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거울 앞에 세우지 않아도 될 자유

<오지 않은 미래의 발견> 야나기 미와의 ‘나의 할머니들’⑤

김영옥 | 기사입력 2017/05/12 [15:56]

자신을 거울 앞에 세우지 않아도 될 자유

<오지 않은 미래의 발견> 야나기 미와의 ‘나의 할머니들’⑤

김영옥 | 입력 : 2017/05/12 [15:56]

※ <노년은 아름다워>(새로운 미의 탄생)의 저자 김영옥님이 나이 듦에 관해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오지 않은 미래의 발견” 기사를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내면에 귀 기울이게 되는 시기, 노년

 

▶ 장 아메리 <늙어감에 대하여>

노년은 지불노동과 관련된 사회생활에서 은퇴하는 시기일 뿐 아니라, 가족이나 집과 관련된 의무와 권한 또한 크게 바뀌는 시기다. 노년에 이르러 개인이 자신과 세상을 연결지어 지각하는 형식은 그래서 공간적이라기보다 시간적이다. 이제 내면에 축적된 ‘자기만의 시간’을 향해 몸을 돌리는 것이 노년에게는 자연스럽다.

 

늙은 사람이 어떤 삶을 사는가에 대한 구체적 내용에서는 이견이 있을 수 있겠지만, <늙어감에 대하여>에서 장 아메리는 늙어감이 인간 인지능력의 양대 축인 시간 및 공간과 맺는 관계에 대해 매우 흥미로운 견해를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시간은 내적 감각이라는 형식을 취한다. 시간은 곧 나라는 자아와 내가 처한 상태를 직관하는 형식인 것이다. 우리가 ‘현재’를 이야기할 때 이 현재 혹은 ‘지금’은 과거와 미래의 요소를 포함하는 어떤 특정한 맥락 또는 장(field) 속의 한 지점이다. 노년에 이르면 ‘현재’ 혹은 ‘지금’은 더욱 풍부한 과거의 주름들을 품게 된다.

 

“늙었다는 것 혹은 늙어간다는 것을 감지한다는 말은 요컨대 몸, 그리고 우리가 영혼이라 부르는 것 안에서 시간의 무게를 느낀다는 뜻이다.” -장 아메리 <늙어감에 대하여>

 

반면에 젊다는 것은 몸을 “인생이자 세계이자 공간인 것으로 던지는” 것을 의미한다. 젊은이를 두고 사람들은 ‘그에게는 세상이 활짝 열려 있다’고 말하곤 한다. 여기서 미래는 시간이 아니라 세계로, 공간으로 표상된다. 젊은이란 우리가 보통 시간이라고 부르는 것을 ‘자기 앞에 둔’ 사람이다. 이렇게 시간을 앞에 두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자신이 언제 공간으로 나아갈지 결정한다. 이것을 아메리는 자신을 ‘외화’하는 것이라고, 즉 자신을 바깥으로 드러내는 것(Er-äussern)이라고 말한다.

 

이에 반해 인생을 ‘자기 안에 가진’ 사람에게 고유한 것은 내화(Er-innern), 즉 기억함(Erinnern)이다. 기억이란 자신을 내화하는 것, 살아낸 시공간의 경험이 고여 있는 내면에 귀 기울이는 것이다. 그래서 노년은 “전적으로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이자, 시간의 소유자이자, 시간을 인식하는 사람이다.”(장 아메리)

 

후설의 현상학을 경유한 하이데거의 실존주의 철학에서 인간은 ‘세계 내적 존재’(In-der-Welt-Sein)다. 삶과 죽음을 두 개의 지표 사이에 있는 시-공간으로 이해한다면, ‘세계 내적 존재’인 인간은 보다 삶 쪽에 가까이 있는, 보다 공간적으로 이해된 실존을 사는 존재다.

 

그러나 장 아메리의 이해를 따른다면, 노년은 보다 죽음 쪽에 가까이 있으며 보다 시간적으로 이해된 실존을 사는 존재다. 그/녀가 아무리 여러 장소로 여행을 떠나거나 거주지를 옮겨 다녀도 노년기에 들어선 그/녀의 삶은 공간적이기보다는 시간적이다. 세상은 이제 다른 젊은이들에게 활짝 열리기 위해 그/녀를 비껴간다. 그/녀는 시간과 이야기의 삶을 시작한다. 그/녀는 이제 ‘세계 내적 존재’라기보다는 ‘시간 내적 존재’(In-der-Zeit-Sein)다.

 

‘자기만의 시간’에서 자유를 누릴 권리

 

▶ 야나기 미와(Miwa Yanagi) ‘나의 할머니들’ 중 ariko(위), ai(아래) 

이와 관련해 장 아메리는 죽어감으로서의 늙어감과 죽음을 구별한다. 죽어감이 ‘두려움과 기만적인 위로일 뿐인 유예’로 미끄러지기 쉬운 상황에서, “인생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고른 죽음”으로서의 자유죽음을 제시한다. ‘살아서 겪는 근심은 죽음을 바라보는 두려움이 흐릿하게 거울에 비친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는 고백이 강제수용소에서 고문을 겪고 돌아온 그가 늙어가는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정직한 말이라면, 자유죽음은 적극적인 자기 사랑의 실천일 수 있다.

