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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의 역사를 기록하지 않은 교과서에 두려움 느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개관에 참여한 일본인 노기 가오리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구리하라 준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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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 서울에 새로운 박물관이 탄생했다. 일본의 조선 침략과 약탈, 친일파의 실상, 항일독립투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전시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historymuseum.or.kr)이다. 사단법인 민족문제연구소가 중심이 되어, 한일 양국 시민들의 기부와 기증 자료를 통해 문을 열었다.

 

▲ “박물관의 강력한 힘을 믿어요.” 민족문제연구소 전임연구원 노기 가오리 씨.     ©촬영: 시미즈 사츠키

 

“(공적 지원 없이) 민간의 힘만으로 개관했어요!”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노기 가오리 씨는 박물관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일본인 중 한 명이다. 일본에서 한국의 식민지역사박물관까지 찾아온 우리를 노기 씨가 안내해주었다.

 

오직 민간의 힘으로 개관한 식민지역사박물관

 

박물관은 식민지 지배의 요충지였던 용산구에 자리 잡고 있다. 상설전시관은 ‘일제는 왜 조선을 침략했나’ 등 네 개의 존(zone)으로 나뉜다. 대한제국의 황제 순종이 국권을 넘긴다고 발표한 칙서, 교토히노데신문사가 발행한 한일합병 정당화 선전을 위한 조선쌍륙(雙六, 두 사람 또는 두 편이 15개씩 말을 가지고 2개의 주사위를 굴려 사위대로 판 위에 말을 써서 먼저 나가면 이기는 놀이), 3·1운동 때 낭독된 독립선언문 초판 원본 등 귀중한 자료가 가득하다.

 

독립운동가가 경찰의 취조를 받던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체험존도 있다. 일본의 방약무인함이 드러나는 수많은 전시물에 가슴이 아리다.

 

“전시물 하나하나에 일본어 설명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시물 자체가 대부분 일본어입니다. 조선인을 탄압하는 사진 자료도 있어서 ‘식민지 시대에 있는 것 같다’, ‘압박당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한국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제의 식민지 지배가 과연 무엇이었는지, 여러 생각을 하면서 꼼꼼히 봐주셨으면 합니다.”

 

▲ 서울 용산구에 자리잡은 식민지역사박물관은 공적 지원 없이 한국과 일본 시민들의 힘으로 개관했다.    ©식민지역사박물관 페이스북 페이지


5층 건물의 2층이 상설전시관이고 1층에는 오픈스페이스, 기획전시실, 그리고 홀, 5층에는 세미나룸도 있다. 조명은 한국인, 휠체어와 소파는 일본인의 기부로 마련했다. 노기 씨와 들어간 근처의 싸고 맛있는 식당 주인도 박물관 지지자. 지역 사회와 양국의 시민이 뒷받침하는 박물관이다. 개관 후 5개월만에 6천 명이 방문했다고.

 

조선인 차별의 방관자가 되기 싫었다

 

노기 가오리 씨(1980년 교토 출생)는 민족문제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일본인으로는 독특한 삶을 살고 있다고 할 수 있는 노기 씨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시기”를 물었더니, “태어난 것 자체”라며 말하며 웃고는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중학생 때 ‘영어과를 신설합니다’라고 적힌 어느 고등학교의 홍보 포스터를 보고 ‘여기에 가겠어’라고 정했던 일이 아닐까요?” 한다. “그때는 나중에 영어를 사용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는데, 입학해보니 그 학교가 제2외국어로 한국어를 선택할 수 있는 곳이었어요.”

