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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사정’ 교과서의 집필자를 찾아서
베를린 섹스문화살롱 라우라 메릿 인터뷰(상)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하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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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리타의 월경越境 만남] 독일에 거주하며 기록 활동을 하고 있는 하리타님이 젠더와 섹슈얼리티, 출신 국가와 인종, 종교와 계층 등 사회의 경계를 넘고 해체하는 여성들과 만나 묻고 답한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성-긍정주의(sex-positive) 페미니즘과의 만남

 

디아나(내 친구): 여성의 생식기를 가리키는 힘 있고 긍정적인 단어가 중요하대. 여자들이 성을 수치스러워하지 않고 긍정적인 자기 정체성으로 발전시키려면. 예를 들어서 ‘처녀막’(hymen)은 순결과 명예를 연결시키는 억압의 의미로 쓰여 왔으니 대신에 ‘융선’(crest)이나 ‘왕관’(crown)이라는 용어를 쓰자고 하네. 그리고 ‘지스팟’(G-Spot)은 그걸 처음 이론화한 남성과학자 이름의 머리글자를 딴 거고, 그 이론에 잘못된 부분도 있으니까 이 책의 저자는 ‘기쁨의 평면’(Pleasure Plane, P-Plane)을 제안했어.

 

나: 책이 전반적으로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해. ‘Viva la vida’(인생 만세)를 패러디한 ‘Viva la vulva’(보지 만세)가 슬로건이야. 그리고 여성 사정을 ‘황홀한 분출’(Gush of Ecstasy), ‘기쁨의 물줄기’(Stream of Joy)라고 당당히 써놓은 것도 기분 좋아. 40쪽에 보면 워크숍 안내가 나와 있네. 우리도 이걸 가지고 다음 시간에 실습을 해보자! 물론 프라이빗한 분위기를 만들어야지. 소수정예로 편안하게. 제목은 ‘우리가 되돌려 쏜다’(We Squirt Back!)래. 보지를 자세히 관찰하는 걸로 시작하는데, 준비물은 손거울, 라텍스 장갑, 윤활제야. (…)

 

작년에 우리 지역 페미니스트 모임에서 친구들과 2회에 걸쳐 ‘여성 사정 워크숍’을 함께 꾸린 적이 있다. 한 모임 멤버가 잔뜩 설레는 얼굴로 들고 온 책자가 발단이 되었다. 제목은 <황홀한 솟구침 - 여성 사정>이다. 여성 사정에 대한 대안적인 성교육 세미나를 듣고 거기서 교재로 썼던 홍보물을 들고 온 것이다. 우리 모임의 원래 목적은 페미니즘 텍스트 읽기지만, 기회가 될 때마다 영화도 보고 축제나 집회에도 나가는 ‘행동파’들의 모임이었기에 여성 사정은 거부할 수 없는 ‘공부 거리’였다. 워크숍은 아주 즐겁고 유익한 시간이었고 이를 온 세상에 자랑하는 글도 발표했다. (관련기사: 페미니스트, 오르가슴을 말하다 http://ildaro.com/7683 포르노그래피 말고 섹슈얼 판타지! http://ildaro.com/7702)

 

청소년기 내내 섹스는커녕 몇 달 연애해 본 게 전부인 모범생, 뭐든 글로 먼저 배우는 책벌레, 독실한 가톨릭 신자 어머니와 점잖은 공무원 아버지 밑에서 자란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발랑 까졌을까?’ 이 질문을 하면서도 나는 민망하기는커녕 짓궂은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실은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은 저마다 고유하고 역동적인 성감과 성욕, 성애, 성적 감수성과 지향을 갖고 있지만 이를 부정하고 억누르도록 사회화되었고, 이는 다른 삶의 영역에서 경험하는 부자유, 불만족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그러므로 자신의 섹슈얼리티 잠재력을 알고 표현할 수 있게 될 때 삶 전체가 더 자유로워지리라고.

 

이처럼 나는 섹스를 유달리 좋아하고 많이 해서라기 보다는, 그동안 내게 박탈되었던 것을 되찾는 탐험의 하나로 야해지기 시작했다. 안 되는 것인 줄, 나쁜 것인 줄 알고 살았던 세월이 아까워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글로 배우는 습관이 어디 가겠는가. 부지런히 읽고 듣고 말한다. 이번에는 우리가 보던 여성 사정 교과서의 집필자를 직접 찾아갔다.

