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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랑 가족되기” 우리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2019 페미니스트 ACTion! ⑲보스턴피플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백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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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혐오와 차별을 멈추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온라인에서 결집되어 거리에서도 울려퍼지는 시대, 지금 곳곳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는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의 액션을 기록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진행됩니다. [편집자 주]

 

“결혼하지 않고 가족이 될 수는 없을까?”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보스턴피플팀은 친구와 함께 살다가 이런 의문을 갖게 된 여성들이 모여 활동하는 팀이다.

 

신아, 솔, 여경, 장미, 희원. 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목표는 무려 생활동반자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 이 법안은 2014년 진선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 시도를 하며 화제가 되었지만, 결국 발의조차 되지 못했다. 1인가구가 560만 명을 돌파한 2018년, 우리는 불현듯 이 법이 자신의 삶에 필요하단 걸 깨달았다. 그리고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 서로를 찾아내어 일단 맛있는 밥을 한 번 먹기로 했다.

 

팀의 이름을 지은 건 신아, 여경과 함께 살면서 우리를 연결시켜 준 BIYN 멤버 주온이었다. 19세기 미국에서 여성들의 동거 가구를 ‘보스턴 결혼’이라 부른 데서 착안한 이름이다.

 

처음으로 나눠 본 ‘친구와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밝혀주었고, 무엇보다 즐거웠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의 임시적 동거상태”로만 읽혔던 우리의 현재는 대화를 통해 ‘일종의 가족’으로 진화했다. 그래서 우리는 조금 더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 보스턴피플 팀이 올해 5월 9일~30일 진행한 연속강의 <독립생활개론> 포스터 ©BIYN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연애, 혈연보다 ‘우정’에 기반한 관계가 함께 살기 좋아

 

가장 먼저 한 일은 서로를 자신이 사는 집에 초대한 것이다. 우리는 원래 BIYN(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의 회원이다. 모두 아는 사이기는 하지만 사적으로 가깝진 않았다. 일 년에 한두 번 총회에서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누는 정도였달까. 각자가 친구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공통점도 오랫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마 우리 스스로도 그 사실을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았던 까닭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친구와 살게 된 건 상당 부분 우연이었다. 6년 전, 혹시 방 두 개인 집을 구해 함께 살 생각이 있느냐는 친구의 제안이 타이밍 좋게 들어왔고, 덥석 응했다. 두 달 치 월급 남짓한 돈을 모아 급히 얻은 월세방은 미래가 그려지는 집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때는 일단 원룸이 아닌 곳에 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이 집에서 평생 살지는 않겠거니 싶었던 게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햇수로 5년이 훌쩍 지나 있었다. 그리고 의외로 나는 앞으로도 이렇게 쭉 함께 살고 싶었다. 기왕이면 더 나은 집에서.

 

보스턴피플의 두 번째 모임은 우리가 첫 이사를 한 직후에 진행되었다. 남는 땅에 억지로 욱여넣은 것처럼 요상한 모양이었던 첫 번째 집은 방 두 개가 있는 게 감지덕지한 집으로, 거실이랄 공간이 없어 장미와 나는 종종 각자의 방 문턱에 앉은 채로 한참 수다를 이어나가곤 했다. 새집에는 그래도 식탁을 들일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 식탁에 여경, 신아 씨가 선물로 가져온 꽃을 꽂아놓고 첫 모임에 이어 지금 삶의 안정감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그날은 ‘우정’이라는 관계가 여러 번 이야기되었다. 연애는 생활을 함께하기엔 감정적 부담이 있는 관계고, 혈연은 자칫 서로를 너무 걱정하게 된다면, 우정에 기반한 돌봄과 생활에는 딱 적당한 거리감이 있었다. 그리고 그 거리감은 서로의 삶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적당히 지지한다. 절약 효과도 물론 있지만, 집 안에서 쇼핑이나 수다와 같은 친교 활동이 가능한 것도 좋았다.

