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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을 보며 아궁이에 불을 때다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겨울 집의 즐거움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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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겨울의 맛, 장작불때기

 

▶ 초승달 뜬 밤  ⓒ김혜련

겨울이다. 남산 집에서 겨울의 맛을 이야기 한다면 단연 ‘초승달 보며 장작불때기’다.

 

음력 초사흘부터 눈에 띄기 시작하는 달은 하루에 50분 정도씩 늦게 떠오른다. 초승달은 저녁 여섯시쯤 떠서(실은 지는 달이다. 낮 동안은 보이지 않다가 어두워지면 지는 달이 보이는 거다) 잠시 머무르다가 일곱 시쯤이나 되면 서쪽으로 넘어가 버리고 만다. 어느 날은 반가운 달이 떠서 ‘얼른 들어가 따뜻한 옷 입고 나와서 실컷 봐야지’ 하고 스웨터나 머플러를 두르고 나오면 그 사이 살짝 서산을 넘어가 버린다. 못내 아쉬운 마음만 남는다.

 

그래서 언젠가부터는 초승달이 뜨는 시간에 맞추어 장작불을 때기 시작했다. 아궁이가 있는 뒷마당은 서쪽이다. 저녁 여섯 시 쯤 불을 때면, 초승달과 눈 맞추며 장작불을 때는 황홀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추운 날은 하늘도 꽁꽁 어는지 달은 마치 빙판에 뜬 것처럼 투명하다. 보는 마음에도 청량함이 절로 인다. 아궁이에서 활활 타는 장작불로 따뜻해진 아랫도리에, 머리는 싸늘한 하늘을 이고 있는 그 자세도 마음에 든다. 남산의 낮고 우아한 곡선 위에 뜬, 보름달을 머금은 초승달의 아름다운 자태를 흠모하며 제 풀에 신이 난 강아지마냥 어두운 마당을 빙글빙글 도는 것도 좋다.

 

오늘 초승달은 놋대야에 담아 뽀드득 씻어놓은 듯 유난히 또랑또랑하다. 샛별이 달마중 하듯 돋아 있다. 남산의 뒤쪽으로 달은 기울기 시작한다. 하나, 둘,...열 셋… 미처 스물을 세기도 전에 달은 산 뒤로 모습을 감추고 산 정산엔 주황빛 오로라가 잠시 머문다.

 

불의 향연, 솔갈비 소리와 들깻단 냄새

 

불을 붙일 때는 불쏘시개가 있어야 한다. 장작을 구하는 것보다 불쏘시개를 마련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렵다. 아궁이에 장작 불 지피기는 좋은 불쏘시개가 결정적이다. 가장 흔한 불쏘시개는 신문지 등 종이류지만, 정말 좋은 불쏘시개는 따로 있다. ‘솔갈비’라고 부르는, 마른 소나무 잎을 모아서 불쏘시개로 쓰는 것은 예전부터 흔히 썼던 방법이다. 들깨를 털고 들판에 던져두거나 묶어둔, 마른 들깨 줄기로 불쏘시개를 해도 좋다.

 

솔갈비에 불을 붙이면 ‘사사삭’거리는 소리와 함께 솔 향이 번진다. 들깨 줄기는 ‘타다닥’ 거리는 소리와 함께 들깨향이 난다. 신문지나 종이로 불을 붙일 때에는 맛 볼 수 없는 소리와 향기의 호사를 누리게 된다.

 

“사르르 사사삭, 사르륵 사르르…”
“타닥 타다닥, 타다다닥 타닥…”

겨울 밤 벌어지는 불의 향연, 소리와 냄새의 향연.

 

▶ 아궁이 불  ⓒ김혜련

 

불쏘시개 구하러 들로 산으로 다니는 것도 유쾌한 일이다. 남의 밭에 쌓아 놓은 들깻단을 눈여겨보다가 주인이 가져가라고 하면 그날은 왠지 횡재를 한 것 같다. 한껏 기분이 좋아져 들깻단을 들어 나른다. 온몸에 마른 들깨 검불이 붙지만 동시에 온몸에서 들깨 향이 난다.

 

솔갈비는 뒷밭 입구에 서 있는 네 그루의 소나무가 떨어뜨리는 것만 모아도 제법 된다. 가끔씩은 산에서 긁어오기도 한다. 솔갈비가 비옥한 흙이 되는 걸 알기에 함부로 긁지는 않는다. 어느 날 석양녘에 불쏘시개가 필요해, 집 뒤쪽 산에서 솔갈비를 쌀부대에 담아 지고 내려오다가 산기슭에 사시는 나이 많은 비구니 스님을 만났다.

