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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은 파도를 일으키는 주체가 될 수 있다”
<페미니스트라면 이 뮤지션> 라틴 힙합 아티스트 아나 티주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블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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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퍼 아나 티주(Ana Tijoux)가 세계적으로 많이 알려지게 된 시점은 2010년 이후일 것이다. 그 해 발표한 앨범 [1977]에 수록된 싱글 “1977”(자신이 태어난 해)은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와 <브로드 시티>, 그리고 게임 <피파 11>에도 삽입곡으로 등장하며 폭넓은 유명세를 탔다. 또 이 앨범은 그래미 시상식 베스트 라틴 록/얼터너티브 앨범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 칠레 출신의 힙합 아티스트이며, 프랑스 이민 2세인 아나 티주(Ana Tijoux)의 2010년 앨범 [1977]  자켓

 

이후 발표한 앨범 [La Bala](총알, 2011)과 [Vengo](내가 왔다, 2014)는 그래미 시상식과 라틴 그래미 시상식 양쪽 모두에 후보로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아나 티주는 호르헤 드렉슬러(Jorge Drexler)와 함께한 곡 “Universos Paralelos”(평행우주)를 통해 라틴 그래미 트로피를 받게 된다.

 

그가 피처링으로 호흡을 맞춘 호르헤 드렉슬러는 우루과이 출신의 음악가로, 체 게바라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 <모터싸이클 다이어리>(월터 살레스 감독, 2004)의 엔딩곡 “Al Otro Lado Del Rio”(강 저편에)를 불러 큰 주목을 받았고, 지금은 라틴팝 음악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중 하나다. 그는 독일에서 우루과이로 망명한 유대인 아버지와, 유럽에 뿌리를 둔 크리스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우루과이-스페인에서 생을 보내며 정체성과 인종, 종교에 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다.

 

오늘 소개할 뮤지션 아나 티주 역시 ‘이민 2세’라는 독특한 유년의 환경을 통해 정체성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끊임없이 자아와 세상을 향한 질문을 던지며 자기만의 길을 열어가는 중이다.

 

프랑스의 이주자 어린이에게 “힙합은 일종의 영토”

 

아나 티주는 프랑스에서 태어났으며, 칠레 이민 2세이다. 어머니인 마리아 에밀리아 티주(Maria Emilia Tijoux)는 칠레의 저명한 사회학자였다. 에밀리아는 1973년 칠레 쿠데타 당시 군부독재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했다.

 

※1970년 칠레에서 선거를 통해 첫 사회주의 정권(살바도르 아예데 전 대통령)이 탄생했으나,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이를 무너뜨리고 군부독재를 시작했으며 1990년까지 장기 집권하면서 3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했다.

 

▲  아나 티주(Ana Tijoux) NPR Music Tiny Desk Concert 유튜브 영상 캡쳐

 

아나 티주는 프랑스에서 살면서 힙합을 접하게 되었고, 군부독재가 막을 내린 1990년대에 칠레로 돌아간 이후에도 힙합 그룹들을 만나게 됐다. 그에게 힙합은 하나의 ‘장소’였고, 돌아갈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버드 가제트>(Harvard Gazette, 하버드대 주간학보), <데모크라시 나우!>(Democracy Now! 미국의 대표적인 독립 미디어)와의 인터뷰에서 “프랑스의 이주자 어린이들에게 힙합은,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에게 일종의 영토와 같은 존재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이주민으로 살면서 느꼈던 혼란과 실망을 힙합을 통해 회복할 수 있었고, 동시에 다양한 국가의 음악으로부터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반체제 인사로 사회운동을 했던 어머니 덕분에 아나 티주는 프랑스에서 세네갈, 모로코, 알제리 등 다양한 중동/아프리카 국가 출신의 이주자들을 만났고, 동시에 그들의 음악과도 만날 수 있었다.

 

아나 티주는 프랑스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칠레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강하게 끌렸고,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 칠레로 돌아갔다. (그를 남미 음악가로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거기서 랩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을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펑크/재즈 밴드에서도 노래를 부르며 음악적 기반을 착실하게 다졌다. 힙합, 재즈, 펑크, 나아가 그는 자신의 뿌리가 지닌 음악적 영역에도 관심이 많았다. 이 시기에는 아나 티주 뿐만 아니라 많은 정치적 망명인의 자녀들이 칠레에 돌아오면서, 칠레 사회는 문화적으로 새롭고 다채로운 물결을 맞이했다.

 

자본주의가 낳은 ‘쓰레기 문화’에 저항하는 페미니즘

 

아나 티주는 솔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었고, 음악적으로도 빛을 보게 된다. 2007년에 첫 정규 앨범 [Kaos]를 발표했고, 2010년에 앞서 소개한 앨범 [1977]을 발매한 이후 그는 좀 더 분명하게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신이 태어난 해인 1997년을 앨범과 곡의 제목으로 정한 아나 티주는, 독재정권의 탄압을 피해 칠레에서 프랑스로 망명을 한 어머니의 딸로 태어나 이민 2세대로 살아온 유년의 우울하고 어두운 감수성을 랩(“1997 쉿, 1997 쉿, 1997년 아무 말도 하지 마라”)에 담았다.

