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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공동체의 정수, 손모내기
[도시에서 자급자족 실험기] 토종 벼 손모내기②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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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이민영님이 목공을 배우고 적정기술을 익히며, 동료들과 함께 전기와 화학물질 없는 도시를 꿈꾸면서 일상을 제작해나가는 과정을 독자들과 공유합니다. -편집자 주

 

결전의 시간. 모내기 한 번 하는데 뭐 그리 심각하냐 싶지만 벼를 키우는 농부에게 모내기는 한 해 농사를 좌우할 만큼 주요한 일이다.

 

모내기하러 가는 버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니 이미 모내기를 끝낸 논이 가득하다. 논둑을 걸으며 논물의 깊이를 가늠해보다 바람결 따라 찰랑거리는 물의 표면에 잠시 시선이 닿았다가, 다시 논에 떠 있는 오늘 심을 못판으로 눈길이 옮겨간다. 혼자 한참 생각에 잠겨있는 줄 알았는데 그새 왁자지껄하게 사람들은 모여들고 오랜만에 만난 이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분주하다.

 

▲ 모찌기들이 모판을 옮겨 모내기를 준비한다.     ⓒ촬영: 김우주

 

이날 모내기의 총책임자인 우보농장 이근이 대표님의 설명을 듣고 논 크기별로 적정인원을 나눠 작업에 투입됐다. 예상보다 논은 꽤 깊었다. 펄처럼 한 다리를 들려고 다른 한 다리에 힘을 주면 오히려 더 깊이 논바닥으로 박혀 무게중심이 옮겨가 엉덩방아 찧기에 딱 좋았다. 다리는 빠져 나오려 해도 논흙이 물 장화를 꼭 쥐고 있어서 움직이기가 더 어려웠다. 모 심기보다 모 심고 못줄 넘어가려 이동할 때 더 힘들겠군 싶었는데 예상은 적중했다.

 

모찌기, 못줄대기, 모잽이…

 

손모내기는 못줄대기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빠른 사람과 느린 사람의 간격을 조정하고 전체적인 흐름과 속도를 조절하는 지휘자의 소임을 맡기 때문이다. 모심는 모잽이들이 간혹 허리를 펼 수 있게 해주고 분위기를 띄우며 흥을 돋아주는 역할도 한다.

 

한 논에 못 줄 잡는 사람은 양 끝에 두 명이면 충분하다. 한 줄에 모가 다 심어지면 못줄대기가 “못 줄 넘어가요.” 목청껏 구령을 외친다. 모잽이들은 뒷걸음질 치며 다음 모를 심을 준비를 한다. 못줄과 못줄 사이의 간격을 재기 편리하게 25cm가량 되는 대나무 막대를 미리 준비해 거리를 잰다. 물에 잠기지 않게 살짝 띄운 못줄을 맨 막대를 단단하게 논에 박고 다시 못줄대기가 “심어요.” 외치면 모잽이들은 답가처럼 “심어요.”를 외치며 다시 모를 심는다.

 

▲ 어떤 일이든 몸풀기부터     ⓒ촬영: 김우주

 

눈치껏 못줄대기와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못줄대기의 기색을 보아가며 빠르게 모를 심는다. 한 손으로 뜯어놓은 모 더미를 움켜쥐고 다른 한 손으로 모를 심는다. 뒷걸음질 치며 심기 때문에 평탄했던 논이 내 다리 모양대로 무게만큼 파지므로 신속하게 논을 고르게 펴는 작업을 해주어야 한다. 손가락으로 모가 심길 구멍을 내며 심되 뿌리가 흙을 붙잡을 수 있도록 구멍이 너무 크면 안 된다. 잘못 심으면 물에 모가 둥둥 떠버리고 만다.

 

모를 심다 보면 못줄대기들의 간격에 맞춰 내가 몇 개의 모를 심을 수 있는지 대략 계산할 수 있다. 그 후엔 내 양옆의 모잽이들의 속도와 행동방식을 얼추 파악하게 된다. 이 사람은 가운데서부터 오른쪽으로 심다가 다시 왼쪽으로 심으니까 나는 왼쪽으로 4개 심고 다시 오른쪽으로 심으면 부딪치지 않으면서 옆 모잽이에게 무리가 되지 않겠지 하는 식이다. 반복적으로 같은 행위를 하다 보면 생기는 눈치랄까.

