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들의 협력과 우애의 시간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걸스카웃 국제야영대회 참가기

최하란 | 기사입력 2019/08/31 [11:34]

소녀들의 협력과 우애의 시간

[최하란의 No Woman No Cry] 걸스카웃 국제야영대회 참가기

최하란 | 입력 : 2019/08/31 [11:34]

여성을 위한 자기방어 훈련과 몸에 관한 칼럼 ‘No Woman No Cry’가 연재됩니다. 최하란 씨는 스쿨오브무브먼트 대표이자, 호신술의 하나인 크라브마가 지도자입니다. [편집자 주]

 

걸스카웃, 야영의 기억

 

열일곱 번째 걸스카웃 국제야영대회가 열린 곳은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세계잼버리장이었다. 고속버스가 고성군에 들어서자마자 거리에 걸린 현수막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고성, 고성 산불!’ 산불 피해를 입은 주민들은 삶을 복구하기 위해 여전히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택시로 갈아탔다. 구불구불한 산길을 십여 분 달리니, 저쪽에서 한 무더기의 관광버스들이 보였고 수천 명의 대원들이 줄을 서서 걸어가고 있었다. 25개국 4천여 명이 모인 야영대회, 거의 모두가 여성이고 대부분이 아동과 청소년이었다. ‘3박 4일 동안 참 독특한 경험을 하겠구나!’

 

나도 삼십 년 전에는 걸스카웃 대원이었다. 초등학생 시절에 친구 따라 걸스카웃에 가입했고, 생짜 초보였지만 6학년이라는 이유로 조장을 맡아 학교 운동장에서 하룻밤 야영을 했다. 밥을 해 먹었는지 뭘 하고 놀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조 이름을 정하고 그걸 그림으로 그려서 천막에 깃발처럼 달았던 것은 생각난다.

 

조 이름은 ‘무궁화’였다. 그래서 무궁화 그림을 그렸고 “무궁무궁 무궁화, 무궁화는 우리 꽃,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네. 너도 나도 모두 무궁화가 되어, 지키자 내 땅 빛내자 조국…” 노골적인 애국 동요를 부르면서 얼굴에 꽃받침을 하고 춤을 추던 기억이 난다. 내 짧은 걸스카웃 생활과 야영대회는 그렇게 민망하고 쑥스러웠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2019년 국제야영대회에 온 소녀들은 기분이 어떨까? 재미있을까? 궁금했다. 궁금하니 어쩌겠나? 직접 물어보는 수밖에.

 

▲ 고성 세계잼버리장에서 열린 17회 걸스카웃 국제야영대회. 몰디브 걸스카웃들의 공연     © 최하란

 

“우리끼리라 즐거워요”

 

한국 대원들은 초등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참가했다. 식당, 야영장, 공연장, 교육 장소, 오가는 길 곳곳에서 대화를 나눌 여유가 있어 보이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참가자들에게 물어보았다.

 

“야영대회 어때요? 재미있어요?”라고 물으면, 모두 “네!”라고 대답했다. “뭐가 재미있어요?”라고 되물었다. 연예인들의 축하 공연에 환호하고 춤추던 아이들이었지만 에릭남, 모모랜드, 레드벨벳 때문에 재미있다고 한 참가자는 하나도 없었다.

 

“우리끼리 있어서 좋아요!” “엄마 없어서 좋아요!” “친구랑 같이 자서 좋아요!” 아이들의 대답을 들으니 어렸을 적 내가 떠올랐다. 나는 <말괄량이 삐삐>(Pippi Longstocking)의 삐삐처럼 살고 싶었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어른들을 골탕 먹이고,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는 어른들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모험을 즐기는 힘세고 용감하며 마음 따뜻한 삐삐.

