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너무 매력적인 당신

<빠담빠담>의 작가 정경아

김윤은미 | 기사입력 2003/05/01 [00:29]

내게 너무 매력적인 당신

<빠담빠담>의 작가 정경아

김윤은미 | 입력 : 2003/05/01 [00:29]
인터뷰를 제의했을 때, 경아님은 왜 ‘죽작가’인 자신을 인터뷰 하냐고 핀잔을 주었다. ‘죽작가’는 죽치고 있는 작가의 줄임말. 정경아씨는 만화가다. 약력을 잠시 살펴보면, 그녀는 남편 원종우씨와 함께 2000년 11월 에디뜨 삐아프의 일생을 그린 만화 <빠담빠담>(시공사)을 발표했다. 또한 2000년 초에 창간된 만화비평 웹진 두고보자(www.dugoboza.net)의 편집위원이고, 98년 만들어진 <영혼기병 라젠카>의 기획 시나리오 <마술피리>의 원작자이기도 하다.

경아님은 1969년생이다. 그녀는 고등학교 때 김혜린 만화에 푹 빠져 지냈고, 그때 막연히 만화가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녀는 어중간한 것보다는 확실한 스타일을 선보이는 작품을 선호한다. 그리고 ‘여성만화’로 분류되는 만화 - 한혜연이나, 나나난 키리코 작품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낙서쟁이였어요.”

그림은 언제부터 그렸어요?

- 어릴 때부터 낙서쟁이였어요. 아빠가 시험지 종이로 곱게 노트까지 만들어서 낙서하라고 주셨어요. 집안에서 그렇게 받쳐주니까 열심히 낙서했죠.

한겨레 최호철의 연출특강 강좌에서 들었는데, 그림 그리는 스타일은 거칠게 두 가지로 나뉜대요. 상상해서 그리는 스타일과 베끼는 스타일. 만화가들은 주로 상상해서 그리는 쪽이라던데.

- 난 그림 그리는 스타일이 주로 상상해서 그리는 쪽이었어요. 상상해서 그리는 건 테크닉에 매몰되지 않고,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어요. 재미있기도 하고. 초등학교 때도 주변 친구들은 내 그림 좋아했지만, 선생님한테는 칭찬 못 들었어요. 초등학교는 특히 포스터 천국이잖아요. 도안화된 그림, 깔끔한 채색은 정말 못했죠. 포스터 천국의 아웃사이더였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이런 스타일은 관찰력이나 묘사에는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제대로 된 작품을 하려면 관찰하는 훈련을 해야 하거든요. 게다가 나는 빨리 그리는 타입이에요. 만화가로서 이게 극복이 되어야 할 거 같아요. 전체적인 미학적 완성도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뒷심이 필요하지. 처음의 순간적인 감각만 쥐고서 작업하면 그건 즐기는 것뿐이잖아요. 작가라면, 자신의 작업에 책임을 져야지.

뭔가 빡세게 매달린 경험이 있었다면 도움이 됐을 텐데. 학교 통지서에서 늘 ‘좋아하는 것만 한다’고 적어줬어요. 고등학교 때 시험공부도 따로 한 적이 별로 없고. 낭만적인 아빠 닮아서, 시험공부를 위해 학원 다니는 걸 쪽팔리는 짓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미대 가는 애들도 공부 못하니까 가는 거라고 우습게 봤어요. 안 좋은 생각이었죠.

“낮에는 운동, 밤에는 소설과 만화에 빠졌어요”

경아님도 대학 다닐 때 운동권 이었다면서요?

- 음. 사학과를 들어갔거든요. 사학과라서 운동의 도가니였고 맑스에 대한 논의는 나의 지적인 허영심을 자극했지요(웃음). 88년-89년 당시는 학생운동이 바뀌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PD(좌파)들이 생겨나고, 정파들이 난립했고, 얼마나 빨간지 서로 겨루기를 했어요. “좌익 소아병을 ML(맑스-레닌)주의의 철퇴로 절멸하라”라는 팜플렛을 보고 충격 먹은 기억도 나요. 대학 다닐 때, 낮에는 이런 팜플렛보고 세미나하고, 밤에는 르네상스(순정만화잡지)나 소설책을 읽고 살았어요. 모순적인 이중생활이었죠. 이 모순을 극복해 보고자 시위현장을 낭만적으로 그리기도 해봤어요.

운동뿐만이 아니라 시대가 빠르게 변했어요. 수동타자기에서 전동타자기, 워드프로세서에서 컴퓨터까지 등장했지. 나는 컴퓨터 통신을 시작했고, 하이텔이나 천리안 애니동 돌아다니면서 일본불법애니메이션 복사해서 보곤 했어요. 애니메이션 학원을 다닌 적도 있어요. 나는 연출을 배우고 싶었는데, 거기서는 반복작업만을 시키더군요. 그래서 얼마 못 버텼지. 나중에 엄마한테 학원비 내고서는 학원 안 갔다고 혼났어요(웃음).

