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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를 받고 ‘지배’는 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하라
<피해와 생계 사이>② 스포츠, 연극계, 교육 현장의 ‘미투’ 이후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나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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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희롱 성폭력 피해자의 ‘생계’와 ‘생존’을 키워드로 삼아 성폭력의 구조를 들여다보는 <피해와 생계 사이> 기사를 연재합니다. <피해와 생계 사이>는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성폭력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대안을 모색하는 연속집담회로, 5월부터 매달 새로운 주제로 총 5회 열립니다. -편집자 주

 

연극계 미투(#MeToo)를 불러온 연희단거리패 이윤택 예술감독의 성폭력 사건, 쇼트트랙 조재범 코치 성폭력 사건,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H교수의 학생 성추행 및 미투 폄훼 사건, 2018년을 뜨겁게 달군 스쿨미투.

 

이 사건들은 모두 피해자를 교육하고 감독하는 지위에 있는 지도자에 의해 일어난 성폭력이다. 가해자들은 교육적 지도라는 명목하에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며 피해자 위에 군림한다. 피해자는 안전한 환경에서 학습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고 자신의 미래와 꿈까지 저당잡힌다.

 

지난 6월 20일,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주최하는 연속 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그 두 번째 집담회가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안젤라홀에서 열렸다. ‘지도받을 권리, 지배받지 않을 권리’라는 제목으로 열린 이번 집담회는 연극계, 스포츠계, 학교 등 교육 훈련의 현장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권력 구조와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기 힘든 조건을 짚어보고 성차별/성폭력 없이 학습하고 훈련할 수 있는 환경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 6월 20일 한국성폭력상담소 주최 연속 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두 번째 “지도받을 권리, 지배받지 않을 권리” 논의가 진행 중인 현장.    ©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스포츠 훈련 현장: 코치는 아버지이자 모든 걸 쥔 어른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체육계에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구조에 대해 설명하며 체육 특기자 제도를 언급했다. 체육을 통한 국위선양을 위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오직 스포츠만 하면서 스포츠로 성공하도록 가르치는” 엘리트 체육. 이 엘리트 체육을 뒷받침해 온 것이 바로 체육 특기자 제도다.

 

“엘리트 체육이라 불리는 운동선수 양성이 ‘학교’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체육 특기자 제도로 1년에 최대 180일 정도 결석해도 지장 없을 정도로 ‘운동만 해도 괜찮은 환경’을 정부가 만들어 놨어요.”

 

경쟁이 워낙 치열하다 보니 엘리트 선수로 성공하려면 10대 때 승부를 봐야 하고 이를 위해 많은 선수들이 6,7살 때부터 운동을 시작한다. 이렇게 어렸을 때부터 다른 환경이나 사람들과의 접촉 없이 오로지 운동만 하면서 운동선수들, 코치하고만 같이 지내게 된다.

 

“이러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그루밍(Grooming, 성인이 아동․청소년과 성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조금씩 친분을 맺어가며 심리적으로 길들이는 것)이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있게 돼요. 운동부가 일종의 ‘유사가족’이 되어버리는 거죠.”

 

“코치이자 아버지이자 유일한 어른인” 지도자의 권력은 막강하다. 선수들은 경기실적이나 운동실력으로 상급학교에 우선 배정되거나 아예 당락이 결정되기도 하는데 이때 지도자들의 네트워크가 작동한다. ‘쟤 누구 새끼다’, ‘우리 애 받아줘’ 등등. 지도자는 선수들의 경기 출전권마저 쥐락펴락한다. 이런 상황에서 성폭력은 쉽게 은폐된다.

 

“성과를 잘 내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모든 게 통제돼요. 훈련, 스트레칭이나 마사지를 빙자해서 성폭력이 일어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불편한 기색을 하면 ‘지금 여자 티를 내는 거냐, 프로답지 못 하다’고 비난받아요. 유사가족, 말하자면 부모-자식 사이에서 성폭력이 일어난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성폭력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해도 말하기 어렵죠.”

