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누가 좀 말려줘요

외모도 경쟁력? 기꺼이 차 접대 하라?

이현진 | 기사입력 2003/05/01 [00:17]

여성신문 누가 좀 말려줘요

외모도 경쟁력? 기꺼이 차 접대 하라?

이현진 | 입력 : 2003/05/01 [00:17]
요즘 들어 여성신문 지면에는 한 달에 한 번 꼴로 ‘뜨악한’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 명색이 여성주의를 표방한 언론인데 이런 글들로 지면을 채워도 되는 건지 혼란스럽다.

2003년 1월. 여성신문. <외모도 분명 경쟁력이다>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광고카피를 내보냈다가 여성계의 강한 항의를 받고 수정한 회사도 있는데 여성신문에서 이게 무슨 소린가. 이 글의 요지는 ‘이미 외모가 채용 기준의 하나로 인정 받고 있는 만큼 외모가 경쟁력이라는 현실을 회피하지 말고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끔찍한 외모차별의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를 비판하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지금까지 외모중심의 벽을 허물기 위해 노력했던 여성운동은 현실을 회피하는 것이었나.

거기에 덧붙여 아무리 아름다운 외모를 타고 난 사람일지라도 ‘가꾸지 않으면’ 지속될 수 없다면서 외모도 능력과 마찬가지로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어느 정도 개발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죽음을 각오한 성형수술과 다이어트가 횡횡한 이 병적인 사회에서 ‘외모도 후천적인 노력에 의해 개발이 가능하다’는 말을 위로라고 하는가.

2003년 2월. 여성신문. <우리에게 낙태문제는요>

아이들을 지우개로 지우는 장면이 담긴 사진. ‘지우면 싫어요’가 눈에 띈다. 아, 낙태! 낙태! 한동안 여성들의 낙태담론이 뜨거웠다. 콘돔 쓰면 섹스를 못하겠다는 한국남성들 특유의 문화로 인해, 학생들 섹스할까봐 피임교육 못 시키게 하는 학교와 부모의 의식수준 때문에, 강간인지 성관계인지 구분 못하는 남성들의 폭력 때문에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원치 않는 임신’을 하고 있단 말인가.

여성들이 낙태를 하기까지의 상황, 수술대 위에서의 경험, 그리고 그 후유증. 그런 공포와 상처는 또 고스란히 여성의 몫으로 남는다. 낙태를 반대한다는 사람들은 고결하게 ‘도덕’과 ‘생명의 존엄성’을 외치고 나오면서 여성을 ‘살인자’로 몰아댄다. 낙태로 인해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또한 비난을 한 몸에 받아야 하는 여성들. 최근에야 비로소 여성들은 묻어두었던 그 고통에 대해, 낙태의 경험에 대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런 시점에서 여성신문은 “낙태는 피임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니라 한 생명을 빼앗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낙태를 피임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낙태를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 여성들이 아니면 누구란 말인가. ‘선택’이 주어지지 않는 상황, 그 절벽에서 수술대에 누워야 했던 여성들의 가슴에 ‘살인자’라는 낙인을 찍어야겠는가. 진정 그래야만 하겠는가.

2003년 3월. 여성신문. <‘호주머니 사정’도 평등해야지>

“많은 여성들이 남녀평등을 외치지만 많은 경우 여성들은 ‘남녀평등’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해석하기도 한다.”

마초가 아니고서야 이런 발언하기 쉽지 않은데 근거가 무엇일까. 평소 페미니스트라고 주장하던 선배가 혼수 준비할 땐 한 발 뒤로 물러섰는데, 신랑 쪽이 부담한 결혼비용에 비해 그 선배가 부담한 돈이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필자는 ‘남성과 동등하게 경제 부담을 져야만 당당하게 여성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누가 보면 우리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등한 호주머니’를 가진 줄 알겠다. 우리 사회에서 경제권을 가진 자가 누구인가. 입사도 하늘의 별 따기지만 남성과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을 절반 밖에 못 받는 것이 여성들의 현실인데. 결혼비용을 여성 쪽에서 덜 들여서 고개를 숙였다는 예를 갖다 대면서 평등해지길 원한다면 남성과 동등하게 경제 부담을 져야 한다고?

2003년 4월. 여성신문. <‘커피타기’에 대한 다른 생각>

“많은 여성들이 차 시중 요구에 기분이 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맛있는 차를 내어놓곤 한다.” 이 글도 역시 압권이다. 차 시중을 요구 받는 상황에서 좀더 현명하게 논리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답은 ‘마음먹기에 달렸으니 발상의 전환을 하라’는 것.

