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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래피 감수성을 넘어
<치마 속 페미니즘> 다양한 섹스의 상상
<여성주의 저널 일다> 홍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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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 쓰고 그림 그리고 퍼포먼스를 하는 예술가 홍승희 씨의 섹슈얼리티 기록, “치마 속 페미니즘”이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 섹스에서 소외되는 오르가슴

 

열세 살 때 첫 자위를 하면서, 사람들이 이런 오르가슴을 느끼기 위해 섹스를 하는 건지 궁금했다. 좋아하는 사람과 살갗을 맞대고 오르가슴을 함께 즐기는 게 섹스라면 어서 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첫 경험, 아니 첫 강간을 당했을 때 오르가슴은커녕 아프고 불쾌한 느낌만 들었다. 돌이켜보면 불쾌한 섹스는 대부분 강간이었고, 그런 일들을 사춘기부터 이십대 초반까지 숱하게 겪었다. 내 몸이 수치스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잦아졌다. 수치심은 몸의 감각이 열리는 걸 방해했다. 어느새 포르노, 야동처럼 섹스는 어딘가 불결하고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운 것이 되었다. 내게 오르가슴은 섹스와 별개였고, 꽁꽁 문 잠긴 독방에서만 느낄 수 있었다.

 

섹스와 자위는 내게 멀고 먼 섬과 섬처럼 느껴졌다. 섹스라는 대륙에서 나는 남자의 사정을 중심으로 신음소리를 내고, 몸을 움직였다. 자위의 대륙에서는 온전히 내 손가락에 의지해 편안하게 쾌락의 산에 오를 수 있었다. 섹스에서는 남자친구의 사정과 그의 오르가슴이 중심이 됐지만, 자위에서는 나의 오르가슴에만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

 

20대 초반까지 나의 섹스는 야동에서 봐왔듯이 늘 격앙된 분위기에서, 아주 격렬하게 애무하고 피스톤 질을 하면서 인상을 쓰고 남자 혼자 땀을 뻘뻘 흘리다가 사정을 하고 끝났다. 이따금 ‘너무 좋아, 살살, 세게, 빠르게’ 등등 대화가 오가긴 했지만 여유 있고 느긋하진 않았다. 우리들은, 나는 무엇이 그리도 급했던 것일까.

 

대화를 하라는 조언은 많이 들었지만, 내게는 쉽지 않았다. 섹스에 대해 대화로 ‘여기 만져줘’, ‘저기 만져줘’, ‘클리토리스를 이렇게 만져줘’라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 시도하고 포기했다. 혼자서 자위할 때만큼 느낌이 상쾌하지 않았다. 섹스에서 오르가슴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 몰랐다. 물론 나와 섹스했던 그들은 내가 내는 신음소리만 듣고 오르가슴을 느꼈다고 착각했을 것이다.

 

남자친구와 섹스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자주 자위를 했다. 섹스할 때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면 많은 남성들이 나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노력했지만,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욕구에 충실하게 오르가슴을 향해 돌진하고 집중했다. 그러니까 그들은, 혼자 있을 때 자위를 하는 것처럼 나와 섹스할 때도 자위하듯 섹스를 한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집으로 돌아온 후에 따로 자위를 해야 했을까.

 

자위와 오르가슴에 대해 직설적으로 이야기하기엔 두려움과 부끄러움이 있었다. 이 사람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을까 하는 조심스러움, 상대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내가 이상한 게 아닐까 하는 내 감각에 대한 불신이었다. 그렇게 몇 년간 나의 오르가슴은 섹스에서 제외되었다. ‘그의 사정’을 중심으로 섹스는 클라이맥스를 장식했지만, 나의 오르가슴은 그러지 못했다.

