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엿한 ‘한남’으로 성장한 동생은 가족들 중에 자기 혼자만 사회생활을 하는 줄 안다. 동생은 요즘 회사 술자리에 “괜히 무서워서” 여자 사원들은 끼워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애초에 술자리에서 찔릴만한 짓을 하는 남자들이 문제라고 했더니, 누나가 뭘 아냐며 되레 큰 소리다.
동생은 나를 보면 늘 한심하다는 투로 말한다. 누나랑은 말이 안 통한다며, 자기 할 말 다 하고 내 입을 막아버린다. 상대가 나를 한심하게 볼 땐 나도 똑같이 상대를 한심하게 봐주는 게 내가 터득한 요령이다. 동생과 이미 많은 대화 시도 끝에 도출해낸 결론이다.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정보를 알려줘 봤자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내가 지난번에 술 마시러 후문 갔다가 역대급 진상을 봤잖아.”
이야기를 듣다보니 동생이 묘사한 사람의 외모가 꼭 동생 같다. 모히칸 꽁지머리에 타투를 하고, 길에서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친구들과 욕하는 동생 모습이 그려졌다. “야, 그거 완전 너 아니냐. 피어싱만 하면 딱 너네!” 나는 일부러 더 크게 과장하며 말했다.
“아니, 길에서 엄청 시끄럽게 자기 친구들이랑 욕을 막 하더라니까?”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동생은 그 여자가 시끄럽게 욕하는 것이 싫었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그냥 젊은 여자가 ‘그 꼴’로, 담배까지 피우며, 욕설을 하는 게 맘에 안 들었던 거겠지. 살면서 길에서 시끄럽게 욕하는 남자를 백 번도 넘게 봤다. 하지만 동생은 한 번도 그들을 진상이라며 지목한 적이 없다.
옆에서 엄마가 “완전 미친애네” 라며 대화를 받아주니 동생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어쩜 저렇게 착실하게 ‘한남’으로 커버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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