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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덕질 아닌가요” 후조시 K님을 만나다
후조시 문화연구기획 <후조시, 상냥하게 가르쳐 줘> 4화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요오드, 비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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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요오드, 철가루, 비이커로 이루어진 퀴어문예창작집단 ‘물체주머니’는 2014년 <영혼을 위한 백합수우프>, 2차백합 동인지 <돌아오세요 305호에>를 발행하였고, 문예지 <소설퀴어>를 준비 중이다. (*후조시: Boys’ Love를 향유하는 사람들)

 

①덕질 생애사: <야오이를 아십니까>가 나에게 왔다

 

극장에 일본애니메이션 <하이큐!> 더빙판과 <킹 오브 프리즘> 응원 상영이 함께 걸린 6월 어느 날, 세 후조시가 만났다. 이 인터뷰는 두 애니메이션 관람 막간에 룸카페에서 이루어졌다. ‘물체주머니’ 멤버 요오드와 비이커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아이돌과 만화, BL장르 덕질을 이어온 K님의 덕질 생애사를 들어보았다.

 

현실 인간관계에서의 피로함을 만화 주인공들의 관계를 보며 대리만족한다는 K님, 최애(최고로 애정하는 캐릭터)의 회지와 BL소설을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읽는다는 K님, 밥 먹는 것만 빼고 아낌없이 덕질에 투자한다는 K님과의 대화를 통해 후조시의 즐거움과 고민을 공유해본다. K님은 현재 27살 사무직 종사자로, 수도권에서 부모님과 생활 중이다. 경어로 진행된 인터뷰는 가독성을 위해 평어로 정리했다.

 

▶ K님의 덕질생애곡선. x축은 나이, y축은 덕질의 강도를 나타낸다. 

 

-덕질, 특히 비엘을 어떻게 접했나.

 

“초등학교 5학년 때 수술을 했다. 진료를 기다리며 아무 생각 없이 편 잡지에 <야오이를 아십니까?>라는 페이지가 있었다. 그림하고, 이런 게 있다는 광고처럼. 이게 뭐지? 싶어서 집에 와 찾아보며 비엘(Boys’ Love의 약칭)을 접했다. 그 전에도 만화책을 보긴 봤다. 순정만화를 읽다가 소년만화로 넘어갔는데, <원피스>와 <최유기>의 일본 2차 창작 동인지가 대여점에 있었다. 그땐 2차 연성이라고 지칭하는지는 몰랐지만, 이렇게도 책이 나오는구나, 하고 처음 알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는 코스프레 동아리 활동을 했다. 말만 코스프레 동아리이지 사실 오타쿠 모임이었다. 만화 관련한 동아리가 그것뿐이라 들어갔다. 학교 축제 때 입을 코스프레 의상을 만들거나, 그림 그리는 분들은 판매할 팬시를 만들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회지를 사러 다니진 않았다. 지금은 ‘케이크 스퀘어’, ‘디 페스타’ 같은 종합동인행사도 있지만, 그땐 큰 행사가 코믹월드 정도밖에 없었다. 회지보다는 코팅 팬시, 엽서, 배지 같은 예쁜 그림이 들어간 물건들을 수집하러 코믹월드에 다녔다. 그러다 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인 소비의 길로 빠지게 되었다. 처음 갔던 온리전(특정 장르나 테마를 주제로 창작한 회지 판매전)이 원피스 온리전이다.”

 

-비엘을 처음 봤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열두 살에 하필 처음 본 게 성인본이었다. 그 전까지는 키스하는 장면만 나와도 엄마가 ‘너 이런 야한 거 누가 보래?’하면서 혼내는 집이었으니 얼마나 충격적이었겠는가? 하지만 궁금하지 않나. 이게 너무 충격적이니까. ‘뭔지 다시 한 번 찾아봐야겠어’ 라고 생각했다.(웃음)”

 

-남성 커플이라서 충격적이었던 건가, 아니면 성애 묘사 수위가 높아서?

