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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이 ‘성기’에 의해 결정되나요?
<혜원의 젠더 프리즘> 트랜스 섹슈얼리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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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소개: 혜원. 싸우는 여자, 비혼, 페미니스트, 아직은 한국.

 

글을 시작하기 전, 모두 이런 상상을 해보는 건 어떨까? 우리는 날 때부터 벗을 수 없는 색안경을 끼고 태어난다. 이 안경을 끼고 본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남자 혹은 여자, 오직 두 가지 성별로만 구분된다. 기본적으로 이들은 몸의 생김새로 구분된다. 여기에 남자에게는 ‘남자다움’이라는 이름을 붙인 일련의 속성들-강한, 합리적인, 거친, 지배적인, 독립적인, 객관적인, 신중한-이 요구되며 여자에게는 ‘여자다움’이라는 이름을 붙인 ‘남자다움’의 대립항에 해당하는 속성들-약한, 비합리적인, 부드러운, 종속적인, 의존적인, 주관적인, 충동적인-이 요구된다.

 

세상의 색이 얼마나 다양하든 간에, 이 색안경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왜냐하면 이 색안경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을 때여야만 이를 벗어버리고자 하는 용기를 마침내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1. 성별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분리형 일란성 쌍둥이로서 XY염색체와 남성의 외부성기를 지니고 태어나 자연스럽게 의료진에 의해 ‘남성’으로 성별을 지정 받았으나, 어릴 때 불행한 사고로 포경수술 중 성기가 타버리게 된다. 그가 남성의 성기를 잃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남성으로서의 삶’을 누릴 수 없으리라 여긴 부모는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는 청소년이 되어 또래 남자아이들과 오줌발 자랑도 할 수 없을 것이며, 훗날 여자친구가 생기더라도 성적 만족감을 줄 수 없을 것이다. 걱정하던 그들의 앞에 마치 기적처럼 나타난 사람은 존 머니 박사였다.

 

박사는 젠더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양육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하며, 아이를 여성으로 성전환하기를 권유한다. 이에 타고 남은 외부성기를 아예 절단하는 시술을 받은 아이는 이후 부모에 의해 여성으로 길러진다. ‘성별은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는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뒤집은 이 사건은 두고두고 회자되었다. ‘젠더는 사회문화적으로 구성되며 이에 따라 섹스(성별) 또한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을 널리 퍼뜨리게 되었다. 섹스는 타고난 것이고 젠더는 사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믿었다면, 반대로 그는 섹스야 말로 외부성기 수술과 호르몬 투입을 통해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믿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존 머니 박사는 정말 ‘젠더는 양육에 의해 결정되는 사회문화적 산물’이라고 믿었을까? 이러한 주장이야말로 페미니스트들이 오랫동안 외쳐온 주장이 아닌가? 안타깝게도 현실은 그와 너무나 달랐다. 여성학자 루인의 표현에 따르면, 존 머니 박사는 젠더 결정론자가 아니라 단지 성기 결정론자에 불과하다. 박사는 수술 이후 아이를 상담하며 외부성기의 형태에 꾸준히 집착하였으며, 아이가 이차성징을 겪고 완전히 성장하기 전 여성형 외부성기 재구성 수술(남근 흔적의 완전한 제거 및 질 구성 수술)에 동의하도록 강요했다. 심지어 아이가 원래의 남성 성기가 아닌 여성으로 성전환을 하게 된 이유는, 당시 의학기술의 수준에 따라 남성 성기보다는 여성 성기를 만드는 편이 훨씬 쉬웠기 때문이었다.

 

존 머니 박사는 ‘여자로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자주 학회에서 발표하였는데, 그 근거는 단지 한 장의 사진뿐이었다. 자신의 쌍둥이 남동생과는 달리 치마를 입고 조신하게 앉아있는 한 장의 사진. 자신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또 다른 의료진에 의해 여성이라는 성별로 재지정 받은 아이는 이후 여성의 이름으로 바꾸고, 치마를 입고, 그것만이 그의 행복을 위한 방법이라 굳게 믿었던 부모에 의해 적극적으로 여자로 ‘길러진다’.

