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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가 어쨌다고?
[머리 짧은 여자] ‘젠더 무법자’를 읽고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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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도 모태 신앙을 가진 기독교 신자이다. 따라서 성경에서 금지한 동성애가 이 사회에 확산되는 것에 반대한다. 동성애를 지지하고 옹호하는 게 아니라, 동성애라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차별하는 것에 반대한 것이다.’ 지난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 측이 동성애를 찬성하는 후보가 국회의원이 되면 안 된다며 공세를 펼치자,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이 한 말이다. (CBS노컷뉴스, 2016년 4월 11일자, “표창원 ‘동성애 옹호 논란’의 진실”)

 

당시 야당에 힘을 싣고자 했던 사람들은,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발언이었다는 반응이었다. 내가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정치는 서로 견해가 다를 수 있으니, 넘어가자고 말했다. 내 존재를 쉽게 지우는 말을 ‘정치적으로 다른 견해’라고 설명하는 친구에게 실망스러운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써 보냈다. 다행히 친구는 본인이 무지했다며 사과했다.

 

최근까지 SNS에서 계속되는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페미니즘’ 논쟁을 보며 묘하게 그때가 겹쳐진다. 나는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끼면서도 일부러 논쟁을 피했다. 한동안 열심히 사람들의 의견을 들어보기도 했지만 서로 적대적인 분위기에 금방 피로감을 느꼈다. ‘각자 갈 길 가면 되지 않나? 나는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움직임에 동의하지 않지만 사안에 따라서는 연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전략적으로’ 트랜스배제적인 페미니즘이 할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라는 안일함도 가졌다. 누군가의 존재를 지워버리는 움직임에 나도 가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니 젠더에 대해서 크게 고민해 본적이 없는 것 같아요.”

 

<젠더 무법자>(케이트 본스타인 지음, 조은혜 역, 바다출판사, 2015)를 함께 읽으며 이야기를 나눈 책읽기 모임의 멤버들은 비슷한 말을 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나는 “여자”가 뭘 느끼는지 전혀 모른다. 소녀나 여자라고 느낀 적이 없으며, 내가 소년이나 남자는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을 뿐이다. 젠더 전환에 확신을 준 것은 느낌의 존재라기보다 부재였다. (중략) 남자는 어떻게 느끼는가? 여자는 어떻게 느끼는가? 당신은 자신이 “남자라고” 느끼는가? 당신은 자신이 “여자라고” 느끼는가? 나는 정말 사람들이 어떻게 느끼는지 알고 싶다.](51쪽)

 

이에 우리들이 내린 결론은 ‘모르겠다’는 거였다. 나를 여자라고 느끼는 게 어떤 건지 당최 알 수 없지만, 그렇다고 젠더 위화감을 강하게 느껴본 경험이 있지도 않았다.

 

(※젠더 위화감: <LGBT+ 첫걸음>(애슐리 마델 지음, 팀 이르다 역, 봄알람, 2017)에 따르면, 태어날 때 지정된 섹스 혹은 젠더가 자신의 젠더와 일치하지 않기에 느끼는 괴로움이나 불행을 의미한다.)

 

또 내가 레즈비언이라면, 끌림을 느끼는 상대가 모두 여성이라는 걸 어떻게 알 수 있지? 나는 상대가 될 사람에 대해 어떤 단서를 가지고 여성이라고 생각하고, 끌림을 느끼는 거지? 멤버들은 여러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생각보다 젠더 이분법이 허술하다는 걸 그제야 알아차렸다. 말로는 다들 젠더 이분법이 문제고 해체해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의 젠더에 대해 깊은 의문을 품어본 적은 없었던 거다.

 

▶ 성정체성을 찾아서  ⓒ일다 (머리 짧은 여자, 조재)

 

예전에 나는 트랜스젠더에 대해서, 어떤 특정한 정체성이라고만 인식했다. 그건 ‘나’의 문제가 아니라 ‘너’의 문제였다. 나와는 상관없지만, 존재하니까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질문의 방향을 내게로 돌리니, 젠더 문제는 특정한 정체성을 가진 ‘너’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우리’의 문제가 됐다.

 

멤버들은 자신의 성별과 정체성에 대해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 젠더 이분법이 이토록 허술한 거라면 우리가 꼭 여성이거나 남성일 필요는 없다.(물론 자신을 여성으로/남성으로 정체화할 수 있다. 나는 여전히 내가 여성이라고 믿지만 언젠가 바뀔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페미니즘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는 첫째, 누군가의 존재를 지워버리기 때문이며, 둘째는 어떤 젠더를 배제하는 기계적인 ‘전략’이 맞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젠더는 고정되어 있지 않은 개념이다. 여성학자 임옥희씨는 한 강연에서 ‘우리 모두는 매일 트랜스하고 지내지 않나요? 누구와 관계를 맺고,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매일 변하는 존재잖아요’라고 말했다. 나는 이 말이 자칫 ‘우리 모두는 트랜스젠더’라며 당사자들의 경험을 삭제하게 될까봐 조심스럽다. 하지만 자신의 젠더를 당연하게 전제해왔던 관념을 깰 필요는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을 뿐이다.

 

책 제목이 다시 눈에 들어왔다.

<젠더 무법자: 남자, 여자 그리고 우리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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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15 [12:28]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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