4년 넘게 비서 일을 하면서 수백 번의 차 접대를 했고 어떤 때는 “내가 지금 무얼 하러 회사에 왔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는 필자. 그런데 발상을 바꾸었더니 손놀림이며 행동들이 하나같이 반듯해 졌고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접대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노예제가 폐지되기 전 백인들은 ‘너희는 할 줄 아는 게 없으니까 주인 밑에 사는 것이 행복이다’라고 흑인들을 세뇌시켰다지?

여성신문, 아무 글이나 막 싣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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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투더퓨처 2018/10/25 [01:04] 수정 | 삭제
  • 이때는 그나마 정상적으로 사고하는 여성이 있었군요 댓글들은 무겁지만서도...
  • 호로롤 2018/10/24 [22:47] 수정 | 삭제
  • 미래에서 왔습니다.
  • 건의 2003/05/10 [11:46] 수정 | 삭제
  • 독자도 좀 더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게 이러저런한 기사가 있었다, 라고만 하시지말고, 문제가 되는 기사전문을 올려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요.
    저작권(?)상의 문제 때문인가요?
    음.. 그렇다면 기사를 볼 수 있는 곳을 링크시켜주시는것도 방법이 될 텐데...
  • 비판 2003/05/08 [12:58] 수정 | 삭제
  • 여성신문이 왜 존재하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이 마초들 판 치는 세상에.
    게다 마초사회에서 의사마초가 되기도 하는 여성들이 존재하는 판에.
    모든 의견 존중한답시고 여성억압적인 기사를 싣는 것은.
    여성신문의 존재 근거를 부정하는 짓이다.
    누가 무조건 다른 의견을 가진 여성 비판한댔나.
    모든 의견이 소중하지만.
    그 의견이 여성억압적이고.
    그 기사로 말미암아 여성들에 대한 사회전반의 편견이 공고화 된다면
    그것은...편집진이 소통을 통해 올바른 관점을 제시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여성언론의 역할 아닌가.
    관점없는 여성주의가 존재하나.

    (게다 아래 글들 보니1020면이 독자지면도 아니라는데.
    편집진만 독자지면으로 믿었던 건가.)
  • 독자 2003/05/03 [14:24] 수정 | 삭제
  • 여성신문 너무하네요.
    독자투고는 신문 기사에 대한 의견을 받는 오피니언란이죠.
    1020은 여성신문에서 10대랑 20대 여성들의 기사를 싣는 란이잖아요.
    여성신문에서 기자들이 쓰는 기사말고 다른 분들이 쓰는 기사도 상당히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원고 청탁을 받기도 했고요.
    그런데 1020은 모집까지 하잖아요.
    1020에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정식 기자는 아니어도 여성신문의 기사를 쓰는 사람들 아닙니까?
    아무 기사가 실어놓고 1020은 다른 신문의 독자투고란과 같다고 변명합니까?
    여성신문 독자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겠어요.
    해도 너무하네요.
    그럼 다른 외고들 받은 지면들도 다 독자투고니까 어떤 글이 실려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인지요.
    여성신문 지면의 상당수가 기자들 외에 다른 분들이 쓴 기사들인데 거기에 대해선 어떤 기사든 책임지지 않겠다는 것인지요.
  • 메텔 2003/05/02 [17:32] 수정 | 삭제
  • 저는 예전에 여성신문 1020면에 글을 썼던 사람입니다.
    1020면도 엄연히 여성신문의 지면이고 오히려 독자들에게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해서 저는 자긍심을 가지고 글을 썼습니다.
    담당기자님은 1020면에 아무 기사나 실을 수는 없다고 하셨습니다. 1020면도 여성신문의 성격을 반영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문제가 있는 기사에 대해서는 코멘트도 많이 해주셨고 반여성적인 기사는 여성신문에 싣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여성신문 1020면은 진짜 심한 글들이 실리고 있네요..
    일다에서 거기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여성신문 독자들을 위해 좋은 일이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지금 말씀하시는 건 뭡니까. 사설도 아니고 젊은 여자들이 끄적이는 것인데 왜 여성신문을 비판하느냐는 식이네요.
    젊은 여자들이 쓰는 글은 중요하지 않슴니까? 1020에 글 쓰는 사람들은 찌끄러기입니까?
    잠시나마 여성신문과 함께 했다고 생각했던 것이 부끄럽습니다.
    여성신문은 누가 말려줄 수 없는 것 같네요.
    앞으로도 황당한 글들 계속 실으세요.
  • 꿋꿋 2003/05/02 [14:04] 수정 | 삭제
  • 여성신문 독자이고 여성신문 기자들이 다시 모여 일다라는 웹진을 창간했다고 반가운 마음에 여기저기 들러보았습니다.
    그러다 '헉' 깜짝놀라 들여다 보니 위의 기사가 실렸더라구요.

