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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성들이 미술계를 향해 던지는 질문
따라따라프로젝트 <로얄키치아방가르드비급비글아트프로젝트>展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이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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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충열 님은 여성주의 현대미술가이자 <화가들은 왜 비너스를 눕혔을까>(한뼘책방, 2019)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기다려온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전시장을 찾았는데 좀 헤맸습니다. 안국역 옆에 붙박이처럼 있던 175 갤러리가 이사 간 걸 몰랐기 때문이에요. 그러고 보니, 제가 미술 작업을 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미술관 가는 일이 점점 뜸해진 것 같습니다. 현실과 동떨어진 채 ‘환상’을 유지하려는 ‘예술’이 아직도 많은 것 같아서, ‘환상’이 소외시키는 현실이 더 궁금해서인가 봐요.

 

드디어 전시장을 찾았는데, 입구의 어지럽게 뒤엉킨 전선과 배관들에 알록달록한 포스터가 절묘하게 어울려 저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 따라따라프로젝트 <로얄키치아방가르드비급비글아트프로젝트>展 전시장 내부. 인터뷰 영상    ©촬영: 이충열

 

‘보는’ 예술에서 ‘하는’ 예술로, 따라따라프로젝트

 

따라따라프로젝트 작업은 SNS를 통해 몇 년 전부터 관심 있게 지켜보았어요. 작업을 보면서 셰리 레빈(Sherrie Levine)이라는 작가가 떠올랐습니다. 셰리 레빈은 현대미술의 규범적인 작품을 다시 찍거나 다시 그림으로써, 대부분 도판 사진을 통해 ‘위대한 걸작’을 경험하는 문화 속에서 ‘원본’의 개념을 묻고 ‘재산’ 역할을 하는 미술작품에 문제 제기했답니다. 또한 ‘독창성’과 ‘원작자’라는 개념 자체가 가부장 사회에서 유래된 것임을 전제하고, 그러한 문화를 거부한 것이기도 했죠.

 

셰리 레빈의 메시지에 크게 공감하는 저는 따라따라프로젝트도 그런 맥락의 작업이라 생각했고, ‘한국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또 ‘한 명이 아니라 집단으로 하는 작업의 효과는 어떻게 다를까?’ 궁금했어요. 그래서 작년에 이들의 전시가 열린다기에 동탄아트스페이스까지 찾아갔죠. 그런데 전시에서 제가 느낀 것은 셰리 레빈과의 유사성보다는 따라따라프로젝트만이 가진 엄청난 에너지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었습니다.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되어 다음 전시를 기다리게 되었죠.

 

드디어 만난 올해의 전시 공간은 생각보다 작았습니다. 하얀 전시장에는 몇 개의 모니터와 여러 장의 사진이 나열되어 있어서 자칫 실망할 뻔했죠, 작년에는 결과물을 시각적으로 펼쳐서 보여줬다면, 이번 전시에는 공간 규모에 맞게 과정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담은 것이었어요. 영상을 하나하나 보면서, 또 멤버들의 인터뷰를 보면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전시를 기획한 임은빈 작가의 고민이 얼마나 깊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대체 따라따라프로젝트가 뭐냐고요? 따라따라프로젝트는 현대미술에 관한 수업을 듣던 수강생들이 스터디 모임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고 해요. 경기도 화성에 사는 ‘동네 주부’들이 임은빈 작가의 <두 번의 타협이 있었던 쌓기>를 보면서 “어, 저거는 나도 하겠다!”며 재미 삼아 따라 해보았던 것이 발단이 됐죠. 난해하게만 생각되던 현대미술을 따라 하다가 각자의 예술을 발견하면서 4년 차의 멋진 ‘예술가 공동체’가 된 것입니다.

 

▲ 따라따라프로젝트_임은빈 「두 번의 타협이 있었던 쌓기」 따라하기_2009     ©따라따라프로젝트

 

따라따라프로젝트는 “당최 알 수 없는 미술가들의 작품들을 수상히 여기게 되었고, 궁금증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현대 미술가들의 작품이란 것을 일단 따라 하기 시작했다”(앞으로 나올 인용은 <따라따라프로젝트 3> 결과집에 실린 내용임)고 합니다. 나아가 “현대미술이 생산해내는 수많은 방법론을 분해하고 응용하면서 ‘따라’는 점점 희미해져 갔고, 따라 하는 과정을 통해 남은 예술과 일상의 흔적들은 ‘하기’에서 오는 것임을 알아차리게 되었다”고 해요.

 

직접 ‘하기’를 통해 얻은 이들의 통찰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교양’이라는 이름으로 소비되는 예술이 다수의 사람을 소외시켜온 것과 대비됩니다. ‘위대하다’고 하는 ‘유명한’ 사람이 한 ‘알 수 없는’ 행위를 ‘현대미술’로서 ‘받아들여야’ 했던 것과는 다르게, 내가 직접 몸으로 체험하고, 내가 아는 사람이 해내는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비로소 ‘의미’가 발견되고, 의미가 ‘확장’되는 진짜 예술을 경험하게 된 것이지요.

