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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시점의 즐거움, 정말인가요?
후조시 문화연구기획 <후조시, 상냥하게 가르쳐 줘> 3화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비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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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요오드, 철가루, 비이커로 이루어진 퀴어문예창작집단 ‘물체주머니’는 2014년 <영혼을 위한 백합수우프>, 2차백합 동인지 <돌아오세요 305호에>를 발행하였고, 문예지 <소설퀴어>를 준비 중이다. (*후조시: Boys’ Love를 향유하는 사람들)

 

# 후조시의 화분시점

 

“뫄뫄(가칭)와 솨솨(가칭) 제발 섹스해!”

 

하나의 염원이 오늘도 트위터를 배회하고 있다. 후조시(腐女子)의 염원이. 어느 후조시가 외치면 다른 후조시가 저 먼 타임라인에서 마음과 리트윗으로 공명한다. 최애캐(최고로 애정하는 캐릭터)들의 성생활이 이루어지는 방의 침대가 되고 싶다는 염원. 최애캐들의 밤을 녹화한 비디오를 구하지 않으면 나 죽는다는 겁박. 너희들의 아름다운 사랑을 방해하지 않을 테니 방구석 작디작은 관엽식물로 머무르게 해달라는 간청.

 

남성 간 사랑의 무대에서 후조시가 자신을 재현하는 최대치는 침대라는 생명 없는 사물, 혹은 무해하게 쪼그라든 화분이다.

 

“섹스하고 싶다”라고 외치기보다 “최애캐들이 섹스했으면 좋겠다”라고 외치는 후조시들의 이 위치성은 일명 ‘화분시점’이라 불린다. 이것은 남성과는 다른 방식으로 동일시를 체험하는 여성 고유의 특징이거나, 자신의 성적 쾌락을 직접 표현하지 않으려는 성 엄숙주의의 일종으로 해석되곤 한다.

 

‘공’과 ‘수’에 때때로 이입하지만 결국 최애캐에게 성적 쾌락을 양보하는 이 관음의 시선이란 대체 무엇일까? 후조시들의 섹슈얼리티를 통상의 화분시점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또한 어떤 쾌락을 침묵시키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화분시점의 거리는 어떻게 재독해 될 수 있는가? 이번 기사는 앞선 물음들에 차례로 대답하며 후조시의 욕망과 위치 짓기를 탐색한다.

 

# 최애캐들의 성애에 점잖게 물러선 주체

 

사실 화분시점은 남성들이 향유하는 망가에서 여성을 대상화하는 방식과 후조시들이 BL(Boys’ Love)에서 남성을 대상화하는 방식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남성향 포르노의 각 씬(장면)은 텍스트를 보는 주체의 시선과 일치하며, 여성의 신체를 분절하여 과장/투시하는 묘사가 잦다. 반면, 여성향 포르노라 할 수 있는 BL에서 씬은 ‘공’과 ‘수’가 어떻게 친밀한 관계를 구축하고 감정적 갈등을 해소하는지에 열중한다.

 

▶ 남성향(위)과 여성향(아래)의 차이. LINDA <적나라한 그녀>(바닐라미디어, 2017)  SHOOWA <이베리코 돼지와 사랑과 츠바키>(조은세상, 2012)

 

남성향 텍스트 속 여성 캐릭터들이 최음제라도 먹은 표정으로 독자를 응시할 때, BL의 남성 캐릭터들은 자신들만의 행복한 쾌락을 짓고 있다. 남성향 작품이 초현실적인 몸매의 미인들과 ‘유사 연애’ 관계를 체험할 주체로 독자를 호출한다면, BL은 두 미소년의 완벽한 사랑을 단지 숨죽이고 관음할 여지밖에 독자에게 남겨주지 않는다.

 

즉 후조시의 화분시점은 BL 텍스트 자체의 형식이자 BL을 보는 독자의 방식이다. 여성이 소거된 판타지 세계를 모호한 거리에서 바라볼 뿐인 후조시는, 최애캐들이 뜨겁게 내뿜은 이산화탄소를 들이켜 산소를 퐁퐁 배출하는 조용한 식물로서 스스로 자리매김한다. 이토록 엄격하게 거리를 두는 자기인식이라니! 화분이라는 비인간적 형상은 두 가지를 함의하는 것 같다.