그녀의 대학시절은 ‘낮에는 운동, 밤에는 만화’였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운동과 예술을 함께 하기란 쉽지 않은 것 같다. 운동으로서의 예술관을 투철하게 가지기 위해서는, 운동 자체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는 이를 이데올로기를 전파시키는 작업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자신은 아직 그럴 만큼 확실한 신념이 부재한 상황이고 그 상태에서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자신감이 없다고 말했다.

- 방학 때 Factory Training에 참가해서, 구로서 공장 다닌 적 있어요. 내가 들어간 곳은 작고 영세한 공장이었지. 거기 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토큰 하나 빌리고 돌려 받는 것도 큰 일이더군요. 잔업도 많아서 몸이 힘들었어요. 게다가 나는 반복되는 작업을 잘 못하거든요. 전에 다닌 애니메이션 학원에서도 그랬듯이.

졸업 후에는 본격적으로 만화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2주 밤새서 첫 원고작업을 했어요. 통신에서 만난 스토리 작가 통해서 <터치>편집실에 원고 들고 갔는데 세련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답답해서 친구에게 원고 보여주니까, 친구가 “네가 그리고 싶은 만화가 뭔지 생각해봐”라고 말해주더군요. 물론 친구는 노동운동 판에 있던 애였고, 만화 운동론의 시각에서 말한 거였지만 아무튼 나로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소소한 연애와 성장 구도의 만화 말고도 다른 만화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고. 그래서 상업 만화계에 빨리 진출할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지. 이렇게 방황하던 동안 첫 번째 남편을 만났어요.

“<빠담빠담>은 꿈만 먹고 사는 가난한 무명작가로서, 여성으로서 고뇌하던 시기에 작업했었어요”

<빠담빠담>은 에디뜨 삐아프의 노래 제목으로 ‘두근두근’하는 심장소리, 혹은 흥얼거리는 ‘라라라’ 정도의 표현이다. 프랑스 가수 에디뜨 삐아프는 가난한 어린 시절과 수많은 사랑으로 점철된 인생사, 감미로운 목소리로 국내에도 꽤 알려진 사람이다. 영화 <파니 핑크>에 삽입된 ‘Non, Je Ne Regrette Rien’(아뇨, 난 후회하지 않아요)도 유명하다. 경아언니는 <빠담빠담>으로 원종우씨와 함께 2001년 출판만화대상 신인상을 수상했다.

<빠담빠담>은 어떻게 그리게 된 거 에요?

- 첫 번째 남편과 이혼하고 나서 만화가 무엇일까, 여자가 살아가는 법은 무엇일까 등을 고민했었어요. 밀려드는 고독이나 자학, 상실감의 감정들 같은 것. 이혼 후 회복이 중요한 것 같아요. 자학하지 말고, 즐겁게 골몰할 일 찾고, 토닥일 줄 알아야 해요. 이혼한 게 괜히 내 탓이라는 생각이 들고, 상대방 걱정하게 되고 그렇거든요. 당시 <나의 언니 에디뜨 삐아프>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지. 에디뜨는 매우 기묘한, 광폭한 행적의 가수인데, 같은 종족이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건 자매애일수도 있겠고, 예술가로서의 공감일 수도 있겠지. 그래서 작품을 구상했어요.

1권(눈이 먼 소녀 삐아프가 매춘 여성들과 함께 지내는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 처음에는 에디뜨의 어렸을 때 사건을 중심으로, 그녀 주변의 매춘 여성들 개개인의 캐릭터가 강조되는 단편으로 구상했지요. 제목도 ‘여자들’이었고, 표지도 그녀들이 옥상에서 춤추는 장면이었고. 그 당시의 나에게는 재미있었고, 위로가 되는 작업이었어요. 에디뜨 속의 여자들이 주변 여성들에게 분산되고 - 술주정뱅이 같은 캐릭터- 이 여자들이 어린 에디뜨의 내면을 구성하게 되는 거였어요. 시대사나 여성 예술가의 삶 등 사회사를 폭넓게 다루고 싶기도 했었어요.

<빠담빠담>구상과는 직접적인 상관은 없지만 비슷한 시기에 정신대 할머니들 이야기에도 관심을 가져서 자료 수집했어요. <낮은 목소리>를 봤는데, 조심스럽게 말해야겠지만 강력한 어조로 주장을 펼치는 것 아니면 소소한 면까지 파고드는 섬세함 -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좀 어중간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무튼 그 상영장에서 전시된 할머니들의 그림들보고 자료를 찾았어요. 개인사도 찾아보고. 만일 이 문제를 내가 만화로 다룬다면 어떻게 할까, 이를테면 훌륭한 다큐멘터리 만화에 대해 고민을 한 거였어요.
참고로 <빠담빠담>공식 홈페이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꿈만 먹고사는 가난한 무명작가로서, 여성으로서 고뇌 어린 시기였기에 삐아프의 삶이 예사롭지 않게 다가왔다고.

