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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청년들, 모욕 면접을 훈련하다
[성소수자, 나도 취준生이다]① 애인 있습니까?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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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이라고 했다. 동시에 최악의 청년 실업률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 사회가 안타까워하는 취업난은 ‘대졸자, 수도권 거주자, 비(非)장애인, 비(非)질환자, 비(非)성소수자’들의 이야기였다. 이들의 슬픔과 노력, 고통과 능력, 희망과 공정을 다뤘다. ‘그 외’ 청년들의 취업에는 관심이 없었다. ‘그 외’들은 취업 절벽에서 늘 벼랑 끝자리를 맡아왔는데도 말이다.

 

‘남자인 게 스펙’이라고 했다.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존재 자체로 가산점이 붙는 몸(성별)이 있다면, 반대로 존재 자체가 마이너스인 몸도 있다는 말이 된다. 남성에게 가산점을 주는 취업시장은, 그 외의 성에게 어떤 점수를 줄까. 사회가 규정한 남자/여자로 존재하지 않는 성에게 줄 점수는 있을까.

 

이들은 스펙을 ‘쟁취’할 수 없는 몸이라 했다. 마이너스 점수를 받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가? 성소수자 청년들의 취업과 노동을 살폈다. 이들과 소위 ‘일반’ 청년들의 노동에 있어 접점과 간극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들도 저들도 헬조선이라 불리는 사회를 살아가는 20~30대다. 그러나 그 누구도 ‘청년’이라는 이름으로만 묶일 수는 없다.

 

취업 키워드를 임의로 뽑았다. ‘모욕 면접’, ‘외모스펙’, ‘능력’, ‘비정규직’, ‘직장문화’. 이 키워드를 통해 성소수자들과 비성소수자들의 취업과 노동을 살피려 한다. 그렇게 찾아낸 공통분모들이 우리 시대의 청년노동에 대해 말해줄 것이라 믿는다. [기록노동자 희정]

 

혼자 살아요? 남자친구 있어요?

 

취업 면접을 보고 나온 미리는 기다리고 있던 여자친구 품에 가 안겼다.
“나, 붙어도 이 회사는 안 갈래.”

 

사무보조를 구한다는 중소업체였다. 부장이라는 사람이 나와서 면접이라는 것을 봤다. 부장은 나이를 묻고, 아버지 어머니 직업, 이어 동생의 안부까지 물었다. 어디 사냐고 묻고 자취하냐고 물었다. 이 회사는 아니다. 직감했으나 자리에서 일어설 수도 없었다.

 

면접이라 이름 붙인 불편하고 쓸 데 없는 대화가 이어졌다. 면접비도 지급하지 않으면서 부장은 미리의 시간을 산 듯 굴었다. “혼자 살아요? 한창 좋을 때네.” 그리고 수순처럼 남자친구 있냐고 물었다.

 

이쯤 되면 미스터리 쇼퍼(Mystery Shopper; 고객을 가장하여 점원을 평가하는 사람) 식의 면접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한창 좋을 때’의 ‘꽃다운 나이’ 미리에게는 익숙한 면접용 질문이었다.

 

거름망 없는 면접

 

“최저시급 주면서 꼬치꼬치도 묻네.”

 

면접 이야기를 들은 미리의 친구들은 화를 냈지만, 다들 안다. 원래 최저임금 주는 자리가 더 무례하다. 야근도 많지 않고, 최저임금을 살짝 웃도는 세전 150만 원 가량의 월급. 이 정도면 나쁘지 않는 직장으로 불렸다. 요즘 세상이 그러니까. 나쁘지 않은 직장에서 나쁜 사람은 아닐 부장-과장이 나와 꼬치꼬치 묻는다. 가족 관계, 자취 여부, 애인 유무, 그러다가 외모 지적까지. ‘여자’와 관계된 것을 물어온다. 거름망이 없다.