 

나는 섹스할 때 오르가슴을 느끼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체념했다. 흡입 섹스에서 클리토리스와 질 입구 밑에 돌기처럼 자란 작은 세포들이 자극되면서 느껴지는 약간의 쾌감, 그의 숨소리, 체취와 살갗의 부드러움, 포근함에 만족했다. ‘육체적 오르가슴보다 정신적 교감이 더 중요한 거니까!’라며 ‘자위’했다.

 

▶ <부끄러운 오르가슴>  ⓒ홍승희, 2017

 

# 자위의 대륙과 섹스의 대륙의 만남

 

한 친구를 만나기 전까지 오르가슴은 혼자 하는 자위에서 느끼는 은밀한 쾌감이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이성친구와 성상담을 하고 있을 때였다. 마광수와 야한 여자를 좋아하던 그 친구는 여성을 신비로운 존재라고 여겼다. 바로 그 점이 나는 불편했지만, 그래도 성에 관해 유일하게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이성 친구였다. 우리는 종종 만나서 서로의 로맨스 상담보다는 성상담을 해주었다.

 

친구의 집에 누워 다리를 벽 쪽으로 세우고 오르가슴에 대해 이야기하던 어느 날이었다. “너도 자위해?” 친구가 물었다. “당연하지. 여자는 자위 안하는 줄 알았어?” “응, 주변에서 들은 적이 없어서. 너도 하는구나!” 생각보다 여성은 성욕도 없고 자위도 안하는 줄 아는 남자들이 많다. 이 친구도 그랬다. “여자는 어떻게 해?” 호기심 많은 친구에게 클리토리스를 만지작거리면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우리 같이 오르가슴 느껴볼까?” 나는 친구에게 말했다. 우리는 흡입 섹스 말고, 각자의 자리에서 자위를 하기로 했다. 편안하게 누워서 벽 위로 다리를 올리고 자위를 시작했다. 서로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이따금 옆을 바라보고 눈을 마주쳤다. 거의 동시에 오르가슴을 느낀 우리는 행복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타인이 보는 앞에서 함께 하는 자위는 처음이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지금까지 하지 않았지? 왜 혼자 있을 때만 하려고 했을까? 자위가 뭐라고. 오르가슴이 뭐라고. 친구와 나는 이후로도 종종 만나 자위를 했다. 우리는 섹스를 한 걸까? 그렇다. 삽입, 아니 흡입 섹스를 하지 않았을 뿐 우리는 깊게 교감했다.

 

이후부터 나는 좋아하는 사람과 섹스를 할 때 그의 눈을 보면서 자위를 했다. 각자의 성기를 만지면서 함께 자위하기도 했다. 자위가 점점 부끄럽지 않게 되었고, 내 쾌락을 드러내고 말하는 것도 점점 쉬워졌다. 물론 내가 자기처럼 성욕이 있고 오르가슴을 좋아하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어 당황했던 사람도 있었다. 여자는 자위를 하지 않으며 남자보다 성욕이 없다고 생각했던 남자들이 그랬다. 하지만 대부분은 더 대범하고 자유롭게 쾌감을 함께 즐겼다.

 

내가 나의 성감을 따라 몸을 움직이는 만큼, 상대도 나의 성감을 따라 움직였다. 내 클리토리스와 질 입구에 분포된 돌출된 세포들을 자극하기 위해, 그의 눈을 보면서 온 감각을 집중하면서 허리와 엉덩이를 살짝 들고 촉감을 즐겼다. 자위할 때처럼 자연스럽게 허리가 위, 아래로 움직이고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상대가 발기가 안 되거나 먼저 사정을 해서 피스톤 운동을 하지 못해도, 내 손가락이나 그의 몸의 굴곡을 활용해 자위하듯 섹스하면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었다.

 

외딴 섬처럼 있던 자위의 대륙과 섹스의 대륙이 만난 그날 이후, 나의 클리토리스는 섹스에서 소외되지 않았다. 클리토리스가 침대 위에서 감각을 열어놓자, 흡입 섹스 말고도 다양한 섹스의 감각과 서사가 생긴 것이다. 파트너도 더 이상 ‘발기가 안 되면 어쩌지, 여자를 만족시켜줘야 하는데 어쩌지, 오랫동안 해야할 텐데’라는 부담 없이 섹스를 했다. 누구도 연기하지 않았다.