 

“수위가 높아서. 예나 지금이나 남자랑 남자가 사귀든, 여자랑 여자가 사귀든, 남녀가 사귀든, 뭔 상관인데? 약간 이런 생각이 있다. 그래서 별로 동성 간 성애에 충격 받지 않았다. 그땐 인터넷이 너무 오픈 되어 있었고, 초등학생이 가입할 수 있는 카페에도 종종 성인물이 올라왔다. 접하기로는 남녀 성인물이 먼저였던 거 같다.

 

-덕질 2라운드의 시작은?

 

“대학을 졸업하고 스물 둘셋 그 즈음에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스스로의 무능력함에 우울증이 온 시기였는데 우연히 인터넷에서 아이돌 빅스(VIXX)와 엑소(EXO)의 뮤직비디오를 보게 되었다. 뱀파이어와 늑대인간이라는 흔치않은 소재가 흥미로웠다. 이들의 뮤비를 엄청나게 돌려보다 부정기를 거쳐 입덕(덕질의 시작)하게 되었다. 나는 원래 SNS를 안 했다. 특히 트위터는 어려워서 그거 어떻게 해, 하며 손을 안 댔었는데 엑소 때문에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모든 게 달라졌다. 트위터가 나를 망쳤다.(웃음) 아이돌 판은 트위터 중심으로 돌아갔고, 팬 카페나 팬 사이트보다 정보 유입 속도가 월등하게 빨랐다. 트위터를 하면서 모든 금전관리 체계가 망가지기 시작했다. 팬덤 쪽 트위터 유저들을 보면 구독만 하는 사람, 나처럼 굿즈를 수집하는 사람, 홈마(홈페이지 마스터의 준말. ‘대포 카메라’를 들고 연예인들의 고화질 사진을 촬영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리는 사람), 인터넷으로만 파는 라이트 덕후 등 되게 유형이 많다.”

 

-다양한 덕질을 하셨는데, 탈덕(덕질에서 벗어남) 혹은 휴덕(덕질을 잠시 쉼)하거나 장르를 옮기게 되는 이유는 뭘까.

 

“피곤한 게 탈덕 이유였다. 내가 이걸 나 좋자고 파는데 [현실 인물들인 내 아이돌이 다양한 구설수에 오르는 걸 보며] 스트레스를 받게 되니까. 엑소를 좋아할 때는 콘서트도 다니고, 밤샘도 해보고,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 거지? 싶을 정도로 열심히 덕질을 했다. 가장 힘든 시기에 나를 심적으로 구제한 그룹이라 계속 잘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미련이 없다면 거짓말인데 너무 피곤하니까 지켜는 보되 전처럼 손대고 싶지는 않은 상태다.”

 

②활동: 최애캐 굿즈와 회지를 모으고 보고 또 보는 즐거움

 

▶ 유쿠에 모에기 <소녀 감성에 연심>(서울문화사, 2016) 건장한 체격의 주인공이 여장을 좋아하며 느끼는 위화감과 해방감을 주되게 그린다.

-후조시, 동인녀, 야오녀, 비엘러, 이런 단어들 중에서 무엇이 제일 친숙한가.

 

“다 그렇게 친숙하진 않다. 보통 나를 지칭하기보다 내가 파는 장르를 많이 말하니까. 그냥 덕후가 제일 친숙하다. 예전에는 야오녀나 동인녀라는 말을 많이 썼던 거 같다.”

 

-동인녀를 정의해주실 수 있는가?

 

“만화를 좋아하면서 2차 창작도 같이 즐기는 사람, 특히 비엘 쪽으로? 이 단어들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냥 나 같은 사람을 이렇게 부르는구나 생각한다.”

 

-지금 하고 계신 활동을 구체적으로 알려 달라.

 

“주로 소비만 한다. 일단 원작을 사고. 원작의 애니메이션이 있으면 애니도 다운받고. 거의 수집하는 쪽이다. 공식, 비공식 굿즈를 사고. 2차 창작 회지도 사고. 모으고, 만족하고. 온리전은 최애들이 들어가는 행사면 거의 가는 편이다. 그 외에 최애가 나올 가능성이 있는 학교별 온리전이라든가, 커플링 온리전은 당연히 가고, 장르 통합 온리전도 자주 가는 편이다. 행사에서 책이나 굿즈를 사는 위주로 덕질을 한다.

