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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름’을 인정할 때라야 ‘연대’도 할 수 있다
<혜원의 젠더 프리즘> 상호교차성 이론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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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소개: 혜원. 싸우는 여자, 비혼, 페미니스트, 아직은 한국.

 

▶ 데오도르 멜피 감독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미국, 2016) 

최근 페미니즘 운동 진영 내부에서의 논란과 분열로 나날이 상심과 피로감이 커져가던 차에, 스스로에게 위로와 응원을 건네고자 영화를 한 편 보았다. 1960년대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 활약했던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데오도르 멜피 감독, 2016)다. 놀라운 재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흑인이기 때문에, 또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만 했던 차별과 싸워 이겨내는 모습을 담은 이 감동적인 이야기에 나는 푹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백인 남성들로 가득한 우주공학의 최전선에서 ‘흑인 여성'이라는 이중의 소수자 정체성으로 인해 빼앗긴 기회를 되찾기 위한 그이들의 투쟁은 나로 하여금 페미니즘의 이론 하나를 바로 떠올리게 하였다. 바로 상호교차성 이론이다.

 

교차성 이론은 짧게 설명하자면 ‘모든 여성은 다르며, 그들이 겪는 억압과 차별 또한 모두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론이다. 즉 여성은 ‘여성’이라는 범주 뿐 아니라 동시에 성정체성, 성적지향, 인종, 계급 등과 같은 서로 다른 소수자 집단에 속하며, 이는 그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로 인하여 여성이 겪는 젠더 기반의 억압과 차별은 그의 소수자성과 결합되어 독특하게 구성된다.

 

#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교차성’을 보다

 

1989년 콜롬비아대학과 UCLA의 법학교수인 킴벌리 크렌쇼가 자신의 논문에 ‘교차성’(Intersectionality)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며 교차성 이론은 등장하였다. “인종/성별의 교차성의 주류화- 인종차별 반대 정책, 페미니즘 이론, 인종차별 반대 정치에 대한 흑인 페미니스트로서의 비평”이라는 제목의 이 소논문에서 그는 흑인 여성이 주류의 페미니즘 이론과 반인종차별 이론에서 동시에 배제되어 왔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이를 ‘교차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에 비유한다.

 

만약 교통사고가 교차로에서 일어날 경우, 그 사고는 오직 한 방향에서 온 차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 때로는 모든 방향에서 오는 차로 인해 일어날 수 있다. 즉 흑인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 또한 마찬가지로 오직 그의 ‘젠더’에 의해서만, 혹은 오직 그의 ‘인종’에 의해서만이 아닌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이는 단순히 그들을 이미 존재하는 기존 분석 틀에 더하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경험하는 억압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의 합을 훨씬 뛰어넘기 때문이다. 이런 차별의 ‘교차성'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 이상, 그 어떤 분석도 흑인 여성들이 종속되어 온 특정한 방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고 크렌쇼는 지적한다.

 

▶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의 교차성에 대한 강연 영상 중에서 캡쳐한 이미지

 

이를 증명하기 위해 크렌쇼는 논문에서 ‘흑인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고용 차별 사건에 대한 부당 판례를 예로 든다. 흑인 여성들은 자신들이 겪은 차별에 대한 법적 소송에서 보통 백인 여성으로 대변되는 ‘성차별’, 혹은 흑인 남성으로 대변되는 ‘인종차별'의 이분법으로 인해 그 차별의 특수성이 지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를테면 흑인 여성들이 승진 기회에서 소외당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흑인 여성의 승진에 관한 통계치를 제시할 경우, 이러한 통계는 ‘여성’ 전체 혹은 ‘인종’ 전체를 대변할 수 없기 때문에 기각되고 만다. 왜냐하면 오직 ‘흑인 여성’의 차별만을 특정했기 때문이다. 반면, 흑인 여성들이 직장 내 연공서열에서 배제당한 사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경우, 재판부는 이를 여성 전반을 향한 ‘성차별’ 사안으로 인지하고 백인 여성들의 통계를 빌어 그들의 요구를 기각한다.