 

중학생 시절, 학교 가는 길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학생들과 스쳐 지나간 적도 있지만 조선학교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그 여학생들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고, 직접 물어보지도 않았다. 방관자로서, 어쩌면 나 자신도 그들(재일조선인)을 차별하고 있는 건지 모른다는 개운치 않은 기분을 씻어내고 싶었다. 노기 씨가 한국어를 배우기로 결심한 이유다. 한국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한 학생은 고작 네 명이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가해의 역사, 그리고 ‘자이니치’(재일조선인)의 존재에 대해 알고 나니, 자신과는 관계없는 먼 세상 얘기라고는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또 그런 사실들이 거의 적혀있지 않은 일본의 역사교과서를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 작년 8월 29일 개관한 식민지역사박물관. 노기 가오리 씨는 강제동원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등 일제 식민지배 피해자들과 함께 하는 장이 될 거란 생각에 박물관 설립에 힘을 쏟았다.   ©식민지역사박물관 홈페이지


강제동원, ‘위안부’ 피해자들과 함께하는 장

 

노기 씨는 대학에서는 한일관계사를 배웠다. 한국 사람들에 대해 더욱 알고 싶다는 생각으로 한국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한국 유학생과 함께 살기도 했다. 그 후, 교환학생으로 한국에서 1년간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대학원에 진학해서는 조선근대사를 연구했고, 2007-2009년에 한국에서 유학했다. 이때 만난 것이 민족문제연구소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친일문제’를 연구와 사회운동의 양 측면에서 다루며 활동하는 단체입니다. 친일파 개개인뿐 아니라 그 구조와 식민주의의 지속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활동을 하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와도 함께 연대하여 싸우고 있습니다.”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설립하는 일에 대한 구상을 듣고서, 노기 씨는 “피해자와 함께 하는 장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꼭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특별연구원이 되어 자료수집과 정리를 맡았다. 나눔의 집(nanum.org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여덟 분이 생활하는 장소)의 역사관 전시 등에도 관여했다.

 

노기 가오리 씨는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일본에 일시 귀국했다가 2015년에 한국으로 돌아가 민족문제연구소의 전임연구원으로 박물관 개관 준비에 힘을 쏟았다. 전시방법을 고민하느라 개관 당일 아침까지 일을 했다고.

 

작년 여름, 개관 일주일을 앞둔 가장 바쁜 시기에 매일 밤늦게 귀가하는 노기 씨를 찾아간 적이 있다. 이번에도 연초에 찾아가서 “휴일에는 쉬세요?”라고 물었는데, “잘 챙겨 쉽니다. 주말에는 한국 드라마 몰아보기 해요. 재미있는 드라마가 너무 많아서 큰일이에요.”라고 말하며 웃는다.

 

▲ 식민지역사박물관은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를 전하며 한일 시민들이 교류할 수 있는 발신지가 될 거라고, 노기 가오리 씨는 말한다.     ©식민지역사박물관 페이스북 페이지

 

“박물관의 강력한 힘을 믿어요”

 

노기 씨는 유학 중에 만난 한국인과 호주제가 폐지된(2008년) 이듬해에 결혼했다. 민족문제연구소에서는 유일한 일본인이다. 한국에서 일하고 생활하면서 달라진 점이 있는지 물었다.

 

“사람들에게 문화의 차이를 배우면서 제 안의 ‘당연함’이 깨지고 시야가 넓어지는 계기가 많았습니다. 논의하다가 부딪히는 일도 있지만, 한국 사람은 함께 배우고 보다 좋은 사회를 향해 가는 파트너라는 생각이 점점 더 강해집니다.”

 

지금, 한일 관계는 정치가들의 언동이나 언론의 일방적 보도로 의해 험악한 상태다.

 

“전 일본군 ‘위안부’ 분들의 호소는 일본이 사실을 인정하고 사죄하고 재발을 막아달라는 것입니다.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를 전하는 식민지역사박물관을 존속해가는 일이 피해자들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박물관은 사물로 전하는 강한 힘이 있으니, 한일 교류와 운동의 발신지가 될 수 있으리라 믿어요.”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여성주의 신문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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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6/02 [23:48]  최종편집: ⓒ 일다
 
19/06/05 [14:16] 수정 삭제  
  식민지역사박물관 휴일에 꼭 가봐야되겠다.
독자 19/06/12 [20:40] 수정 삭제  
  헉. 나 한국사람 맞나 ㅠㅠ 이런 민간박물관이 있단 거 몰랐어요. 찾아가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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