 

# 나의 감각은 누가 알아맞혀주는 게 아냐

 

내가 어떨 때 흥분하고 어디를 만져야 기분이 좋은지는 먼저 자기 자신이 알아야 한다. 내 촉감은 나다. 나의 감각이 곧 나다. 내 몸이 나인 것처럼. 나의 쾌감은 누가 알아서 알아맞혀 주는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과 많은 섹스를 한다고 해서 쾌감이 증폭되는 것도 아니다.

 

나는 만나는 상대에 따라 나의 성감이 달라진다고 생각했다. 물론, 나를 달아오르게 하는 취향이 어느 정도 맞아야 하지만. 적어도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피스톤을 하는지, 얼마나 다양한 체위를 구사하는지는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 남성 상위 자세일 때도 허리를 적극적으로 움직이면 오르가슴에 도달할 수 있다. 다른 자세에서도 몸의 굴곡을 이용해 다양한 감각을 자극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자위할 때처럼, 내가 잘 느낄 수 있는 자세와 위치, 힘을 잘 조절하는 것이다.

 

오르가슴을 느끼는 방법은 사람마다 상황마다 다르다. 나의 경우 질 오르가슴,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은 뚜렷하게 구별되지 않는다. 클리토리스 오르가슴을 느끼는 순간 삽입을 할 때, 강력한 질 오르가슴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나의 경우 항문과 질에 힘을 힘껏 줄 때, 여성 상위 체위로 알파벳을 그리면 성감이 배가 된다. 또는 자위를 하다가 내가 오르가슴을 느낄 때 파트너의 성기를 삽입하면 엄청난 쾌감이 온다.

 

사랑하는 사람과 서로 자위를 하면서 마주보는 눈빛은 황홀하다. 물론 섹스에서 오르가슴이 목적이고, 그 과정은 수단이라고 얘기하는 건 아니다. 오르가슴을 꼭 느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굳이 오르가슴을 거부할 필요가 없으니까 오르가슴을 챙긴다. 너무 좋은데 굳이 느끼지 않을 필요가 없다!

 

# 가부장사회의 섹스 서사, 포르노를 넘어서

 

옛날엔 흥분하려고 남자친구와 함께 포르노와 야동를 보곤 했다. 커다란 화면에서 보여주는 그들의 체위를 따라하면서. 포르노 감수성을 좋아하고, 거기서 흥분을 느낄 수는 있다. 그러나 야동에서 섹스를 배우니까 똑같이 어디 어디를 애무하고 삽입하고 사정하고 끝나버리는 섹스를 하게 된다. 이상한 일이다. 먹는 음식도 매일매일 다르고, 핸드폰도 이렇게 다양한 세상인데, 왜 섹스는 포르노 감수성으로 획일화되어 있을까. 그리고 나는 왜 포르노 감수성에 나의 감각을 끼워 맞추려 했을까.

 

가부장 세계의 섹스 서사는 포르노와 삽입 감수성이다. 다양한 개성이 춤추는 사회라고들 말하지만 정작 살아가는 방식도 사고하는 틀도 획일적인 것처럼, 섹스 감수성도 획일적이다. 어릴 적 즐겨봤던 야동의 섹스 서사는 남성의 사정이 클라이맥스를 장식했고, 여자의 정복당하는 듯한 신음 소리와 정복하는 남자의 성기의 피스톤 운동이 주를 이루었다.

