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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문화를 ‘소비’할뿐 인종주의는 깨지 않잖아요
흑인여성 네트워크 <쏘울 시스터즈> 시에나 데이비스 인터뷰(상)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하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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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타의 월경越境 만남] 독일에 거주하며 기록 활동을 하고 있는 하리타님이 젠더와 섹슈얼리티, 출신 국가와 인종, 종교와 계층 등 사회의 ‘경계’를 넘고 해체하는 여성들과 만나 묻고 답한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비욘세 나잇’에 퀴어클럽이 흑인여성 입장을 거부해?

 

베를린에서 노이퀄른 지구에는 슈부츠(SchwuZ)라는 크고 유명한 게이클럽이 있다. 1977년 설립된 동명의 인권운동센터를 전신으로 하는 이 공간은 베를린 퀴어 커뮤니티의 활기와 자본력을 대표한다. 운영 규정이나 직원 교육을 통해 젠더 및 인종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에 반대한다는 가치를 내세워 오기도 했다.

 

그런데 작년 6월 5일 비욘세 음악을 듣는 행사 ‘Beyoncélicious’가 열린 날, 이곳에서 인종차별 사건이 발생했다. 흑인 방문객 여덟 명이 바운서들에 의해 입장을 거부당한 것. 그들 가운데는 베를린 흑인여성 네크워크 ‘쏘울 시스터즈’(Soul Sisters) 회원들이 있었고, 이들은 즉석에서 항의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루브 넘치는 춤을 추며 ‘슈부츠는 흑인의 자본만 밝힌다’(SchwuZ wants black money, not black body!)고 외쳤다.

 

집에 돌아간 쏘울 시스터즈 언니들은 슈부츠에 보내는 요구 사항을 담은 성명서를 배포하며 온라인 캠페인을 벌였다. 클럽 홈페이지에는 쏘울 시스터즈의 캠페인에 공감하는 반응이 올라오고, 다른 인종차별 경험에 대한 증언도 모였다.

 

이런 행동력과 연대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흑인여성들이 경험하는 독일 베를린의 현실은 어떨까? 쏘울 시스터즈를 처음 조직했던 여성 중 한 명인 시에나 데이비스(Cienna Davis)를 만나 이야기 나눴다.

 

▶ 슈부츠 클럽 페이스북에 올라온 글. 2017년 6월 5일 인종차별 사건에 대한 비판이 적혀 있다.


시에나는 그 날 행사의 디제잉을 맡은 친구들의 초대를 받아 쏘울 시스터즈 멤버 다섯 명과 함께 클럽에 갔다. 입장을 기다리는 줄이 매우 길었고, 앞 사람 몇몇이 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지루함을 달랠 겸, 시에나와 다른 한 명도 거기 합류했다. 5분도 채 되지 않았을 때, 바운서 한 사람이 다가오더니 이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때부터 이상했다. 같이 게임하던 백인남자 둘은 안 보고 흑인여성들만 지목한 것이다. 클럽 입구에는 수백 명이 줄 서 있어서 군중의 소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바운서는 유독 이들을 콕 집어 지목했다.

 

한참 뒤 이들이 줄 맨 앞에 왔을 때, 막 들어가려는데 바운서들이 입장을 막았다. 이유는 말 안했다. 옆을 보니 다른 흑인남자 둘도 줄에서 빠져있었다. 그들과 같이 온 백인 일행 둘은 이미 들어갔다. 시에나와 게임하던 백인남자 둘도 이미 들어간 상태였다. 여기서 직감이 온 시에나는 따지기 시작했다. “이거 지금 뭐예요? 비욘세 나잇인데 흑인들을 안 들여보내는 거예요?”

 

문 앞에는 ‘우리는 누구도 배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종차별에 반대합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동성애혐오 공격에서 고객들을 보호합니다’라는 클럽의 캠페인 포스터가 붙어있었다. 바운서 중 한 명은 옆에 있는 흑인남자 둘이 시에나와 같은 일행이라고 오해해서 입장을 막았다고 말했다. “그저 인종이 같다고 일행이라고 착각했다고요. 우리랑 게임하던 남자 둘은 들여보냈잖아요. 분명히 우리 그룹이 문제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 비욘세 나잇에 흑인여자들이 온 게 문제가 되나요?”