 

“에구, 이제 완전 산사람이 됐구먼, 보기 좋네, 좋아~”

 

나는 괜히 우쭐해져 입만 헤 벌리고 웃는다. 집에 와, 마루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니 몰골이 말이 아니다. 긴 장화에 낡은 바지, 허름한 점퍼, 헝클어진 머리칼 여기저기 붙은 마른 솔잎들…….

 

가장 격렬하게 타오를 때 마치 멈춘 듯한 불길

 

겨울 내내 장작불을 때는 일은 일회성 체험놀이가 아니라서, 그리 손쉽고 재미나기만 한 일은 아니다. 추운 날 아궁이에 불을 때러 나가려면 몸이 먼저 반응한다. 엉덩이가 방바닥에 붙어서 미적미적 떨어지지 않는다. 두꺼운 잠바를 챙겨 입고,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는 그 짧은 순간, 온갖 유혹들이 스멀거리며 올라온다. “오늘은 그냥 보일러 틀고 자, 날이 너무 춥잖아.” “눈 오잖아” “비 오잖아” “몸이 으슬으슬해.” “아궁이가 너무 추운 곳에 있어…” 불을 안 땔 이유는 하루에도 십여 가지가 넘는다.

 

거미줄처럼 엉겨 붙는 유혹들을 겨우 떼어내고 아궁이 앞에 앉으면, 또 다른 시련이 떡 버티고 있다. 불을 붙이는 일이다. 잘 마른, 좋은 나무와 불쏘시개가 준비되어 있다면 불 때기가 수월하지만 대부분은 그런 상황이 못 된다.

 

나무들은 종류나 마른 상태에 따라 불붙이기가 쉽거나 어렵고, 불땀(땔나무를 땔 때, 불기운의 세고 약한 정도)도 다르다. 겉만 마르고 속이 덜 마른 나무는 연기만 나면서 불이 잘 안 붙는다. 오래되어 속이 퍼석해진 나무 또한 불땀이 없다. 그럴 땐 불을 붙이는 게 아니라 거의 불과 싸운다. 아궁이 안을 들여다보느라 엎드린 목덜미는 뻣뻣해져오고, 매운 연기로 눈은 따갑고, 얼굴과 팔에 그을음이 묻고, 뒤로 내밀어진 엉덩이는 차갑게 얼어온다.

 

▶ 장작  ⓒ김혜련

 

불은 붙이면 그저 붙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좋은 불을 얻으려면 ‘나무의 결’과 ‘불의 결’을 알아야 했다. 우선 잘 마른 나무여야 한다. 그렇다고 너무 마르면 불땀이 없어 좋지 않다. 불쏘시개가 잘 말라있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불에 바람의 통로를 만들어 주는 일 또한 중요하다. 나무를 얼기설기 잘 쌓아 적절한 산소가 공급되도록 해줘야 한다. 바람의 통로를 만든다고 함부로 들쑤시거나 하면, 붙던 불은 꺼져버리기 일쑤다. 이 모든 과정이 적절하게 맞아야 좋은 불이 생긴다. 여간 까다롭고 귀찮은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불이 잘 붙고 나면 상황은 달라진다. 불길이 아름답기로는 참나무 장작만 한 게 없다. 투명하고 맑은 빛이다. 불이 무르익으면 잘 익은 홍시나, 역광에 비친 단풍 빛 같고 불길은 마치 정지된 듯하다. 아주 맹렬하게 타는데, 고요하다, ‘팽이의 잠’처럼.

 

어릴 때 아이들은 팽이를 치며 놀았다. 평평한 마당에서, 일정한 속도로 팽이의 가운데를 정확하게 쳐 속도를 높여가면, 팽이는 어느 순간 그 돎의 절정에 이른다. 그 때 팽이는 멈춘 듯 고요하다. “잔다! 잔다! 잔다!” 소리치던 아이들도 팽이의 그 맹렬한 고요 속으로 함께 빨려들어 적막해졌다. 이 멈춘, 한 순간이 팽이도, 팽이 치는 아이들에게도 가장 고양된 순간이었다. 가장 맹렬한 속도로 도는 순간, 팽이는 잠을 자는 듯하다! 어린 눈에 경이로웠다. 불길도 그렇다. 가장 격렬하게 타오를 때 마치 멈춘 듯 고요하다.

