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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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관찰기
<여자가 쓰는 집과 밥 이야기> 밥 공부②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김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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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종이 땡땡땡>, <남자의 결혼 여자의 이혼>을 집필한 김혜련 작가의 새 연재가 시작됩니다. 여자가 쓰는 일상의 이야기, 삶의 근원적 의미를 찾는 여정과 깨달음, 즐거움에 대한 칼럼입니다. -편집자 주

 

매일 아침 집안의 모든 물건들이 우리 손으로 다시 만들어져 우리들 자신의 손에서 ‘탄생되어 나올’ 수 있다면 우리들의 삶은 얼마나 위대한 삶이 되랴! (바슐라르, 공간의 시학)

 

▶ 봄날의 부엌  ⓒ김혜련

 

아름다운 부엌을 꿈꾸다

 

“압구정동 같은 부엌에 선비의 방이라…”

 

우리 집에 처음 온, 육십 대의 재일교포 남성의 말이다. 그는 부엌은 최신식으로 세련되었고, 방은 조선시대 선비의 방처럼 청빈하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우리 집은 방과 부엌 공간의 느낌이 확연히 다르다. 부엌은 가능한 편하고 환한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건 내가 부엌이라는 공간에 들어서는 걸 싫어하기 때문이다. 부엌에 들어서려면 뭔지 모르지만 큰 병명이 나올 것만 같은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병원엘 가야할 때나, 만나기 싫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먼 길을 버스와 지하철을 번갈아가며 타고 가야할 때처럼 몸은 저절로 무기력해지고 기운이 쫙 빠진다. 등에 거대한 짐을 잔뜩 진 것 같이 피곤해진다.

 

이런 내가 남은 생애 동안 스스로에게 정성스런 밥을 올리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우선 부엌을 가능한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려 했다. 들어서고 싶은 공간, 활기에 찬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채워서 아름다운 공간’이 있고 ‘비워서 아름다운 공간’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남쪽의 산사(山寺)가 있다. 선암사와 송광사. 두 절은 비슷한 위치에 있는데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둘 다 사람을 끄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아름다움의 차이가 ‘채움’과 ‘비움’으로 느껴졌다. 송광사는 비워서 절제된 꼿꼿한 아름다움이라면 선암사는 꽉 채운 아름다움이었다. 이런저런 사채들과 건축물로 채워져 있는데 그것이 어수선하거나 번다함이 아니라 풍성하고 아름다웠다. 내적 자기 질서를 지닌 ‘채움’ 이었다.

 

방은 비우고 부엌은 채워서 각기 다른 아름다운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처음엔 아름다운 부엌에 대한 별 개념이 없으니 인터넷을 찾아봤다. ‘아름다운 부엌’으로 치니 정말 많은 부엌들이 주르르 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부엌들이 많았지만 그 부엌들은 보이기 위한 부엌이지 실제로 그곳에서 살아가는 공간으로 보이지 않았다. 오래 보다보면 멀미가 날 것 같았다.

 

그래서 언젠가부터 남의 집에 가면 부엌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아파트의 부엌들은 다 비슷했다. 최근에 지어지고 평수가 큰 아파트에는 시스템 키친이라는 세련되고 멋진 부엌이 들어와 있었다. 하지만 그 부엌이 내게 말을 걸어오지는 않았다.

 

경주에서도 골짜기에 들어가 살고 있는 한 다인(茶人)의 집 부엌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주변 경관이 수려한 그의 집은 아름다웠고 모든 게 다 작았다. 그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 부엌이었다. 한 사람이 들어가 움직이기도 어려운 공간이었다. 게다가 몹시 추웠다. 부엌에서 사람의 체취를 맡기도 어려웠다. 차 마시는 공간은 작아서 따뜻하고 아름다운데, 부엌은 협소하고 불편했다. 그 집은 밥보다는 차(茶)가 중요하다고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이웃의 부엌

 

▶ 서쪽 창으로 햇살이 가득 들어오면 부엌의 사물들은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다.  ⓒ김혜련

부엌이 집의 중심으로 보이는 집이 있었다. 같은 동네에 살고 있는 육십이 넘은 분의 부엌이다. 일찍이 ‘심심하게 살고 싶어서’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인 경주로 내려와 살고 계시다. 그 집은 부엌 채가 따로 있다. 오래된 옛집의 안채는 헐고 새로 집을 지었는데 사랑채는 그대로 두고 부엌으로 쓰고 있다. 그 부엌에 가면 뭔가 다른 세계에 온 듯한 느낌이 든다. 그 느낌이 어디서 올까? 어느 가을 그 부엌의 풍경과 느낌이다.

 

“작고 오밀조밀한 부엌엔 온갖 색깔이 있다. 선명한 원색 빛을 지닌 그릇들, 모양이 서로 다른 오래된 아름다운 의자들, 든든한 식탁, 작은 가구들이 햇살 속에 반짝거린다. 마당에는 가을 햇살을 받은 벚나무의 붉고 노란 단풍들이 투명한 빛으로 빛난다. 푸른 대나무 잎 사이사이 빛의 물결이 흐른다. 밥의 온기가 퍼지는 공간에 산스크리트어로 발음되는 만트라가 고요히 작은 웅얼거림으로 흐르고 있다. 문득 이토록 눈부시도록 강렬한 色이야말로 空이구나 하는 느낌. 이 부엌의 강렬한 빛깔들, 아름다움 속에서 비로소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의미가 활짝 드러난다.” (2014년 11월)

 

사십여 년 부엌 살림을 해 온, 그 살림에 애정을 지니고 살아온 한 개성 있는 존재의 부엌을 보는 일. 그것이 굉장한 즐거움과 아름다움, 그리고 어떤 종교성까지를 느끼게 되는 일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아침에 차 한 잔을 들고 뒤뜰로 걸어갈 때, 그 찰랑거리는 차가 쏟아지지 않게 차 한 잔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 나의 수행입니다.”