 

3박 4일 동안 눈여겨 살펴보니 휴대폰을 붙들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싸우는 아이들도 보지 못했다. 아이들은 자연을 거침없이 뛰어다녔고, 밥을 먹기 위해 한 시간이나 꼬불꼬불한 긴 줄을 서서도 친구들과 틈틈이 놀이를 했고, 불평하거나 지루할 만한 일도 웃으면서 즐겼고, 곤란한 일도 서로 머리를 맞대고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 불평하거나 지루할 만한 일도 웃으면서 즐기는 아이들.     © 최하란

 

저녁 산책을 하는데 한 텐트에서 아이들의 대화 소리가 들렸다. 목소리가 앳된 걸 보니 초등학생인 것 같았다.

 

“지금 우리가 티셔츠를 하나 받았잖아. 물놀이 할 때는 물놀이용 옷을 입고, 이 옷은 다음 날 입자”, “땀이 나면 옷을 빨아야 하잖아. 그런데 내일 비 올 수도 있대. 그러니까 오늘 받은 옷은 나중에 옷 못 빨았을 때 입으면 될 것 같아”, “그래 그렇게 하고, 여기 기념 손수건 받은 건 어떻게 할까?” “손수건 접어서 머리띠로 하면 어때?” “좋아! 머리 흘러내리지도 않고, 우리끼리 같이 손수건 머리띠 하면 기념도 되고 좋을 것 같아!”

 

아이들은 계획이 있었고, 의견을 나눌 줄 알았고, 충분히 잘 해내고 있었다.

 

“셀프 디펜스, 배워보고 싶었어요”

 

우리의 임무는 야영대회 ‘과정 활동’의 일부로 넓은 풀밭에 천막 부스를 차리고 참가자들에게 셀프 디펜스(Self-Defense)를 교육하는 것이었다. 폭염 경보가 내린 날 야외에서 아침 아홉 시부터 오후 열두 시까지 교육을 마치고 나면,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게 된다. 그나마 점심시간이 있어서 밥 먹고 시간을 쪼개 그늘에 벌러덩 드러누워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래야 다시 오후에 세 시간 교육을 무사히 진행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일찍 부스에 찾아와서, 얼핏 든 낮잠을 서둘러 깨야 했다. 학교에 가서 교육할 때면 흔히 아이들이 축 처진 좀비들 같다고 느꼈는데… ‘여기에선 왜 이리 생기가 넘치는 것인가!’ 거꾸로 접근하면, ‘일상에선 무엇이 아이들에게서 이런 생기를 뺏는 것일까?’

 

우리 수업에는 초등학생부터 대학생, 선생님들까지 함께했다. 걸스카웃 행사였지만 준회원 자격으로 참가한 남학생들도 꽤 있었다. 태국, 일본, 싱가포르, 미얀마, 필리핀, 몰디브,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에서 온 참가자들도 함께했다.

 

▲ 팜스트라이킹을 하고 있는 참가자     © 최하란

 

셀프 디펜스 기술과 연관된 게임들을 했고, 제스처와 언어 테크닉을 교육했고, 방어와 반격 기술 그리고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방법을 교육했다. 반격 기술로는 타격 기술 중 팜 힐 스트라이크, 니 킥, 레귤러 킥을 훈련했다. 복싱이나 태권도를 해봤던 참가자들은 타격 기술에 자신감을 보였고,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참가자들도 잘 해냈다.

 

수백 명의 펀치와 킥을 받아줬는데, 기억에 남는 세 명의 참가자가 있다. 한국의 초등학교 5학년 학생과 필리핀에서 온 13세 소녀, 그리고 방글라데시에서 온 선생님이다.

 

내 앞에 선 초등학교 5학년 학생에게 “자! 이제 킥을 해보자.” 했더니 아이는 잘 들리지 않는 아주 조그만 목소리로 “저는 못 할 것 같아요.”라고 속삭였다. “킥을 처음 해보니?” 물으니 아까보다 더 작은 목소리로 “네”라고 했다. “누구나 다 처음은 있어. 선생님이 잘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테니 선생님만 믿고 따라와 봐.” 그랬더니 웬걸, 내 예상이 빗나갈 정도로 잘했고 아이의 얼굴에 엷은 미소가 번졌다.