 

그런데, 현실은 이 삶이 지속 불가능한 것처럼 굴었다. “친구는 언제 결혼한대?” 사람들은 다음 단계의 삶에 대해서만 궁금해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런 세계 속에 살고 있으니까. 세계의 구멍이, 이런 삶에 대한 선택지를 아예 고려하지 않은 법과 정책의 사각지대가 서로의 삶을 교차 검증해 본 후에야 비로소 눈에 들어왔다.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다음 달, 신아, 여경의 집에서 열린 세 번째 모임에서 우리는 계획을 짰다.

 

다른 가족을 꿈꾸는 여성들의 팟캐스트

 

생활동반자법을 필요로 하는 여러 당사자들이 있는데, 우리는 개중에 우정에 기반한 여성들의 동거 생활에 대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보기로 했다. 그것이 우리가 가장 잘 이야기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하고, 자립의 시기를 보내는 또래 여성들이 적극적으로 모색해볼 만한 선택지임에도 가시화되지 않는 영역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로 세상에는 여성들이 함께 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적었다. 비혈연 비성애적인 가족에 대한 이야기는 더 적었다. 예컨대, 잘 알려진 프랑스의 시민결합은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는 쪽에 좀 더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일단 더 많은 이야기가 필요했다. 꼭 운동의 전략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에게 좀 다른 가족을 상상할 힘을 충전하고 싶었다.

 

팟캐스트를 해보자고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프로젝트를 하려면 품이 많이 드는 행사는 하기 어려울 것 같았고, 팟캐스트가 분업하기도 좋고 아카이빙도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답게, 그러나 함께 살아가는 다른 가족을 꿈꾸는 여성들의 팟캐스트 <우리에겐 조금 먼 가족이 필요해>를 시작합니다.”

 

한참 머리를 맞대고 만든 이 오프닝 멘트는 총 열 번 낭독되었다. 첫 회차들에서 우리는 그동안 고민하며 읽고 모은 정보들을 공유했다. 해외의 생활동반자법 사례와 <혼자 살아가기>(송제숙 지음, 황성원 옮김, 동녘, 2016)나 <마흔 이후, 누구와 살 것인가>(캐런, 루이즈, 진 공저, 안진희 옮김, 심플라이프 2014) 같은 책들. <우리의 20세기>(20th Century Women, 마이크 밀스 감독, 2016), <바닷마을 다이어리>(Our Little Sister,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2015) 같이 함께 살아나가는 여성들이 등장하는 영화들.

 

▲ 팟캐스트 <우리에겐 조금 먼 가족이 필요해> 녹음 현장.     ©BIYN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팟캐스트에 적응되었다 싶을 무렵부터는 만나고 싶었던 이들을 초대했는데, 놀랍게도 모든 패널이 흔쾌히 출연에 응해주었다. 아무튼, 지금과는 다른 가족이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 말이 필요 없는 공감대가 있었던 것 같다. 우리보다 앞서 생활동반자법과 동성결혼 합법화 운동을 해온 활동가들을 만나 더 깊은 지식을 전달받았고, 20년 전 무렵 이런 고민을 시작한 전주 비혼여성공동체 <비비>를 만나 40대, 50대를 앞둔 비혼 여성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나누기도 했다.

 

우리의 가장 큰 관심사인 ‘집’을 두고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을 넘나들며 대안을 만들고 있는 또래 활동가들과의 대화는 탄식과 희망을 오갔다. 결혼을 선택해 부부관계를 둘러싼 가족 관계를 재구성하고 있는 동료 여성들과의 만남에서도 파트너십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이 여정은 우리에게 묘한 자신감을 주었다. 정답을 손에 쥐게 되었다기보다는 지금,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우리의 책임감이 합당하다는 느낌, 그리고 ‘가족’이라는 게 실로 고정된 값이 아니라 다양한 변수의 조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욕구가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 같은 것.

 

독립생활개론: 그때 내가 알았다면 좋았을 것들

 

다양한 이야기들을 충전했으니 이제 지금, 혹은 가까운 미래에 생활동반자법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직접 만날 수 있는 접촉면을 넓혀보고 싶었다.