 

또 다른 부엌이 있다. 이웃의 부엌이다. 집도 작고 부엌도 작다. 부엌의 물건들은 다 손수 만든 것들이다. 행주, 식탁보, 찻잔받침, 냄비받침… 모두 바느질하고 수를 놓아 만들었다. 식탁, 찬장, 의자 같은 부엌 가구들도 스스로 만든 유일한 것들이다. 그릇들은 한꺼번에 세트로 구매한 게 아니라 수 십 년 차곡차곡 모아온 것들이어서 제각각의 특징이 있다. 이 부엌에 들어서면 ‘아…’ 하고 숨이 크게 쉬어진다. 정갈하고 섬세한 아름다움에 저절로 나오는 감탄사다. 작은 키에 몸무게가 오십 키로가 채 안 되는 가난한 여인이 창조한 자기 세계다.

 

“어제는 참 힘든 하루였어요. 이런저런 걱정스런 일들도 많고… 그런데 새벽에 일어나 부엌에 서니, 내 공간에 들어서니, 이게 내 삶이구나, 내가 내 삶을 살고 있구나… 스스로 믿어지고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감이 들었어요.”

 

단 한 번도 부엌이 내 공간이라고 느껴본 적이 없는 나는, 그의 말에 놀란다. ‘부엌이 자신의 공간이라고 느끼는 구나…’

 

누구나 자신의 공간에 있을 때 자기답다고 느낀다. 평생 밥을 해도 부엌을 자신의 공간으로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내가 수십 년 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학교를 내 공간이라고 느껴보지 못한 것처럼…. 자신의 공간이 어디인가? ‘내 삶을 살고 있다고 스스로가 믿어지는’ 공간은 어딜까? 그런 공간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은 얼마나 다를 것인가? 그의 말은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부엌을 자기 공간이라고 느끼고, 그곳에서 비로소 자신이 믿어지는 사람의 삶을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의 삶은 든든해 보였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남다른 기품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가장 근원적인 것에 정성과 애정을 바치는 이에게서 느껴지는 삶의 품격이었다. 나는 부엌이라는 공간의 외관을 관찰하고 찾아보는 내 행위의 부질없음을 이해했다.

 

▶ 겨울의 부엌 한쪽   ⓒ김혜련

 

부엌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살림’

 

부엌의 차이는 공간의 크기 또는 싱크대나 그릇, 부엌 기구의 고급스러움 등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 부엌에서 밥을 하고, 살림을 사는 태도의 차이였다. 기계적으로 그 일을 하는지, 지겨워하며 할 수 없어 하는지, 아니면 그 일에서 자기다움이나 삶의 기쁨을 느끼는지…. 말 그대로의 ‘살림’을 살고 있는 부엌에는 그 ‘살림살이’라는 행위를 통해 그 공간에 부여된 빛과 아름다움이 있었다. 가장 자기답고 종교적이고 초월적 공간이기조차 했다.

 

‘살림 여성주의자’ 김정희는 ‘살림’이라는 한 마디는 일자무식의 어머니들이 도달한 정신적 경지를 유감없이 드러내준다고 말한다. 이 한 마디가 남성이 만들어낸 모든 사상이나 철학을 압도할 만한 위용을 내품는다고 느낀다. 문자 이전의 구전시대에 발화되었을 이 말이 ‘원수를 내 몸 같이 사랑하라’ ‘자리이타(自利利他)’와 같은 예수나 부처의 성구(聖句)에 비견될만한 깨달음과 웅장한 울림을 준다고 이야기한다. (김정희, <나의 페미니즘 레시피>)

 

나는 그 위대한 언어가 구체적으로 실현된 부엌을 본 것이다. 내가 부엌 공간을 세련되고 아름다운 물건들로 아무리 채운다 한들, ‘살림’을 살지 않는 한 나의 부엌은 아무런 말을 걸지 않을 것이다. 나의 삶은 여전히 뿌리 없이 허공 위에서 흔들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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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27 [22:13]  최종편집: ⓒ 일다
 
미리 17/11/01 [12:48] 수정 삭제  
  주방은 정신이 결여된 말같고 부엌은 그야말로 희노애락 삶의 깊이가 묻어있는 말처럼 느껴집니다 아름다운 부엌을 꾸리고 계시네요...좋은 글 잘 읽고 있습니다^^
보헤미안 17/11/02 [13:59] 수정 삭제  
  밝은 부엌이 참 보기 좋네요. 음식 만들 맛이 나는 부엌이 따로 있다는 걸 저도 뒤늦게 알게되었습니다. ㅎㅎ
빨간모자 17/11/06 [17:19] 수정 삭제  
  제 부엌은 절대로 관찰하시면 안됩니다. 후내년 쯤엔 제 부엌 식탁에서 함께 수저를 들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요. (늑대가 무서워요. ㅎㅎ ㅎ)
17/11/13 [12:34] 수정 삭제  
  눈 내린 날의 부엌창가 매우 아름답네요. 저는 요즘 부엌과 친해지려 노력하고 있어요. 의무감을 지우니 학교에 처음가는 아이처럼 신기로움도 있네요.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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