 

‘남의 돈’을 받는 이가 이러한 무례함에서 자유롭기 쉽지 않다. 취업이 꽤나 힘든 세상에서는 더 했다. 거름망은 면접자들의 몫이 됐다. 스스로 거른다. 동시에 익숙해지려 한다. 규모 있는 기업에 지원할수록 ‘압박 면접’을 연습하는 일이 늘고 있다. 팀별로 모여 서로에게 무례한 질문을 던진다. 모욕을 연습한다.

 

취업을 볼모로 잡혀 스스로를 모욕하는 청년 ‘을’들. 이런 위계질서에서 ‘어린 여자’인 미리는 누구보다 ‘을’이었다. 미리는 병丙, 정丁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

 

“남자친구 없어요.”

 

▲ 민우회 웹툰 “9직X2직=18 나의 육두문자 구직라이프” 제 8화 <그 회사, 결남출이었어> 중에서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 기획, 치드 그림

 

패싱의 노하우

 

따지고 보면 거짓말은 아니다. 미리의 애인은 남자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애인은 있는데 여자예요.” 하진 않는다. 부장은 놀랄 것이다. 그리고는? 미리는 생경한 시선보다도 성희롱과 폭력을 당할까 더 걱정했다.

 

“사무보조 일이면 중년남성들이 대부분일 테고, ‘여직원’ 뽑아서 일하는 곳인데. 제가 굳이 말을 할 이유가 하나도 없죠. 어떤 소리 들을 지 뻔하니까. 나를 성적 대상화 해가지고. 여자끼리? 그런 식으로 대할 거니까.” -미리. 20대. 비(非)수도권 거주자. 바이섹슈얼(2개 이상 젠더에 로맨틱이나 성적 끌림을 느끼는 정체성), 그레이로맨틱(아주 드물게 로맨틱 끌림을 느끼는 성지향성), 현재 무직.

 

미리는 안전하기 위해 애인 관련 질문에 ‘패싱’했다. 여기서 패싱(passing)이란, 어떤 사람을 특정 사회집단의 구성원으로 여기게끔 외양과 행동을 위장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미리에게는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평범한’ 구성원을 연기하는 일이다. ‘일반인 코스프레’(일명 일코)와 비슷할 수도 있겠다.

 

수많은 성소수자들이 일상에서 그리고 면접장에서 패싱을 한다. 자신을 숨기지 않으면 뽑힐 수 없다. 뽑혀도 잘릴 수 있다. 그러니 패싱의 노하우만 깊어간다.

 

미리처럼 노(no)라고 답하는 것으로 부족했던 강표는 커플반지를 샀다. 혼자 낀다. 하나는 가상의 여자친구를 위해 남겨둔다. 트랜스젠더 여성인 윤재는 긴 머리를 고수한다. 사람들은 주민등록 앞 번호가 1인 ‘그’를 이상하게 본다. 윤재는 화보 촬영이 있다는 변명을 준비한다. 트랜스젠더 남성인 지민은 치마를 입지 않는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여자’가 치마를 안 입냐. 지민은 오래전 기억을 끄집어내 체육소녀로 변신한다. 체대입시 준비했던 ‘소년’ 같은 ‘소녀’ 이미지에 자신을 숨긴다.

 

이들의 거짓과 침묵은 보호색으로 기능한다. 다름을 못 견디는 육식세계에서 이들은 보호색을 쓰고 자신을 숨긴다. 미리는 면접이 거듭될수록 애인 유무 질문에 익숙해지고, 다른 이들도 자신만의 노하우를 만들어간다. 마치 면접 횟수가 거듭될수록 준비한 대본을 보다 자연스럽게 읊을 수 있는, 취업준비자들처럼 말이다.

 

솔직하게 답할 수 있다면

 

미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성소수자들은 이런 바람을 비쳤다. 솔직하게 답할 수 있다면.

