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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셀프-디펜스 지도자가 된 이유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나의 이야기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최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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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유엔이 정한 세계여성폭력 추방주간(11월 25일~12월 10일)을 기념하는 두 번째 인터뷰는 다른 이들에게 받았던 질문을 내게 직접 던지고, 내가 말하는 셀프 디펜스 지도자 최하란의 이야기다.

 

Q. 왜 셀프 디펜스 지도자가 됐나?

 

▶ 셀프 디펜스를 배우러 어디든 배낭 메고 찾아갔다. ⓒ스쿨오브무브먼트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왜 셀프 디펜스 지도자가 됐나요?”

 

나는 사람들의 추측과 다르게 운동선수 출신도 아니고 체육 전공자도 아니다. 대학에서 전공은 철학이었다. 철학자들 얘기는 거의 기억하지 못하지만 결국 내 철학을 세우고 실천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왜 운동 지도자가 됐나?”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첫째, 대학 졸업 즈음 너무 아팠다. 살기 위해 금연, 채식, 요가를 시작했다.
둘째, 그런데 이내 ‘운동’이 아니라 ‘움직임’이 화두가 됐다.
셋째, 그러다 결국 2010년에 스쿨오브무브먼트 즉 움직임의 학교를 창립했다.

 

“운동기술을 가르치는 학원이 아니라 인간의 타고난 자질, 움직임을 조화로이 발달시키는 학교.” 이 아름다운 가치를 우린 끝내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지만 꾸준히 구할수록 효과는 분명하다. 개선, 발전, 재미!

 

셀프 디펜스도 ‘움직임’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했다. 셀프 디펜스는 대인 움직임이며 복합 움직임이다. 흔히 현대인들은 운동을 해도 너무 고독하게 한다. 러닝머신을 타거나 요가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하지만 아무리 꼬고 째도 요가고, 아무리 사납게 들어도 웨이트 트레이닝이다. 둘 다 일종의 교정운동처럼 활용하는 것이 낫다. 움직임을 조화로이 발달시키려면 대인 움직임, 복합 움직임이 필요하다.

 

“인간의 뇌 비율이 가장 큰 이유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다양한 움직임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뇌 에너지의 90퍼센트가 인체의 움직임에 사용된다. 나머지 10퍼센트를 가지고 치유, 면역, 신진대사, 생각하는데 쓴다”, “함께 집단을 이뤄 운동할 때 뇌가 더 활성화된다.”

 

모두 내 얘기가 아니다. 뇌 과학자들의 얘기다.

 

Q. 왜 그렇게 여러 나라에 갔나?

 

먼저, 세르비아로 떠났다.

 

난생 처음 겪는 영하 25도의 혹한, 하루 종일 내린 눈을 보며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하는 내 모습. 그러나 두 달 과정을 무사히 마쳤고 생애 첫 방송 출연도 했다. 세르비아 아침 뉴스에 나왔다. “셀프 디펜스를 배우러 싸우스 코리아에서 찾아온 젊은 여성…”

 

▶ 세르비아, 2012년   ⓒ스쿨오브무브먼트

 

사람들이 내게 묻는다.
“왜 그렇게 여러 나라에 갔나요?”

 

우리보다 80년, 50년 먼저 현대 셀프 디펜스의 체계를 세운 거인들의 어깨 위에서 멀리 보고 싶었다. 제대로 배우지 않고 가르치는 것은 상상하기도 싫고 하고 싶지도 않은 일이라, 배울 것이 있다면 어디든 배낭을 메고 찾아갔다. 그렇게 미국, 세르비아, 덴마크, 스웨덴, 헝가리, 이스라엘, 체코, 그리스, 프랑스, 독일, 미얀마, 태국, 싱가폴, 중국에 가서 배웠다.

 

Q. 수업의 원칙이 있다면?

 

지난 4년여 동안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셀프 디펜스 수업을 이끌어왔다. 회사원, 간호사, 대학생, 청소년, 어린이… 다양한 그룹,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했다.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을 위한 수업도 하고 있다.

