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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 걱정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해야죠’
<피해와 생계 사이>① “노동은 비정규, 성희롱은 정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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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성폭력 피해자의 ‘생계’와 ‘생존’을 키워드로 삼아 성폭력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피해와 생계 사이> 기사를 연재합니다. <피해와 생계 사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성폭력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연속집담회로, 5월부터 매달 새로운 주제로 총 5회 열립니다. -편집자 주

 

여성 노동자의 41%가 비정규직이며, 여성 노동자의 52%가 직장 내 성희롱을 경험한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을 때 여성 노동자의 입을 막는 건 임시직, 계약직 등 불안정한 노동 형태뿐만이 아니다. 남성 중심의 조직 문화와 위계/권력 구조하에서 여성들은 성희롱, 성폭력 피해에 대한 폭로가 곧바로 생계, 생존과 연결됨을 알고 있다. 생계를 선택하면 피해를 말할 수 없고 피해를 말하기 위해서는 생계를 포기해야 하는 기로에 서 있는 셈.

 

지난 5월 9일 저녁 서울 망원동 오네긴 하우스에서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하는 연속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여성가족부 후원)가 열렸다. <노동은 비정규, 성희롱은 정규?>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첫 번째 집담회에서 여성 노동자들은 직장 내 성희롱이 발생하는 구조와, 피해를 말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출판사 편집자 소영씨, 톨게이트 노동자 명화씨,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미대 졸업생 진진씨. 이렇게 세 명의 여성 노동자와 인천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상담활동가 마루씨가 패널로 참여했다.

 

▲ 5월 9일 서울 망원동 오네긴 하우스에서 열린 ‘피해와 생계 사이’ 1차 집담회 “노동은 비정규, 성희롱은 정규?” 현장.     ©한국성폭력상담소

 

출판업계는 ‘여초’인데 무슨 성폭력이 있냐고?

 

“저자를 만났는데 술자리에서 저한테 ‘손 좀 줘 봐’ 하더니 손을 잡고 안 놔주는 거예요. 뿌리쳤더니 ‘널 성추행하려는 게 아니야. 네가 너무 좋고 책을 잘 만들어줘서 고마워서 그래.’라고 해요. 사람들은 출판업계 같은 여초 환경에서 무슨 성폭력이 있냐고 하지만, (출판사) 밖으로 나가서 사람들을 만나야 하잖아요.”

 

소영씨는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다. 책을 기획하고 적합한 저자를 정해 만나는 것부터 저자로부터 원고를 받아 편집하는 것까지 모두 편집자의 일이다. 저자에게 편집자가 술자리 접대를 하는 것은 출판 산업의 관행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특히 작은 출판사의 경우, 저자를 확보하기 위해 이런저런 수단을 쓴다. 그런데 성별 권력 관계와 저자와 편집자 간의 권력 관계를 고려해볼 때, 술자리에서 성폭력이 일어날 위험이 있다. 성폭력을 겪고 여기에 문제를 제기하려는 피해자들을 위축시키는 건 바로 “이 바닥 좁다”는 말.

 

“출판업계에 ‘평판조회’(Reference Check)라는 관행이 있어요. 출판사 사장이나 직원들의 모임도 있고, 업계가 워낙 좁다 보니까 소문이 순식간에 퍼지죠. (성폭력을) 폭로하고 일을 그만두면 다른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요?”

 

더욱 심각한 건 ‘외주’ 출판 여성 노동자들의 상황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매년 실시하는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3년에서 2016년 동안 5인 미만 출판사가 690개에서 2천621개로 4배가량 증가했다. 출판업계의 불황으로 출판사들이 재정적으로 어려워지면서 자체 직원을 줄이고 외주 노동자를 고용하는 추세다.

 

외주 출판노동자 중 여성의 비율은 무려 77.2%에 이른다.(외주 출판노동자 노동실태 연구보고서, 외주출판노동자 실태조사 사업단, 2013) 그러나 이들은 프리랜서(특수고용)라서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며, 직장 내 성희롱 관련 규정이 포함된 남녀고용평등법을 적용받지 못한다. 외주 작업을 하면서 성폭력을 당했을 때 적절한 사후 조치를 기대할 수 없는 현실인 것이다.

 

‘분위기 깨면 미술계 필드에 다시는 들어올 수 없다’

 

불꽃페미액션 활동가인 진진씨는 미술대학을 졸업했다. 진진씨는 “미대는 여남 비율이 9:1, 8:2 정도로 여자가 많다. 하지만 전업 미술작가나 미대 교수는 대다수가 남자”라고 말한다. 그 많은 여자 미대생들은 어디로 간 걸까?