 

야동은 남자의 사정이 곧 섹스의 완성인 것처럼 느끼게 했다. 여성인 내가 야동을 보며 배운 ‘여자 역할’은 남성이 해주는 애무와 삽입에서 적절한 신음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특히 섹스에서 신음소리는 아주 중요했다. 억지로 내는 것이 아니라, 흘리듯 흐느끼듯 참지 못하겠다는 듯, 그러면서 참는 듯해야 한다. 그러다가 남자가 사정을 할 때 즈음 못 참겠다는 듯이 터져버리는 울음처럼 비명을 질러버리는 것(그러나 부담스럽지 않게 크지 않은 목소리로). 어려운 연기였지만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아예 벗고 있는 것보다는 조금은 걸치고 있는 것이 흥분된다는 점, 몸매를 잘 가꾸어야 한다는 점(야동 속 여성들의 몸매는 천편일률적으로 날씬하고 볼륨감 있었다) 등. 그런 것들을 연기하기 위해 나는 노력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성적 만족감을 주기 위해 그런 것들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사랑의 표현이라 여겼다.

 

# 감각의 축제, 다양한 섹스 감수성

 

인도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 사람이 있다. 그와 처음 섹스를 할 때, 나는 지금까지 했던 '섹스'를 잊었다. 생각해보면 자기 서사가 없는 사람과 대화를 할 때 무료함을 느끼는 것처럼, 섹스도 마찬가지였다. 삶의 서사가 풍부한 사람은 감각의 상상력도 풍부했다. 당연히 섹스도 풍부한 감각의 축제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삶을 몽땅 데리고 다니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직면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온 것이다.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고 어디에서든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이 있었다. 그의 눈빛과 촉감은 당연하게도 내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창문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빛과 고요한 엠비언트 음악, 향에서 나오는 연기로 채워진 공간에서 우연히 섹스를 했다. 요가를 하듯, 서로의 손바닥을 등과 어깨에 가만히 대고 기운을 나눴다.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흡입 섹스를 할 때는 우주로 날아가려는 우주나비의 날갯짓을 떠올렸다. 우리는 그것을 ‘우주나비섹스’라고 부른다. 그렇게 기운을 나누다가 잠시 담배를 물고 쉬고, 다시 내 클리토리스를 그의 허벅지에 비비고, 서로의 손가락 마디마디에 키스를 하다가 잠들고, 잠결에 다시 몸을 매만지고… 그 공간에는 빨간색 불빛이나 야한 속옷, 헉헉거리는 격렬한 숨소리, 거창한 체위가 필요 없었다. 우리에게 섹스는 그림, 대화, 춤, 명상이었다. 야동보다 더 야한 것들이 이 삶과 세계에 이렇게나 많다.

 

▶ <만다라: 만개하는 감각> ⓒ홍승희, 2016

 

이제 나는 포르노를 봐도 흥분되지 않는다. 그보다 나를 흥분시키는 건 삶의 부피, 투명한 눈빛, 나비의 날갯짓 같은 상상이다. 섹스도 함께 즐기는 상쾌한 스포츠가 될 수도 있고, 깊고 고요한 명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몸으로 느꼈다. 야동에서 보는 것처럼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심각하게 인상을 쓰고 격렬하게 피스톤 운동을 하다가 남자의 사정으로 폭발하고 끝나버리는 것이 섹스가 아니었다.

 

섹스만큼 이 사회에서 왜곡된 감각이 또 있을까. 섹스에 대한 다양한 상상력이 필요하다. 온전한 감각의 회복이. 섹스에 묻은 때가 너무 많다. 이것들을 벗겨버리고, 모든 것과 알몸으로, 알맹이로 만나고 싶어서 요즘은 탄트라를 공부하고 있다. 섹스의 본질이 뭘까, 인류라는 종족은 왜 존재하게 된 걸까,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탄트라에서 섹스는 ‘우주의 본질과 자아의 합일’이라고 한다. 심오해 보이지만 생각해보면 자연스러운 말이다.