 

아이는 ‘정상적으로 여성으로 자라고 있는지’ 확인받기 위해 존 머니 박사로부터 지속적인 상담을 받았다. 상담 과정 동안 아직 어린 아이에게 ‘정상적인 여성 성기’를 관찰하게 하고, 이성애 포르노를 보여주고, 심지어 쌍둥이 남동생과 이성 간의 가짜 성행위를 흉내 내도록 하였으며, 외부성기 재구성 수술을 강요하였다. 즉 ‘정상적인 여성’이 되기를, 젠더 규범에 순응하기를 폭력적으로 강요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결국 그는 자신의 전 생애에 걸쳐 재지정 받은 여성이라는 성별을 거부하고 이에 저항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과거 불행한 사고 사실을 알게 된 이후 스스로의 의지로 다시 ‘남성’으로 돌아가기를 택한다. 애초에, 신이 그를 만든 대로.

 

2. 브루스/브랜다, 존/조앤, 그리고 데이비드 라이머

 

▶ 존 콜라핀토 <As Nature Made Him>(신이 그를 만든 대로)

성과학사 희대의 사건 이후, 당사자의 험난한 삶을 추적해 글로 써낸 것은 롤링스톤지의 객원 기자였던 존 콜라핀토였다. 그는 기사를 책으로 엮어 출판하였으며, 그의 책은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다. 국내에는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로 번역되어 출간된 이 책의 원제가 바로 ‘As Nature Made Him’(신이 그를 만든 대로)이다. 이 책에서 콜라핀토는 존 머니 박사에 의해 성전환을 한 이후 아이의 혼란스럽고 괴로운 삶을 일관되게 서술한다. 그리고 이를 결국 신이 내려준 본성을 거스르려 했던 한 의학자에 의해 일어난 불행한 사건으로 결론짓는다.

 

한편 존 머니 박사의 라이벌이자 이에 반대되는 이론을 꾸준히 펼쳐온 다이아몬드 박사를 마치 영웅인 양 묘사한다. 다이아몬드 박사가 존 머니의 ‘젠더 결정론’(혹은 환경 결정론)에 대항해 주장한 것은 다름 아닌 성염색체와 호르몬에 의한 ‘섹스 결정론’이다. 생물학적 성별이야말로 신이 내려준 것이며, 이는 성 염색체와 호르몬을 통해 결정된다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이분법적 사회에서 두 번이나 성별을 바꿔야 했던 아이는 과연 정말로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일까? 그는 남성 성기를 달고 태어나 ‘브루스’라고 불렸다. 어릴 때 성기가 불타는 사고를 겪은 뒤에는 타버린 성기가 ‘제 구실을 못할 것’이라는 이유로 남성 성기를 재건하는 대신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브렌다’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어릴 때 그는 장난감 기관총과 트럭을 가지고 싶어했으며, 서서 소변보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남자같이 걷고, 다리를 벌리고 앉았으며, 청소나 결혼이나 화장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아이들과 싸움질을 하고 흙더미 속에서 뒹구는 게 일과였으며, 쌍둥이 (남)동생과 자신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힘들어했다. 브렌다는 존 머니와의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정상적인 여성이 되기를 강요받았으나, 상담 도중 소리를 지르며 도망가거나 대답을 하지 않는 등 그의 폭력적인 요구에 불응하며 저항하였다.

 

한편 당시 존 머니와 정반대 측에 서서 브루스/브렌다의 케이스를 연구한 다이아몬드는 그의 사례를 ‘존/조앤’이라는 익명의 이름을 붙여 인용하였다.

 

그는 열네 살이 되던 해 스스로 남성이 되기를 선택한 뒤 젖가슴을 제거하고, 음경을 만들어 달았으며, 남성 호르몬 주사를 투약 받았다. 이른바 ‘그에게 주어진 자연적인 성별’을 되찾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거쳐야 했던 것은 수년에 걸친 길고 긴 수술의 과정이었다. 트랜스 수술을 통해 남성이 되기를 선택하고 그가 스스로 지은 이름은 ‘데이비드’다. 성경 속 숱한 고난을 극복한 다윗에게서 빌려온 이름이었다.