 

따라 ‘하기’를 통한 새로운 발견!

 

따라따라프로젝트는 ‘이벤트, 설치, 개념미술의 도입과 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고 지식백과에 소개된 이건용 작가의 <달팽이 걸음>과 <신체드로잉> 시리즈 중 두 개를 따라 했습니다. <달팽이 걸음>은 긴 종이를 깔고 웅크린 채로, 발 바로 앞에 드로잉 재료로 선을 그으면서 조금씩 앞으로 이동하는 퍼포먼스에요. 그은 선은 뒤이어 온 발에 의해 뭉개지거나 지워지면서 아주 느린 속도로 앞으로 나가는 이 퍼포먼스는 참여한 이뿐 아니라, 보는 이까지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구글에서 찾아본 이건용의 작품을 봤을 땐 ‘아 이런 것도 있네’ 하는 가벼운 감상이 전부였다. 비단 실물이 아닌 사진이라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내가 알고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걸 따라 할 때는 ‘이게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탄성이 터졌다. 작품을 오래 보고 있는 건 물론이고, 과정을 짚어보면서 제목의 의미를 느끼고, 사진도 여러 장 찍고, 작업한 사람에게 대단함을 느끼고 질문을 던지고 싶기도 했다.

 

집에 가서도 따라작의 작업을 여러 번 떠올렸다. 현대미술에 관한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긴 하지만 역시 나는 재현이 좋고, 마냥 예쁜 게 좋은 것 같아, 거기가 내 고향인가 봐 하는 생각이 종종 들 때가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취향이 아니라 감정 이입과 애정인가보다. 낯설음을 대번에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지만, 몰입의 작동 원리를 알았으니까 다른 작품 볼 때도 써먹을 수 있겠지?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을 것 같긴 하다. 어쩌면 그게 열린 태도일지도 몰라.”

 

직접 <달팽이 걸음>을 따라 하지 않았지만, 그 과정을 함께함으로써 ‘낯섦’을 사랑할 수 있는 ‘열린 태도’에 대한 고민으로 연결되는 이 모든 과정이야말로 예술, 그 자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따라따라프로젝트_이건용 「신체드로잉76-1」 따라하기     ©따라따라프로젝트

 

이번에는 이건용 작가의 <신체드로잉>이 언론에 소개된 내용을 먼저 인용해보겠습니다.

 

“‘행위미술을 통해 한국을 대표하는 전위미술가의 반열에 오른 이건용의 예술세계를 관통하는 기본이념에는 고등학생 시절 영향을 받은 메를로 퐁티(Maurice Merleau Ponty)의 현상학과 비트겐슈타인(Ludwig Josef Johann Wittgenstein)의 언어철학이 내재해있다. 퐁티의 <지각의 현상학>에서 ‘의식’을 신체와 깊이 결부된 것으로 사유하듯이 이건용은 미술의 본질과 현실 속 미술품의 존재 위치에 대한 물음을 ‘신체’를 주축으로 구성되는 시·공간 안에서 관객과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소통하는 방식으로 답한다.”(이데일리 2019년 5월 4일자 “[알면 돈 되는 미술 이야기]2019 홍콩 아트바젤의 중심에 선 한국 작가들, 그 두 번째 이야기” 중)

 

이런 언어들로는 이건용 작가의 작업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는 것인지, 그것이 우리의 삶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 알기 어렵죠. 하지만 <신체드로잉 76-1>를 따라 한 멤버의 이야기를 들으면, 이건용 작가의 신체드로잉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신체드로잉 76-1>은 이건용 작가가 나무판 뒤에서 손을 내려서 닿는 데까지 드로잉을 한 후, 물감이 닿은 부분을 잘라내고 다시 나무판 뒤로 가서 같은 방법을 반복한 작업이에요.

 

“손끝이 닿지 않는 부분에서부터 팔 움직임이 여유로운 공간으로 이동하면서 그려지는 드로잉은, 우리가 자유자재로 원하는 대로 신체의 불편함 없이 살아가는 무의식의 삶. 그러다 어쩌다 부딪치는 작은 불편함에도 불만을 호소하는 현대인의 삶. 대단하고 예뻐야 하는 분류에서 벗어나 미술도 느끼는 대로 그려지는 대로 그게 작품이라는 것. 단순하면서 간결하지만 결코 쉼 없이 고민하는 과정이 녹아있는 작품이었다.”