 

“면접을 준비하는데, 그런 질문들이 올까봐 걱정이 되는 거죠. 애인, 결혼. 면접 자체만 준비하기도 바쁜데, 나는 거짓말도 따로 생각해놔야 하고. 물어보면 어쩌지, 주눅 들고. 면접은 당당하게 봐야 되잖아요.” -여진. 레즈비언, 현재 무역회사 근무

 

그러나 “애인 있습니까?” 라는 질문은 면접 자리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헤헤거리며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요” 할 면접자가 있을까. 면접은 솔직함을 요구하지 않는다. 면접장에서의 발화는 입사 동기부터 거짓이다. 면접장은 ‘어디든’ 취업되고 싶다는 간절함을 ‘이곳에’ 취업하고자 하는 간절함으로 위장시켜야 하는 곳이다.

 

면접에서 ‘멘탈 털리게 하는’ 대표 질문이 ‘결.남.출’이라 한다. 결혼, 남자친구, 출산 계획. 오죽 자주 물었으면 줄임말까지 나올까. 20~30대 여성은 이 질문에 반복적으로 노출된다. 질문의 무례함을 따질 여유도 없다.

 

사생활을 캐묻는 질문에도, 무엇을 알아보기 위해 질문했을까 추리한다. 어떤 것이 정답에 가까울지를 계산한다. 답변은 진취적이면서도 겸손하고 창의적이면서도 순종적이어야 한다. 그러니까 어떤 대답이 신입사원으로 적합하게 ‘보일’ 것인가를 생각한다.

 

결혼할 겁니까?

 

지정성별(태어남과 동시에 지정받은 생물학적 성별) 남성 면접자에게마저 이 질문은 어렵다. “애인 있습니까?” 애인이 있다고 답하면 연애하느라 취업준비는 뒷전인 사람처럼 비춰질까. 없다고 하면 인간관계에 하자가 있는 것처럼 보일까. 별스러운 걱정이 아니다. 모두가 연애를 꿈꾸고 있다고 믿는 사회에서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능력을 의심 당한다.

 

그가 택할 수 있는 모범답안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둘의 미래를 위해 성실히 취업준비를 하고 있다” 정도다. 이때 ‘둘의 미래를 위해’라는 말을 넣는다. 자신에게 (미래의) 부양책임이 있음을 어필한다. 남녀가 결혼을 하고 남성이 생계부양자가 되는 가족모델이 일반적인 사회. ‘가정’이라는 단위를 확보한(할) 남성은 능력과 책임감을 인정받는다. 그 인정이 가산점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그러나 여성 취업자는 사정이 다르다. 취업시장이 아니라도, 여성에게 “애인 있냐?”는 굉장히 성별화된 질문이다. 없다고 답했을 시 예상되는 말들이 있다. “결혼 안 할 거야?” “선머슴 같은 애를 누가”, “그러게 좀 꾸미고 다녀”, 어떤 ‘여성’이 되라는 강요인지 빤하다. 여성스럽게 꾸미고 여성스럽게 (돌봄)노동하라.

 

그런데 여기는 회사다. 연애 다음은 결혼이고, 그 다음은 육아다. 회사는 육아하는 여성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결혼할 겁니까?” 이 질문은 면접 때만 아니라 연봉협상 자리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비혼(비출산) 결의를 밝힌다고 스코어가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결혼(출산)할거라 답하면 가정과 일을 어떻게 양립할 거냐고 하고, 하지 않을 거라 하면 이기적이라고 한다. 어떤 대답을 해도 마이너스 점수가 기다리고 있다.

 

질문의 이유: 고도로 훈련된 검열

 

“애인 있습니까?” 질문은 이토록 힘을 가진다. 질문 하나 받았을 뿐인데 누군가(남성)는 부양책임자로서의 자리를 확인한다. 누군가(여성)는 가정에서의 출산과 육아라는 자신의 역할을 떠올리게 된다. 본래의 자리를 두고 일터로 ‘잠시’ 나온 것임을 알게 된다. 또 누군가는 동성에게 향하는 성적지향을 감추게 된다. 감출 수 없는 이는 불려나가 한소리 듣는다. “왜 그러고 다닙니까?”