 

언어학 박사이자 성교육자이고, 성 카운셀링과 페미니스트 포르노 문화기획도 겸하는 성-긍정주의(sex-positive) 페미니스트, 라우라 메릿 박사(Dr. Laura Méritt)를 만났다. 

 

▶ 젊은 시절의 라우라 메릿. ⓒ출처: Polly Fannlaf

 

맑시스트에서 페미니스트로: 80년대 학생운동가의 전환

 

메릿 박사의 명함에는 이름 옆에 타이틀 세 개가 나란히 적혀 있다. 바로 성 전문가(Sexpertin), 커뮤니케이션 학자(Kommunikationswissenschaftlerin), 웃음 연구자(Lachforscherin). 분야를 넘나드는 활동력과 유머감각이 느껴진다.

 

메릿은 1960년생으로, 칼 마르크스의 고향으로 유명한 독일 트리어(Trier)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그곳 대학에서 독일학과 정치학을 전공했다. 1980년대 급진 좌파 대학생들이 으레 그랬듯, 라우라도 맑시즘에 열광했으며 항구 혁명을 외치는 트로츠키주의에 자기 사상을 동일시했다. 그러나 그 시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온갖 사회 혁명을 부르짖으면서 운동권 내 성차별에는 둔감한 남학생들이 활개치는 분위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으니까. 앗, 이거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긴데. 한국의 ‘운동권 출신 페미니스트’들의 사연과 흡사하다. 심지어 07학번인 나도 공감한다.

 

하리타: 어릴 때는 어떤 성향이었나요? 어떤 아이가 나중에 이런 카리스마 있는 퀴어 페미니스트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라우라: 음, 호기심이 많았고… 허락되지 않은 것, 닫혀있는 문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남자형제에게 허용되는 게 나한테 안 될 때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바꾸고 싶어 했죠. 다른 도시를 여행하면서 우리 고향보다 여건이 나은지 의식적으로 살펴보기도 했어요. 청소년기에도 이미 내가 원하는 대로 삶을 이끌어갈 힘이 나한테 있다고 믿고 실험할 줄 알았던 것 같아요.

 

하리타: 그런 마음가짐이 밖으로도 표출이 됐나요? 담벼락에 그래피티로 “bitch”(나쁜 년)같은 걸 써서 10대 문화를 풍자한다든지.

 

라우라: 십대 때는 겉보기에 잠잠했어요. 그래피티 시즌은 나중에 왔어요.(웃음) 십대 때는 구기 종목 스포츠를 많이 했고, 정치 활동은 대학 때 시작했어요. 고향에는 대놓고 마르크스를 싫어하는 보수적인 어른들이 많아서, 나도 대놓고 그 사람들과 대립했죠. 전공 수업의 일환으로 배웠던 경제학, 정치경제학 같은 것들도 다 좋아했어요. 이런 이론들을 통해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네요. (옛날 생각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뜨린다) 온갖 급진적인 정치 활동을 하면서 남자애들이랑 사사건건 부딪쳤는데도 트로츠키는 한동안 굳게 믿었네요. 운동권 내에 성평등은 물론 없었어요. 여자로서 불이익이 컸기 때문에 거길 나와서 여성 그룹을 만들고, 녹색당에 가서 어울리거나, 정치 비판적 카바레(연극의 한 장르)를 무대에 올리면서 점점 더 페미니즘 쪽에서 활동을 하게 됐어요. 30년 전 이야기네요.

 

하리타: 당시 지침이 됐던 여성운동가, 페미니스트 롤모델을 누구였나요?

 

라우라: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Allexandtra Kollentai)가 영감을 많이 줬어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도 물론. 아니타 아우스푸르그(Anita Augsprug)와 리다 구스타바 헤이만(Lida Gustava Heyman)도 독일의 멋진 투사들이었어요.