 

“…데이비드는 남자로 태어나 의료장비에 거세되고, 정신의학계가 여성으로 만들고, 그 다음에야 본래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러나 그 자신으로 돌아오기 위해 그는 호르몬 투여와 수술을 받아야 했고, 또 그것을 원해서 얻어냈다. 그는 자연 발생적 감각을 얻기 위해 트렌스 섹슈얼리티를 알레고리화 한다.” -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 3장. 누군가를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것 중에서

 

3. 누군가를 공정하게 평가한다는 것

 

▶ 데이비드 라이머(왼쪽)의 결혼 사진

결국 데이비드 라이머를 둘러싼 존 머니와 다이아몬드 박사의 주장을 통해 우리는 섹스/젠더의 이분법, 그리고 성별 이분법을 다시금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이 외부성기를 기준으로 하든, 혹은 성염색체와 호르몬을 기준으로 하든, 결국 그들은 생물학적이고 해부학적 조건을 통해 남자/여자를 구분한 뒤 그를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포함시키려 했던 것이다.

 

여기에는 분명 이러한 결정의 한가운데 서있던 데이비드 라이머의 자기 인식 또한 포함된다. 이미 말했듯, 이 색안경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도 없으며, 이는 타인을 바라볼 때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바라볼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우리는 데이비드의 자기 자신에 대한 진술을 통해 그 규범의 존재를 추측할 수 있다.

 

“예전부터 쭉 이어지던 건 별로 없었어요. 난 내가 당연히 그래야 하는 모습과 얼마나 다르게 느끼는지, 또 실제로 얼마나 다른지도 알기 시작했죠. 그래도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습니다. 나는 내가 괴물이나 뭐 그런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후략)”

 

사람들이 자신을 ‘정상’으로 느끼게 되는 그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 인간/비인간의 구분을 통해 ‘인간됨’의 조건을 구성하며, 이를 벗어날 경우 스스로를 괴물로, 비정상적 존재로 여기게 하여 자신의 가치를 의심하며 심지어는 삶을 극단으로까지 몰고 가는 그 강력한 지배 규범은 무엇인가? 이 사회에서 자신의 인간됨을 포기하지 않고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떠한 선택지가 주어지는가? 사회의 정해진 범주를 벗어난 존재들은 어떤 방식으로 사회로부터 ‘처벌’받는가? 어떠한 폭력의 상황에 놓이는가? 그리고 이러한 존재에 대한 사회의 처벌과 강제, 폭력과 응징을 우리는 ‘타인의 것’으로 완전히 분리할 수 있는가?

 

처음으로 자신이 원래는 남자아이로 태어났다는 아버지의 고백을 들은 데이비드는 이렇게 반응했다.

 

“마음이 놓였어요. 그제서야 모든 수수께끼가 해결된 듯한 심정이었어요. 난 돌연변이가 아니었어요. 미친 것도 아니었고요.”

 

그리고 그는 묻는다.
“제 이름이 뭐였나요?”

 

그가 이후 스스로 선택한 남성의 삶으로 다시 접어들며 선택한 이름은 태어날 때 주어진 이름, ‘브루스’가 아닌 스스로 지은 이름 ‘데이비드’였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성인이 될 때까지 평생에 걸쳐 그를 고통에 빠트린 그 ‘여자’의 삶에서 다시 ‘남자’의 삶을 택하기 위해 그가 거쳐야 했던 또 다른 고통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길고 깊었다. 테스토스테론 주사를 맞고, 양쪽 유방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은 뒤 몇 주에 걸친 엄청난 통증에 시달렸다. 처음 기본적인 수준의 음경을 만들고 나서는 후유증으로 수술 받은 첫 해 열여덟 번에 걸쳐 입원을 했으며, 이후 3년 동안 주기적으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다.