 

시에나: “베를린에 살면서 평소에 짜증났던 것들이 그 날 밤에 다같이 일어났어요. 겉모습은 다양성, 포용성인데 사실은 정체성이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 베를린이라는 도시. 슈부츠 클럽도 반-인종차별을 얘기하는 건 그게 트렌디하고 힙해서지 실제로 실천하지는 않아요. 우리가 항의 퍼포먼스를 할 때는 막상 바운서들이 제지하지 않고 그냥 조용했어요. 시끄럽게 한 게 문제가 아니었다는 거죠. 우리는 두 시간 동안 함성을 내고 춤추고 구호 외치고 그랬어요. 줄 앞뒤로 뛰어다니면서 사람들한테 무슨 일인지 설명도 하고요. 바운서들은 아마 잘못을 인정하는 꼴이 될까봐 입 닫고 있었던 것 같아요. 사과하기 싫었던 거죠. 나중에 온라인에서 문제제기를 했을 때도 슈부츠에서 직접 우리 쪽에 연락 온 건 없었어요. 그냥 공지문을 통해 자기네 회사가 인종차별주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인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날 일은 인종차별 사건이 아니라고 하더군요.”

 

화내라,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처럼

 

어떤 다수나 권위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즉각 항의하는 것, 그리고 곧바로 공동행동을 조직한다는 것은 일촉즉발의 현장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나는 이 여성들이 함께 벌인 민첩한 대응에 감동했고, 동의했다. 비욘세 음악에 맞춰 질펀한 댄스를 추려했던 쏘울 시스터즈 여성들은 그날 밤 현장에서 어떤 주저함이 없었을까? 무엇에 그리 힘을 받았을까? 주위의 다른 사람들은 이들을 지지했을지도 궁금했다.

 

시에나: “입장을 거부당한 다른 유색인종 사람들도 항의 집회에 동참을 했고, 우리 근처에 줄을 서 있어서 무슨 일인지 다 지켜본 사람들도 몇몇 함께했어요. 적극적으로 나선 건 대부분은 유색인종 사람들이었죠. 물론 ‘이런 식으로 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어요. 제 대답은 이랬어요. ‘아뇨, 우리 지금 화났어요!’ ‘우리가 풀죽은 강아지처럼 그냥 돌아갈 줄 알았어요? 머리 숙이고 꼬리는 다리 사이에 축 늘어뜨리고 그렇게? 슈부츠 당신들 잘못 걸린 거야. 쏘울 시스터즈가 누군지 알아?’ 우리 커뮤니티가 뒤에 있는걸 아니까 든든했고, 실제로 나중에 온라인 캠페인을 할 때 큰 힘이 됐어요. 슈부츠가 인정해야만 우리가 겪은 일이 사실이 되는 게 아니에요. 그게 뭔지 난 확실히 알아요. 분명 인종만 보고 사람을 가려낸 것(racial profiling)이었어요.”

 

▶ 쏘울 시스터즈가 온라인 상에서 인종차별 사건에 대해 비판하고 해명과 사과를 요구하자, 슈부츠 클럽 측에서 올린 공지문. 사태를 파악하고 가능한 빨리 조치를 취하겠다는 모호한 태도를 취했다.

 

아시아 여성들 역시 유럽에서 눈에 띄는 ‘다른 외모’로 인해 쉽게 차별과 공격의 표적이 된다. 주변 지인들의 고충을 들어보면, 상황에 대한 분노만큼이나 큰 것은 현장에서 바로 대응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좌절감과 자책일 때가 많다. ‘어, 이거 지금 인종차별인가?’ 몸과 마음이 얼어붙은 그 순간에 논리적 판단을 시도하면, 가해자는 유유히 사라진다.

 

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분 나쁜 감각’을 전적으로 믿자고 얘기한다. 그냥 내 피해의식이면 어떡하지, 저 사람이 쫓아와서 때리기라도 하면 어떡하지, 독일어로 말싸움 못하는데…. 이런 떠오르는 생각들은 접어두자고 한다. 우리에게는 어찌 보면 단순한 현상, ‘당신이 감히 내게 무례했기 때문에 나는 지금 기분이 나쁘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고 말이다. 화내기를 주저하지 말자고도 한다. 여자가 어디서 겁도 없이 덤벼, 여자가 왜 저렇게 나대, 공공장소에서 싸우는 건 남들한테 피해지…. 여전히 우릴 따라다니는 문화적 학습 따위 던져버리고 마음껏 화내자고 한다. 누군가 내 몸과 내 존재를 공격할 때는 소리 질러도 좋다. 발 구르며 위협해도 좋다. 소란을 피우며 주위에 동의를 구할 수 있다. 내 반격의 속도와 크기가 커지는 만큼 나의 확신과 위엄도 커진다.