 

▶ 아니타 아우스푸르그와 리다 구스타바 헤이만의 초상. 페미니스트, 코스모폴리탄, 생태주의자, 반-나치,제국주의자들로 알려진 유럽의 운동가들이다. 두 사람은 20세기 초반에 거의 반세기를 함께한 커플이기도 하다. 제2의 페미니즘 물결에서 거의 다뤄지지 않다가 1970년대 후반에 재발견되었다. (사진 출처: monaliesa.wordpress.com)

 

라우라는 옛날 이야기하는 것을 어색해 했다. 수십 년 전이니 까마득하기도 하고 언제나 오늘, 지금 사회에서 파격적인 논쟁과 프로젝트를 이끌던 사람이라 그런가. 내게는 그녀의 과거가 궁금증을 일으켰다. 여기서 라우라가 언급한 녹색당은 초기 독일 녹색당이다. 좌우 막론하고 경제성장과 개발이 중요 가치였던 당시에는 진보적인 청년들에게 녹색당이 반전, 반개발, 반핵, 반가부장제를 아우르는 드문 정당 선택지였다. 1980년에 창당한 독일 녹색당은 환경, 젠더, 평화 이슈에서 모두 급진적인 노선이었고 여성들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지금은 더 이상 마이너리티 정당이 아니며, 보수화되었다는 비판을 안팎에서 받는다. 독동에서 1990년에 결성된 ‘연합 90’(Bündes 90)과 기존 녹색당이 합쳐진 ‘Bündnis 90/Die Grünen’와, 녹색당원 일부가 갈라져 나와 만든 ‘대안 녹색’(Grüne Alternative)으로 분리되어 있다.

 

현실 정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들끓지만 마초적인 문화가 팽배하는 집단에는 있고 싶지 않았던 1980년대 청년 라우라가 녹색당으로 갔다는 이야기는 스치듯 잠깐 나왔지만, 내게는 절절히 공감 가는 대목이었다. 2000년대 청년 운동가였던 나의 경험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대학 새내기 때 한국에서 모 진보 정당과 학생운동조직에 가입했던 나는 거기서 ‘귀여운 새내기’, ‘아직 어린데 참 똘똘한 친구’로 호명되고 회자되었다. 권위적인 언행과 술자리 개근 그리고 ‘나이’가 리더십의 기준인 듯한 그 곳에 금방 질려버렸다. 마침 당이 요란하게 분열되었고, ‘열심히 할 자신만 있으면 당의 인재가 되도록 키워주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선배들은 ‘좌절감이 크다’며 뿔뿔이 흩어져 한동안 잠수를 탔다.

 

‘진보적이라는 정치 집단이 이러면 다른 곳은 대체 어떨까, 나랑은 정말 맞지 않는 곳이구나’ 하는 심정으로 소규모 학술모임을 하며 대학을 졸업했다. 비영리 부문 노동자로 일하던 중 녹색당이 출범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홍보물에 손으로 그린 귀여운 동물 일러스트가 그려져 있고, 예전 독일 녹색당이 그랬듯 대표자 남녀동수제를 채택한다는 것에 마음이 동해 창당발기인으로 이름을 올렸다. 환경 가치에 공감한 것은 물론이다. 당 모임에 나가 보니, 예전 자칭 진보정당이나 관련 조직에서 알던 인물들 중 ‘마초’ ‘꼰대’와 가장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이 다시 보였다. 그들도 나처럼 대안적인 선택지를 찾은 거였다.

 

한편, 라우라가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여성운동가라고 신중하게 추려낸 이름들을 추적해보면 그녀의 정치적 번민과 삶의 선택들을 조금은 알 수 있다. 로자 룩셈부르크는 19세기 말~20세기 초에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던 마르크스주의 운동가다. 군대를 모아 문자 그대로 혁명을 일으켰고, 전투 중 물리적 폭력으로 인해 죽었다. 유럽 사회주의 운동판에서 이름이 크게 남은 인물로는 유일무이한 여성 지도자다. 마르크스에 이성적 설득을 넘어 정서적 애착까지 가졌던 라우라로서는 맑시즘을 쉽게 버릴 수 없었고, 다만 그 중 여성 롤모델은 꼭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콜론타이는 역시 비슷한 시기 유럽에서 활동했던 러시아 사회주의 운동가로, 정계에서 지도자 자리까지 오른, 드문 여성 롤모델이다. 소비에트 연방 행정부에 여성부를 세우고, 혁명을 통해 여성들의 결혼, 교육, 노동 현실도 바뀔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는 남녀불평등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여전히 억압되고 착취당한다고 했다. 남성 운동가들이 그냥 ‘노동자 해방’을 외칠 때 ‘여성노동자’, ‘가사노동하는 여성’, ‘여성 지식인’ 층을 혁명의 주체로 논한 것이다. 또한, 기존 섹슈얼리티와 가족 개념을 해체해야 진정한 혁명이라고 믿었다. 사유재산 기반의 전통적 가족을 사회 기본 단위로 하지 말고, 남녀 모두 독립적인 주체로 결혼 없이 연애하고 섹스해야 한다고 했다. 아이를 돌보는 노동은 국가가 책임지고 부모는 양육에서 즐거움과 애착만 누릴 수 있어야 한다고까지 했다.

