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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성폭력 사건의 ‘진실 찾기’ 핵심 개념은
성적 자기결정권, 위력에 의한 성범죄, 성인지 감수성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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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사건이 대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있다. 수행비서였던 김지은씨가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 등 혐의로 안씨를 고소한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피고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고, 2심은 징역 3년 6개월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엇갈린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이 사건이 많은 이들에게 논란이 된 측면도 있지만, 재판 과정에서부터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로 인해 세간의 관심이 피해자의 사생활에 초점이 맞춰지며 성범죄에서만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피해자다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2심에서 법원이 안희정 전 지사의 성폭력(위력에 의한 간음, 추행)을 인정하자, 그의 배우자 민주원씨는 SNS를 통해 김지은씨와 남편의 관계가 ‘불륜’이라는 주장을 반복했고 설상가상으로 언론이 이를 대대적으로 받아쓰면서 이같은 여론을 부채질했다.

 

▲ 안희정씨의 배우자가 ‘불륜’ 주장을 반복하며 피해자를 비방하는 글을 계속 퍼뜨리고 언론이 이를 받아쓰기하자,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는 피해자에게 2차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중지하라며 성명을 냈다. © 일다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일을 알린 이후,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의심을 사고 비방을 받게 되는 ‘2차 피해’는 성폭력 피해자를 더욱 힘겹게 만든다. 지난 1년은 그만큼 김지은 씨에게 힘겨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분명히 이 사건은 공인과 피해자의 사생활 이슈가 아니라, 위력에 의한 성범죄를 법원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의 문제다. 안희정 사건을 둘러싼 공방과 논란이 대대적으로 계속되었음에도, 여전히 많은 이들이 ‘위력에 의한 간음’죄가 무엇인지도 잘 알지 못하는 현실은 심각한 문제가 있다. 이 기사에서는 안희정 사건 판단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성폭력 진실 찾기의 핵심적인 개념들-위력, 성적 자기결정권, 성인지 감수성-을 짚어 본다.

 

‘성적 자기결정권’은 법정에서 어떻게 해석되는가

 

성폭력 범죄 판결문에 자주 등장하는 ‘성적 자기결정권’은 말 그대로 성적인 행위에 있어 자기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7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주최한 포럼 <성폭력 사건 진실 찾기에서 당신이 알아야 할 열 가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2심 판결을 중심으로>에서 연사로 나선 차혜령 변호사는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행위를 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건 근대법에서 굉장히 중요한 법 원리”이며 “성적 자기결정권은 성적 의미가 있는 행위를 할 때, ‘언제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성적인 의미가 있는 행위의 주체가 되거나 혹은 그 상대가 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다.

 

▲ 3월 27일 공익인권법재단 공감이 주최한 2019 포럼 “성폭력 사건 진실 찾기에서 당신이 알아야 할 열 가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 2심 판결을 중심으로”에서 성폭력 범죄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차혜령 변호사   © 일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 사건에서 이 ‘성적 자기결정권’이 논쟁이 된 건, 1심 재판부의 다음과 같은 판단 때문이다.

 

“여성은 독자적 인격체로서 자기 책임 아래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음이 당연하고, 이러한 여성의 능력 자체를 부인하는 해석은 오히려 여성의 존엄과 가치에 반하고 나아가 여성의 성적 주체성의 영역을 축소 시키는 부당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할 수 있다. 여성이 상대 남성과 성관계를 가질 것 인가의 여부를 자유의사의 제압이 없는 상태에서 결정하였음에도 자신의 결정을 사후적으로 번복하면서 상대방의 처벌을 요구하는 건, 성적 자기결정권을 스스로 부인하는 행위라 볼 수 있다.” -2018고합75호 강제추행 등(피고인 안희정) 선고문

 

여기에 대해 차혜령 변호사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기본 권리로써 가지고 있다는 것과, 어떤 상대방과 어떤 상황에서 나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침해받는 상황이었느냐, 즉 성폭력이 있었느냐 없었냐는 별개”라고 반박했다. “일반적인 권리를 향유한다는 것과 성폭력 상황에서 권리가 침해된다는 건 다른 이야기이고, 그렇기에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행위로써 성폭력 범죄가 규율이 되어 있다.”