 

‘흑인여성’이라는 정체성은 나의 갑옷

 

시에나는 군인이었던 아버지가 일본에서 파견 근무 중일 때 태어났다. 시에나가 네 살이 될 때까지 가족들은 총 7년을 일본에서 살았다. 이후에 미국 샌디에고로 돌아온 뒤에도 어머니는 일본풍 가구를 쓰거나 동네 일본 여자애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등 외국문화와 계속 가까이 했다. 어린 시절 사진 속에도 시에나를 안은 일본여성들이 많이 등장한다. 주류 백인이 아닌 사람들과 친밀감을 형성하는 일은 청소년기에도 계속 이어졌다. 학교에서 베스트 프렌드는 필리핀이나 멕시코 혈통의 아이들이었다. 흑인학생은 늘 소수였고 시에나는 ‘내 주변을 유색인종 여자들이 둘러쌌다’고 회상한다. 다문화 아이들이 어울리면서 다양한 문화를 즐겁게 향유했다.

 

시에나에게 자기 정체성을 설명해달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나온 단어는 ‘흑인여성’(black woman)이다. 이렇게 인종과 젠더가 앞서는 것에 대해 시에나는 “그게 세상이 나를 인식하는 틀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녀가 겪어온 사회는 인종에 따라 삶의 기본 요소가 정해지고 수많은 차이와 차별이 발생하는 미국이었으며, 해안가를 따라 백인 부자들의 고급 주택이 늘어서 있는 도시 샌디에고였다. 노조나 커뮤니티 조직 운동은 이전부터 지역 정부 차원에서 억압을 받았고, 치카노(Chicano; 라틴 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를 부르는 말) 인권운동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해안에서 떨어져 멕시코 국경에 가까워지는 내륙으로 가야 그나마 유색인종들이 주도하는 사회운동을 접할 수 있었다.

 

시에나: “로스앤젤레스에서 자랐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할 정도였어요. 거기는 유색인종 커뮤니티가 발달해있고 사회운동도 활발하니까요. 체감 상 샌디에고는 절반이 백인인구, 30% 히스패닉, 5% 흑인 그리고 나머지 적은 비율은 필리핀이나 동남아시아 사람들이에요. 어릴 때 문득 깨달은 적이 있어요. ‘백인 친구들만 해변에 살고 다른 친구들은 다 계곡 쪽에 사는구나!’ 우리 집만은 ‘오션사이드’라는 도시 내 군부대에 있었으니까 예외였고요. UCSD 대학(University of San Diego; 캘리포니아 주립대 캠퍼스 중 하나)에 다닐 때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동네 분위기가 바뀌는 게 선명하게 보여요. 대학 캠퍼스 옆에 해변이 있는데, 나이든 백인 부자들이 자전거 끌고 다니는 곳이죠.

 

▶ 인터뷰 중인 시에나 데이비스. 가방에서 지금 읽고 있는 책이라며 꺼내든 것은 <이브의 씨앗: 생물학, 성 그리고 역사>라는 책이다. ©하리타

 

시에나는 어딜 가나 눈에 띄는 흑인 소수자로서 ‘나는 다르다’는 기분을 늘 느꼈다. 그래서 이를 그냥 자신을 대표하는 정체성으로 ‘입기로’(put it on) 했다.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은 학부 전공을 컴퓨터공학에서 민족지학과 커뮤니케이션으로 바꾸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래, 난 흑인여자야. 다른 사람이 말해줄 필요 없어. 내가 스스로 잘 알아. 이건 저한테 갑옷같은 거예요.”