 

그러나 살아서 겪는 근심의 무게가 점점 더 가벼워지는 노년들도 있다. 여행이든 영화구경이든 쇼핑이든 제멋에 겨워하는 노년들, 여기저기 ‘장애’가 생기는 몸을 솔직히 내보이면서 두려움과 불안, 받아들임과 거부를 굳이 구별할 필요를 못 느끼는 노년들, 그리고 거울의 압박을 내려놓았기에 환멸마저도 가볍게 옆구리에 끼고 다니는 노년들 말이다.

 

예를 들어서 윤석남이 그려낸 수많은 ‘할머니들’은 그네 위에서, 서까래 위에서, 날아가는 양탄자 위에서 가벼운 새처럼 ‘자기만의 시간’을 살고 있다. 그들은 어찌나 가벼워졌는지 순간적으로 구름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윤석남 자신의 삶을 포함해 아메리의 <늙어감에 대하여>에서 서술하고 있는 몇몇 여성노년들이 사는 모습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장 아메리의 사유구조 속에서 말한다면 이 가벼워진 노년들은 더 이상 거울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가 제안하는 자유죽음은 엄밀하게 말해서 ‘거울을 계속 들여다보는 사람’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거울은 물리적인 거울에서 멈추지 않는다. 자아가 대면하는 모든 타자의 시선이 거울이다. 그들에게 비친 내 모습에서 나는 환멸을 맛보기도 하고 위안을 선사받기도 한다.

 

그러나 타인의 시선에 내 얼굴을 노출시키고 그 반응에 영향을 받는 것은, 여전히 상징적 질서 안에서 공간적 관계를 맺어가는 양식이다. 반면에 나이 들어 더 이상 자신을 거울 앞에 세우지 않아도 될 자유, 즉 타자의 시선을 더 이상 ‘적극적인 자기 승인’의 잣대로 삼지 않아도 될 자유는 ‘자기만의 시간’으로 깊숙이 침잠하는 자유와 은밀하게 조우한다.

 

장 아메리는 나이든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공간보다는 시간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또 산다고 통찰했음에도 불구하고, 거울 속에 비친 자아 이미지라는 틀을 내려놓지 못했다. 하지만 노년이 누릴 수 있는 특별한 권리가 있다면 상징적 규범과 질서의 체계에서 몸을 빼내어 좀 더 자유롭게 상상계나 실재계를 들락날락거리는 것이 아닐까, 나는 생각한다.

 

노년이 되어 들락거리는 상상적 세계는 퇴행적 향수의 세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상징적 규범세계의 시간질서를 더 이상 지키지 않아도 되는 시점에서 열리는 어떤 이야기 세계, 시점들의 연속체와는 다른 시간 구조를 담고 있는 이야기 세계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들은 실재계의 핵심인 ‘죽음’을 바로 곁에 두고 살기에, 실재계와의 접촉 내지는 접속이 언제든 가능하다.

 

이런 조건 아래서 상상계와 실재계를 들락날락거린다고 해서 노년이 상징적 규범세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상상계와 실재계를 들락날락거린다는 것의 의미는 노년을 추방시킨 바로 그 규범과의 관계 속에서 확보되기 때문이다. 그 의미란 다름 아닌 노년의 모습을 특정 이미지에 가두려는 사회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는 것, 그 중요성을 아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초월이나 초탈, 초연 등을 강요하는 사회에 완전히 부합해야 할 까닭이 없듯이, 실제로 초연이 가능하기도 한다는 점을 잊을 이유도 없다.

 

▶ 야나기 미와 ‘나의 할머니들’에서 misako(좌) asumi(위) ryuen(아래)  ⓒyanagimiwa.net

 

'시간 내적 존재‘로 살아가는 여성노년 이미지

 

나는 야나기 미와(Miwa Yanagi)의 “나의 할머니들”(‘젊은’ 여성들에게 50년 후 자신의 나이든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제안하여 연출해 낸 25명의 독특한 ‘할머니’ 이미지) 시리즈에서 바로 이러한 노년의 모습을 본다.

 

그들은 ‘홀로’ 숲속에, 책으로 둘러싸인 방에, 사막에 있음으로써 기꺼이 ‘시간 내적 존재’로 살아간다. 대재앙 이후의 세계 한가운데서 어린 소녀들과 함께 새 세상을 꿈꾸면서, 그들은 또한 자신들이 실재계의 침입을 경험한 동시에 상상계의 너른 풍경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그와 같은 노년의 모습은 절망을 감추지 않되, 그 절망에는 회한의 독이 스미어 있지 않다. 그것은 가볍고 단순명료하며 초월 아닌 넘어감을 품고 있는 절망이자, 동시에 담백한 희망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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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 2017/05/15 [14:58] 수정 | 삭제
  • 연재 재밌게 읽었어요!
  • 독자 2017/05/13 [12:45] 수정 | 삭제
  • 제목이 너무 끌리네요. 거울 앞에 자신을 세우지 않을 자유를 지금부터라도 찾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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