 

구매한 회지는 일단 모아 놓고 묵힌 다음에, ‘나는 오늘 정말 이게 보고 싶어. 이걸 꼭 봐야겠어.’ 그럴 때마다 꺼내서 하나씩 읽는다. 아니면 행사 끝나고 집에 오면 피곤하니까, 좀 더 금방금방 읽을 수 있는 만화 회지를 모아서 일단 그거 다 읽고. 소설 회지는 지금 좀 피곤하니까 자고 일어나 생각하자, 이런다. (일동 웃음)

 

사 놓은 것 중에 이건 진짜 좋아, 평생 소장 각이야, 하는 책은 수시로 꺼내서 보는 편이다. 생각 날 때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계속 읽는다. 읽었는데 이게 진짜 너무 좋다, 그럼 삼 일 정도 반복해서 읽는다. 전체적으로 두 번 읽고, 좋아하는 장면은 계속 읽는다. 퇴근하고 오면 또 읽고 한참 동안 넣어뒀다가, 갑자기 불현듯 보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면 또 꺼내서 읽는 식이다.”

 

-만든 사람이 그 얘길 들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요즘은 e북으로 1차 비엘을 많이 본다. 불을 안 켜도 되고, 누워서 핸드폰으로 볼 수 있어서 좋다. e북도 아까 말한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읽는다.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폴더 안에 넣어둬서 한 번 훑고, 좋아하는 부분을 또 읽고. 원작도 마찬가지고 비슷한 패턴이다.”

 

-제일 빠른 트위터 중심으로 동인 활동을 하신다고 했는데, 트위터를 어떤 용도라고 생각하는가.

 

“연성 구독용이거나 정보 수집용. 아니면 뭘 사기 위해서, 또는 일하다가 심심할 때 헛소리하기 위해. 일상적인 것도 엄청 많이 쓴다. 생각나는 걸 쓰고 싶은데 손으로 쓰긴 싫을 때 올리는 거다. 아무 생각 없이.”

 

-그럼 트위터가 온라인의 다른 매체, 아니면 오프라인보다 편하거나 좋은가?

 

“나는 말로 뭔가를 표현하는 게 힘들다. 바로바로 정리가 안 되어서. 진짜 문자 그대로, 구두로는 ‘아무말대잔치’를 하기 때문에 손으로 써서 한 번 거르고 정리한 다음에 올리는 게 편하다. 단점도 있겠지만 익명은 낯가림 같은 걸 완화시켜준다는 점에서 좋다. 특히 트위터가 좋은 주된 이유는 실시간으로 정보를 얻기 쉽다는 점이다.”

 

-트위터를 하루에 얼마나 하나.

 

“지금은 좀 덜 하는 편이다. 거의 월루(‘월급루팡’의 준말. 사보타주를 캐주얼하게 이르는 말)용으로 쓴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피곤해서 오래는 못 하고. 깨어 있는 내내 한다고 보시면 된다.”

 

-덕질하는 사람들과 교류를 원하지는 않는지.

 

“교류를 하고 싶지만 관계를 이어가는 게 힘들어서 별로 선호하는 편은 아니다. 좀 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긴 할 거 같은데 내가 사교적인 편이 아니라서. 새로운 사람들하고 만나는 게 싫지는 않지만 어렵고 피곤해서 꺼리게 된다.”

 

③취향: “공攻은 조신하게 가정이나 돌봤으면 좋겠어요”

 

▶ 비엘취향문답과 성인취향문답. 트위터에서 공유되는 취향표를 편집하여 활용했다.  K님은 소재에 구애받기보다 작품의 완성도를 더 고려하는 편이고, 너그러운 취향이지만 관계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는 테마나 지나치게 자극적인 소재는 꺼리는 편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성폭력적인 주제나 고어한 소재가 그것이다.