 

결국 기존에 차별에 대해 설명하는 언어와 방식이 ‘인종’과 ‘젠더’ 범주 내에서 가장 특권화 된 계층이 겪는 차별만을 포함하고 있어서, 이보다 더 주변화 된 범주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 아일랜드 여성 인권은 백인여성 인권이었다

 

내가 이러한 여성의 교차성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된 계기는 아일랜드에서 ‘아시안 여성’으로서 겪었던 차별 경험이었다. 나는 유럽에 오면 한국의 지독한 가부장제와 성차별주의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로운 사람이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 아일랜드 생활을 시작하며 정작 깨달은 것은 ‘아시안 여성’으로서의 나의 정체성이었다. 단순히 성차별에 인종차별을 더한 것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들을 겪으며 고민은 나날이 깊어갔다.

 

‘나고 자란 국가, 문화권에 실망해 이민을 고민 중’이라는 내 말에, 어학연수를 핑계로 유럽 국가에 와서 서양 남성을 꼬셔 결혼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은 적도 있다. 심지어 으슥한 밤 골목을 거닐다, 아시안 성매매 여성으로 여기고 다가온 백인 남성이 화대를 묻는 일도 있었다. 길거리 괴롭힘에 노출되는 것 또한 같은 아시안 남성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곤니찌와~ 니하오~” 하며 노골적인 인종차별 캣콜링(길거리에서 여성에게 던지는 추파와 희롱)을 일상적으로 당했다. 어학원에서 만난 한 일본인 친구는 타인종이 거의 없는 작은 도시의 쇼핑몰에 아침 일찍 장을 보러 갔더니, 청소부로 오해를 받는 일도 있었다고 했다.

 

결국 그곳에서의 여성인권은 백인 여성의 인권이었다. 인종주의에 대한 고민 없이는 무엇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내가 겪은 일들을 유색인에 대한 인종차별이라고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너무 많았다. 이 모든 일들은 내가 아시안이며, 동시에 여성이어서 겪은 일들이었다. 당시에는 교차성 이론의 존재조차 몰랐음에도, 막연하게 이러한 차별은 결코 단순하지 않으며 각각 다른 차별의 합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경험을 통해 깨닫고 있었다.

 

▶ 아시안 여성에 대한 페티쉬를 비판하는 동영상에 달린 서구 남성들의 댓글

이를테면 ‘조국에서 성차별을 견디느니 유럽 이민 가서 인종차별을 견디는 게 훨씬 나을 걸?’ 같은 주장에는 나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다. 아무리 선진문화를 자랑하는 유럽 국가라 해도 그곳에서 이루어낸 성평등의 주인공은 백인 여성들일 뿐, 유색인종의 여성이 아니다. 다른 인종의 여성들은 마치 다른 존재이기라도 하듯 취급된다.

 

서구 국가 남성들의 아시안 여성에 대한 성적 판타지가 이를 뚜렷하게 보여준다. 유색인종의 여성, 특히 그 중 아시안 여성은 이국적이고 수동적이며 남성에게 복종하고 순응하는 존재로, 백인 여성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적 대상화되고 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아시안 여성에 대한 서구 남성들의 비뚤어진 페티쉬(특정 부위나 물건에 대한 성적 집착)와 성적 대상화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발견했는데, 거기에 달린 역겨운 몇몇 댓글의 내용이 더욱 명확하게 그 현실을 드러내 보여준다.

 

‘아시안 여성들은 피부색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와 여성성 때문에 욕망의 대상이 되는 거야. 그들은 서양의 여성들보다 남성들을 존중하고 상냥(sweet)하고 남자들을 상처 입히지 않는다(harmless)고.’