 

▲ 못줄을 따라 적당한 간격을 두고 모잽이들이 일렬로 서서 모를 심는다.     ⓒ촬영: 김우주

 

실상은 처음 본 옆 모잽이와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가벼운 호구조사로 시작해 모내기는 이번이 처음인지 어쩌다 모내기 올 생각을 하게 됐는지 모내기를 소재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이런 곳에서 만난 인연이 신기하고 흥이 나 몸은 기계적으로 모를 심고 있고, 수다에 정신을 차리고 나면 이미 못줄이 열댓 번은 넘어가 있다. 그 와중에 모찌기가 던져주는 모춤에 흙탕물 세례 몇 번 맞고 깔깔거리다 보면 어느새 새참 시간이 된다.

 

학교에서의 쉬는 시간만큼 기다려지는 새참 시간. 얼음 동동 띄운 미숫가루와 시원한 막걸리, 떡과 잘 쪼갠 수박. 두 시간 간격으로 나오는 새참 준비도 여간한 노동이 아니다. 치우고 차리고를 반복하는 생색나지 않는 일상은 어느 시공간에나 존재한다. 그 모든 노동과 노동을 수행하는 이들에게 감사하며 맛나게 새참을 먹었다.

 

농사의 합집합, 모내기

 

한 논에 여러 종을 심는 우보농장에서 특히 요긴한 역할이 모찌기다. 모찌기는 못 판에서 손으로 모의 밑동을 잡고 뿌리를 찢어내는 일을 말하는데, 그 일을 하는 사람도 모찌기로 퉁쳐 부른다. 토종 벼 한 품종당 7줄에서 10줄 정도 심고 다른 품종으로 바뀌기 때문에 절대 품종이 섞여서는 안 된다. 모잽이들에게 모춤을 엮어 던져주고 남은 모를 하나 남김없이 회수하는 일을 모 공급책인 모찌기가 맡게 된다. 이를 위해 쉼 없이 논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가장 힘든 역할이라고도 볼 수 있다.

 

▲ 모찌기가 모잽이에게 모를 던져주고 있다.     ⓒ촬영: 김우주

 

어떤 일이나 그렇듯 적절히 일을 지켜보아가며 역할을 바꾸기도 하고 자기 역량껏 맡은 일을 한다. 모내기가 처음인 사람과 오랜 경력이 있는 사람이 각자가 보이는 만큼 자신의 역할을 한다. 취지를 공감하고 무리가 되지 않으면서 즐길 수 있게 공동으로 무언가를 하는 일은 늘 묵직한 쾌감을 준다. 물론 과거의 손모내기가 이토록 여유 있었을 거라 생각하진 않지만 말이다.

 

▲ 모내기에 참여한 이들이 반찬 하나씩을 챙겨와 풍성하게 나누어 먹는 점심     ⓒ촬영: 김우주

 

우보농장의 이근이 대표는 생명을 살리는 함께하는 노동, 낯선 이들과의 협동과 단결, 성별이나 연령 무관하게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역할과 그들 간의 배려, 한솥밥을 먹는 끈끈한 정 등이 총망라된 손모내기야말로 농사공동체의 전형이라 여기며 매년 모내기를 준비한다고 한다.

 

데이비드 슈워츠의 ‘세 명의 벽돌공’ 우화에서처럼, 어떤 이는 오늘의 일을 모를 심었다 할 것이고 어떤 이는 토종 벼와 농사공동체를 되살리는 일을 했다 할 것이다. 내 삶의 태도와 방식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 그리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을 알아보는 일과 그들을 격려하는 일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 소소하고 면밀한 들여다보기가 우리의 삶과 사회를 좀 더 아름답고 풍요롭게 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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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09 [10:20]  최종편집: ⓒ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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