 

-현재 배구 소재 만화에 주력하고 계신데, 스포츠 장르를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

 

“스포츠 소년들을 좋아한다. 가끔 바보같지만 열정과 패기가 있고 목표가 뚜렷한 캐릭터가 좋다. 내가 이리저리 흔들리는 사람이라, 중심 잡힌 캐릭터가 앞만 보며 달리는 게 나와 달라서 좋다. 나는 힘도 없고, 목표도 없고. 열정도 없고. 그냥 되는대로 살고 있는데. 대리만족이지만 그런 거 보면 좀 기분 좋아지지 않나? 내가 어떻게 살든 남이 잘 사는 거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취향표에 많은 것을 긍정적으로 표시하셨다.

 

“좋아한다기보다는, 별로 받아들이지 못할 게 없다는 편이 맞다. 선호하는 건 있지만 싫어하거나 꺼리는 건 많지 않은 편이다. HL(Hetero Love), GL(Girls’ Love), BL(Boys’ Love)도 안 가린다. 잘 만든 작품이랑 아닌 작품이랑, 그걸로 선호도가 갈리는 편이다.”

 

-인터뷰 시작 전 트위터에서 공유되는 비엘취향문답, 성인취향문답을 작성했다.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걸 짚어줄 수 있는가?

 

“보편적인 설정이 뒤집힌 걸 좋아한다. 얼마 전에 본 1차 소설 중에 ‘가정부 공攻’과 ‘유능한 듯 무능한 듯 잉여로운 수受’ 캐릭터가 있었다. 이게 많이 쓰이는 설정에서 뒤집힌 거잖나. 예컨대 가정과 관련된 일은 수가 많이 하고 유능한 공이 수를 도와준다와 같은. 이런 게 역전된 면에서 좋았다. 그때 봤던 수가, 집안일에 너무 무능했다.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서 거의 보살핌 받아야 하는 환자 수준이었는데 그게 되게 신선했다. 공수로 굳이 나눠보자면 떡대 수를 많이 좋아하고 무심 수, 유능 수도 좋아한다. 보통 비엘에서 수들은 수동적으로 나오는데, 나는 능동적이고 유능하게 나오는 걸 좋아한다. 공은 유능한 것도 좋지만 집에서 조신하게 가정이나 돌보는 것도 좋다.”

 

-그럼 수(受)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거나 공감이 가는가?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글이 전개되는 시점, 그냥 글을 따라가는 편이다.”

 

-비엘/성인 취향문답에서 고르신 건 어떤 건가.

 

“여장 소재를 되게 좋아한다. 뭔가, 있잖은가. 부조화. 그게 너무 좋다. 복흑(겉은 밝으나 속은 시커먼 이중적인 캐릭터), 에로, 능글, 쇼타(소아성애, 특히 어린 남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장르), S/M, 깨방정, 거의 다 좋다. 후회 공(수에게 차갑게 굴다가 후회하는 공)이 나오는 작품도 되게 많이 봤다. 이건 막장드라마 보는 느낌으로 좋아한다. 마지막 사이다를 위해 달리는. 고구마 백만 개 먹고 사이다 한 사발 마시려고. 그런 느낌으로 보는 거다.”

 

-아까 성인취향문답 작성하신 것 중에서 지뢰(절대 수용할 수 없는 취향)인 건?

 

“모브(엑스트라 인물, 뚜렷한 비중이 없는 1회용 캐릭터를 의미함. 특히 비엘에서는 주인공 캐릭터를 성적으로 농락하는 익명 캐릭터를 말함)는 별로 안 좋아한다. 러브가 없다, 러브가. 난교나 갱뱅(윤간)도 별로다. 관계가 발전할 수 없는 상태를 좋아하지 않는다. 스캇(대변에 흥분하는 패티시)은 너무 하드해서 별로고. 육변기(인간변기, 즉 어떠한 상대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성욕배출 대상을 경멸조로 가리킴) 이것도 마찬가지고. 후타나리(ふたなり: 남, 녀 성기를 동시에 갖고 있는 사람을 일컫는 동인설정으로, 인터섹스Intersex 당사자들을 판타지로 소비한다는 내부 비판이 있음)도 별로 안 좋아한다. 아니 여성기가 있을 거면 왜 비엘을 보지? 이런 느낌이다. 비엘이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싶다. 신체절단도 너무 고어해서 안 좋아하고. 아헤가오(アヘ顔, 입을 ‘아’하고 벌리고 혀를 ‘헤’하고 벌린 얼굴이라는 뜻으로 성적인 쾌감을 느끼는 얼굴을 뜻하는 일본의 은어)는 과장이 심해서 안 좋아한다. ‘매춘부’ 소재는 너무 [권력의] 상하 관계가 뚜렷하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안 좋아하고.