 

가능한 셀프 디펜스 수업은 진지하면서 즐거워야 한다. 위험상황을 다루니까 당연히 진지하겠지만, 즐거움은? 즐거워야 참가자들이 소중한 경험과 지식을 더 잘 간직할 수 있다. 이점은 매우 중요하다.

 

Q. 폭력에 대해 얘기한다면?

 

폭력에 대해 알아야한다.

 

우리는 폭력을 사용하지 말라고 교육받았다. 그런데 어쩌면 폭력에 대해 알지도 말라고 교육받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폭력은 어디든 존재한다. 어린이집에서부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대학원까지 학교폭력이 있다. 아기 때부터, 아동기, 청소년기, 부부 사이, 그리고 노년에 이르기까지 가정폭력이 있다. 데이트 폭력, 군대 내 폭력, 직장 내 폭력, 고객의 폭력도 있다.

 

아무 관계없는 사람들을 향한 “묻지마 폭력”도 있지만, 위에서 나열한 것처럼 아는 관계에서 위계를 이용하는 폭력이 훨씬 더 흔하다.

 

폭력에 대해 알지 못하고 평화를 도모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폭력에 대해 알지 못할수록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만 더 커지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알아야 한다.

 

폭력 상황은 우리에게 강력한 스트레스를 준다. 그러면 모든 동물들은 프리즈(freeze) 현상을 겪는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얼어붙는 순간이 발생하는 것이다.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긴장성 부동화(tonic immobility) 현상도 발생할 수 있다. 긴장이나 공포심으로 몸이 마비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강간이나 재난의 피해자들에게서 발견되는 신체현상이다.

 

Q. 폭력에 대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연습이 필요하다.

 

한마디로, 갑작스럽고 낯선 폭력 앞에서 우리 모두는 생각이 멈추고 몸이 굳는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다.

 

셀프 디펜스 연습은 이런 원리를 이해하고 문제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는 것이다. 시뮬레이션은 문제 상황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고 해결 과정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이다. 일종의 예방접종과 같다.

 

소방관들은 연습을 통해 불에 대한 면역력을 갖고,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물에 대한 면역력, 암벽을 등반하는 사람들은 높은 곳에 대한 면역력이 생긴다. 마찬가지로 셀프 디펜스 연습을 통해 우리는 문제 상황, 폭력 상황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는 것이다.

 

수업 참가자들은 단 한 번의 수업으로도 효과가 있었다고 얘기해주었다. 가정폭력, 성폭력 피해 생존자들은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우리 체육관에 다니는 학생들은 폭력 상황 뿐 아니라 일상에서 문제가 생길 때도 예전과 달리 침착하게 대응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얘기해주었다. 갑작스런 상황, 강한 스트레스에 대한 역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셀프 디펜스를 처음 배웠을 때 나 역시 ‘내가 왜 이제야 이런 걸 알게 되었지?’ ‘미리 알았다면 그때 내가 그렇게 하진 않았을 텐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곧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다. 운 좋게도, 나는 그 생각을 실현하고 있다.

 

▶ 진지하면서도 즐거운 수업 ⓒ스쿨오브무브먼트

 

나는 수업을 할 때 참가자들의 눈빛, 표정, 호흡, 목소리, 움직임을 보고 듣는다. 긴장하고, 쑥스러워하고, 때로는 얼굴이 하얗게 되기도,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도 본다. 그러나! 단 몇 초 만에 그들이 완전히 변하는 모습을 본다.

 

내 이야기를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다.

“셀프 디펜스를 배우세요. 여러분의 삶에 변화가 생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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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1/16 [11:36]  최종편집: ⓒ 일다
 
sulsulssi 17/11/24 [18:54] 수정 삭제  
  너무 멋진 활동에 박수를 보냅니다! 칼럼에서 추천해주신 책 보고 있는데 자기 방어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게 되네요. 생각의 끝에 셀프 디펜스 수업에 참여하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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