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미워하는 나의 가족에게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케이 | 기사입력 2017/01/26 [07:11]

사랑하고 미워하는 나의 가족에게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케이 | 입력 : 2017/01/26 [07:11]

죽음을 앞둔 작가 루이(가스파르 울리엘)가 12년 만에 가족들을 찾아간다. 루이는 집에서 엄마(나탈리 베이)와 낯선 여동생 쉬잔(레아 세이두), 동생을 환영하는 분위기가 영 마음에 들지 않는 형 앙투완(뱅상 카셀), 그리고 처음 보는 형수(마리옹 꼬띠야르)를 만난다. 십 수 년 만에 만난 가족들은 그간의 거리감을 메우기라도 하겠다는 듯 루이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단지 세상의 끝>

 

책임, 의무, 약속 - 가족의 언어들

 

두서없이 오가는 대화 속에서 루이는 ‘아들’이자 ‘남동생’이자 ‘오빠’로 머문다. 쉬잔은 떠나버린 루이를 동경하면서도, 루이가 떠난 것은 모두에게 실수였다고 말한다. 엄마는 루이에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 약속을 기대한다. 루이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형 앙투완은 사소한 것에도 무시당한다고 느끼며 사사건건 불평을 쏟아낸다.

 

엄마, 여동생, 형이 루이와 나누는 대화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만 할 뿐, 아무도 루이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점이다. 오늘 이후 다시 만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아들에게 엄마는 그간의 회한을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여동생은 동경과 원망이라는 복합적인 감정을 드러내기 바빠 오빠의 안부를 살필 겨를이 없다. “듣는 것도 말하는 것도 싫다”는 형은 듣지 않기 위해서 말한다. 가족들은 12년 만에 만난 루이의 안부보다 그 세월동안 쌓인 자신의 이야기를 해결하는 것에 관심이 있다.

 

대화는 상대방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루이를 받아들일 생각도, 의지도 없는 가족들은 루이를 탓하거나, 감정을 고백하거나, 벌컥 화를 낼 수는 있어도 그와 대화를 할 수는 없다. 루이의 표정을 살피는 것은 그를 처음 만난 형수 카트린 뿐이다. 루이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는 카트린은 중립적인 입장에서 그를 본다. 그녀는 혈색이 좋지 않고 피로해 보이는 루이의 얼굴에서 죽음의 기운을 읽어낸다.

 

▶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단지 세상의 끝>

 

다시 맞닥뜨리게 된 ‘집’의 의미

 

‘집은 항구가 아니야’, ‘집은 마음을 다치는 곳’ 루이가 집으로 향하는 길에 흐르던 음악은 그가 거리를 두었지만 결국 다시 맞닥뜨리게 된 ‘집’의 의미를 직접적인 방식으로 드러낸다. 루이의 가족들은 ‘가족’이 12년의 세월을 무색하게 만들만큼 단단하고 촘촘한 배경이기를 기대하지만 그럴 리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달뜬 분위기 속에서도 서늘한 긴장이 오간다. 사소한 대화에서도 미움의 소재가 생겨난다.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단지 세상의 끝>은 세월을 건너 다시 마주한 루이와 가족들의 묵은 감정을 클로즈업의 깊은 응시로 그려낸다. 화면을 가득 메운 얼굴과 서로의 감정을 찌르며 쏟아지는 말들은 스릴러 영화를 보는듯한 긴장감과 압박감을 자아낸다.

 

루이의 어린 시절이 플래시백으로 묘사되는 것 외에 이 가족의 역사에 대한 설명은 없다. 아이들의 아빠는 어디로 갔는지, 20년 동안 살던 판잣집에서 어떻게 벗어났는지, 루이는 왜 떠났는지. 자비에 돌란 감독은 12년 만에 마주하는 얼굴과 말을 통해 ‘세상의 끝’과 같은 지난한 가족 이야기를 건넨다.

 

▶ 자비에 돌란 감독의 영화 <단지 세상의 끝>

 

환대와 적대가 공존하는 혼란의 공간 속에서 루이가 집에 온 목적은 공중 분해되어 버린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나라는 환상을 보여주기 위해” 집으로 향했던 루이는 집 안에 갇혀서 머리를 찧어대는 새를 뒤로 하고 다시 집을 떠난다. 무덤을 걸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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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치 2017/01/28 [12:50] 수정 | 삭제
  • 그래도 이 영화의 가족은 한국처럼 제사는 없으니 여성들을 덜 착취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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