    특히 차접대에 관련해 이번 여성신문 기사(차접대에 관련해 문화적 충돌이라는)에 굉장히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뜬금없이 기꺼이 차 접대하라고 해서 더욱 놀랐습니다. 다시 여성신문을 뒤졌습니다. 그때서야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알고보니 기자들의 기사가 아니라 젊은 층의 의견을 실은 난이었습니다.
    앞으로 어떤 면에 어떤 내용인지 확인하고 비판합시다. 얼마나 놀랐던지..

    글구 중앙일간지는 대부분 자기 구미에 맞는 독자투고를 싣는데,
    결국 여성주의 매체들도 자기 구미에 맞는 독자투고만 실으라는 얘기인지요.
    또다른 권력으로 형성될까봐 걱정됩니다.
    여성주의 매체라는 이름으로...
  • 커피타기 2003/05/02 [13:57] 수정 | 삭제
  • 커피타는 걸 기쁘게 생각하라니 우리 사장님 얘기와 똑같네.
    재수없어!
  • 람쥐 2003/05/02 [11:07] 수정 | 삭제
  • 발췌해놓으신 그 기사들, 여성신문 기자들이 쓴 건가요?
    제가 여성신문 10.20마당을 자주 읽는데요, 이건 기자가 아니라 젊은 여성들이 자기 생각을 풀어놓는 지면에 실렸던 글들 같습니다.
    아무거나 막 싣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그런 의견에 반론을 적극적으로 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블랙리스트같은 제목도 굉장히 불편합니다.
    이름짓기도 역시 여성주의적인 감성이 중요하지 않은지요?
    고용주들끼리 노동자 탄압하려고
    돌려가면서 보는 노동자 블랙리스트를 먼저 떠올립니다.
    표방하는 슬로건과 내용 뿐 아니라
    형식이나 이름짓기도 여성주의적인 결을 부탁하고 싶습니다.
  • 끄덕이 2003/05/02 [11:01] 수정 | 삭제
  • 아...네. 잘 알겠습니다...

    근데, 위에 소개된 기사는 여성신문의 사설도, 취재기사도, 외부 칼럼도 아닙니당!
    1020이라는 말하자면 10대부터 20대까지 다양한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의 글이 실리는 지면입니다.
    중,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직장여성까지...
    그리고 이 것으로 지면이 모두 채워지는 것도 아니죠.
    여성신문 32면 중 한 면이고, 위에서 집어낸 기사는 한 면에 보통 4-5개 실리는 1020 내용 중 하나네요. 그러니 비약이죠?

    논평의 논조는 자유지만, 최소한 출처는 정확하게 밝혀야죠.
    그냥 읽으면 여성신문의 중요한 논조로 착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게 페어플레이의 기본!!!

    일다의 창간을 축하합니다.
  • 충혈된눈 2003/05/02 [00:06] 수정 | 삭제
  • '낙태를 피임이라고 생각하는 여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기구를 이용한 피임이나 혹은 약을 이용하는 방법과 같이 간단하고 편리하게 낙태를 하는 사람은 없을것 이다.
    수술대 위에 올라가기 까지의 절박한 상황과 자책감 까지 떠 안아야 하는 여성들에게..'낙태는 피임의 일환이 아니라 생명을 빼앗는 일이다' 라고 말 하는 것은 잔인한 일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원치않는 임신'이라고 이름 붙여진, 그래서 낙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그 상황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혼전임신이나 강간에 의한임신이 아니라는데 있는것이다.즉 합법적이지 않은 낙태가 훨씬 많다는 사실이다. 어떤 기혼여성에게 있어서 낙태는 분명히 피임의 하나이다. 기혼여성중 합법적(산모나 태아의 건강 혹은 근친상간.강간에의한 임신등..)인 이유로 낙태를 한사람이 적다는 것은 정말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 아닌가..물론 육아문제를 떠안아야 하는 사회상황은 우리에게 불리한게 사실이고, 싸워 나가야 할 일이지만 아이를 낳지 않는것이 그 해결책은 아닌것이다. 어렵게 낙태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말하기 시작한 여성들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지도 못하는 더 많은 태아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보자는거다. 합법적인 이유에서 낙태를 해야만 하는 여성들의 문제와 자녀를 원하지 않아서, 터울 조절, 경제적 곤란, 성감별 결과 등과 같은 우끼지도 않는 이유로 낙태를 하는 기혼여성들은 다르게 보아야 하지 않은가.
  • 우우우우욱 2003/05/01 [17:35] 수정 | 삭제
  • 예전에 기지촌에 가서 모 장관이 한 얘기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

    "너희는 애국자다."
    우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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