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우수성, 학벌로 내세우나

국가인권위, 입사지원서 차별 개선을 위한 토론회

희영 | 기사입력 2003/10/31 [18:40]

기업의 우수성, 학벌로 내세우나

국가인권위, 입사지원서 차별 개선을 위한 토론회

희영 | 입력 : 2003/10/31 [18:40]
“서울대 연대 고대 등 소위 명문대 100점, 성대 한양대(본교) 등 90점, 경희대 홍익대(본교) 국민대 등 80점… 기타 50점.”

지난 30일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열린 ‘입사지원서의 차별적 항목 개선을 위한 토론회’에서 공개된 한 정보통신업체의 사원 채용기준이다. 이 기준에 의한 점수들은 취업지원자가 인터넷상으로 졸업한 학교명을 선택하는 순간 자동으로 함께 입력된다. 기업에서는 이미 “학교별로 코드를 정해놓고 점수를 차등적용" 하고 있는 것이다. 몇몇 기업들이 대외적인 이미지를 의식해 ‘학력차별철폐’를 선언하기도 했지만 아직 기업들의 취업차별 관행은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는 한국사회 전체에 퍼져있는 학벌지상주의와 맥을 같이 한다.

이날 토론회에서 ‘학벌없는사회’ 정세근 운영위원은 “학벌차별은 장애인, 여성, 외국인,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등 모든 차별 속에 녹아있는 보편적 차별”이라고 말했다. 그 예로 “학벌 없는 여성은 간혹 주어지는 기회조차 빼앗기고 장애인도 학벌이 좋으면 사람들의 동정심을 더욱 많이 살 수 있으며, 심지어 지하철사고로 죽은 한 재수생에게 ‘서울대 입학자격증’이 있었다는 이유로 박스기사화 시켜주면서 안타까움을 증폭시키려 든다”며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 지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학벌지상주의를 꼬집었다.

출신학교 입력은 필수

인크루트가 2003년 10월 7일부터 18일까지 기업회원 78개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조사대상의 97%가 지원자의 출신학교명을 입력하도록 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기업이 출신대학을 따지고 있는 셈이다.

토론자로 참석한 삼성경제연구소 장상수 인사조직 실장은 “우리나라에서 ‘이 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이러이러한 점이 낫다’ 등의 평가가 이미 이뤄지고 있다. 이런 현상 속에서 모든 대학교 졸업생이 동등하다는 사고를 갖고 학력을 완전히 무시하고 입사지원서에서 학력란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경영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쉬운 문제는 아니다”라고 입장을 밝히면서 “출신학교와 기업경쟁력 간의 정(正)의 상관관계를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즉 학력 업무수행능력이 비례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관관계’는 현실적으로 정말 유효한 것일까.

이에 대해 정세근 운영위원은 “한국교육개발원이 2002년 1백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학력에 따라 실제 직무능력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견은 16.7%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은 여전히 학력란 폐지요청을 무시하고 있으며 기업의 우수성조차 마치 학벌로 내세우는 것처럼 보인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실제 직무수행능력과 큰 관계가 없음에도 기업 입사지원서에 ‘출신학교명’을 기재하도록 하는 것은 학력에 따라 지원자를 차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그저 참고사항일 뿐이다…?

대다수의 기업들이 대외적으로는 “학력은 채용과정에 큰 영향력을 작용하지 않는 최소한의 참고자료다”고 대답하지만 실상 ‘학력’은 이미 공고화된 채용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즉 기업은 아니라고 하지만 암암리에 기업 내에서 채용기준으로 삼고 있는 차별적 기준들은 명확히 존재한다. 얼마 전 본지 보도로 논란이 되었던 성신여대 취업센터의 <2004 취업정보지>에 나타난 상식 이하의 채용기준들 역시 기업측의 내부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공개되지 않았을 뿐 엄연히 존재하는 채용 ‘기준’인 것이다.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들은 “기업측에서는 ‘참고사항이다 아니다’ 식의 이야기만 반복적으로 할 것이 아니라 입사지원서의 차별적 조항 개선을 위해서 새로운 채용시스템 마련과 기업의 채용평가 기준표를 공개해야 한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일단 채용선발 기준을 기업측에서 투명하게 공개해야 그에 대한 구체적인 평가와 개선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인크루트의 조사 결과, 기업의 96%(75개사)가 ‘새로운 채용시스템의 도입 또는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지만 ‘새로운 채용시스템을 마련할 계획이 있거나 마련해 두었다’는 응답은 단 15%(12개사)에 그쳤다. 이는 기업들이 채용 시 발생하는 실제적인 차별의 문제들에 매우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런 현실 속에서 채용과정에 학력이 큰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는 기업측의 이야기는 선뜻 믿음이 가지 않는다. 인력채용의 경향이 ‘학력중심에서 직무중심으로 변하고 있다’는 기업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채용 기준표를 제시하고 그 과정을 투명하게 지원자에게 공개하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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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머리아파 2003/11/03 [16:08] 수정 | 삭제
  • 서울대 출신 하나씩 꼭 끼고 있으려고 한답니다.

    처음부터 왕자취급.. 사수들도 설설 기죠.

    7수 8수해서 서울대가는 사람들이 멍청이가 아니었다는 게 증명되더군요.
  • 회사원 2003/11/02 [00:00] 수정 | 삭제
  • 출신대학별로 줄을 서죠.
    회사에선 일류대 출신직원들을 앞세워서 키웁니다.
    더러운 세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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