 

포르노 서사를 걷어낸 섹스는, 나와 나 이외의 모든 타자와 관계 맺는 감각의 개성을 드러낸다. 인간은 몸의 동물, 어쩔 수 없는 감각의 존재다. 가장 밀접한 감각의 교감인 섹스에서 어떻게 타자와 관계를 맺고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는가는 그의 삶의 방식과 닮아있다. 섹스에서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다른 삶의 가능성도 풍부해지지 않을까.

 

# 클리토리스 감수성의 세상이 아름답다

 

만약 내가 불행하게도 첫 자위, 첫 오르가슴보다 첫 강간을 먼저 경험했다면 어땠을까. 그럼 나는 몸의 감각을 닫아버리게 되지 않았을까. 수치심으로 허리띠를 졸라매고, 나의 몸과 나를 분리시키지 않았을까. 다행히 열세 살 때 느낀 오르가슴의 평화, 무한한 평화는 포르노 서사와 강간의 침범이 쳐놓은 수치심과 순결 이데올로기, 타자의 욕망을 뚫었다. 그리고 처음 타인 앞에서 자위를 했을 때, 나는 나의 감각과 오르가슴이 수치스럽지 않다는 걸 몸으로 느꼈다. 가부장 마초와 자본이 만들어낸 수치심의 코르셋과 섹시함의 문이 닫히고, 야성의 벌판이 펼쳐진 것이다.

 

여성의 오르가슴 소외만큼 오래된 소외가 있을까. 알몸으로 서로 뒤엉켜 있을 때도 내가 그랬듯 대부분의 여성들은 신음소리를 연기하고, 만족했다고 남자를 다독이고 추켜 세워주는 감정노동을 해 온 것이다. 이것은 여성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에게 비극이다.

 

이제 겨우 나는 내 몸이 즐거워하는 게 뭔지 안다. 눈치 보지 않고,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고도 오르가슴을 즐길 수 있다. 남근이 여성의 질 속을 쑤시고 박고 정복하고 지배하는 섹스가 아니라, 서로를 마주보고 문지르고 쓰다듬는 클리토리스 오르가슴 같은 세상을 원한다. 나는 이런 감각을 클리토리스 감수성이라고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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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4/14 [15:49]  최종편집: ⓒ www.ildaro.com
 