 

2011년 발표한 앨범 [La Bala](총알)은 칠레 경찰이 시위자를 살해한 사건을 은유하고 있다고 해석되는데, 이때부터 아나 티주는 정치적인 발화를 지속해나갔다.

 

▲  2014년 발표한 아나 티주(Ana Tijou)의 [Vengo] 앨범. 사회적 저항의식을 안데스 지방 음악과 홤께 녹여냈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정규 앨범 [Vengo](내가 왔다, 2014)에서는 안데스 지방의 전통 음악을 녹여내고 토착 어쿠스틱 악기들을 사용하며 “우리의 검은 머리카락, 우리의 높은 광대뼈”를 노래하는 등 라틴 힙합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과 공동체의 자긍심을 드러내었다.

 

음악 활동을 통해 반(反)인종주의를 비롯하여 반(反)식민주의, 반(反)파시즘, 반(反)자본주의, 그리고 페미니즘을 일관성 있게 지향해 온 아나 티주는 자신의 서사를 풀어내는 방식으로 힙합을 택했다. 그는 걸톡HQ 매거진을 비롯한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의 문화를 “쓰레기 문화”라고 칭했는데, 관습적인 성별 역할을 무분별하게 학습하고 여성의 신체를 통제하는 지금의 문화를 비판하는 용어다.

 

파시즘이나 인종차별, 계급차별에 반대하지 않는 페미니즘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말하는 아나 티주는 “페미니즘은 백화점에서 살 수 있는 티셔츠가 아니”라며 “새로운,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그린레프트 위클리 매거진)고 주장한다. 나아가 그는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세계적인 래퍼가 되었지만 아나 티주는 불어나 영어가 아닌, 칠레에서 쓰는 스페인어로 랩을 한다)와, 우리의 몸에 재현된 가부장제에 맞선 ‘일상의 투쟁’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나 티주의 대표적인 곡 중 하나이며 페미니스트 찬가라고도 알려진 “Antipatriacha”에서 그는 여성을 “복종하거나 순종하지 않는”, “강력한 반란군”, “독립적이고 용감한”이라고 수식한다.

 

“나는 우리 역사의 주역이 될 수 있고 파도를 일으키는 주체가 될 수 있다”, “내 몸은 나의 것이므로 나는 복종하는 존재가 아니다”, “내 시간과 내가 원하는 방식과 내가 원하는 곳을 내가 선택한다”, “나는 너의 뒤에서 걷지 않고 너와 나란히 걷는다”, “너는 나를 침묵시킬 수 없다” -Ana Tijoux, Antipatriacha

 

▲ 페미니스트 찬가라고 알려진 아나 티주(Ana Tijoux)의 Antipatriarca 뮤직비디오 중에서

 

남미 힙합의 새로운 목소리

 

아나 티주는 남미 전체를 통틀어서도 손꼽히는 여성 래퍼다. 칠레 최고의 힙합 스타이며, “음악 시장의 주류 흐름을 만드는 여성 래퍼 16”(힙라티나 매거진),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남미 래퍼 6”(웨스트워드 매거진), “남미 힙합의 새로운 목소리 여성 5”(레메즈클라 매거진)으로 꼽히기도 했다.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정치적인 이슈들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주민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그는 지금의 위치에 오게 되었다. 이주자로서, 여성으로서, 민주주의를 빼앗겼던 사람으로서, 그는 여전히 활발하게 목소리를 내며 활동 중이고 더욱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고 있다.

 

그의 작품은 음악적으로도 여러 실험을 통해 높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남미 음악 특유의 전개와 진행이 깔려 있으면서, 그 위에 좋은 랩을 얹고, 투박한 비트에 그치지 않고 여러 퍼커션을 통해 음악적인 면과 정체성을 모두 강화하는 데 성공했다. 무엇보다 뚜렷한 자기만의 색채가 있다. 레게통이나 댄스홀과 같은 요즘의 유행과는 다른 남미 음악을 들려주기 때문에, 그 자체로도 기존의 남성성과 주류에 저항하는 것이며, 나아가 대안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

 

※ Ana Tijoux - Antipatriarca (Official M/V) https://www.youtube.com/watch?v=RoKoj8bFg2E

※ Ana Tijoux - 1977 (Official M/V) https://www.youtube.com/watch?v=yiQ7S38nKog

※ Ana Tijoux - Vengo https://www.youtube.com/watch?v=BN4k3mnJteo

※ Ana Tijoux - Luchin (Official M/V) https://www.youtube.com/watch?v=YyW048UM8ec

※ Ana Tijoux - Sacar La Voz ft. Jorge Drexler https://www.youtube.com/watch?v=VAayt5BsEWg

 

[필자 블럭(bluc): 음악에 관해 글 쓰는 일과 기획 일을 하는 프리랜서입니다. 2019년에는 음악과 여성학, 문화연구를 더 깊게 공부하여 그 정보를 독자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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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12 [15:34]  최종편집: ⓒ 일다
 
바이 19/04/15 [13:25] 수정 삭제  
  영미 백인 유럽권 페미니스트가 아닌 다른 얼굴들이 보이는 게 참 좋네요. 음악 들으러 고고!
kasha 19/04/15 [15:45] 수정 삭제  
  쓰레기문화 딱 맞는 말이네 = 강간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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