 

여성의 성적 주체성은 당연히 중요하다. 성폭력 범죄에서 처벌하고자 하는 건, 여성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이 없어서가 아니라 성적 자기결정권에 침해가 일어났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이를 간과했다.

 

올해 나온 책 <미투의 정치학>(정희진 엮음, 교양인)에서 한채윤도 “흔히 성적 자기결정권을 ‘원하지 않는 성관계를 거부할 권리’라 설명하는데 이런 설명이 오해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누구에게나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곧 누구에게나 ‘상대의 거부를 받아들일 의무’가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피해자에게 ‘왜 거부하지 않았냐’는 질문은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거부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행동을 했느냐’는 질문으로 바뀌어야 한다.”

 

생소한 용어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란?

 

1심 선고문에서 ‘자유의사의 제압이 없는 상태에서’라는 말이 등장하는 점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말이 등장하는 이유는 현행법에서 성폭력 범죄를 구성하는 요건이 ‘폭행과 협박이 행사’되거나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등으로 협소하게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희정 전 지사의 경우엔 ‘위력에 의한 간음·추행죄’로 기소되었다. 흔히 들어온 성폭력 범죄의 유형과는 다르다. 위력에 의한 성폭력 개념이 생소할 수 있지만, 이 법 조항이 생긴 이유와 판례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진 않다.

 

이 조항은 ‘강자의 지위에 있는 자가 약자의 지위에 있는 부녀의 정조를 농락하는 소행에 대하여 그(것이) 강간이 아닌 이상 아무런 처벌 규칙이 없는 것이 우리의 형벌 법규다. 그러므로 이러한 행위를 처벌키 위해’ 만들어졌다.(조선법제편찬위원회 <형법 기초요강> 및 엄상섭 <형법요강해설> 참조) 여기서 ‘강자의 지위’라는 부분을 주목해야 한다.

 

지금 그 조항은 성폭력 특례법에서 “업무, 고용이나 그 밖의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추행 및 간음”으로 규정되어 있다. 여기서 ‘위력’에 대해 대법원은 이렇게 설명한다.

 

“위력이라 함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협박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며, 이 경우에 있어서의 위력은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될 것임을 요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대법원1998.1.23.선고97도2506판결, 2008.2.15.선고2007도11013판결, 대법원2008.7.24.선고2008도4069판결 등 참조)

 

▲ 2월 12일,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가 개최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 2심 판결 쟁점 분석 변호인단 기자간담회” 자료 중     ©일다

 

작년 3월 5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하여 처음 이 사실을 알린 김지은씨는 ‘시키면 무조건 따라야 하는’ 위치에서 지사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말하며, 거부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힐 수 없는 위계 관계에 놓여있었음을 피력한 바 있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위력이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위력이 행사된 적 없다’고 판단하여 논란을 불러왔다. 반면 2심에선 피해자가 도지사인 피고인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했으며, 피고인의 지위나 권세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무형적인 세력이라고 판단했다. (2월 12일, 안희정 성폭력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주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사건 2심 판결 쟁점 분석 변호인단 기자간담회> 자료 참고)

 

그런데 사실 위력은 어려운 개념이 아니다. 일터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겪는 ‘무언의 압력’, ‘갑질’도 위력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양진호 전 한국미래기술 회장의 직원 상습폭행 건이나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을 바라볼 때와,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을 바라볼 때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왜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했냐며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다. ‘성적인 행위’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까?

 

‘성인지 감수성’은 증거재판주의와 배척되는 게 아냐

 

▲ 책 <미투의 정치학> (정희진 엮음, 교양인, 2019)   

안희정 성폭력 사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개념 중에는 ‘성인지 감수성’도 있다. 이 사건 판결 이후 언론을 통해 많이 언급되면서, 새롭게 등장한 용어인 줄 오해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이미 국가 정책이나 성교육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말이다.