 

“면접가면 사람들이 남자인 줄 알아요. 그런데 이력서 보면 여자잖아요. 그러면 질문이 시작돼요. 본인 맞습니까? (…) 왜 그렇게 하고 다닙니까? 라는 거예요. 면접 보면서 제일 먼저 하는 말이.” -성전환자 인권 실태조사 보고서(2006년 9월 성전환자 인권실태조사 기획단)

 

그러고 다니면 안 되는 거다. 사회는 일터로 들어가는 문턱을 높여 일러준다. 이쯤 되면 면접관들의 사생활 침해 질문이 다시 들린다. “애인 있습니까?” 왜 그딴 게 궁금한가 했다. 미리가 “여자랑 사귀어요” 라고 말하지 못하게 하는 질문. 그것은 ‘이성애 규범’에 따르겠냐는 일종의 서약 같은 물음이었다.

 

이성애 규범은 여자와 남자가, 남자와 여자가 맺어지는 일을 ‘정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규범은 “이성을 좋아하니?” 묻고 끝이 아니다. 이성애 규범을 따른다는 것에는 상대에게 이성으로 보일 성역할(옷차림, 외모, 행동, 성격)을 수행한다는 옵션이 붙는다. 남/여 정체성을 가지고 일터와 가정에서 어떤 노동을 할 것인지를 함께 묻는다.

 

그래서 고작 애인 유무를 물었을 뿐인데 사람들은 결혼 후 삶을 고민하게 된다. 여성 취업자들은 “결혼 안 할 겁니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이성애 규범에 적합하지 않는 삶이다. 낳고 훈육시켜 기업에 보낸다. 그 모든 일이 “애인 있습니까?” 물음의 종착지인 가정에서 이뤄진다. 이 사회는 이성애 규범(으로 꾸려진 가정)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출산과 양육은 집안일이라 치부되지만, 결코 집안의 일일 수 없다.

 

출산은 ‘아이를 몇 낳아야 하는가’에서부터 ‘아이를 갖지 않는 애정의 형태나 관계를 어떻게 볼 것인가?’ ‘어떤 아이를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가?’ 하는 물음과 연관된다. 물음의 답은 성적 규범, 남/녀의 역할, 결혼과 가정형태를 규정해 버린다. (“생명정치를 통해 본 성과 재생산”, 이유림, IL과 젠더포럼 & 성과재생산포럼, 2016년 6월)

 

그러니까 “애인 있습니까?”는 무개념 갑질 질문이 아니었다. 우리 사회의 규범을 재확인하는, 고도로 훈련된 검열이다.

 

“세상이 네모인데, 당신 네모입니까?”
그러니까 “당신 정상입니까?”

 

▲ 성소수자 노동자들과 이들의 노동권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된 비영리기구 <일터의 자긍심> 캐나다 캠페인. ©Pride at Work Canada

 

엄친아 따라하기

 

회사는 “네모입니까?” 질문을 형태 바꿔 계속한다. 한 인간이 20여 년간 가정과 학교, 병원 등을 거쳐 규격화하고 규범화된다. 훈련되어 보내지는 곳이 노동시장이다. 불량품이 없어야 한다. ‘정상’이 되어야 한다. 정상이란 외모와 행동 뿐 아니라 사회가 권장하는 사고방식, 능력, 신체(건강)까지 아우른다. 그리고 일자리 경쟁이 강화될수록, 여기에 취업요건이 더 붙는다. 요즘 세상은 그걸 스펙이라 부른다.

 

자기계발서 흐름을 따라가 보면, 스펙 성취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노력은 자기관리를 통해 완성된다. 자기관리에는 모델이 있어야 한다. 헬스장 러닝머신 앞에 ‘몸 좋은’ 모델사진이 붙는 것처럼 말이다. 자기관리의 모델은 우리가 살아오며 지향해야 한다고 배워온 인물상이다. 의외로 그 인물은 가까이 있다. 가장 흔하게 있는 곳은 ‘엄마 친구네’일 게다.