 

함은주 집행위원은 “운동을 그만뒀을 때 다른 직업적 전망 찾기가 힘든 점”도 스포츠계에서 성폭력을 고발하기가 쉽지 않은 원인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함은주 위원은 “사람들이 체육계를 ‘특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슈가 터지면 초기에만 관심을 갖다가 바로 잊어버린다”고 말하면서, 체육계 역시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와 원인은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했다.

 

도제 시스템의 연극계: 연출가 몇 명이 연극판 좌지우지

 

문화예술계 또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스승을 모시면서 사사 받는 도제 방식의 교육 과정”을 연극계 성폭력의 주요 원인으로 진단했다.

 

“예술감독이나 연출의 권력이 절대적이에요. 어떤 배우가 어떤 역할 할 것인지 연출이 결정하다 보니 무대에 서야 하는 배우들은 자기 일을 뺏기지 않기 위해 말도 안 되는 경우도 받아들이게 되죠. 주로 연출이 무언가 결정하면 선배들이 후배들을 끌고 가는 방식인데 자유로운 토론이나 문제 제기 자체가 힘든 분위기에요.”

 

도제 시스템에서 다른 스승 찾아간다는 건 배신행위로 여겨진다. 문제의식을 느껴 극단을 나온다고 해도 다른 극단으로의 이전이 쉽지 않다. 내로라하는 연출가 몇 명이 연극판을 쥐고 흔들고 그들끼리의 네트워크가 절대적 힘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김수희 대표는 극단을 나오더라도 연출의 영향력을 벗어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전했다. 일례로 유명 극단을 나온 한 배우가 연극 오디션을 보러 갔는데, 전 극단 대표가 심사위원 자리에 앉아있었고 배우를 향해 ‘넌 여기 왜 왔어? 나가!’라고 소리쳤다는 것. 그럼에도 주변에서는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고 한다.

 

▲ 연극연출가 이윤택 성폭력 사건 항소심 선고일에 맞춰 4월 9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진행된 기자회견 <'오랜 관행'이 아니다. 성폭력이다> (주최: 이윤택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극단을 옮기기도 힘들고 극단 없이는 활동하기 힘든 상황에서 피해 배우는 아예 연극을 접거나 장르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배우라는 직업 특성상 이미지가 중요한데 “내가 (다른 매체에서) 어떤 연기를 하던 성폭력 피해자 이미지가 평생 따라다니게 되”기 때문이다.

 

연극판이 재정적으로 열악한 상황이나 연극이 개인예술이 아니라 공동 작업인 점도 연극계 성폭력을 은폐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다.

 

“본인만 그만두면 끝인 게 아니라 같이 준비해 온 동료들의 작업까지도 망치게 되는 셈이에요. (재정난 속에서) 지원금을 받았을 경우 아무 차질 없이 진행돼야 내년에도 또 지원받게 되잖아요. 이 연극을 이끌어가는 수장에게 문제 제기를 하면 공연 자체가 스톱돼요. 그러다 보니 동료들도 피해자를 설득해요. ‘네가 좀 참고 공연 끝나고 얘기하면 어떻겠니?’”

 

스쿨 미투 이후 듣는 말: “피해자가 될 거냐, 대학 갈 거냐”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는 스쿨 미투 이후 “‘선생님들이 실수로 한 말 갖고 선생님들의 생존권을 위협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학생들을 전인적 인간으로 길러내야 한다는 전통적인 ‘참교사’ 상(像)은 ‘사랑의 매’ 등 폭력을 용인한다. 성추행이나 언어 성폭력이 ‘교육적 지도’라는 명목으로 수없이 일어나고 있으나 교사들은 여전히 이에 둔감하다. 이는 “일부 ‘악마로 묘사되는 교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양지혜 활동가는 강조했다.