 

이 취향표엔 안 나와 있는데 시대물도 별로 안 좋아한다. 나는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 엄청 몰입해 보는 편이라서, 스케일이 크면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런 건 잔여감정이 많으니까 힘들어서 잘 안 본다. 배드 엔딩이랑 새드도 마찬가지다.”

 

④비엘과 현실의 간극, 비엘과 후조시의 간극

 

▶ 우치다 카오루 <그리고 모든 것이 움직인다>(현대지능개발사, 2013) 탄탄한 근육을 자랑하는 떡대 수 만화편집자(왼쪽)와 수에게 끌려 다니는 마음 여린 잉여 공 만화가(오른쪽)의 캐릭터 설정으로 유명한 작품

-비엘이 현실의 게이랑 얼마나 다르거나 혹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지.

 

“(펜을 꺼내 판타지 집합과 현실 집합의 교집합을 그리며) 이런 게 있다고 생각한다. 현실에다가 판타지를 가미한 느낌? 이성애 로맨스를 다루는 드라마와 별 다를 거 없다고 본다. 그냥 성별만 바꾼 느낌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보통의 연애랑 별로 다를 것도 없잖은가. 현대 배경의 비엘에서는 어쨌든 사람하고 사람 사이의 감정적 교류를 표현해내는 데 주력하는 거니까. 크게 차이점은 없다고 생각한다.”

 

-트위터에서 종종 논쟁이 되는 이야기, 비엘이 실제 게이 집단을 단순하게 낭만화한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사실 헤테로 로맨스도 현실이 섞인 판타지다. 그걸 성별만 바꿔놓은 건데 무슨 차이점이 있겠나. 유독 첫눈에 반한다거나, 하는 설정에 동성애가 들어가면 너무 까다로워지는 것 같다. 박찬욱 감독 영화 <아가씨>를 내 주변 사람들도 많이 봤는데 한 친구가 ‘얘네가 왜 사랑에 빠지는지 모르겠어’ 이러는 거다. 아니, 첫눈에 반했을 수도 있지. 하니까 ‘어 그렇네’ 말하더라. 그렇게 생각 자체를 못 한다는 게 좀 이상한 것 같다.

 

1차 비엘 감상평을 보면 그런 얘기가 되게 많이 나온다. 얘네가 왜 사랑에 빠지는지 모르겠어요. 개연성을 모르겠어요. 그런데 솔직히 헤테로 로맨스 소설에서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가 엄청 많이 나오지 않는가. 그걸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유독 이성애를 벗어나면 이런 말들이 많이 나오는 거 같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막, 엄격해진다.”

 

-덕질이나, 비엘에 대한 낙인이 있다고 느끼는가?

 

“아이돌을 파는 것도 안 좋은 시선이 있다. 그런 건 애들이나 하는 거지, 이런. 덕질을 숨기진 않는데, 그런 시선 자체가 긍정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반응에 나도 ‘뭐, 왜 그러는데요?’ 시비를 거는 편이고…. 비엘은 숨긴다. 반응이 극단적일 것 같아서.”

 

-걱정되는 반응이 있다면.

 

“사실 딱히 없는데, 혹시나 성소수자 당사자들이 듣기에 불편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굳이 말하지는 않는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내가 [취향을] 말해야 하나 싶어서 얘길 안 하는 편이다. 너 이상해,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기도 하고. 어쩌라고, 싶지만 안 좋은 말을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은가.”