 

첫째, 나는 판타지를 현실과 뒤섞는 어리숙한 짓을 하지 않는다. 텍스트는 외부현실을 단순히 반영하기보다 현실을 한 담론의 장으로부터 다른 담론의 장으로 전이한다. 현실에서는 인간일지언정 BL판타지 속에서는 화분이며, 이렇게 약호전환(transcoding)된 사물의 낯섦만큼이나 BL은 현실과 분리된 세계다. 공수는 두 남성이지만 또한 게이와 다르며, 이 사실을 인지하고 노는 것이 후조시의 윤리다.

 

둘째, 나는 BL 주인공들과의 성애적 관계에 나를 적극적으로 위치시켜 성적 주체로 나를 구성할 의욕이 없다. 그보다는 캐릭터들끼리의 희로애락을 흐뭇한 마음으로 관전하고픈 것이 나의 바람이다. 그러니 랜선 아들을 향한 나의 성적 흥분에 감히 호기심을 갖지 말 것. (하지만 대상을 향한 욕정은 ‘에어좆 선다’라는 우회적 표현으로 불현듯 도출된다.)

 

# 정신분석학적 설명: 여남의 비대칭적 욕망

 

쪼그라드는 동시에 전체를 관음하는 이 화분시점을 정신분석학은 ‘이성애 관계 속 여남의 비대칭적 욕망’으로 설명했다.(사이토 다마키 『폐인과 동인녀의 정신분석』 김영진 옮김, 황금가지, 2005) 무려 2017년에 오이디푸스 이야기 꺼내는 자 누굽니까아아 그로울링 지르고픈 충동은 잠시 참아보자. 요점은 남성이 끊임없이 결여태라는 대상을 욕망하는 주체라면, 여성은 남성에 의해 욕망된 위치에 자신을 자리매김하는 결여태라는 것이다.

 

남성은 주체의 자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매끄럽게 동일시할 캐릭터들을 제공함으로써 남성의 자신감을 북돋아주는 담론과 텍스트가 언제나 범람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마블히어로 속 영웅이고, 홍상수 영화 속 찌질하지만 귀여운 한남이며, 도시의 이기적인 펀드매니저이지만 결국 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한국 좀비영화 속 숭고한 아버지다. 주인공이 된 남성은 욕망의 대상인 여성을 트로피로 향유한다.

 

▶ 1984년 원작을 리메이크한 2016년 판 <고스트버스터즈>(폴 페이그 감독)는 남성주인공들을 모조리 여성으로 역전시킴으로써, 영웅적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쾌락이 무엇인지를 여성 관객들에게 알려준다.

 

반면 여성들은 상징계에서 남성처럼 주체의 자리를 부여받지 않는다. 이 ‘결여된 주체’라는 조건은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동일시할 가능성을 역설적으로 열어젖힌다. 이성애자 남성들은 철저히 레즈비언 중심으로 서사가 진행되는 영화 <캐롤>(토드 헤인즈 감독, 2016)을 관람하고도 여성주인공에게 공감하는 대신 비중 없는 조연 남성캐릭터들에게 굳이 이입한다. 무려 관엽식물과도 동일시하는 여성들과 대조적으로, 캐롤의 감정전개를 전혀 따라갈 수 없고 이 영화가 전체적으로 불편하다는 남성들의 불평은 정신분석학의 설명력을 쉽게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든다. ‘여성’ 고유의 특질로 후조시의 화분시점을 이해하는 것은 일견 타당해 보인다.

 

# 이토록 뜨거운 화분 없다: 젠더퀴어와 레즈비어니즘

 

그러나 남성과 여성으로의 ‘젠더 동일시’ 과정은 비록 일관되고 고정된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론 매우 불안정하다. 정신분석학은 분석의 일관성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모호성과 반대요소들을 억제해온 측면이 있다. ‘이성애 관계 속 여남의 비대칭적 욕망’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후조시의 섹슈얼리티 실천들을 우리는 경험한다. 화분시점에서의 동일시는 늘 ‘여성’의 입장에서 행해지지도 않고, 그 내용이 반드시 이성애적이지도 않다.

 

공과 수와 전지적 시점을 유연하게 오가는 후조시의 화분시점, 이것은 ‘결여된 주체’인 여성의 욕망일 뿐만 아니라 한편으론 젠더퀴어적인 욕망이다. 수의 몸 안에 성기를 삽입해 파트너와 함께 쾌락을 정성껏 조율하는 공으로서의 누군가, 혹은 최애캐와 배를 맞대고 질도 야오이구멍도 아닌 빡빡한 항문과 전립선으로 쾌락을 얻는 자신을 상상하는 누군가들은 정신분석학의 ‘여성’ 범주를 초과한다. 이 욕망을 ‘게이 선망’으로 조롱하고 마는 것은, 젠더의 경계를 교란하고 횡단하는 이들에 대한 무시이자 모욕이며 성정치의 가능성을 봉쇄하는 행위다.