 

신체적 고통뿐이 아니었다. 짧은 16년의 생에 걸쳐 만들어온 인간관계를, 그는 새로운 성별로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해 모두 버려야만 했다. 만들어낸 음경으로는 삽입 성교가 불가능했기 때문에 항우울제를 삼키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이후 성기능을 할 수 있도록 개발된 새로운 형태의 음경을 달기 위해 세 명의 외과의로부터 열세 시간에 걸친 두 번째 음경 성형술을 받고 오랜 회복기를 거쳤다. 그렇게 긴 고통을 견뎌내고 나서야 그가 겨우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여 아이를 기르며 사는 ‘정상적인 삶’이었다.

 

4. 젠더 규범이 강요한 삶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허물기>에서 데이비드 라이머의 사례를 언급하며, 독자들에게 색안경을 벗고 그의 삶을 다시 바라보길 권유한다. 책의 서문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때로는 젠더에 대한 규범적 관념이 살만한 삶을 계속 이어갈 능력을 약화시키면서 누군가의 ‘인간됨’(personhood)을 무너뜨릴 수 있다.” 그렇다면 데이비드 라이머가 그의 삶 전체를 통해 끊임없이 질문 받고 대답해야 했던 그 ‘규범’은 바로 무엇인가? 그의 어린 시절을 지배했던 강도 높은 관찰과 거듭된 시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인간됨’을 입증하기 위해 애를 쓰며 내보여야 했던 그 규제의 틀 말이다.

 

데이비드 라이머는 그러나 그에게 주어진 규제의 틀에 온전히 갇혀있지만은 않았다. 버틀러가 책 속에 인용한 데이비드의 인터뷰 일부를 옮겨본다. 그는 이후 2004년 38세의 나이에 자살로 짧은 삶을 마무리하였다.

 

“의사는 말했어요. “(질을 시술받아 여자로 살지 않으면) 삶이 힘들어질 거야. 부당한 괴롭힘을 당할 거고, 너무 외로워질 거고, 옆에 아무도 없게 될 거야.” 난 스스로에게 되뇌었어요. 아시다시피 그 당시 나이는 많지 않았지만, 그들 생각에 그게 내가 가야 할 유일한 길이라 여긴다면 이 사람들은 꽤 얄팍한 치들일 거라는 예감이 들었죠. 사람들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윤택한 삶을 사는 단 하나의 이유가 다리 사이에 달고 다니는 것 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말이에요. 그게 나에 대해 생각하는 전부라면, 나의 가치가 내 다리 사이에 있는 것 때문에 정당화되는 것이라면, 나는 완전한 실패자가 되겠죠.” (Diamond & Sigmundsen)

 

※ 참고 문헌

-주디스 버틀러 <젠더 허물기>(Undoing Gender)
-권김현영, 루인, 정희진 외 <남성성과 젠더>
-존 콜라핀토 <이상한 나라의 브렌다>(As Nature Made Him)
-데이비드 라이머의 일생을 책으로 펴낸 존 콜라핀토가 그의 자살 이후 슬레이트에 기고한 기사(영문) http://www.slate.com/articles/health_and_science/medical_examiner/2004/06/gender_gap.html

-루인, 트랜스젠더퀴어 연대기(공개용) https://docs.google.com/spreadsheets/d/1Fa0zh6z9Xe_XsJEr-RyTXm8bQmV3IZdW_m3ktC94c0o/edit?usp=shar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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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06 [01:11]  최종편집: ⓒ 일다
 
검은 17/07/06 [13:53] 수정 삭제  
  저는 예전에 이 사례를 젠더 결정론으로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후에 충격적인 자살 실화를 알게되었어요. 정말 슬픕니다. 자기 이론 세울려고 당사자들 이용해먹는 박사님들 참 잔인하구요. 지금 기사 보니까 더 안타깝네요. 데이비드의 말이 그의 고통을 들려주는 것 같아요.
안녕 17/07/25 [17:04] 수정 삭제  
  갑작스러운 사고에 전문가라는 의료진에게 전적으로 의존했던 부모, 여러 혼란 속에서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나가는 당사자, 이 사안을 바라보는 사회의 여러 시각들이 엉켜있는 사건이네요. 데이비드 라이머의 명복을 빌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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