 

엄친아는 타의 모범이 된다. 이성애-정상가족의 규범을 가장 잘 수행하는 대표 인물로. 그는 일단 아들이다. 성별부터 1등 시민의 자리를 차지한다. 게이 엄친아, 트랜스젠더 엄친아는 떠올릴 수 없다. 장애인, 질환자, 이주민 엄친아도, 심지어 비정규직 엄친아도 없다. ‘건강한’ 정신과 몸을 가지고 ‘정상가족’을 꾸리는 엄마 친구 아들.

 

우리는 그를 따라한다. (취업 과정에서) 그 행위는 면접장에 들어서기 전부터 시작된다.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타의 모범’이란 단어를 떠올린다. 성소수자들이 이력서를 쓰면서 “자신이 모범적인 이성애자 여성/남성으로서 평생을 살아왔음을 증명”(“이성애 공화국 취업백서”,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 <춤추는 입술> 3호, 2009년 8월)하는 패싱을 해야 하듯, 우리 또한 ‘모범적인’ 삶을 증명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짠다. 평범하면서도 반듯하게 잘 자란 ‘자소설’ 주인공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패싱은 ‘저들’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일정한 패싱을 한다. 사는 일이란, 사람들이 나를 다르다 느껴 뒤돌아보지 않고 지나가도록(pass) 하는 일의 연속이다. 목적과 욕망이 분명한 면접 자리는 대대적인 패싱의 자리일 뿐이다.

 

우리 모두 “애인 있냐?”는 회사의 물음에 말문이 닫힌다. 사회가 권장하는 규범적 이상에 미치지 못할 때 살아남는 방법은 나를 숨기거나 마치 그러한 냥 연기하는 게다. 그래서 미리는 애인이 없다고 한다. 우리는 자소설을 쓴다. 때로는 ‘슈퍼우먼’을 외치다 골병든다.

 

우리는 모두 사회를 (잘) 살아가기 위해 ‘패싱’한다. 패싱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못한 성소수자와 비(非)성소수자. 금성과 화성 사이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결국 같은 태양을 돌고 있는 게 아닐까?

 

그리고…모욕 면접 인생

 

우리 모두가 ‘정상규범’을 연기하는 패싱 행위자라는 소리가, 성소수자들이 겪는 고통을 흔한 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순 없다. 누군가는 패싱을 ‘가면 쓰기’라 했고, 누군가는 ‘보호색’이라 불렀다. 자신의 몸에 색이든 가면이든 덧씌워야 하는 일이다.

 

이들이 자신으로 존재할 수 없는 까닭은 분명 사회적 압력 때문이다. “말하지도 묻지도 마라”는 어떤 폭력보다 잔혹하다. 한국사회는 이들을 ‘없다’ 한다.

 

패싱의 실패와 거부는 실질적인 폭력을 동반하기도 한다. 인터뷰를 하며 어떤 이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 말했다.

 

“전 트루먼쇼(The Truman Show, 피터 위어 감독, 짐 캐리 주연, 1998)라 생각했어요. 순간 의심스럽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짜 맞춰진 것처럼 삶이 고통의 연속이 될 수 있을까. 누가 조작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아웃팅 당하고, 왕따 당하고. 어떤 형태로 사회에서 내가 억압받는지 계속해서 체감해야 하고.”

 

살기 위해 패싱해야 한다. 그런데 폭력에는 행위자가 있다. 폭력은 우리에게서 나온다. 면접장 밖으로 나가면 모두가 서로에게 면접관이 된다. “당신 정상입니까?”를 묻는다. 틀에 맞지 않으면 “왜 그러고 삽니까?” 모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듯 군다. 국가와 기업은 질문을 하는 분명한 목적이라도 있지. 도대체 우리는 왜 묻는가?

 

우리는 왜 서로의 삶을 ‘모욕 면접’장으로 만드는가.

 

(※ 기사에 등장하는 이름 중 일부는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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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09 [16:55]  최종편집: ⓒ 일다
 
18/04/12 [21:53] 수정 삭제  
  네모냐 묻는 거란 얘기 정말 공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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