17/04/14 [20:20] 수정 삭제
  '섹스에서 다른 방식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면, 다른 삶의 가능성도 풍부해지지 않을까' 이 말씀 너무 공감합니다. 항상 똑같은 방식의 섹스, 아니면 폭력적이고 외곡된 섹스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인정받고만 싶어하는게 요즘의 섹스방식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이 글을 읽으니 뭔가 새로운 혹은 원래 그래야 했던 뭔가를 알게 된 것 같아요! 가장 가깝고 사랑하는 존재와의 거침 없이 자유로운 피부접촉 메만짐 흡입삽입등이 개인 삶의 이야기도 바꿀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이런 사실을 사람들이 잘 알고 실현해 나가면 세상도 바뀔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네용^^ 너무 좋은글 감사합니다~~>
행인 17/04/14 [21:25] 수정 삭제
  페이스북에서 일다 페이지를 구독해서 종종 올라오는 기사를 보는 사람입니다 단 한 번도 댓글을 단 적은 없었지만, 정말 인상적이고 좋은 글을 읽은 것 같아 댓글을 남기고 갑니다 남성이 가진 사회문화적인 암묵적 권력이 얼마나 여성을, 여성을 넘어 "사람"의 욕구와 진심을 얼마나 왜곡하고 억압하는지(남자다워야 한다는 말로 남성이 남성 역시 억압하는 것 말입니다)에 대한 단상을 종종 하곤 하는데, 섹스라는 행위에서 얼마나 일방적인, 폭력적이라고 할 수 있는 억압이 존재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습니다 :) 불공정한 권력 구조 내의 무의식적 혹은 의식적인 수혜자인 남성이 이런 곳에 댓글을 달며 배울 수 있다 고맙다라는 식의 말을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책과 기사보다 진실되고 한 편으로는 먹먹하게 다가온 글 감사드립니다 :)
이현주 17/04/14 [21:38] 수정 삭제
  섹스에서 오르가즘 은 생식.종족보존을 위해 덤으로 준 오르가즘입니다.그 오름가즘을 주지 않았다면 인간은 아마 생식을 게을리해 종이 멸종위기에 처
남자1 17/04/15 [04:53] 수정 삭제
  남자도 사정을 하지 않는 비사정 섹스를 할 수 있어요.사정과 오르가슴을 분리하는거죠.훈련이 필요하지만 가능합니다.여자의 오르가슴도 클리토리스 오르가슴만 있는게 아닙니다. 더 다양한 오르가슴의 세계로 입문해보시길 바라는 마음에서 몇자 적어 봤습니다. 진솔한 이야기로 생각할 기회가 된 좋은글 감사합니다.
MK 17/04/15 [11:23] 수정 삭제
  섹스를 주제로 공론화해서 얘기하는게 이슈가 아닌 요즘 세상에 여성 관점에서 이토록 사실적이고 공감되는 글이 올라와서 너무 반가워요. 남녀가 합일해서 이뤄지는 섹스는 한쪽의 일방적 욕구의 배출이나 소비가 아닌 감각의 일깨움이자 즐거움의 과정이며, 함께 만들어가는 쾌감의 절정이 얼마나 가치있는지, 퀄리티있는 섹스가 개인의 행복에, 관계에 미치는 영향, 나아가 우리가 속한 사회까지 아우르는 근원을 들여다보게 되네요. 크게 공감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이십대에 이런 글은 접했더라면, 섹스도 인문학 처럼 교육되었다면 이 사회가 좀더 건강한 사회가 되지 않있을까. 가정들이 평화롭진 않았을까 하는 확대해석도 해봅니다.
ㅁㄴㅇㄹ 17/04/16 [22:37] 수정 삭제
  참 갖잖지도 않은 글 읽느라 매우 힙들었습니다. 페미니스트들의 문제는 어딜가나 이렇게 이중잣대를 들이댄다는게 문제입니다. 앞에서는 남성들이 관계시 자신의 만족을 위해 여러모로 노력했다고 이야기하면서 우리사회의 모든 섹스가 남성'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얘기하는것, 여성만이 감정노동을 당한다고 주장하는것은 대체 무슨 논리인지 애당최 이해할 수가 없군요. 앞뒤 말이 맞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리고 정말 포르노 그래피를 비롯해 보편적인 성관계에서 여성들만 일방적으로 노동을 수행하고 있다 생각하십니까?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세요. 남성분들이 성관계시 자신의 성기크기에 그렇게도 민감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크기가 작으면 테크닉이라도 좋아야 한다고 알려져있는 상식은 왜 존재하는 것일까요? 