결혼생활이 힘들었다고 전에 들은 기억이 나는데...첫 남편은 어떤 사람이었어요?

- 내가 ‘하록선장’ ‘내일의 죠’라고 별명을 지은 기억이 나요. 문학이나 인생에 대해 꽤 아는 척 했던 사람. 하지만 ‘경직된 운동권’이다 보니 말이 잘 안 통했어요. 혼자만 자유스러운 마초였고, 가정을 생각하질 않았죠. 이를테면 그와 나의 관계는 지배-피지배 관계였다고 할 수 있죠. 2년 동안 괴롭게 결혼생활을 보내다가 헤어지게 됐어요. 첫남편은 이혼했지만, 도장을 계속 안 찍어 줬어요. 법원에서 약속을 3번 펑크냈었어요. 헤어지는 마당에도 화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지.

<빠담빠담>은 여성 가수의 일생을 그렸음에도 불구하고, 전기 만화는 아니다. 스타일 역시 공책크기의 판형, 올컬러 디지털 제작이었기에 특이하다, 유럽 만화 같다는 평을 들었다. 좁은 한국 만화시장의 성격상 많이 팔리기는 어려웠지만.

- 어디에서 낼까 고민했어요. 윙크를 사봤더니 천계영이 <탤런트>로 대상을 받았더라구요(98년). <탤런트>는 대중적인, 윙크만의 스타일을 가진 작품이지. 나는 못할 거 같고, 그래서 그쪽 은 포기하고, <나인>공모전을 기대하고 작업에 들어갔어요(<나인>은 더 나이많은 독자를 대상으로 한 잡지). 컴퓨터, 칼라작업이 좀더 자유롭고 눈에 띄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렇게 작업하게 된 거에요. 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게임 디자이너 일을 했기에 컴퓨터 작업에 익숙한 편이었어요. 그런데 <나인> 공모전 예선에서 탈락했어요. 기자들 선에서 짤렸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시공사에 들고 갔더니, 선뜻 책을 내주겠다고 기획서를 내라고 했어요. 그래서 초기 기획보다 양이 더 늘어나고, 12권으로 계획되었어요. 지금은 출간보류가 됐지만. 그래서 천천히 작업하려고 해요. 스타일을 다시 고민해야겠지요. 실험적 판형이고, 독자 대상층도 애매했고, 장르도 모호하고. 아쉬운 게 많아요.

경아님과 약속을 잡을 때 가장 큰 변수는 아이다. 딸 서현이는 돌을 앞두고 있다. 결혼한 여성들이 그러하듯 언니 역시 아이 키우랴, 시부모 눈치 보랴, 개인 작품 고민하랴 정신이 없다. 그녀의 말로는 <빠담빠담>을 함께 작업한 남편과 그 전에는 강력한 팀이었는데 아이 때문에 팀이 와해되었다고 한다.

“여자로서 억울한 게 엔진으로 가동되는 것 같아요”

- 요즘은 갈팡질팡하는 편이에요. 자신감이 떨어지고, 여유도 없어지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주기적으로 그런 상황을 겪을 거 같아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는 시기.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고, 작업을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애를 맡겨도 애 맡기는 시간에 뭘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게 구체화되어서 일상에 나타나는 게 길 못 찾고 헤매는 그런 현상들이에요.

‘여성만화’라고 하면, 그 범주가 꽤나 모호하잖아요. 크게 보면 순정만화를 포괄한 여성들이 그린 만화를 다 가리키는 것이고, 좁게 잡으면 여성의 삶에 대해 진정성있게 포착한 만화를 뜻하게 되고. 후자의 의미에서 <빠담빠담>은 ‘여성만화’ 쪽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 되요. 그리게 된 배경도 그렇고.

- 그렇겠지? 여자가 하는 이야기는 여자 이야기의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아요. 난 ‘우울 엔진’과 ‘발끈 엔진’ 사이에서 왔다갔다해요. 나는 왜 이러나 - 우울과 아, 자존심 상해, 나는 이렇게 썩을 수 없어! - 발끈하는 것. 여자로서 억울한 게 ‘엔진’으로 가동되는 것 같아. 내 내면에 있는 하소연, 슬픔, 이런 것들로 작업할 힘을 내는 거지. 다른 여자들의 이야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내면에서 끓어오르는 작업의 진정성은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자로 산다는 게 어떻다고 생각해요?