 

‘성인지 감수성’을 이해하려면, 이러한 개념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 알아야 한다. 사회의 제도와 시스템뿐 아니라 일상의 문화 속까지 깊숙이 스며 있는 성별 간의 권력 불균형과 차별을 인지하고, 그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나온 개념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미투의 정치학>에서 정희진은 “오랜 가부장제 문화에서 여성은 독립된 주체가 아니라 남성의 공간, 소유물로 여겨져 왔다”는 점을 짚어낸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공간에 비유되고, 실제 공간으로 사용된다. 이때 남성이 여성의 몸을 ‘만지고 부수고 들어가는’ 행위는 사회가 인정한 성역할 규범(남성의 권리)로 여겨진다.” 남성들이 여성의 몸을 도구처럼 사용하고 여성의 몸을 매개로 남성연대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은, 최근 남성연예인 단톡방의 불법촬영물 촬영 및 공유 실태를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여성의 억압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여성의 욕망에 대한 금지와 처벌이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조건화되어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흔히 말해 성적 욕망을 주체적으로 가졌다는 여성들은 ‘성적으로 개방적’이라는 표현을 듣는다. 여성의 성적 욕망은 누군가를 지배하거나 소유한다는 방식이 되는 게 아니라, ‘개방하는 것’, 즉 남성의 성적 욕망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이해된다. 남성의 성욕의 대상이 되는 것이 여성이 주체가 되는 길이라면 그것이 주체인 것이 맞는가?”(황해문화 2018 겨울호, ‘그 남자들의 “여자문제”- 한국 진보남성엘리트들의 무지와 권력’ 중에서)

 

성폭력 가해자의 절대다수가 남성이라는 점, 우리 사회가 ‘강간문화’라고 일컬을 정도로 가해자 중심의 문화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렇게 성별 불균등한, 성차별 사회에서 법원이 성폭력 범죄를 공정하게 판단하기 위해 요청되는 개념이 바로 ‘성인지 감수성’인 것이다.

 

대법원은 성폭력, 성희롱 사건을 판단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성희롱 피해자가 처하여 있는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 “성인지 감수성은 구체적 사건에 있어 성폭력·성희롱 피해자가 처해 있는 상황, 가해자와의 평소 관계(권력 관계 등), 사건이 발생하게 된 경위 등을 심리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는 의미”다.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성폭력 사건 2심 판결 쟁점 분석 변호인단 기자간담회 자료 참고)

 

여기서 절대 오해해선 안 되는 건, 성인지 감수성을 적용한다는 의미가 ‘증거재판주의’를 배척한다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공감 포럼 <성폭력 사건 진실 찾기에서 당신이 알아야 할 열 가지>에서 차혜령 변호사는 “성인지 감수성이 증거재판을 대체하는 거냐? 라는 물음은 형사재판의 과정을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재판은 당연히 증거를 기반으로 한다”고 설명했다.

 

“증거는 크게 인증과 물증으로 구분되는데, 물증은 말 그대로 어떤 유형적인 물건 등의 증거고 인증은 사람이 증거, 즉 사람의 말이 증거가 된다.” 재판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고려한다는 건, 증거를 배척하는 게 아니다. 피해자의 말, 즉 ‘인증’을 살펴볼 때 성인지 감수성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사회가 남성중심의 문화와 인식, 구조 속에 있다는 걸 유념하고, 피해자가 처한 위치와 사정과 맥락을 고려해서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증인)의 진술을 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차혜령 변호사는 안희정 사건 2심 재판부가 “피고인이 한 사과를 번복하거나, 피고인이 피해자와 어떤 관계였는지 진술이 계속 바뀐다는 점, 연인관계였다는 피고인 주장과 모순되는 피고인 스스로의 진술, 피고인의 진술과 다른 물증, 피고인의 진술과 부합하지 않는 제3자 증언을 심리해서 피고인의 진술 가치를 피해자의 진술 신빙성을 인정하는 간접자료로 활용했다”고 설명했다.

 

이로써 2심 판결은 “성폭력 사건의 재판에서 피해자와 피고인의 진술을 각각 어떤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지” 보여주었고, “성폭력 사건에서 전형적으로 접하게 되는 강간에 관한 통념과 잘못된 편견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박주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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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4/21 [12:00]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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