 

팟캐스트는 섭외비와 녹음비, 편집비를 빼면 별도비용이 들지 않아 보스턴피플팀이 속해있는 BIYN에 예산을 신청해서 최소한의 금액으로 운영했다. BIYN은 회비를 납부하는 회원들로 구성된 단체인데, 상근자를 두지 않고 회원들이 자발적 활동을 해나가는 방식으로 지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비용이 더 많이 드는 프로젝트들을 기획하려면 내부 예산에만 기댈 수는 없었다. 몇 개의 지원사업에 신청했고 개중 한국여성재단의 차세대활동 지원사업에 선정되었다. 우리는 기획안에 들어간 4개의 프로젝트를 4명의 멤버들이 하나씩 총괄하는 방식으로 역할을 나눴다. 물론 일은 함께하는 것을 전제로.

 

2019년엔 새로운 멤버 솔이 합류했다. 대학에 다니고 있는 솔은 아직 원 가정에서 독립하지 않았지만 생활동반자법이나 친구와 함께 사는 삶에 적극적으로 관심이 있다고 했다. 같은 필요가 있는 이에게 우리의 메시지가 가닿고 있었다는 게 기뻤고, 또 동반생활을 오늘의 현실이 아니라 미래의 일로 고대하는 솔의 시선이,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하되 그에 매몰되지 않고 함께할 사람들을 향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믿었다.

 

그리하여 새 멤버와 새 계획으로 시작한 첫 번째 프로젝트는 연속강의였다. 생활동반자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자립을 도모하는 여성들이다. 그렇다면 이들의 삶에 정말로 도움이 될만한 정보부터 제공하는 걸 시작해보자는 생각이었다. <독립생활개론>은 혼자 살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거나 독립을 예정하고 있는 여성 1-2인 가구를 대상으로 재정 관리, 공공주택 입주, 지속 가능한 식생활, 정신건강을 주제로 총 4회 강연을 진행했다. 새삼스럽지만, 알고 독립했더라면 좋았을 정보들이었다.

 

▲ 보스턴피플 연속강의 <독립생활개론> 현장.     ©BIYN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강사들은 정신건강을 제외하고는 모두 20-30대 여성이었다. 수강자들이 무엇을 궁금해할지, 어떤 걱정을 안고 있는지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들은 비슷한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중이니까. 평일 저녁 진행되었지만 출석율은 강의 마지막 회까지 무척 높았다. 매회 받은 참가자들의 후기에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어미를 발견할 때마다 특히 기뻤다. 생활의 기술과 방법을 공유하는 일은 행복의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었다.

 

나의 생활동반자를 찾는 네트워킹 파티!

 

두 번째 프로젝트는 네트워킹 파티였다. 여성과 함께 살아볼 마음이 있는 여성들이 기분 좋게 만나는 자리. 그런데 대화 방식부터 케이터링까지 선명한 기획이 머릿속에 있음에도 막상 이런 행사를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알 수가 없었다.

 

사랑과 연애, 결혼을 위한 만남에는 척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이름들이 있다. 소개팅, 미팅, 선 등등. (적어놓고 보니 ‘소개’나 ‘미팅’이나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지칭하는 말인데 쉽게 연애의 가능성으로 수렴되는 것 같다.) 하지만 친구와 함께 살고 싶거나 마음 맞는 비혼 친구를 찾고 싶은 여성들이 만나는 것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한담. 그런 자리에서는 어떤 톤과 매너로 대화를 해야 적절하지? 우리에겐 언어도 의례도 부족하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경험과 욕구는 이토록 명확한데.

 