- 억울하지요. 어렸을 때는 남자와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혼적령기가 되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더라구요. 관찰이나 훈련의 면에서 제약을 많이 받고. 첫 번째 결혼은 집이 갑갑하고 내 삶의 출구가 안보여서 택한 일종의 도피처였던 것 같기도 해요. 답답하다고 해서 나 자신을 포기하면 안 되는데, 방기해버린 것 같아요. 한번 방기하게 되면 끝도 없이 끌려가게 되죠.

그렇다고 해서 이런 스트레스를 ‘수다로 풀자!’는 방법이 아닌 것 같아요. 여자들과 친해지는 거 힘들거든요. 각자 처지가 달라서 내적인 고민에 휩싸여 사니까, 같이 모여서 장보거나 차를 마셔도 속 깊은 고민을 말하기 힘들어요. 다들 자기 가정에 발 딛고 있으니까요. 시도해 봤지만, 대화 안되고 다른 엄마들이 애 키우는 거 보면 위축감 느껴요. 나 혼자 하소연하는 것 같고, 내 일은 별 게 아닌 것 같고, 다들 더 큰 문제 푸는 강철 인간 같아요(웃음).

비슷한 환경에 놓인 여자들이라고 해서 다 친해질 수 있는 건 아니다. 특히 만화를 그리고, 비평담론을 생산하는 사람이라면 그 작업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지 않는 이상 친해지기 힘들겠지. <빠담빠담>이나 경아님이 쓴 비평론을 보면 그녀는 굴곡 있는 서사와 거기서 묻어나는 일종의 ‘진정성’을 중시하는 듯 하다. 만화로 치자면, 일상성을 강조하는 90년대 순정만화보다 드라마틱한 80년대 순정 만화에 좀더 가깝다. 그녀는 예전에는 멋지고 근사한 외관에 끌렸지만, 그 낭만적인 외관 속에 있는 진정성이 작품의 감동을 주는 요소임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만화는 만화로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죠“

- 예술이 감동을 주는 이유는 진정성 때문이겠지요. 그 사건을 겪은 사람으로서 느끼는 공감. 알콜중독자는 추하지만, 그가 그렇게 된 사연은 설득력 있을 수 있어요. 현실은 추함과 그 추함을 가능하게 하는 사연으로 공존해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 추함에 도망가 버리지. 진실은 추함과 함께 가는데 사람들은 그 추함을 보고 싶어하지 않아하죠.

안데르센을 예로 들어볼까요. 그는 가족사가 엉망진창이에요. 그는 인어공주나 외다리 병정 이야기를 통해 아름답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냈지만, 정작 자서전에는 거짓말을 썼어요. 따뜻한 가정이었다고. 왜 그랬을까?

안데르센은 진실을 보여주는 방법을 개발한 거겠죠. 추한 것을 간략화시키고, 환상과 결합해서 날 것을 주지 않았지. 이것이 예술인지도 몰라요. 그래서 안데르센이 자서전에 거짓말을 쓴 것은 무죄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자신도 진실을 알아요. 이를 확인하고 되새길 때 일종의 치료, 승화가 가능하지만 직시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지요. 이 과정을 예술이 도와주는 것 같아요.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작업하는 만화가 동료들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경아님 작업은 상업만화 쪽에 속하지는 않고, 다른 만화로 묶이지는 않잖아요.

- 작가는 의식적으로 풍요하게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상을 나누고, 외국 만화 같이 보고, 함께 비평하는 작가 동아리가 있으면 좋겠지요. 이를테면 만화작가들의 ‘경향집단’. 왜, 미술사에서 20세기 초에 활발했던 유파들 있잖아요. 클럽에 모여서 이야기 나누고 서로 지향하는 바를 공유하고. 상업작가들은 어쩔 수 없이 골방신세를 많이 지게 되요. <사각사각>(김나경)에 나오는 만화가의 상황은 사실 비참하죠. 좋은 작가는 주변의 자극과 비평 속에서 관점을 세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빈곤한 작가가 되죠. 만화는 만화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녀는 요즘 다음과 같은 몽상을 한다. 행복하고 여유 있고 자신만만한 ‘나’와 자신감 없고 갈팡질팡하고 울고 있는 ‘나’ - 이 두 ‘나’가 만나서 일상을 꾸려 가는 이야기. 경아님은 몽상을 종이에 옮기느냐 마느냐의 차이가 작업의 여부라고, 지금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몇 시간의 인터뷰로 4월의 어느 오후는 그렇게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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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데 2003/05/02 [14:31] 수정 | 삭제
  • 하시는 말씀말씀 가슴속 텅빈 구멍구멍
    가려운 부분을 사정없이 긁어주네요.
    만화로 다시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 궁굼이 2003/05/01 [15:03] 수정 | 삭제
  • 지금은 출간보류라고 기사중에 적혀 있던데요.
    우째 구입해야나요?
    일단 뒤져보고 쓸 걸 그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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