 

또한, 여성 캐릭터가 부재한 BL에서 역설적으로 동일시의 내용은 레즈비언적일 수 있다. 시각문화 연구자 미조구치(Mizoguchi)는 BL문화를 이성애 범주들이 재구성될 수 있는 전복적인 레즈비언 담론 공간으로 본다.(Nagaike, Kazumi & Tomoko Aoyama “What is Japanese “BL Studies?”: A historical and analytical overview.” Boys Love Manga and Beyond: History, Culture, and Community in Japan. Univ. Press of Mississippi. 2015)

 

미조구치는 그녀를 포함한 레즈비언들이 어째서 여성끼리의 사랑을 다루는 ‘백합물’이 아닌 BL 남성 캐릭터들에게 섹슈얼리티와 성적 쾌락을 투영하는지를 캐릭터의 중성적인(androgynous) 모습에 근거해 설명한다. 남성으로 설정되었음에도 BL 캐릭터들은 ‘여성적 특징들’을 근본적으로 갖고 있다. 이런 미소년들을 일종의 ‘드랙’ 상태인 여성들로 읽음으로써 레즈비언으로서의 욕망을 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카시마 치아키 <우리의 최대공약수>(현대지능개발사, 2015) 소꿉친구인 남고생들의 사랑을 다루는 작품으로, 통상의 BL처럼 중성적인 외모가 돋보인다.

 

그러나 미조구치는 레즈비언을 협소한 의미로 두지 않고, 애드리안 리치(Adrienne Rich)의 ‘레즈비언 연속체’ 개념으로 확장한다.(Rich, Adrienne “Compulsory Heterosexuality and Lesbian Existence” Journal of Women’s History. Vol 15, No 3, Autumn 2003[1980]) 다른 여성과의 성적 결합 여부나 그에 대한 욕망으로 레즈비언을 규정하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인 임상의학적 정의다. 그보다는 여아에게 젖을 먹이는 것에서부터 여성적 우애까지, 성적 결합부터 정치적 연대까지, 끈끈한 행위의 ‘연속체’를 포괄하는 레즈비언 존재를 포착해야 한다고 리치는 말한다. 풍부한 내면생활을 공유하고, 남성의 횡포에 함께 저항하며, 정치적 지원을 제공하는 여성끼리의 다양한 결속을 ‘레즈비언 경험’으로 포함하는 것이다. 이러한 레즈비언적 체험을 부인함으로써 여성 간의 관계와 결속을 와해하는 ‘강제적 이성애’를 레즈비언 연속체 개념은 문제 삼는다.

 

마찬가지로 미조구치가 BL문화를 전복적인 레즈비언 담론 공간이라 칭할 때, 이것은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성애규범이 자연적이지 않고 구성된 개념임을 의식하기 시작하는 이성애자 여성들을 포괄한다. 팬덤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BL 2차 창작 문화에서는 캐릭터들을 통해 서로의 섹스판타지를 풀어내며 동성과 교류하는 동인들, ‘존잘님’에게 연인 버금가는 애착을 품는 후조시, 기프티콘이나 행사장에서 건네는 간식의 형태로 오가는 선물, ‘데이트’ 약속을 비롯한 각종 사랑의 언어들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미조구치는 BL을 향유하는 ‘이성애자 여성들’에 대해 이렇게 묻는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레즈비언으로 간주되지 않고 그들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지도 않습니다. (…) 하지만 여전히 그들을 명확한 이성애자로 볼 수 있을까요?”

 

# 화분의 적확한 거리: 무성애 관점과 후단시

 

후조시의 화분시점은 독자를 BL의 성애적 장면들로부터 한 발짝 떨어진 점잖은 관망자로 호명한다. 그러나 실상 BL문화에는 가부장적 현실에서 이루어지기 요원해 보이는 동등한 파트너십-연애 관계에 대한 열망과, 공 또는 수에 빙의하여 이상형과 완벽한 섹스를 간접체험 하는 이성애자 및 동성/양성애자들의 욕구와, 지정성별에서 위화감을 느끼는 퀴어가 젠더를 상상적 차원에서 횡단하는 실천과, 넓은 의미의 레즈비언적 유대가 들끓는다.

