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가 받을 수 있는 ‘존중’은 어느만큼인가?

[나의 알바노동기] 우리가 일터에서 듣는 말들

금주 | 기사입력 2017/11/08 [14:09]

알바가 받을 수 있는 ‘존중’은 어느만큼인가?

[나의 알바노동기] 우리가 일터에서 듣는 말들

금주 | 입력 : 2017/11/08 [14:09]

알바, 알바, 알바. 벗어날 수 없는 알바.
어떤 사람들은 알바를 하지 말고 그 시간에 공부를 해서 장학금을 받으라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일 하지 말고 경력에 도움이 되는 인턴은 어떻겠니? 한다.
어떤 사람들은 너 그러다 큰일 난다며 몸을 챙기라고도 한다.
사실 어떤 말도 나에겐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여기에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벗어날 수 없는 비생산적 알바를 계속하는 이유에 대한 것이 아니다.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도시를 자랑으로 여기는 나라에서 오늘도 반짝반짝한 가게를 지키는 알바들이 무슨 말을 듣고 사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알바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좋았던 6개월

 

나는 스물여덟 살이고 스무 살부터 알바를 했다. 집에 돈이 필요한 것에 비해서는 늦게 알바를 시작한 편이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는 지금도, 월급으로는 돈을 모을 수 없어 알바를 겸하고 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 알바만을 고집하던 내가 몇 년 만에 개인사업장에서 일하고 있다. 원래 나는 사람이 많고 시끌벅적한 큰 매장에서 일하기를 좋아했다. 바쁜 것이 좋고, 손님이 많고 직원도 많아 즐겁게 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퇴근 전후로 놀러 다니는 것을 좋아했고, 활발한 거리가 좋았다. 그러려면 도심에서 할 수 있는 알바가 가장 좋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내가 그렇게 아는 사람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알바 하는 매장에서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이때 내가 아직도 취직을 못했다는 사실은 엄마의 은근한 압박과 더불어 스트레스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구직을 했지만, 알바를 해야만 가난의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드디어 인지하고 주말 알바를 시작한 것이다. 이번엔 아는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아서 작은 개인사업장을 골랐다.

 

개인사업자들을 비하하려는 건 결코 아니다. 다만 한국의 알바들은 어디서든 고통을 받는다는 점만 말하고 싶다. 개인사업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정말 가족 같을 수도 있고, 가족에서 ‘가’를 빼고 X같을 수도 있다.

 

실제로 가족 또는 친구 같았던 사장님이 있었다. 싱글맘이었는데, 면접을 보더니 내가 일을 잘 할 것 같다며 가게에서 제시할 수 있는 금액에서 더 올려 주며 점심값을 주겠다고 했다. 나는 최저임금과 주휴 수당을 더한 시급 외에는 절대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사장님이 거만하지 않고 왠지 좋았다. (면접 때는 나도 고용주에 대한 면접을 본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최저임금은 최고임금이 되게 마련이다. 최저임금을 제시하면서 프랜차이즈 본사 직영 수준이라며 아주 높게 쳐주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그리고 점심을 매장에 있는 무언가로 때우게 하지 않고 식비를 현금으로 주는 곳은 처음 보았다. 사장님한테는 미안한 얘기지만, 왠지 가게가 정말로 최저임금 못 줄 것처럼 생겼었다. 이 분이 나를 존중해 준다고 생각해서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데도 일하기로 결정했다. 스물세 살 때의 일이다.

 

사장님은 내게 칭찬 일색이었고, 퇴근 후 아이스크림 기계 밑에 앉아 같이 맥주를 마셨다. 나의 알바에 대한 기억 중 가장 좋은 6개월이었다. 이렇게 좋은 기억도 있다. 하지만 좋은 기억은 길을 걷다 뒤를 돌아보면 먼 곳에서 반짝거릴 뿐이다.

 

▶ 알바노동을 하는 나는 모래 산 위에 서 있는 느낌이다.  ⓒ삽화 제작: 서영

 

출근 5개월만에 아파서 조퇴하겠다고 했을 때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지금 일하는 사업장 덕분이다. 이곳은 내가 제시한 시급을 주기로 했고, 내가 원하는 시간대로 맞춰 주었다. 왜 그렇게 나를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내 이력서는 보지도 않았다), 나는 대체로 알바는 어느 시점부터는 이력서를 보고 부르는 곳으로 간다. 여기도 시간으로 따져 보면 주휴 수당을 받아야 하지만, 근무 인원이 적어 얼마를 버는지는 몰라도 주휴 수당을 받을 수는 없는 곳이었다. 그런데 개인사업장인데도 근로계약서를 작성했다. (박수를 쳐 줍시다!) 시급과 시간, 날짜 사인. 부부가 하는 곳이고(사실 이 지점에서 도망치라고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식사를 챙겨 주(진 않고 먹으라고 걱정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주중 근무와 주말 알바를 뛰며 5개월간 일했다. 그러다 얼마 전 사무실의 에어컨과 밖의 온도 차로 심한 감기에 걸렸다. 평소 오천 년은 살 기세로 비타민과 각종 영양제를 챙겨 먹는 내가 겨울에도 안 걸렸던 여름 감기에 걸렸다. 정신이 몽롱하고 초록색 가래와 기침이 나왔다. 그런 상태로 두 개의 직장 모두 출근했다. 토요일에는 더 이상 버틸 수 없어 일찍 퇴근하고 싶다고 말했다. 오전 열한 시에 출근해서 저녁 일곱 시까지 일해야 했지만, 오늘은 오후 세 시에 들어가도 되겠냐고 물었다. 이미 감기에 걸렸다고 말하자마자 ‘손님에게 옮는다’, ‘기침을 안 할 수 있겠냐’는 말을 들은 후였다.