 

갑옷이라니 다행이다. 좀 무겁긴 해도 몸을 단단하게 지켜줄 수 있는 옷이니까. 그런데 이 갑옷은 마음대로 입었다 벗었다 할 수 있는 것일까? 시에나에게 때론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다. 나는 독일로 이주해오고 나서 ‘아시아 여성’이라는 자기정체성이 매우 강해졌다. 시에나와 마찬가지로 그게 사람들이 나를 가장 먼저, 가장 자주 인지하는 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의식은 그냥 잊고 싶을 만큼 피로할 때도 많다. ‘인종’이라는 안경을 쓰고 일상생활을 하면 거슬리는 것들이 너무나 많아서다. 주변인들은 이런 나를 과민하다고 평하기도 한다. 시에나는 내 말에 공감하며 덧붙였다.

 

시에나: “저도 피곤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럼 오늘은 심각하게 따지고 분석하지 말고 그냥 맘 편히 놀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집을 나서면 꼭 그 날 사람들이 상기시켜줘요. 난 자기들과 다르다고. 그렇게 보고 있다고. 저와 주변 흑인여성들이 거리에서 당하는 차별이나 혐오 공격은 주로 이런 식이예요. 기차역에서 경찰이나 검표원이 괜히 우리한테 와서 시비를 붙여요. 남자들이 다짜고짜 섹스나 마약을 찾기도 하고요. 전 보통 공공장소에서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는데, 안 끼고 있는 날에는 어김없이 ‘카페 마끼아또’, ‘아프리칸 퀸’ 같은 성희롱이 들리죠.

 

또 다른 형태는 페티쉬적 접근이에요. 모르는 사람들과 우연히 말이 통해서 한참 얘기를 하고 있는데, 문득 그 사람들 눈빛이 달라지면서 그러죠. 자기는 흑인이랑 어울려 본 게 처음이라고. 자신은 인종 같은 거 잘 안 따지는 사람인데, 저랑 어울리는 게 좋은 기회 같다면서 자주 만날 수 있겠냐고 물어요. 또 한 번은 바에서 화장실 가려고 줄을 서 있었어요. 나중에 친구가 말하길, 제가 들어간 다음에 뒤에 서있던 백인여자가 친구를 붙잡고 그랬대요. ‘흑인여자들 너무 아름다운 것 같아요. 여왕 같아. 오 마이 갓, 정말 흑인들이 제일 아름다워요. 내가 만약에 흑인남자 만나게 되면 절대 안 놔줄 거예요. 당신들은 그냥 왕이고 여왕이에요.’”

 

시에나가 일상적으로 겪는다고 묘사한 이 두 가지 형태의 괴롭힘(harassement)은 서로 모순적으로 보이지만 ‘넌 우리와 달라. 내가 그걸 알려주겠어’ 라며 피해자를 공격적으로 타자화하고 대상화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런 일을 여러 번 당하다 보면 자신의 인종적 정체성에서 대해 누구라도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 자신은 인종차별을 안 한다는 주류 주변인들의 흔한 반응들-‘사람들이 널 다 그렇게 본다는 건 확대 해석이야’, ‘너무 예민하게 굴면 너만 손해야’, ‘매사에 그렇게 인종을 끌어들이면 갈등을 오히려 만드는 것 같다’-은 피해자의 인식과 감각을 사소하게 치부해버리는(traivialize) 폭력이 아닐 수 없다.

 

베를린, 다름을 소비하지만 존중하진 않는 도시

 

베를린은 지난 10년여 동안 긍정적인 이미지로 여행자와 청년들에게 사랑 받았다. 가난한 예술가가 살기 좋은 도시, 풀뿌리 도시재생 프로젝트가 많은 곳, 스타트업의 샛별, 자유분방하고 글로벌한 도시. 베를린엔 ‘핫 플레이스’가 넘쳐났고, 그런 베를린에 산다는 건 ‘쿨한 것’이었다. 시에나도 독일인 남자친구를 만나러 왔다가 좋은 인상을 받아 기대를 품고 여기 왔다. 그런데 베를린 자유대학교 대학원생으로 존F.케네디 북미학 연구소에 소속되어 민족지학 연구를 했던 지난 3년 간 실망을 많이 했다. 겉멋을 잔뜩 부릴 뿐, 인종 문제에 대한 담론이 부족하고 사람들의 이해와 실천도 한참 얄팍한 게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시에나: “제 생각에 이 문제는 홀로코스트(나치 정권에 의한 유대인, 소수민족 박해)와 연관이 깊어요. 제가 베를린에 받았던 첫인상은, 젊은 세대 시민들이 도시에 대한 소유권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거였어요. 오래된 건물을 커뮤니티 센터로 바꾼다던지, 벽에 정치적인 구호를 담은 그래피티를 그린다던지. 마치 ‘우리는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인종차별을 이전 세대, 나치 시대의 유물로 넘겨버린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은 인종차별주의를 나쁜 나치들이나 하는 짓으로만 이해하는 거예요. 사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날에도 한쪽에선 이민자들이 ‘묻지마’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있었거든요. 통일 소식에 묻혀서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어요. 지엽적인 사건으로 무시된 거죠. 나치에 대한 비판 이외에는 인종차별이 독일에서 국가적 담론이었던 적이 없어요. 