 

-덕질이 이성애든 동성애든, K님의 성애나 연애관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가.

 

“영향이 없었다고 하면 좀 이상할 거 같다. 근데 큰 영향이 있었다고 하기도 좀 그렇다. 성소수자들이 실제로 어떻게 사는지에 관심을 가질 계기는 됐는데, 그 이상 영향을 받았다거나 하진 않은 것 같다. 내 성정체성에 대해서도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고. 그게 별로 나한테 중요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어떤 사람한테는 성정체성이 되게 심각한 고민이지 않나. 나는 이래도 저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여러 유형의 성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특히 무성애가 알려지면서 내가 어떤 사람일까에 대한 궁금증이 촉발된 건 있는데, 그걸 알게 된다고 내 인생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거나, 그러진 않을 거 같다.

 

자기검열에 대한 고민은 있다. 내 취향을 어느 정도까지 스스로 수용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요새 많이 하는데, 기준 만들기가 힘들어서 누가 기준점을 정해주면 좋겠다. 2016년 강남역 사건 이후로 페미니즘, 자아성찰 해보자, 이런 흐름이 강해지긴 했잖은가, 솔직히? 그런 거 때문에 생각이 많다. 내가 이런 걸 좋아하지만, 정말 좋아해도 되는 건가? 이래저래 생각이 많아져서 더 피곤하다.”

 

-어떤 소재가 나올 때 고민이 되는가.

 

“쇼타(소아성애) 같은 거. 싫어하는 건 아닌데 애정을 넘어선 성적인 부분은 창작도 소비도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남들이 창작하는 거에 뭐라고 하기는 좀 그렇다.”

 

-왜 안 된다고 생각하나.

 

“미성년 중에서도 고등학생이랑 초등학생이랑 다르니까.(쇼타는 보통 미취학 아동 내지 초등학생의 모습으로 재현됨) 약간 범죄라고 볼 수 있잖은가. 가상의 캐릭터지만 그걸 허용해도 되나? 아니면 소비해도 되나?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실제 범죄랑 이어질 수 있는 걸 소비해도 괜찮나 생각을 많이 하는데, 아직 어떻게 정리해야 될지 모르겠다.”

 

-K님은 판타지와 현실 사이에 이렇게 교집합이 있다고 생각하시기 때문에…

 

“그렇다. 내가 판타지라고 생각하지만 소비를 해도 되는 건가. 소아성애, 이런 건 이성애 포르노에서도 지탄받는 거지 않나. 사려던 책에 쇼타 소재의 글이 있었는데 내가 이걸 정말 사도되는 건가 고민하다가 안 산 경우도 있다.”

 

-19금 씬의 즐거움은 없나.

 

“딱히 씬을 엄청 선호하거나 그런 건 아니다. 전 연령본도 좋아한다. 그냥 스토리에 맞게 적절히 배치되면, 좀 더 시각적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그 정도? 스토리에 양념치는 정도랄까. MSG같은 느낌이다.”

 

-K님 말씀을 듣다보니까 떠오른 생각인데, 현실에서 직접적인 관계가 만들어지는 게 약간 피곤하고 본인의 스타일이 아니라고 느끼는 반면, 1차나 2차 작품들에서는 ‘관계’들을 보는 게 좋은 건가?

 

“인간관계가 피곤하지만,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은 욕구가 없지는 않다. 이 욕구가 충족되었으면 하는데 그걸 위해 내가 뭔가를 하기는 싫으니까, 작품에서 찾는 거 같다. 대리만족 같은 느낌이다.”

 

⑤덕질의 현재와 미래

 

-소비 항목 중 덕질이 몇 퍼센트나 차지하는가.

 

“먹는 거 아니면 거의 다. (일동 웃음) 극단적인 것까진 아니지만, 좀 하나에 집중하는 성향이 있어서. 그거 밖에 생각을 못 한다. 관심 없는 건 다 쳐내고. 옷이나 화장품 이런 거는 잘 안 사니까 거기에 쓸 돈을 덕질에 쓴다. 밥 먹는 거 아니면 진짜 다 들어간다고 보시면 된다.”