결국 “생활동반자를 찾는 밤”이라는 무난한 이름이 세 번의 회의를 거친 뒤에야 정해졌다. 기각된 후보로는 ‘멋진 여성 동거 파티’, ‘한 지붕 N가족’, ‘(파)가족같이 지낼 비혼 여성 찾습니다(티)’ 등이 있었는데, ‘동거’라는 단어도 ‘가족’이라는 표현도 딱 들어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2014년 생활동반자법의 발의 시도가 있었던 게 얼마나 다행인 일인지. 우리는 엇나가는 말 대신, 앞으로 채워나가야 할 단어를 선택하기로 했다. 아무래도 좀 긴 설명이 필요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수많은 사람 중에 여러분이 만나 ‘동반 생활’의 연을 맺은 것은 기적이고 큰 축복입니다. 만약 벗어 놓은 양말 때문에 싸우게 된다면 ‘나는 머리카락 청소를 잘 까먹지’ 하는 겸허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반 생활자의 장점을 먼저 봐 주시길 바랍니다. 이성 부부에게만 맞춰진 사회 시스템이 위기상황에서 발목을 잡더라도 여러분의 곁에 이웃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여성과 함께 살아볼 마음이 있는 여성들이 만나는 네트워킹 파티! “생활동반자를 찾는 밤” 홍보 포스터 중에서.    ©BIYN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동안 언제든 평화롭게 헤어질 수 있는 이들을 축복하는 주례사로 시작된 행사는 즐거웠고, 사람들의 표정은 밝았다. 우리는 ‘함께 살기’라는, 초면에 대화하기엔 난이도가 높은 주제를 풀어가기 위해 동반생활 체크리스트를 마련했다. 서로 비슷할수록 함께 살기 좋은 요소들과 서로 다를 때 살면서 보완이 되는 요소들을 정리하고, 파트너와 나누고 싶은 룰을 적어볼 수 있는 작은 카드였다.

 

찾아보니 보통 소개팅 파티에서는 “귀여운” 타입, “청순한” 타입을 선택하고 일 대 일 대화를 참가자들과 나눈 뒤 마음에 드는 번호의 사람을 지원해서 쌍방 매칭이 되면 연락처를 교환시켜주던데. 귀여움. 함께 사는 데 있어 귀여움은 물론 중요한 요소일 수 있겠으나, 그런 건 ‘타입’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아무튼 ‘생활동반자의 밤’에서는 정리정돈을 좋아하는 편인지, 더위를 더 타는지, 추위를 더 타는지가 더 중요했다.

 

그리고 그보다 어떻게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고 싶은지,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각자의 행복은 어느 방향을 향해 있는지에 대해 지지의 마음을 담아 함께 대화하는 시간이 더 중요했다. 왜냐면 우리가 함께 사는 삶을 점쳐보는 건 어디까지나 각자의 삶이 더 온전한 행복으로 채워질 수 있는 환경을 위해서니까.

 

한쪽의 경제력에 의존하거나, 한쪽이 가사와 돌봄을 책임지는 방식이 아닌, 완벽한 남편이나 완벽한 아내의 역할이 없는 세상 속에서 시도하는 불완전한 사람들의 균형 잡힌 팀플레이. 그런 팀이 만들어지려면 서로의 삶을 좀 더 다양한 차원들 사이에서 이해해야 하기 마련이다. 아니 일단은 각자가 어느 차원에서 살고 있는 지부터 탐색이 필요하다. 우리는 일과 주거, 반려 동식물, 운동 등 보편적인 주제의 대화 테이블을 마련했다. 이날의 만남은 맥주 모임, 책 모임 등의 후속 모임으로 이어졌다.

 

▲ 보스턴피플에서 7월 5일 개최한 네트워킹 파티! <생활동반자를 찾는 밤>   ©BIYN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생활동반자법, 알고 만들고 행동하기

 

여름을 지나 가을. 우리의 세 번째 프로젝트는 공부였다. 세미나 <생활동반자법, 알고 만들고 행동하기>라는 제목 그대로 생활동반자법에 대해 이해하고 해외 사례들을 참고하여 참가자들과 함께 우리가 바라는 생활동반자법을 구성해보는 프로젝트였다.

 

한국에서 가족은 권리들의 패키지다. 가족은 법적으로 서로를 보호하거나, 공적인 영역에서 대리할 수 있다. 공동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고, 먼저 사망하는 사람은 다른 가족에게 유산을 넘겨준다. 국가는 개인보다는 가족을 신뢰해서 복지정책이나 의료보험 제도를 짤 때도, 세금을 걷고 공제할 때도 가족을 핵심단위로 삼는다. 은행도 개인보다는 가족을 더 잘 믿어 준다.

 

그러니까 한국에서 개인은 가족 안에 있어야 온전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법은 가족이 가장 친밀한 관계이며 혈연과 결혼이 그 관계를 증명한다는 사회 통념 위에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가까운 사이에 권리와 책임들이 개입되면 가장 첨예한 사이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리고 그 첨예함 속에서 갈려 나가는 건 99% 여성이다.