 

“남자들을 중심으로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어요. 모든 비즈니스적인 이야기나 네트워킹이 전시 뒤풀이 같은 자리에서 이루어지는데 그런 남성들의 ‘알탕연대’에 끼지 못하는 여성 작가들은 튕겨 나오게 돼요. 갓 대학교를 졸업한 신진 작가일수록 더욱 그렇죠. 작품 활동하면서 그 돈만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어요. 또 출산하거나 육아를 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면 그걸 직업으로 인정해 주지 않아요. 이미 대학 때부터 교수들이 ‘여자는 결혼하면 작품 활동 안 할 거다’라고 선을 긋죠.”

 

교수들의 관심과 대우는 미대 내 소수의 남학생들에게 집중된다. 가끔 비즈니스 자리에 교수가 여학생들을 대동하기도 한다. 명분은 “너희들도 전업 작가 하려면 이런 거에 익숙해져야 해.” 무엇에 익숙해져야 할까?

 

“그런 자리에서 성희롱이나 성추행이 굉장히 많이 일어나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지망생 같은 경우 ‘내가 잘못 행동하거나 분위기를 깨면 이 필드에 다시는 들어올 수 없다’, ‘더럽고 치사해도 연을 쌓아놔야 나중에 내가 메일이라도 보내면 읽어주겠지’ 하게 되지요. 학생들을 연애 대상으로 대하는 경우도 많고, ‘오늘 나랑 같이 있어 주면 전시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제안하기도 해요.”

 

▲ 2018년 11월 10일 #미투_운동과_함께하는_시민행동에서 주최한 광장액션 퍼포먼스 “미투, 세상을 부수는 말들”     © 한국성폭력상담소 제공 사진


진진씨는 한 여성 작가가 자신이 기혼임을 밝히면 자기 이미지가 팔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일부러 결혼 사실을 숨긴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동등한 작가로서 작품을 통해 겨루고 인정받기보다는, “여성으로서 섹스 가능한 대상으로 남아있어야” 미술계에서 일을 할 수 있었다는 뜻.

 

이런 환경에서 여자 미대 졸업생 중 많은 수가 전업 작가의 길을 포기하고 회사에 취직하거나, 최저임금을 받고 학원에서 아동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어렵게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관리자들 술자리에 용역업체 여성 노동자들 불러내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부위원장인 명화씨는 12년 동안 톨게이트 노동자로 일해 왔다. 노동조합 결성의 주역으로 해고됐던 명화씨는 4년 1개월간의 부당해고 철회 투쟁 끝에 최근 복직했다. 명화씨는 노조를 결성하게 된 계기 중 하나가 직장 내 성희롱이었다고 말한다.

 

“한국도로공사 소속인 줄 알고 입사했는데 용역업체 소속이었어요. 업체 사장은 주로 한국도로공사 조기퇴직, 명예퇴직자들이고 직원들의 복지나 처우에 관심이 없어요. 그리고 원청인 한국도로공사 소속 관리자 2~3명이 톨게이트 옆 건물에 상주했어요.”

 

관리자들은 한국도로공사에서 회식비를 받아서 톨게이트 여성 노동자들과 회식을 했다. 비번이라서 쉬고 있는 노동자까지 불러내기 일쑤였다. 즐거운 회식이라기보다는 “본인들 술 먹는 자리에 여성 노동자들을 불러 기쁨조 역할”을 시킨 것.

 

“반말은 기본이고, 집안일 때문에 회식에 못 간다고 하면 다음 날 대우가 달라졌어요. 술 따르라고 하면서 ‘너 이거 안 하면 내일 힘들다’는 식으로 협박하고요.”

 

회식 자리에 어쩔 수 없이 동참했던 명화씨는 어느 날 한 관리자가 팔꿈치로 옆에 앉은 언니 가슴을 툭툭 치는 것을 봤다. 참다못해 ‘그만하시라’ 다섯 글자 말했는데, 성희롱 가해자인 관리자가 다음날 명화씨를 불렀다. “너는 직장 생활하려면 애교를 좀 더 키워야 돼.” 그는 사장에게 명화씨를 자르라고 압박도 했다. 불이익을 계속 받게 되자 명화씨는 “내가 살기 위해” 노조를 결성했다.

 

“관리자나 사장이 보기에 ‘예쁜 애들’, ‘미운 애들’ 두 부류가 있었는데 그 ‘미운 애들’끼리 모여서 노조를 만들었어요. 그런데 예쁜 애들도 다 가입하더라고요. 그 사람들도 (그런 대우가) 좋았던 게 아니었던 거죠.”