또 포르노 그래피 속에서 남성배우들은 여성에게 왜 애무를 해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들이 진정 여성들의 만족감과는 전혀 관계없는것들이라 생각하십니까? 필자도 글에서 언급했고 대다수 여성분들도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성관계시 남성이 여성의 만족감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지요. 소위 당신들이 남성'중심'적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포르노 그래피 에서도 이는 하나도 다르지가 않습니다. 남성 배우들이 하나같이 근육질 몸매에 성기의 크기가 큰, 소위 '대물'들 이라는것은 다들 아실겁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바로 그것들이 여성을 만족시킬수 있는 남성성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포르노 그래피의 성관계에서도, 현실속의 성관계에서도 남성들은 여성의 만족감을 위해 일정한 자격을 갖추고, 테크닉을 갖추는 등의 소위 감정 노동을 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성관계시 '여성만 일방적으로 감정노동을 강요받고 있다' 라고 주장하는것은 좋게 말해 상상력이 풍부한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현실부정이라는 거죠. 정신질환 이라는 겁니다. 이따위 이중잣대를 갖고있는 학문이 여성들의 피해망상만을 부추기기만하니, 참으로 안타깝기가 그지없습니다.
대물저격총 17/04/17 [01:19] 수정 삭제
  참 같지도 않은 글 쓰시느라 매우 힘드셨겠네요. 물론 사랑하는 사이의 헌신은 존재하고, 남성도 섹스에서 동작이 많으며 파트너를 위한 예민함을 부정당한 기분이라면 이해합니다. 하지만 남자가 허리를 더 많이 움직인다고 해서 포르노가 여성을 위한 것은 아니죠?ㅋㅋ 꼴리고 박고 지배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여성을 향해 꽉차 있지 남성을 향해 차 있지는 않거든요.^^물론 사랑하는 관계의 헌신은 있지만 남자가 여자의 관점에 구애 받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원하기 때문이지, 여자가 남자보다 권력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연한 인간관계의 댓가를 남자와 동등한 여자의 권력으로 본다면 여자는 남자의 꼴림을 군말없이 받아줘야 하는 물건 인거죠?남자의 자지크기와 섹스 테크닉도 그와 같습니다. 섹스에서 에너지가 큰 노동을 남성이 해내고 남성도 헌신을 한다. 오히려 더 적극적이다.라는 주장은 이해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열심히 허리를 움직이고 싶어하는 분들의 에너지는 여성을 위한 기사도 희생정신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발기가 상시만반 입니다. 똑같은 논리라면 성폭행범도 희생정신이 넘치는 사람이 됩니다ㅋ. 중요한건 여성을 얼마나 인간과의 관계로 인식하느냐죠. 그러니 여성을 요구하는 자신은 보지 않고 포르노가 소위남성중심이라 표현할 정도로 억지로 여성을 권력자로 만드는 행위는 여성을 댓가성 있는 인간관계의 인간으로 보지 않는 겁니다. 성차별적 세계관을 인정하지 않으면 윗 글은 더 설득력을 얻습니다. 또또 정말 멍청하신게 포르노에서 남자의 자지크기와 섹스 테크닉이 여자를 위해서 신경 쓴건가요?ㅋㅋㅋㅋㅋㅋㅋ 대물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자의 권력 때문이라구요? 아하. 여자에게 큰 자지를 박고 사정하고 정액을 마시게 하는 시나리오의 이유가 여자가 원하는 조건에 맞춘 결과군요?ㅋㅋㅋㅋㅋㅋ 설마 코끼리를 잡는데 큰총을 쓰는 이유가 코끼리 때문이라고 하진 않겠죠? 사냥꾼의 욕심 때문이죠ㅋㅋ 남성의 자지크기는 남성의 자존심이고, 남성이 여성을 만족시켜야 한사람의 남성으로 남성성의 자존심을 지킬수 있는건 누구 때문이죠? 남성 본인의 자아 문제죠.ㅋ 여성이 시킨게 아니라요.
2133 17/04/17 [01:21] 수정 삭제
  ㅂㅂㅈ
ㅁㄴㅇㄹ 17/04/17 [02:45] 수정 삭제
  대물저격총//