 

이러한 주장은 비단 철학적 사유의 결과만이 아니라 콜론타이의 실제 경험에서 나왔을 것이다. 그녀는 배우자가 싫어서가 아니라 결혼생활 자체가 덫처럼 느껴져 이혼을 했고, 양육을 떠 앉은 상황에서 고민하다가 부모에게 아이를 맡기고 스위스 취리히로 홀로 유학을 떠났다고 한다. 다른 남성 운동가들과 견주어 지지 않는 지성, 열정, 야심에도 불구하고 여자라서 번번이 걸려 넘어진 현실이 한 둘이었겠는가. 콜론타이가 자기 삶의 목소리를 글을 남긴 덕분에 나의 인터뷰이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 아닌지. 라우라는 결혼 없이 수십 년 간 독립된 레즈비언 여성으로서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해왔고, 여성과 사회의 섹슈얼리티 해방을 위해 활동했다.

 

여성과 퀴어를 위한 유쾌한 공간, 베를린의 섹스문화살롱

 

학부 졸업 이후 라우라는 페미니스트 언어학에 매료되어 공부를 이어갔고, 고향 트리어에 있는 외국어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베를린 자유대학과 훔볼트대학 독일학, 문화학, 교육학을 강의했다. 2005년 ‘여성의 웃음’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전형적인 학자의 길을 가지 않고, 서브컬쳐 성향이 강한 섹스문화살롱 ‘섹스클루티비테튼’(Sexclutivitäten)을 열었다. 살롱의 이름은 ‘고급스러움’, ‘독점적인’, ‘유일무이한’과 같은 의미의 ‘Exclutivität’과 ‘Sex’를 결합해 새로 만든 단어다.

 

이곳에선 다양한 섹스토이와 대안적인 문화콘텐츠를 구할 수 있다. 주기적으로 ‘여성 사정’, ‘페미니스트 포르노’, ‘애널 섹스를 위한 입 마사지’ 등을 주제로 한, 야하고 발칙하고 유머러스한 워크숍이 열린다. 학계의 경직된 형식과 언어만으로 섹슈얼리티 전복이 가능하겠는가. 솔직하고 유쾌한 실천을 통해서 성문화가 바뀐다. 라우라의 ‘다업종 커리어’에 나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 섹스클루티비테튼(Sexclutivitäten) 홈페이지 메인 화면. 보지(vulva) 심볼이 아무렇지 않게 화면을 도배한 모습이 경쾌하다. ⓒ출처: sexclusivitaeten.de

 

인터뷰를 위해 직접 살롱을 찾았다. 대중교통에서 멀지 않은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표지판이 없고 초인종에는 살짝 다른 이름이 적혀있어 주소를 미리 알아야만 올 수 있다. 알고 보니 라우라 메릿의 살림집이기도 했다. 입구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니 훈훈한 공기에 아늑한 집 냄새가 조금 난다. 현관 옆 거치대에 행사 리플릿과 포스터가 있다. 방 하나가 영구적으로 사무실 겸 섹스토이샵으로 꾸며져 있다. 구식 유리 장식장 안에 갖가지 섹스토이가 빼곡히 들어차있고, 옆 책장에는 섹슈얼리티 관련 단행본, 사진집, 그래픽 노블과 DVD가 꽂혀 있다. 보지 모양을 한 쿠션과 다양한 섹스 체위를 보여주는 꼭두각시 인형 같은 소품도 눈길을 사로잡는다.

 

큰 사무용 책상에 라우라와 아르바이트생 율라(Ulla)가 나란히 앉아서 일하고 있다. 길게 뻗은 부엌을 통해 거실에 가보니 벽에 큰 사진이 몇 점 걸려있다. 타투와 피어싱을 내보인 퀴어 커플이 섹스하는 장면들이다. 한 쪽 벽에 붙박이 책장이 있고 그 가운데 40인치 가량의 TV가 걸려있다. 인터뷰 이후에 정기 포르노 상영회가 있는데, 여기서 행사를 하나보다. 카펫 깔린 바닥에 여러 가지 소파와 쿠션, 의자가 방을 빙 둘러 놓여있다. 하던 일을 마무리 짓고 차를 내오고 일찍 온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두 사람이 다소 산만한 가운데 나는 질문을 건넸다.