 

아궁이 불에는 까마득한 옛날의 기억이 보존되어 있다. 아궁이 불 속에서 요정이나 악마, 악령의 모습을 한 다른 세계의 존재가 튀어나오는 신화나 전설은 세계 많은 지역에 분포되어 있다. 아궁이는 다른 세상과의 매개가 되는 신비한 장소로 여겨진 것이다.

 

불이 온전히 무르익었을 때, 아궁이는 고온(高溫)의 고요한 세계다. 그 때 아궁이 안은 위엄으로 가득하다. 감히 범접할 수 없는 굳건한 한 세계가 거기에 있다. 그 불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으면 이 세상의 완전성이나 초월성에 대한 느낌이 저절로 일어난다.

 

도시의 부엌에선 자취를 감춘 ‘불의 몸’

 

불의 직접성을 잃어버린 내게, 아궁이에 불 때기는 삶에 몸을 직접 부비는 경험이다. 어린 시절 잠시 아궁이에 불을 때는 시골에서 살았지만 그건 내 경험이 아니었다. 그 후로 불은 연탄으로, 석유로, 가스불로 진화했다. 이제는 ‘인덕션’이라는, 불이라고 부르기 어색한 불, 불의 기호만 갖추고 있는 세련된 불이 도시의 부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장작불이 구체적인 불의 몸이 있다면 전기로 만들어지는 불은 ‘몸이 없는 불’이다. 장작불은 그 몸의 아름다움으로 가슴을 울렁거리게 하지만 가스나 전기는 아무 느낌이 없다. 오직 뜨거움(열기)과 밝음(빛)이 있을 뿐이다. 불의 극단적 순수를 보는 것 같다. 가장 극단적 순수는 핵에너지일 게다.

 

물질성이 완전히 제거된 것은 어떤 감각도 주지 않는다. 다만 편리하기만 할 뿐이다. 몸 없는 불은 위험도 느낄 수 없다. 그러니 불을 땔 때의 어떤 의식(儀式)도 필요치 않다. ‘몸 없는 불’에는 행위의 경건함이 불필요하다. 그저 ‘톡’ 켜고 ‘톡’ 끄면 된다.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건 얼마나 편한가? 그런데, 몸의 감각을 잃어버린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아궁이 불이 잦아든다

 

겨울 밤, 어두워 가는 마당에 연기 내음이 깔린다. 커피 볶는 향과 콩 삶는 향이 어우러진 것 같기도 하고, 낙엽 태울 때의 매캐하면서도 아련한 냄새 같기도 하다. 세상은 어둠으로 깊어지는데, 그 깊숙한 어느 곳에선가 나오는듯한 원초적인 냄새. 그리움이 아련히 묻어 있는 냄새다.

 

아궁이 불이 잦아든다. 위엄으로 가득했던 한 세계가 사그라진다. 내 몸도 위엄으로 잦아드는 듯 고요하다. 매일 불을 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을 하면서 몸은 나와 세상에 대한 신뢰로 굳은살이 조금씩 붙는다.

 

달은 지고 밤하늘 가득 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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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2/20 [09:37]  최종편집: ⓒ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미영 17/02/21 [16:09] 수정 삭제  
  저도 언젠간 아궁이불을 때고 싶어요.. 아름답네요.. 그 노동도.
이일 17/02/21 [18:24] 수정 삭제  
  글이 너무 아름다워서 찬찬이 곰씹으며 읽었습니다. 팽이의 잠과 불의 몸 - 초월성과 완전성이라는 테마가 아름답게 맞물려서 아껴 가면서 읽게 되었습니다. 도시의 불이 도시의 다른 모든 것들처럼 공업적이고 산업적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오히려 '순수'해진 상태라는 생각은 처음 해 보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17/03/03 [15:34] 수정 삭제  
  `아궁이의 위엄`이라니요. 적절하고도 아름다운 말입니다. 저는 실내난로로 끌어들인 불이라 아궁이의 위엄은 못하지만 난로불이 타오르는 걸 바라보노라면 낼름거리는 불길속에 내가 있는 것 같아 황홀해지곤해요. 글을 읽으며 한동작한동작 제가 직접 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는 순간들은 너무 행복해요. 포대에 솔갈비 잔뜩 넣어 지고가는 샘의 모습이 눈에 선해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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