 

보통 친구들과 손잡고 부스를 찾아오는데, 한 필리핀 소녀는 수줍은 얼굴을 하고 혼자서 찾아왔다. 외국에서 혼자 교육을 받거나 훈련하러 가면 나도 쭈뼛쭈뼛하고 외로워했는데, 나보다 용기 있는 참가자였다. 셀프 디펜스를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데 정말 배워보고 싶어서 왔다고 한다. 수업이 끝나고 어땠냐고 물으니 재미있고 좋았다고 했다.

 

방글라데시에서 온 선생님은 지나가다 학생들이 하는 걸 봤는데 재밌어 보였다고 했다. 또, 인생에 한 번은 셀프 디펜스를 꼭 배워보고 싶었다고 하면서 ‘학생이 아닌 나도 참가해도 되냐’고 물어보셨다. 내 대답은 당연하죠! Absolutely! 더운 나라에서 온 선생님은 폭염 경보가 내린 땡볕 아래에서 기염을 토하며 펀치와 킥을 하셨다. 그 열정과 파워를 보면서, 나라는 다르지만 순간 인도에서 성차별에 맞서 5백만 명의 여성들이 620km에 이르는 인간 띠를 만들었다는 뉴스의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 방글라데시에서 온 선생님, 드디어 셀프 디펜스를 배우다.     © 최하란

 

국적, 종교, 피부색, 언어가 달라도 서로에게 ‘자연스러운 존재’

 

국적이 다른 사람들, 불교, 기독교, 천주교, 이슬람교 등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 다른 언어를 쓰는 사람들,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 히잡을 쓰거나 쓰지 않는 사람들, 특정 음식을 먹지 않는 사람들, 성별이 다른 사람들… 겉보기에도 무척 다른 사람들이었지만 함께 어울리고 생활하면서 서로에게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우리는 풀밭에서 수업을 했기 때문에 곳곳에 풀벌레들이 많았다. 우리가 뛸 때마다 풀벌레들이 뛰어올랐다. 그러니까 한 아이가 깜짝 놀라 친구에게 “야아, 풀이 뛰어!”라고 외쳤다. 나는 무심코 “풀이 어떻게 뛰어? 풀벌레가 뛰는 거지”라고 말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 달리기를 하는데, 발밑에서 무릎 높이로 정말 많은 풀벌레들이 무수히 뛰어올랐다. ‘오오, 정말 풀이 뛴다!’

 

이렇게 호기심과 열정에 빛나던 아이들의 눈망울은 왜 학년이 올라갈수록 점점 더 생기를 잃게 될까? 왜 협력과 우애 대신 밟고 올라서는 게 세상사 이치라고 터득하게 되는 걸까? 심각한 불평등의 대물림이 아이들의 세상까지 일그러뜨리기 때문일 것이다. 경쟁과 서열이 아니라 평등과 존중, 협력이 기초가 되는 사회를 위해 노력할 때, 새로운 것에 도전해볼 용기가 생기는 건 물론이고 미래를 위한 연대도 가능할 것이다.

 

한여름의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뛰고 차고 소리치느라 몸은 고됐지만, 생기를 되찾은 아이들에게서 나는 협력과 우애의 가능성을 읽을 수 있었다!

 

▲ 서로에게 자연스러운 존재가 되다     © 최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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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ㅇㅇ 2019/09/01 [15:19] 수정 | 삭제
  • 소녀들을 위한 셀프디펜스 좀더 대중적이었으면 좋겠어요 학교에서들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텐데....
  • 멜로디 2019/09/01 [11:07] 수정 | 삭제
  • 어릴 적 학교 운동장에서 텐트 치고 야영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오랜만에 추억에 잠겼습니다. 일박을 하기엔 서투른 게 많았지만 역시 우리끼리라 줄거웠던 시간, 생각해보면 소중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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