 

평소 부부 중 한 사람은 나에게 ‘둘만 일하면 마음 편하고 좋지만 힘들기 때문에 알바를 쓰는 것’이라고 선심 쓰듯 말하곤 했다. 그런데 내가 아파서 조퇴를 하겠다고 하니 갑자기 나의 미소를 좋아하던 그 분은 표정이 굳었다. 일곱 시 퇴근인데 다섯 시까지는 있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싸울 기력도 없어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몸 깎아 일하는 것 하루 이틀도 아니고….

 

그렇게 일하던 중, 갑자기 부부 중 다른 한 사람이 나에게 세 시에 퇴근하라고 했다. “왔던 손님도 도망가겠다” 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세 시에 퇴근하는 나의 뒤통수에는 “아프면 일시키는 입장에서도 불편하다”는 말이 꽂혔다. 순간, 나의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이 땅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지는 기분이었다.

 

두 개나 일을 하면서 몸 관리를 못한 내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은 아플 수 있다. 나의 평일 일터에서 주말 알바를 하지 않는 사람들도 지각을 하고 아파서 출근을 못 할 때가 있다. 나는 아파서 조퇴하겠다고 한 그 날까지 지각과 조퇴, 무단결근은 절대 하지 않았고 항상 10분 전에 출근했다. 그런데 5개월 만에 아파서 일찍 퇴근하는데 내가 일시키기 불편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가? 본인은 피곤한데 내가 해사하게 웃고 다녀서 좋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아파도 계속 웃기를 원했나 보다.

 

그 한마디에 맘 상했다고 이렇게 긴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아플 때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곳에서 누가 일하고 싶을까? 그곳은 식사 시간이 따로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저녁 시간대에 손님이 없으면 알바비 주는 게 아까워 나의 퇴근 시간을 조정하려 들곤 했다. 나는 나대로 그런 일에 이골이 나 있었으므로 나름의 방식으로 ‘계약서에 적혀 있는’ 시간을 지키려 노력했다. 영세사업자인데 그 정도가 뭐 어떠냐고? 글쎄… 그 분들은 최소한 나보단 잘 번다. 이 돈을 줄 만큼 벌지 못한다면 일거리도 없다는 걸 나는 안다.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알바의 노동 현장

 

근로계약서는 왜 있는 것일까?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면 한 시간 늦게 출근하는 게 어떻겠냐’, ‘아니요? 일어나기 힘들지 않은데요. 진시황처럼 영양제를 찾아 챙겨먹는답니다. 만성피로가 없어요.’ 사실 계약서와 사본은 바라지도 않았다. 다만 그 계약서를 작성하려는 의지가 나한테 확실하게 일을 한다는 인상을 주었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 사업장 어딘가에 부부 중 한 사람이 내가 노동부에 신고할 경우를 대비하여 준비해 두었을 계약서 상에 적혀있는 시간보다 나는 적게 일하고 있다. 이미 출근 시간이 30분 일방적으로 늦춰진 상태이다. 근무 시간을 일방적으로 적게 통보하고 퇴근을 종용한다. 꺾기라고 부른다지.

 

이런 일이 싫어서 한때 대기업 본사 직영점만 찾아 일한 적이 있었다. 내가 일하던 곳은 최저임금과 주휴수당, 초과수당, 야간수당을 주고 휴식 시간을 칼같이 지키며 상여 형태의 무언가도 주는 곳이었다. 일이 있으면 협의하여 스케줄을 조정할 수 있었고, 아프면 조퇴할 수 있었으며 중간에 병원도 다녀올 수 있었다. 밖에서 보면 정말 평화롭고 편하게 일하는 것처럼 보이는 곳이다.

 

다만 휴식 시간 외에는 절대 앉거나, 기지개를 켜거나, 정해진 자세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청소도 절대 편한 자세로 할 수 없었다. 그 왜 있잖은가. 서비스직은 고객 앞에서 의자에 감히 앉을 수 없다. 영하의 날씨에도 문을 열어 두고 호객 행위를 하며 일해야 했다. 급성 축농증에 자주 걸렸고, 무릎과 발이 아파서 병원비가 월급의 절반을 차지할 때 그만두었다. 마지막 급여와 확실한 퇴직금이 조금 위안이 되었다.

 

대기업 직영점이라고 사정이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관리자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기도 하고 기업과 계열사에 따라 또 다르다. 나는 3일치 급여를 기록 실수로 받지 못할 뻔 한 적도 있다. 현재 임금체불로 난리가 난 곳도 대기업이다. 어디든 함정이 있다. 그리고 알바는 시급에 따라 월급이 달라지므로 만 원, 이만 원에 일희일비하게 된다. 어떻게든 점점 일하는 시간에 욕심이 생겨 생활에 균형이 깨지게 된다.

 

모래 산 맨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허우적대며 발을 빠르게 움직여도 점점 내려간다. 그런 와중에 기본적인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면서 나의 무가치함을 계속적으로 확인 받는다. 내가 생각했던 내가 점점 흐려지고 넘어질 것 같아 허둥댄다. 대체로 빠져나갈 시간이 없다. 지난 주말에도 나는 한 시간 일찍 퇴근을 통보 받았고, 나의 고용주는 칠천 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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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11/22 [16:55] 수정 | 삭제
  • 돈보단 사람이죠. ㅠㅠ
  • 독자 2017/11/09 [11:50] 수정 | 삭제
  • 동감합니다!!
  • 서하 2017/11/08 [18:43] 수정 | 삭제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노동자1 2017/11/08 [16:05] 수정 | 삭제
  • 잘 읽고 갑니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공감할수 있는 글이네요 글쓴이분께서 더 좋은 곳을 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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