 

하리타: 살림집이라 그런지 분위기가 편안하네요. 이 공간은 얼마나 됐나요? 우여곡절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율라: (라우라가 대신 답해달라고 했다) 사무실이 아니라 집이라서 상담 받으러 온 사람들이 편안하게 느껴요. 이 공간을 처음 연 건 한 30년 쯤? 초기엔 일반적인 여성센터(Frauenzentrum; 동네마다 있는 복지센터)에 가까웠고, 라우라가 섹스토이를 담은 복대를 차고 독일 전역을 다니며 ‘모바일 샵’(mobile shop)을 할 때였대요. 그 때 여기서 Tapaware(가정에서 많이 쓰는 락앤락 용기)를 패러디한 ‘Fuckerware’ 라는 이름으로 기혼여성들을 초대하는 파티를 많이 열었대요.

 

하리타: 무엇을 하는 파티였나요?

 

라우라: 섹스토이를 소개하는 모임이에요. 남자들의 욕구에만 맞춘 섹스토이 산업의 역사를 설명하고, 토이의 모습과 재질을 살펴보면서 어디서 유래하고 어떻게 쓰였는지 논하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종교적 도구도 있었죠. 섹스토이에 대한 정보를 주면서 ‘더럽다’는 편견을 없애는 목적이 있었던, 일종의 인포테인먼트(infotainment) 행사였어요. 그런 역사적 맥락을 먼저 보고 나서야 사용법이나 각각의 장단점을 알려줬죠. 참가한 여성분들 손에 토이를 건네면서요. 어떨 때는 실제로 사용해보는 시간도 마련했는데, ‘섹스 파티’라고 광고가 되니까 인기가 아주 많았어요. 

 

▶ 금요일 저녁 살롱에서 행사 중인 모습. ‘Fuckerware’ 파티가 열리던 1980년대 말~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같은 자리를 지켜왔다.   ⓒ 라우라 메릿

 

하리타: 섹스토이를 들이는데 기준이 까다롭고, 웬만하면 독일에서 생산된 제품을 택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수십 년 이 일을 해왔으니 아는 사람도 많고, 이 업계에서 네트워크가 탄탄할 것 같은데요?

 

라우라: 그렇죠. 생산자들과 개인적인 친분을 갖고 협력하는 걸 아주 중시해요. 제조업체에 직접 찾아가 봐요. 노동환경이 어떤지, 제작 과정이 어떤지 다 눈으로 직접 보는 거죠. 그렇게 출장다니는 게 언제나 즐거웠어요. 독일에 있는 생산자들과는 특히 네트워크가 잘 되어있으니까 서로 아이디어를 주고받기도 하고요. 윤리적인 제품, 여성들이 만든 제품을 지지하는 게 나한테 정말 중요해요.

 

“여성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여전히 특별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다른 수많은 소수 젠더, 인터섹스와 트랜스섹슈얼 그리고 신체적 제한이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성적 즐거움을 탐구할 수 있어야 하죠. (…) 개인의 취향과 상황에 따라 섹스토이에 대한 선호가 다르므로 저는 베스트셀러 리스트를 만들거나 일방적인 추천을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다양한 섹스 실험을 해보고 자신감을 높일 수 있게 충분한 시간을 들여 상담합니다. 섹스토이를 구비하는 데는 질적, 미적, 윤리적 기준을 적용합니다. 노동자를 착취하는 환경에서 만들어졌거나 유해한 성분으로 된 제품은 취급하지 않습니다. (…) 건강 문제에 있어서는 지역 내과의사들과 협업합니다. 윤활제의 경우 특히 친환경, 유기농 성분인지, 피부에 편안한지 반드시 확인합니다. 포르노 컨텐츠 역시 미국 성전문가들과 논의해 교육적인 가치가 있는 것을 엄선합니다. (…)” - 섹스클루티비테튼 소개문 중

 

하리타: 살롱을 운영하면서 힘든 점은 무엇이었나요?