 

‘남자들이 피부색 때문에 아시안 여성을 좋아한다고? 셀 수 없이 많은 타입의 아시안이 있지만 그 중 페티쉬가 되는 것은 밝은 피부색의 마르고(slander) 애기 같은(child-like) 여성들뿐이라고.’

 

# 여성성 신화를 벗겨낸 질문 “나는 여성이 아닌가요?”

 

이러한 아시안 여성들의 스테레오 타입에 대한 논의는 킴벌리 크렌쇼의 논문에 등장하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떠올리게 한다. 1851년 미국 오하이오에서 열린 여성 인권에 대한 컨퍼런스에서, 소저너 트루스는 그 유명한 말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Ain’t I a woman?)라고 외쳤다.

 

그녀의 질문은 당대 남성 비평가들이 여성으로부터 시민권을 박탈하기 위해 쏟아낸 성차별적 ‘여성 이미지’에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었다. ‘여성은 너무 연약하고 섬세하기 때문에 정치적 행동의 막중한 책임을 지기에 적당치 않다’고 주장하는 남성들에게 맞서, 소저너 트루스는 노예제의 공포를 지나온 ‘흑인 여성’으로서 자신의 경험을 설파한다.

 

“내 팔을 보세요! 나는 곡식을 수확하고, 쟁기질을 했어요. 그 어떤 남자도 나를 앞지를 수 없죠.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나는 남자만큼 먹고, 남자만큼 일할 수 있고, 채찍질도 견뎌낼 수 있죠!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나는 열 세 명의 아이들을 낳았고, 그들 대부분이 노예로 팔려나가는 것을 지켜보았어요. 내가 비통에 젖어 울부짖을 때, 그 누구도 아닌 오직 하느님만이 내 울음을 들어주셨죠. 그러면, 나는 여자가 아닌가요?”

 

이 일화 속에 등장하는 ‘여자’는 결국 가부장제가 만든 여성성의 신화 또한 백인 여성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흑인 여성들은 페미니즘의 논의에서도 배제되어 왔다는 걸 보여주는 상징이 된다. 해당 발언을 하기 위해 소저너 트루스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백인 여성들은 그가 인종주의에 대해 발언함으로써 여성 인권에 대한 논의를 약화시킬까봐 걱정하고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러나 반대로 트루스의 발언은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가로지르는 구조를 드러내고 정확하게 공격하였다.

 

사회의 여성성에 대한 신화와 흑인 여성들의 실제적 경험이 대비되어 드러남으로써, 오히려 ‘여성은 남성보다 약하다’라는 가부장제의 주장을 파괴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였다. 이는 곧 다중의 억압구조 아래 놓인 소수자들의 경험이야말로 그 구조를 비판하고 바꾸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단단한 근거가 된다. 우리가 교차성 이론을 배워야 할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 NASA 최초의 우주궤도 비행 프로젝트에 선발된 흑인 여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히든 피겨스> 중에서.

 

# 교차성 이론은 여성들 간 분열을 일으키는가?

 