대물저격총님과 같이 페미니스트들이 흔히 하는 비유가 성관계를 하는 남성 모두를 강간범으로 만드는 아주 썩어빠진 주장입니다. 꼴리는게 비단 남자 뿐인가요? 여자들은 안꼴립니까? 사랑하는 관계 뿐만이 아니라 기존에 사랑하지 않으면서 하는 성관계, 이를 테면 원나잇에 이르기까지 남성들이 여성들의 성적 선호기준이나 여성들의 성적 만족도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엄연한 현실 부정입니다. 저 위에 글쓰신 분께서도 그걸 인정하시지 않습니까 ㅋㅋㅋ 남자들이 꼴린다고 자기 마음대로 섹스를 할 수 있나요? 여성의 허락과 여성의 동의가 없이는 그 어느 사회 문화구조 속에서도 남성 자의대로 성관계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걸 알고계실텐데요. 그런걸 바로 '강간' 이라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성관계가 이루어지는 상황속에서도 남성이 진정 만족감을 느끼려면 관계 맺고있는 여성의 인정, 여성의 만족이 전제되어야만 합니다. 아니 이따위 소리 길게 늘어놀 필요도 없이 인터넷 뉴스에 수두룩하게 뜨는 광고창들만 봐도 알수 있을텐데요? 비아그라의 광고가 대게 어떻습니까? 그것을 섭취한 남성이 수많은 여성을 만족시켰다 라고 얘기 하지 않나요? 페미니스트들의 문제점은 바로 이렇게 일반적인 남녀간의 성관계를 권력관계로 인식하면서 강간과 똑같은 구조로 인식한다는데에 있습니다. 그 이면에는 "남자는 주체고 여자는 타자다" 라는 병신같은 사상적 토대를 전제하고 있구요. 애당최 남성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에 대한 조그마한 고민이라도 있다면 소위 "남성은 주체고 여성은 타자다" 라는 미친소리는 꺼내지 못합니다.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여성에게 권력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는것도 똑같습니다. "권력"이라고 함은 기본적으로 존재를 통제하고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정말로 여성이 남성의 정체성과 행동방식을 규정하고 통제할 힘이 없었다 생각을 하십니까? 앞서 제시한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롯해 남성의 훤칠한 키, 넓은 어깨, 등판, 남성의 굵은 목소리, 남성의 섹스 테크닉, 그밖의 남성적인 행동방식 등등.. 남성성을 조율하고 컨트롤 하는 주체는 명백히 여성입니다. 기존에 남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남성에 대해서 거부하고 멸시를 가할 여성들의 힘이 분명히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들이 "번식 탈락"되지 않기 위해서 그것들에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고, 포르노의 남성 배우들이 하나같이 그러한 이상적 남성의 이미지를 '무의식중'에 표상하고 있는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이 있었기 때문에 당신들을 대변하는 병신 메갈리아 새끼들이 흔히 '6.9cm' 한남들한테 안대준다고 그렇게 지랄지랄을 했던것 아닌가요? 덜떨어진 당신은 남성의 성기 사이즈와 남성의 섹스 테크닉이 여성의 욕망과 전혀 상관이 없다고 얘기하시는데 진짜 대체 어느 행성에서 살고계신겁니까? 정말로 그게 여성의 만족이나 욕망과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세요? 진짜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당신은 둘중에 하나에요. 정신질환자거나 아니면 정말 외계인이거나. 아, 정신질환자 분께 몹쓸 비유를해서 죄송합니다.
ㅁㄴㅇㄹ 17/04/17 [03:00] 수정 삭제
  당장에 긴말 필요없고 남성의 자지 크기가 왜 '남성의 자존심'이 되었을까 생각해보세요. 그걸 가치있다고 판단해주는 존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존재가 바로 여성이구요. 성소수자를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성관계를 할때 자지를 쑤셔넣는 곳은 보짓구녕이지 자짓구녕이 아니잖습니까. 애당최 자지크기가 '여자를 얼만큼 대만족시킬수 있는가'에 관한 절대적 상징물이란 생각은 죽어도 못하죠? 하기사 알턱이 있나요. 페미니즘만 종교신앙 마냥 신봉하면서 살았을테니까요.
읽으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바람지기 17/04/25 [19:19] 수정 삭제
  섹스에 다른 서사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 글에서 처음으로 분명하게 인식했습니다. 그동안 경험 속에서 몇 번 '이런게 참 좋다.'라는 생각만 했었는데 그 날의 컨디션이 좋았겠지 정도로 치부하고 넘어갔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그런 경험들이 섹스의 새로운 서사였다는걸 알 수 있어서 정말 정말 행복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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