 

우리는 그 틈새에 끼어있느니 바깥에 자리를 깔아보기로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다. ‘비혼’은 결혼에 의한 가족 관계를 거부하는 언어지만, ‘생활동반자법’은 새롭게 가족의 관계를 채워 넣어보는 언어다. 바깥으로부터 우리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내부를 구축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는 가족 관계를 위한 법적 조건들은 어떻게 써볼 수 있을까? 우리는 결혼과 유사한 무엇에서 출발하는 대신, 4회에 걸쳐 국내외의 레퍼런스들을 살펴보며 아래의 질문들에 대한 답을 써 내려갔다.

 

● 한국의 생활동반자법 어디까지 왔는가? 생활동반자법 대체 무엇인가?

● 나는 왜 생활동반자법을 지지하는가? 내가 살고 싶은 삶은 무엇인가?

● 나의 욕구를 법의 언어로 바꾼다면 어떻게 구성될 수 있을까?

●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우리의 논의 결과는 2014년 발의 시도되었던 법안과 ‘권리의 보장’ 측면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논의 과정에서는 ‘평등’한 관계가 좀 더 강조되었다. 그리고 ‘부양’이라는 단어를 ‘돌봄과 협조’라는 단어로 수정해보자는 제안도 나왔다.

 

▲ ‘개인’을 위한 가족과 기본소득 워크숍 중에서.     ©BIYN 기본소득청‘소’년네트워크

 

상상의 과정에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만큼이나 지당한 명제를 새삼 발견하게 되었는데, 살다 보면 누구나 언젠가는 다른 사람을 필요로 하게 된다는 것이다. 통상적으로 사랑은 구속력을 가지는 감정으로 여겨지니 필수적인 돌봄의 약속으로 삼기에 적절해 보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자유로운 개인들은 특별하고 고유한 관계를 스스로 선택하고, 계약하거나 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물론 그 특별함은 반드시 성애적이어야 할 필요도 없다. 이런 개인의 선택이 법에 의해 원천 차단되어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퍽 이상한 일이다.

 

더 멀리 가고 싶다, 일상을 전환시키는 순간 너머까지

 

이상이 지금까지의 이야기다. 사회에서도, 시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더 의심 사거나, 돈을 덜 받거나, 무급노동을 더 해야 하는 ‘여성 문제’와 아마 우리는 생애 내내 싸워야 할 공산이 크다. 잘 싸우려면 돌아갈 곳이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우리의 집을 지키는 일을 이런 방식으로 시작했다.

 

그러니까, 우리의 삶에서 문제를 정의하고, 사람들과 ‘오늘날 가족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이야기 나누었다. 가족을 구성하기에 앞서 혼자 잘 사는 방법에 대해 나누고, 또 ‘사회적 가족’ 혹은 ‘생활동반자법’과 같은 개념 곁에서 ‘함께 살기 위한 만남’의 시공간을 만들기도 했다.

 

바쁘고 힘들었지만 재미있었다. 좀 멋쩍지만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보자면,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 보스턴피플의 체력을 키워나가고, 또 ‘우정의 가족 관계’라는 정서를 콘텐츠나 참여형 행사로 구체화해나가면서 연대를 위한 일종의 감정적인 인프라를 만들어나간 시간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다음 액션은 온라인 캠페인이다. 목표를 세우고 실행해보려고 한다. 정책 연구자, 활동가들, 정치인들과도 면밀하게 만나고 싶다. 더 멀리까지 가고 싶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곳까지. 우리 모두의 일상을 전환 시키는 순간 너머까지. 함께 하고 싶거나,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분들은 연락 주시길. boston.people@biy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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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13 [13:15]  최종편집: ⓒ 일다
 
맛있는참 19/11/14 [12:25] 수정 삭제  
  요즘 생활 동반자법에 관심 갖게 된 일인이에요. 가족이 맺기 쉽고 풀기도 쉬운 공동체가 된다면 좋겠어요 그런 꿈을 꾸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오일 19/11/20 [15:27] 수정 삭제  
  생활동반자를 찾는 밤이라니... 재밌는 행사가 있었네 왠만한 미팅보다 훨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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