 

▲ 파티마 엘-타옙(Fatima El-Tayeb)의 <유럽의 이방인들>(European Others: Queering Ethnicity in Postnational Europe) 표지

파티마 엘-타옙(Fatima El-Tayeb)의 책 <유럽의 이방인들>(European Others: Queering Ethnicity in Postnational Europe)은 유럽 토착민들이 인종차별주의를 미국의 것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고 논해요. 유럽의 정체성을 기독교, 백인으로 얘기하면서요. 엘-타엡은 주류 유럽 사회가 이주 배경을 가진 유럽시민들을 소수인종 인구로 보지 않고 ‘영원한 신입’(eternal newcomers)으로 대한다고 분석하거든요. 제가 보기에도 사람들은 ‘이주민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라고만 묻고 있어요. 이곳에서 태어난 소수인종 시민들에게 평등한 권리와 자원을 보장하는 문제로 보지 않고요.”

 

독일의 비(非)백인 소수인종 집단 중 가장 많은 터키계 시민들을 예로 들면, 이들은 독일에서 태어나 독일교육을 받은 원어민이지만, 수세대가 지난 지금도 의사결정권을 가진 사회지도층에 진출한 숫자는 매우 적다. 어떤 이들은 부모의 체류권이나 법적 지위에 영향을 받아 독일 여권조차 발급받지 못한다. 베를린의 주거 지역 가운데는 터키 커뮤니티가 많고 거리에서도 터키계 독일 시민들을 흔히 볼 수 있지만, 대학교 강의실에 가면 그 비중이 현저히 줄어든다.

 

시에나는 인종 기반 통계자료 자체가 부재하다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엄연히 다인종, 다문화가 있음에도 구체적인 숫자로 이를 확인할 수 없는 것은 불평등을 개선하기 위한 제도-정책적 시도에 꼭 필요한 도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러한 상황에서 젊은 세대의 인식이 크게 나을 리 없다. 젊은 세대는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주민이나 유색인종의 존재에 대해 혐오 반응까지 나타내진 않지만, 그렇다고 깊이 이해하고 융화되어 살아가지도 않는다.

 

시에나: “예를 들어 젊은 세대 중에는 ‘난민 환영’ 로고가 박힌 가방을 기꺼이 살 사람들이 많이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난민이나 이주민, 소수인종이 처한 현실에 대해 실제로 알고 싶어 한다는 의미는 아닐 수 있어요. 인종차별이라는 이슈가 나오는 것 자체를 원치 않고 자신들에게 특권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요. 다문화라는 ‘차이’를 소비하는 걸 좋아하지, 반-인종차별주의를 적극적으로 추구하진 않는 거예요.” (※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하리타(정세연)- 독일살이 4년차. 온갖 차이와 차별에 대한 감각이 여전히 곤두서있다. 일다에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칼럼을 연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부터 내 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어-더 자유로운 페미니즘을 위하여>(2017, 동녁)를 썼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사회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앞으로 젠더, 이주, 섹슈얼리티,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계속 글쓰고 행동해나가려 한다. 하리타는 산스크리트어로 ‘초록’이다. facebook.com/haritamoonr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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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3/29 [21:24]  최종편집: ⓒ 일다
 
차이 18/04/04 [08:01] 수정 삭제  
  너무 좋은 기사 잘 봤습니다 국내에서도 인종차별 겪고 있는 분들이 많을 거 같아요 우리를 돌아볼 수 있어야겠습니다
ㅇㅇ 18/04/04 [14:44] 수정 삭제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기사도 기대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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