 

“학교가 일상적으로 여학생들의 몸을 통제하는 권력 구조 속에서 성폭력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치마, 와이셔츠 길이 등 여학생의 복장을 통제하고 심지어는 속옷을 입었는지 안 입었는지나 양말 색깔까지 통제해요. 이렇게 사생활을 통제당하는 것에 익숙해지면 성폭력을 경험해도 바로 성폭력이라고 규정하기가 쉽지 않아요.”

 

양지혜 활동가는 또한 대부분의 피해자들이 성폭력 피해 고발을 멈추는 지점이 “부모 동의”라고 전한다.

 

“경찰 수사나 학폭위(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하려면 부모한테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피해자들은 부모한테 전달되는 걸 가장 두려워해요. 부모에게 피해 경험을 지지받지 못한 경우가 많은 데다가 ‘피해자로 남아있을 거냐, 대학 갈 거냐’에서 결국 후자를 선택하도록 강요받아요.”

 

학교 안팎의 공적인 신고 및 상담체계가 학생들이 신뢰할 만큼 피해자를 세심하고 철저하게 보호하지 못하는 점도 피해를 드러내기 어려운 이유다. 일례로 이번 스쿨 미투에서도 경찰 수사 과정에서 학내 성폭력 고발자 명단을 경찰이 학교 교장에게 넘기는 일이 있었다. “이런 환경에서 피해자는 (공적 체계보다는) SNS를 폭로 수단으로 삼게 되는데, 한 번은 학폭위 간사가 피해자에게 ‘한 번 더 SNS에 올리면 징계하겠다’고 협박을 한 적도 있”다고.

 

교수 성폭력: ‘재판 결과 기다리겠다’며 손 놓은 학교

 

동덕여대 H교수 사건 비상대책위원회 문아영 의장은 H교수의 사건이 있기 전에도 “2016년 프랑스어과 교수가 ‘여자는 서른 전에 애를 낳아야 한다, 너희는 돈 많은 오빠 만나서 오빠 차 타고 다녀라’ 등의 발언을 했고 이를 폭로하는 대자보가 붙은 적이 있다”고 전했다.

 

“그런 대자보가 붙으면 학교 당국이 나서서 처리해야 하는데 심각한 성폭력이 아닌 이상 문제로 취급하지 않아요. 이런 문화가 H교수 사건으로 이어졌다고 봅니다. 이번에도 학생들이 (자신이 학교에서 겪은 성폭력에 대해) 말할 수 있게 학교가 자리를 마련해야 하는데 재발 방지 간담회조차 열지 않았어요.”

 

학교 측의 미온적인 대응은 가해자 처벌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가해자가 불구속 기소되었고, 학교의 자체적인 징계를 내릴 근거가 충분함에도 “재판 결과를 기다리겠다”면서 진상조사위원회를 중단한 것. 학교가 이러니 학생 개개인이 알아서 그런 교수를 피하면 되는 걸까?

 

“(성폭력 발언을 하는) 그런 교수 수업 안 들으면 되지 않느냐고 해요. 하지만 교수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대부분 학기 중간에 알게 되고, 만약 문제 제기한다면 권력을 가진 교수가 나를 어떻게 평가할지 학점은 어떻게 줄지 고민하게 되죠.”

 

▲ 성폭력 담론을 확산시키기 위한 연속 집담회 ‘피해와 생계 사이’ 두 번째 자리 “지도받을 권리, 지배받지 않을 권리”에서 사회자가 발언 중인 모습.     ©사진: 한국성폭력상담소

 

가해자들의 손쉬운 복귀 언제까지 지켜봐야 하나

 

이날 네 명의 패널은 공통적으로 “가해자가 너무 쉽게 현장으로 돌아오는 점”을 자신들의 현장에서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기 힘든 원인으로 지적했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는 너무 쉽게 “예술가에 대해 도덕적 면죄부”가 주어진다고 꼬집었다. “지금도 선배들이 공공연하게 ‘뭘 이 정도 갖고 그래. 작품이 훌륭하잖아’라고 말한다”면서, “가해자가 형을 살고 출소한다고 해도 이후에 아무런 제재가 없다”는 사실이 피해자를 위축시킨다고 밝혔다.