 

-혹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안 드나.

 

“안 한다. 돈으로 행복을 산다고 생각한다. 말은 후회한다고 하지만, 만족감이 있어서 그걸 샀다는 걸 후회한 적은 없고. 탈덕(덕질의 종결)했을 때 산 물건들을 처치하는 게 곤란하다, 정도다. 되파는 게 너무 번거롭다. 산다는 행위 자체를 후회해 본 적은 없는 거 같다.”

 

-다른 취미나 놀이보다 덕질이 제일 재밌는가.

 

“즐겁긴 한데 그냥, 덕질이 너무 일상에 깔려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그런 느낌이 크다. 회사 다니면서 뭘 깊게 생각할 여유가 없더라.”

 

-앞으로도 덕질을 할 거다, 혹은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지.

 

“할 거 같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소소하게 해왔던 거니까. 거의 1N년 이 생활이 이어진 거니까, 앞으로도 이어지지 않을까?”

 

-덕질은 나의 (  )라고 말한다면, 이 괄호 속에 뭐가 들어가 있을까.

 

“일상이라고밖에 생각이 안 난다. 너무 깔려 있어서. 이걸 걷어내면 내가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거 같고. 이거 걷어내면 아무것도 없다. 진짜 없는 거 같다. 큰일이다, 정말. 내 덕질 장르가 애니메이션, 아이돌, 이런 서브컬처라서 그렇지, 이런 걸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덕질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자기가 몰입하게 되는 거 한두 가지 정도 있잖은가. 다 똑같은 거 같다. 파는 장르만 다른 거지. 하지만 유독 서브컬처 쪽에 대한 편견과 괄시가 심한 것 같긴 하다.”

 

-후조시 K님 인터뷰를 마치며

 

두 시간에 걸쳐 진행된 K님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팬덤의 주 플랫폼 변동과 그에 따른 팬 정체성의 재구성, 비엘의 다양한 젠더 재현을 통해 얻는 만족감, 일탈이 아닌 일상으로서의 덕질 등 다양한 의미들과 마주했다.

 

여느 팬들과 마찬가지로 K님은 가입절차가 번거로운 커뮤니티나 팬사이트 대신 신속한 정보유통이 이루어지는 SNS 플랫폼(트위터)을 적극 활용 중이었다. 트위터는 덕질을 위한 정보수집의 매체이자 또한 ‘트페미’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로 페미니즘 이슈가 활발하게 논의되는 공간이다. 페미니즘 담론과 덕질의 공간이 교차하고, 팬 활동이 조직화되기보다 개별화된 형태로 이루어지는 상황 속에서 K님은 팬덤의 내부 규칙보다는 덕질의 윤리를 고민하며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내야 하는 순간들과 자주 직면한다.

 

취향문답을 작성하면서는 ‘떡대 수’, ‘가정부 공’, ‘여장’ 등의 소재에 흥미를 느낀다고 답했다. 통상의 젠더 재현이나 젠더 수행이 비틀리는 작품을 볼 때 K님이 느끼는 만족감에 우리도 공감할 수 있었다.

 

비엘을 좋아하지만 K님에게 그것은 덕질이라는 긴 생애과정의 일부였다. K님은 덕질을 피곤한 일상 속에서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문화 생활의 일종이자, 누구든 하고 있을 몰입의 행위로 해석했다. 그렇기에 덕질은 언젠가 졸업해야 할 일탈적 과정이 아닌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나갈 일상이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세 후조시는 설레는 마음으로 야광봉을 흔들러 극장으로 떠났다. 덕후력이 충만해지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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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09 [16:20]  최종편집: ⓒ 일다
 
purple 17/07/13 [19:10] 수정 삭제  
  비엘 장르가 그렇게 넓은가요? 추천 만화도 알려주시면 입문하고 싶네요 ㅎㅎ
안녕 17/07/25 [16:52] 수정 삭제  
  처음 읽을 때는 약간 당황스러웠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드는 매력이 있네요.
17/09/08 [01:57] 수정 삭제  
  더 다양한 취향 가진 사람의 인터뷰를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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