교차성 이론을 반대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은 이 이론이 여성들 간의 연대를 돈독히 하기는커녕 오히려 자신의 피해만을 부각시켜 분열을 일으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또한 이들의 피해자화를 가속할 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크렌쇼가 앞서 트루스의 발언을 통해 주장하였듯 ‘억압을 겪어본 이들’의 목소리야말로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때로 이러한 경험 자체가 억압의 구조를 부수는 무기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억압당한 이들이 자신의 피해를 이야기할 때, 이러한 목소리가 누군가 (억압 주체가 속한 집단)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한 불편함이 그들의 목소리를 막아서는 요인으로 작용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페미니즘이 여성 집단의 어떤 일부만을 대변할 것이 아니라 트랜스젠더 여성, 유색인종, 장애가 있는 여성, 노동자 계급 등 모든 여성들의 삶의 스펙트럼을 대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교차성’ 개념은 그래서 더욱 중요하다. 빈부격차, 인종, 종교, 계급, 출신, 젠더, 성적지향… 그 외에도 셀 수 없이 촘촘한 기준으로 차별은 복잡하게 교차되어 있다.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우위에 놓인 이들이 약자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저지르기도 하고, 또 서로 침묵하고 용인하기도 한다. 이 미묘한 맥락들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고 단순히 자기 정체성에만 파묻혀서 다른 정체성을 가진 이들과 횡단하며 연대하기를 포기한다면, 절대 우리의 싸움은 일정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또한 상대적으로 높은(가진) 위치에 있는 이들이 강조하는 ‘교차성을 소거한 여성 연대’는 특권 있는 이들이 여성으로서 자신이 겪은 성차별 경험을 자신보다 주변화되어 더욱 억압받는 여성들의 경험 우위에 둔다는 비판을 도저히 피해갈 수 없다. 그것이 최근 남성 성소수자들을 ‘똥꼬충’이라고 부르고 트랜스젠더를 비난하는 등의 언행을 보인 몇몇 온라인 페미니즘의 결을 경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페미니즘의 교차성 이론이 내가 아일랜드에서 겪었던 아시안 여성으로서의 이중적인 억압에 대해 설명해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성차별과 인종차별의 그 복잡한 교차점을 보다 명확히 들여다봄으로써, 아시안이자 여성으로서의 내 앞날을 새롭게 써나가고 싶다. 또한 성별 이분법과 외부성기 중심주의를 더욱 강화시키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위한 싸움을 넘어서서, 보다 자유롭게 차이를 횡단하며 연대하고 싶다.

 

페미니즘의 교차성 이론은 많은 차별과 억압 속에서 그 이름조차 지워졌던 이들을 빛 아래로 다시 불러낸다. 결국 우리가 모두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함으로부터 진정한 연대는 시작될 것이다.

 

※ 참고 자료

 

-킴벌리 크렌쇼(Kimberlé Crenshaw) 논문 https://philpapers.org/archive/CREDTI.pdf

Kimberle Crenshaw “Demarginalizing the Intersection of Race and Sex: A Black Feminist Critique of Antidiscrimination Doctrine, Feminist Theory and Antiracist Politics”

 

-킴벌리 크렌쇼의 교차성에 대한 강연 영상 https://youtu.be/-DW4HLgYPlA

 

-워싱턴 여성행진의 기본 원리로 등장한 교차성 페미니즘에 대한 VOX의 기사
http://www.vox.com/identities/2017/1/17/14267766/womens-march-on-washington-inauguration-trump-feminism-intersectionaltiy-race-class

 

-페트리샤 힐 콜린스 <흑인 페미니즘 사상>(여성문화이론연구소,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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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1 [15:52]  최종편집: ⓒ 일다
 
얀새 17/04/11 [19:11]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helpful 17/04/13 [13:44] 수정 삭제  
  좋은 논문 소개 감사합니다~
ㅇㅇ 17/04/13 [16:38] 수정 삭제  
  결국 기존에 차별에 대해 설명하는 언어와 방식이 ‘인종’과 ‘젠더’ 범주 내에서 가장 특권화 된 계층이 겪는 차별만을 포함하고 있어서, 이보다 더 주변화 된 범주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이다.이 부분이 특히 감명깊었습니다. 인종뿐만 아니라 장애인 문제에서도 적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인 문제에서 남성 장애인만 부각되고 여성 장애인은 논의에서 사라져 버린다는 면에서요. 그밖에도 기사에서 얘기하신 것처럼 여러 방면에서 적용할 수 있는 이론이네요 재밌어요ㅋㅋㅋㅋ좋은 기사 잘 읽었습니다!!!
주희 17/04/14 [01:29] 수정 삭제  
  아 너무 감사합니다~ 흑인 페미니즘이나 교차성 이론에 대해서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이 내용을 한글로 어떻게 잘 풀어쓸까 고민했는데.. 제가 쓰고 싶었던 글이 여기 있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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