 

함은주 문화연대 집행위원은 “대한체육회에서 징계받은 사람이 장애인체육회에 가서 지도자로 일한다든지, 농구나 빙상 쪽에서 성폭력으로 제명당한 지도자가 다른 나라의 코치나 감독으로 가서 잘살고 있는” 사례를 제시했다.

 

H교수의 경우 명망 있는 소설가인데, 언론 인터뷰에서 앞으로도 소설을 집필할 것이며 외국대학에 교수로 부임할 계획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아영 동덕여대 H교수 사건 비대위 의장은 “지금 불구속 재판 중임에도 H교수는 미술 회화 쪽으로 오히려 영역을 넓혀 작가로 다시 활동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양지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는 “스쿨 미투 가해자가 학교로 돌아온 경우가 정말 많은데 이 교사가 처벌을 받고 온 건지 재교육은 제대로 받고 왔는지 학생들은 알 수가 없다.”고 말한다. 가해자의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교육청에서 징계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육청 감사로 징계 과정이 넘어가면 피해자들이 징계 과정에 전혀 참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양지혜 활동가는 “학교 내 성폭력이 무조건 징계 과정으로 넘어가면서 성폭력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공론장이 오히려 축소됐다”고 현행 사건 처리 절차를 꼬집었다.

 

교육부와 정부가 직접 나서서 대안 만들어야

 

집담회에서는 교육, 훈련 현장에서 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다양한 대안이 모색됐다.

 

양지혜 활동가는 피해자가 용기 내서 말하는 게 아니라 교육부나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할 것을 주문했다. “그 많은 학교를 언제 다 하느냐”고 할 게 아니라 성평등한 교육 현장을 만들기 위한 데이터 기반 마련을 위해서라도 교육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것. 또한 학생들이 일방적인 통제 대상이 아닌 “학교 운영 전반에 대해 관여하고 책임질 수 있는 관계가 형성될 수 있도록” 학생인권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아영 의장은 교직원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예방 교육이 실효성 있게 진행되기 위해, 해당 강사가 성인지감수성을 가진 강사인지 학생기구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더불어 교육부가 이를 직접 관리 감독할 것을 제안했다. 또 학내 성폭력 성희롱 관련 규정 개정과 더불어, 이미 존재하는 ‘피해자의 학습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규정이 현장에서 제대로 지켜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수희 대표는 미투 이후 연극계에서 미국의 ‘시카고 시어터 스탠다드’(CTS. 미국 시카고 연극계에서 배우들과 연극 관계자들이 만든 자치규약으로 연극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에서 연극인들이 안전하고 평등하게 일하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음)를 본받아 KTS(Korean Theater Standards, 한국 공연예술 자치규약)를 만들고 있다“고 전했다.

 

“‘즉흥’이라는 미명하에 연출이 만족할 때까지 연습시키는 폭력적인 방식이 아니라 연습실, 리허설, 분장실에서 또 공연을 할 때 함께 약속한 룰을 따름”으로써 폭력을 예방하는 것이다. 또 평등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기존에 연출이나 작가만 일방적으로 우대했던 호칭을 바꿔가려고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함은주 집행위원은 “사실 대한체육회 내에 성폭력 신고시스템은 오랫동안 있어 왔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우리끼리 징계하고 우리끼리 고치는’ 구조 안에서는 이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기 힘들다”고 짚으면서 “스포츠 인권 기구나 조사센터 같은 독립적인 기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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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07/10 [11:24]  최종편집: ⓒ 일다
 
부이 19/07/11 [15:25] 수정 삭제  
  어떻게 성추행 교사가 다시 교단에 설 수 있는 거죠? 교육청과 학교가 성추행이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겠죠. 이런 건 근본색원해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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