 

라우라: 별로 없었어요. 항상 즐겁게 했으니까. 음, 유일하게 어려웠던 점은, 고객 층인 여성들이 내가 들여놓은 페니스(남자 성기) 모양 딜도를 좋아하지 않았다는 것? 1980년대 시작 당시에 섹스토이는 주로 딜도였고 그 중에서도 페니스가 많았는데, 여성분들이 다른 형태를 보고 싶어했어요. 페니스는 예나 지금이나 문화적 상징으로 어디서나 볼 수 있잖아요? 꼭 성적이지 않더라도 다양하게 변형되어서요. 말 그대로 페니스 사회에 살고 있는데 섹스토이로까지 봐야 되냐는 반응이었어요. 아주 공감 가는 얘기였죠.

 

그래서 딜도가 여러 가지 형태로 나오도록 생산자들과 얘기를 했어요. 그 중 한 가지가 돌고래 딜도예요. 돌고래(Dolphin, 어원은 Delphi)는 레즈비언들의 상징이고, 고래(whale) 역시 여성을 상징하죠. 배가 좀 나오고 둥글둥글 풍만한 몸매잖아요. 아무튼, 딜도 모양이 우리한테 항상 토론거리였어요. 우리 가게 진열장을 페니스 모양이 온통 점령하는 시기가 있었고, 그 다음에는 페니스가 아예 안 보이기도 했죠. 지금은 페니스가 여러 가지 모양 중 하나가 됐어요.

 

하리타: 페니스가 기본 값인 상징의 서열이 무너지고 나니, 비로소 여러 상징 중의 하나로서 다른 것들과 공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말이네요. 돌고래가 왜 레즈비언의 상징인지 더 설명해주세요.

 

라우라: 돌고래의 돌핀, 델피는 자궁을 상징해요.(Delphi; 유명한 예언자의 고향이었던 그리스의 마을 이름이었다. 그리스인들은 그 마을이 지구의 자궁이라고 믿었다 한다.) ‘내면의 지혜’라는 뜻도 있어요. 거기다 자궁이 여성의 성적 에너지 원천이라고 보면 긍정적인 의미가 되죠. 그래서 레즈비언들이 돌고래를 상징으로 써왔어요. 그리고 돌고래는 가령, 도끼 같이 공격적인 모습이 아니에요. 무척 영리한 동물이고, 떼를 지어 잘 다니고 장난기도 많아요. 돌고래는 누구나 좋아하는 대상이죠. 

 

▶ 섹스문화살롱 진열장에 놓인 각종 섹스토이들.  ⓒ하리타

 

하리타: 저 역시 성폭력 피해 경험과 연관된 페니스 혐오증이 심했고, 지금도 페니스가 별로 달갑지 않아요. 저와 섹스하는 남성 파트너는 성기 삽입의 욕망을 내려놓아야 되죠. 삽입섹스를 여러 가지 가능한 섹스 중 한 가지로 둘 때만이 즐거운 섹스가 가능하다고 믿어요. 그럼, 탄트라(tantra; 밀교 수행법)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우라: 괜찮죠. 어떤 섹슈얼리티도 사실 다 괜찮아요. 그게 내 모토예요. 스스로를 섹스보다 중요한 존재로 여길 수만 있다면, SM(사도 마조히즘)이든 탄트라든 무성애든 뭐 어떤가. 행위자 간에 동의가 전제된 것이라면 다 좋아요. (※다음 회에서 이어집니다.)

 

[필자 소개] 하리타(정세연)- 독일살이 4년차. 온갖 차이와 차별에 대한 감각이 여전히 곤두서있다. 일다에 <29살, 섹슈얼리티 중간정산> 칼럼을 연재했고, 이를 바탕으로 <오늘부터 내 몸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어-더 자유로운 페미니즘을 위하여>(2017, 동녁)를 썼다. 독일 프라이부르크에서 환경사회학 석사과정을 마쳤고, 앞으로 젠더, 이주, 섹슈얼리티,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계속 글쓰고 행동해나가려 한다. 하리타는 산스크리트어로 ‘초록’이다. facebook.com/haritamoonri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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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4/30 [07:35]  최종편집: ⓒ 일다
 
moonshine 18/04/30 [09:03] 수정 삭제  
  페니스 모양 딜도 싫다는 거에 공감 공감! 누구 좋으라고 만든건지 모르겠더라구요. 재밌는 인터뷰 잘 봤습니다 ㅎㅎ
룸메이트 18/05/01 [11:30] 수정 삭제  
  멋지네요!
moose 18/05/16 [09:31] 수정 삭제  
  시원시원해서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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