 

현실과 판타지를 분리하고, 감상자를 관음적 주체로 구성하는 용어인 화분시점은 다양한 섹슈얼리티의 맥락들을 비가시화하는 효과가 크다. 그러나 화분시점이 많은 후조시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가 단지 성욕 표현을 꺼리는 방어적 코르셋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누군가는 BL 주인공들의 감정선 변화 및 정서적 유대관계를 즐길 뿐, 주인공들이 BL 클리셰에 맞춰 로맨스 장면을 연출할 때 지루함과 거부감을 느낄 수 있다.(에이로맨틱에 관한 글로는 일다의 다음 기사를 참고. “당신의 로맨틱한 로망에 딴지를 걸어드립니다”)

 

무성애(Asexuality)와 유성애(Allosexuality) '사이'로 정체화하는 사람들인 회색무성애자(gray-Asexual, grey-Asexual)의 경우, 평소에는 성적 끌림을 느끼지 않다가 매우 제한된 상황에서만 끌림을 느끼거나 섹스를 원한다.(무성애자 플랫폼 ‘에이로그’ 참고. http://blog.naver.com/kakairue/220498731842) 섬세한 서사를 보여주는 BL 작품이 있는 반면, 개연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강도 높은 성애 묘사에 집중하는 BL 또한 많다. BL을 즐겨보는 회색무성애자가 특정한 서사 속 성애 묘사에 간혹 흥분하지만, 또한 화분의 시점을 주로 유지하는 것도 모순이 아닐 것이다.

 

끝으로 BL을 읽는 남성들, 일명 후단시(腐男子)가 마찬가지로 화분시점에서 남성 성애를 향유하는지도 질문해볼 수 있다. 요시모토(Yoshimoto)에 따르면 이성애자 남성들의 BL 소비는 전통적인 남성 정체성을 벗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Nagaike, Kazumi & Tomoko Aoyama, 위의 논문) 취약성과 수동성을 표현하는 BL캐릭터들을 보면서 많은 남성이 자유로움을 느낀다.

 

후단시들의 실천을 요시모토는 성적 지향과 관련짓기보다 전통적으로 터부시되어 온 남성의 여성성 표현과 관련짓는다. (그러나 BL의 미소년들을 대상으로 이성애적/동성애적 욕구를 표출하지 않을 이유란 없을 것이다.) 어떤 남성은 가부장적 역할모델로부터 해방감을 느끼며 화분의 위치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중일지 모른다. 혹은 좋아하는 작품의 2차 창작물을 즐기기 위해, 2차 창작에서 큰 지분을 차지하는 BL서사를 얼떨결에 읽어나가기도 할 것이다.

 

▶ 쿠로이와 치하야 <아랫집 동인남군>(현대지능개발사, 2015) BL을 읽는 남성에게 반한 남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

 

통상의 화분시점 논의는 BL에 투영되는 복잡한 욕구들을 설명하기 불충분해 보인다. 그러나 많은 후조시들이 지금 2017년에도 여전히 화분시점에 이입한다고 답할 때, ‘화분시점’이라는 기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고 있고, 어떤 욕망을 의미화해낼 수 있는지, 그 가상적이고도 잠재적인(virtual) 힘을 비평은 끈질기게 포착해가야 한다.

 

※ 이 연재의 제목인 <후조시, 상냥하게 가르쳐 줘>는 이도 기호우(井戸ぎほう) 1차 BL만화책 <상냥하게 가르쳐줘>(やさしくおしえて)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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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5/25 [12:06]  최종편집: ⓒ 일다
 
Aaa 17/05/25 [14:51] 수정 삭제  
  재밌어요!!!!
하양 17/05/26 [19:13] 수정 삭제  
  정말인가요??
독자 17/05/27 [12:47] 수정 삭제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매번 ㅎㅎ
독자2 17/05/28 [12:25] 수정 삭제  
  매번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이 생각하게 되고 넘 좋아요! 응원하고있어요>
아라리 17/05/30 [00:37] 수정 삭제  
  생각할거리가 많은 기사네요! 이렇게 해석할수도 있구나 싶었어요! 저는 단순히 이성애서사가 지겨워서 동인물이 재밌게 느껴지나 싶었는데 신기하네요 ㅎ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ㅇㅇ 17/06/10 [17:23] 수정 삭제  
  재밌게 읽었습니다. 정말 흥미로운 글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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