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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홀로서기
[머리 짧은 여자] 주6일 하루 12시간 노동으로 유지되는 삶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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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점 구인>
근무요일: 주 2회 휴무(주중)
근무시간: 오전 9시-오후 9시
급여: 월 170만 원

 

주휴수당을 빼고 계산해야 최저임금이 겨우 넘는 수준의 급여였다. 하루 12시간의 고강도 노동이지만 주 2회 휴무도 많다며, 엄마는 주 1회 휴무하는 곳을 다시 찾아봐야겠다고 말한다. 보험료, 대출이자 및 원금, 통신료 등을 포함해 한 달에 나가야 할 고정비용만 130만원이다. 생활비로 남은 40만원은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 엄마의 홀로서기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엄마는 재혼하고 살던 집을 나왔다. 재혼한지 벌써 9년째. 그 사이 집을 나왔다, 들어갔다 한 횟수가 열손가락을 넘었다. 늘 이번이 마지막이길 바랐지만 엄마의 홀로서기는 힘들었다.

 

재혼한 남자는 엄마와 식당을 차려 함께 일했는데, 수입이 얼마인지 알려주지 않으면서 돈도 주지 않았다. 일한지 거의 한달 반이 되어가건만 엄마가 생활비랍시고 받은 돈은 60만원이 전부다. 그가 배달용 오토바이를 사느라 엄마이름으로 받은 추가 대출금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나면 남는 돈이 없었다. 엄마는 일한 것에 대한 정당한 보수를 달라고 따져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엄마 소유의 차를 팔라는 ‘명령’이었다. 차는 엄마의 유일한 재산이다. 함께 일궈온 집(겸 가게)에 대한 소유권은 모두 그에게 있었다. 결국 엄마는 자신의 유일한 재산인 차를 타고 집을 나왔다.

 

그가 뻔뻔하고 약은 사람이라는 건 진작 알고 있었다. 함께 사는 9년 동안 수입이 얼마인지 알려준 적이 없었고, 엄마의 수입은 곧 그의 지갑으로 들어갔다. 그러니 갈등이 생겨 집을 나와도 엄마는 홀로서기가 힘들 수밖에 없었다. 엄마 수중의 돈으로는 방 하나 구하기도 벅찼으니까. 그때마다 엄마는 숙식이 가능한 일터를 찾아 나섰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렇게 다시 살던 집으로 돌아간 세월이 쌓여 9년이 됐다. 그도 돈이 없는 엄마가 다시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는 상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어쩌다 생긴 엄마의 차도 그래서 팔아버리라는 것이겠지.

 

그는 엄마가 취미 생활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문화센터 같은 데 나가서 가족관계 이외의 관계도 맺고 새로운 것도 배워볼까 하면 무조건 ‘안 된다’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쓸데없이 돈을 쓰고 다른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엄마가 기댈 수 있는 관계는 오직 그 자신뿐이어야 했다.

 

월급이 최소 200은 돼야한다며, 엄마는 주 1회 휴무하는 일자리를 다시 찾기 시작했다. 나는 엄마가 덜 힘든 곳에서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여유가 생기면 운동을 좋아하는 엄마가 수영장에 다니면서 또래 친구들을 만나고, 스트레스도 풀기를 바랐다. 차를 파는 게 어떨지 조심스레 제안했지만 엄마는 단호했다. 차를 팔면 출퇴근도 어렵고, 차라도 있어야 이곳저곳 다니며 스트레스를 풀지 않겠냐고. 그래 맞는 얘기다. 수영장도 차가 있어야 다니지….

 

“엄마는 참 일복이 많아.”

엄마는 웃으며 말했지만, 나는 안다. 엄마가 일복이 많은 사람이라서 일이 많은 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일이 많은 곳을 찾아다녀야 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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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07/18 [09:59]  최종편집: ⓒ 일다
 
푸른 17/07/18 [20:22] 수정 삭제  
  엄마의 홀로서기를 응원할게요...
chilly 17/07/19 [00:44] 수정 삭제  
  힘든 시간들 거치고 계시네요. 마음 가서 댓글 남겨요. 힘내세요 작가님도~
빗방울 17/07/21 [00:31] 수정 삭제  
  응원합니다.힘내세요!!!
17/08/07 [17:48] 수정 삭제  
  암편 냄져는 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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