시금 바로잡아야겠습니다.

    피해당사자분들 힘내세요~ 많은 분들 수고많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시작입니다.
  • 바로 2017/01/18 [20:53] 수정 | 삭제
  • 소송이 시작된 건 2014년 6월 25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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