 

노조를 만들고 나니 일단 ‘반말’이 사라졌다. 불법 파견 문제에 대해 소송을 했더니, 원청인 한국도로공사 관리자의 지시를 받는 일이나 회식 자리도 사라졌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고객에 의한 각종 성희롱을 예방하고 대응하기 위한 조치들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여전히 “용역업체 사장에 의한 직장 내 성희롱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고 명화씨는 전한다.

 

▲ 5월 9일 열린 ‘피해와 생계 사이’ 1차 집담회 “노동은 비정규, 성희롱은 정규?” 패널들.     ©한국성폭력상담소

 

미투(#MeToo) 이후 달라진 풍경

 

한편, 소영씨는 미투(#MeToo) 이후 출판업계 내 달라진 풍경을 전했다.

 

“저자가 성희롱을 심하게 한다고 얘기하면, 그 저자를 만나는 자리에 여성 편집자가 아닌 남성 직원을 나가게 해요. ‘배려’라는 이름으로 여성 노동자들을 업무에서 빼 버리는 ‘펜스룰’(Pence Rule; 여성과의 대면을 피하는 것)이 일어나고 있어요.”

 

노동에서 여성을 배제함으로써 성폭력이 발생할 여지를 차단하는 상황에 대해, 소영씨는 “여성들의 경험이 점점 축소되어 가고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반가운 변화도 있다. 20년 동안 여성 노동자들을 상담해 온 마루 인천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상담활동가는 “미투(#MeToo) 이후 최근 들어 (직장 내 성희롱 발생) 초기에 상담하는 분들이 많아졌다”고 말한다. 과거에는 오랫동안 참고 견디다 못해 상담 전화를 했던 여성들이 이제는 사건 발생 직후 해결방안을 모색한다는 것.

 

그러나 상담 건수 증가와는 별도로, 직장 내 성희롱에 대해 문제 제기해도 가해자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거나 오히려 피해자가 신분상의 불이익이나 따돌림 등 2차 피해를 입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마루 활동가는 직장 내 성희롱 예방과 처리에 앞장서야 할 ‘사업주의 태만’을 지적했다.

 

“팀 회식 자리에서 성폭력이 발생하면 회사는 ‘그건 팀에서 한 거니까 업무 관련성이 없어서 직장 내 성희롱으로 처리할 수 없다’며 발뺌하기도 해요. 경찰에 신고를 하면 회사에서는 ‘사법 처리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사건 처리를 미루고요.”

 

마루 활동가는 또한 “언어 성희롱의 경우 그 피해가 막심함에도 ‘모욕죄’에 미치지 못한다면 강력하게 처벌할 수 있는 별다른 방법이 없는 점도 문제”라고 밝혔다.

 

‘여성 관리자 비율, 성별 임금 격차’와 성희롱의 상관관계

 

어떻게 하면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가 생존권을 위협받게 되는 것이 아니라, ‘성폭력 가해를 하면 앞으로 직장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줄 수 있을까.

 

진진씨는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성평등 교육과, 믿고 안전하게 고발할 수 있는 상담창구가 있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직장 내에 더 많은 여성 보스, 여성 권력자들이 필요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소영씨도 “여성 관리자 한 명만 있어도 분위기가 달라진다. 성희롱을 제지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 여성이라는 것만으로도 효과는 다를 거다”라고 말했다. 이어 “여성과 남성의 임금 격차가 이렇게 크지 않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여지가 있을 것”이라면서, 직장 내 성희롱의 문제가 여성의 낮은 임금과 결코 무관하지 않음을 짚었다.

 

톨게이트 노동자 명화씨는 노조를 만들어 성희롱이 만연했던 노동 환경을 바꿔낸 자신의 경험을 빌어 노동조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혼자가 아닌 노조의 힘으로 권리를 찾을 수 있다”고.

 

‘피해와 생계 사이’ 2차 집담회 <지도 받을 권리, 지배 받지 않을 권리>가 6월 13일 교육 훈련 과정에서의 성폭력을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교육 훈련 과정에서 지도자, 선생, 코치, 감독, 선배에 의해 일어나는 성폭력 피해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안전한 환경에서 학습하고 훈련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한다. (문의 02-338-2890, ksvrc@sister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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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5/26 [22:11]  최종편집: ⓒ 일다
 
T 19/05/30 [09:44] 수정 삭제  
  미투가 계속 되어야 하는 이유를 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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