 

작가의 작업을 따라 하고 과정을 몸으로 겪으면서 삶에 대한 통찰을 얻고, 작업의 의미까지 발견해낸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은 작가의 ‘의도’라고 붙박을 수 없는, 작업이 ‘담고 있는’ 것으로, 누구든 각자의 경험과 연결시켜 자기 언어로 이야기할 수 있을 때야 비로소 예술작품으로서 의미가 발생하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 따라따라프로젝트_쉬린 네샤트 「침묵의저항」 따라하기_디지털 프린트_60×42cm_2018  ©따라따라프로젝트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가 ‘이제 인간은 기존 미술의 미학에서 공간과 시간의 통일에 기초한 새로운 형식의 예술을 발견해야 한다’면서, 공간과 물성의 관계를 연구하여 만든 <공간개념>이라는 작품도 따라 했습니다.

 

루치오 폰타나는 “나는 구멍을 뚫는다. 무한함이 그곳을 통해 지나가고 빛이 지나간다. 칠할 필요가 없다. 모두들 내가 파괴한다고 믿었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내는 것이다”라고 했다는데요, 이 역시 예술을 서술하는 일반적인 언어입니다.

 

사실 저는 이런 얘기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작용할지 궁금했는데요, <공간개념>을 따라 하며 캔버스를 칼로 북북 찢었지만 왠지 “헛헛하고 밋밋”한 기분에 아쉬움까지 들었다는 멤버가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물어보라’는 과제를 하며 생긴 일이야말로 예술의 ‘작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별 기대 없이 시작된 남편과의 대화는 작품을 보며 남편이 받은 인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칼이 아니라 고양이의 도움을 받아도 좋겠다는 아이디어까지 덧붙고, 긴 연애 시절과 결혼 생활 내내 듣지 못했던 남편의 고등학교 시절 얘길 처음 듣는 사건으로까지 확장되었던 것입니다.

 

“그게 뭐가 놀랄 일인가 싶겠지만, 나는 남편과 오래 연애했고 남편은 말이 많은 사람이라 남편에 대한 웬만한 이야기는 다 두 번 이상 들어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처음 듣는 얘기는 철학의 향기가 짙고 생소한 주제로 확장되었다. 우리는 40여 분간 대화를 나눴다. 우리의 대화에 새로운 공간이 생긴 것 같았다.”

 

작가가 아무리 깊은 철학을 통해 엄청난 발견을 시각 언어로 옮겨도 그것이 관객에게, 다른 사람들에게 연결되지 않으면 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고민과 실험을 거쳐서 도달한 그 작업이 이론적이고 추상적이고 권위적인 언어로 표현되어 관객에게 강요하듯 다가간다면 말이지요. 따라 ‘하기’를 통해 루치오 폰타나가 주창한 ‘공간’을 자신의 관계 속에서 경험하게 된 사건이 감동적으로 다가왔습니다.

 

▲ 따라따라프로젝트_마리나아브라모비치 「Artist Is Present」 따라하기_디지털 프린트_42×60cm_2017    ©따라따라프로젝트 제공

 

나의 삶으로 들어온 미술

 

화요일마다 오전 10시 모여서 4년 동안 서양미술사와 현대미술을 공부하며 그림을 그리고, 분장을 하고, 땅을 파고, 얼음을 밀고, 낯선 사람과 눈을 마주치고, ‘예술가’라고 쓴 옷을 입으며 세 권의 결과집을 만들고, 세 번째 전시를 연 따라따라프로젝트는 인터뷰를 통해 ‘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저는 이 인터뷰가 특히 좋았는데요,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제가 추구했던 것을 이미 이룬 이들을 만난 것 같아 한동안 멍할 정도였답니다. 그래서 저도 ‘따라따라’ 하려고 합니다. ‘따라따라프로젝트’의 멤버들의 언어를 그대로 인용하겠다는 이야기에요. 전시장에 비치된 <따라따라프로젝트 3>의 사진과 글을 모두 전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지만, 일부만 ‘따라’ 적어보겠습니다.

 

“비록 작가의 의도를 내가 고스란히 느끼지 못한다 하더라도 내 삶에 스며들어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되고 나의 삶에 반영되는 미술은 나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 같다”

 

“모방은 작품에 집중하지만 ‘따라따라’는 따라 하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한다. ‘어떤 작품’을 모방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작품을 따라 하는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

 

“미술에서는 같은 직선을 그린다고 해도 그것은 같은 직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표현한 직선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언어로 사고하고 소통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미술은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도구가 되어 줍니다. 또한 미술가들이 표현해 놓은 작품세계를 통해 더 많은 다양한 세상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절제되고 그렇게 해야만 했던 과거의 보수적이고 통제된... 삶에서 자유로움과 함께 마법같은 예술적 감정을 느꼈던 것 같다.”

 

▲ 따라따라프로젝트_키스아넷 「자기매장」 따라하기_디지털 프린트_50×50cm_2019     ©따라따라프로젝트

 

“모두 함께 공유하는 내 눈앞에 보이는 이 세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나만의 세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고, 새로운 세상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 전혀 몰랐던 현대미술가의 전시회를 관람하러 가는 게 이제는 집 앞의 CGV에 가서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자연스러워졌다.”

 

“미술은 저에게 재미있는 놀이입니다.”

 

“나에게 미술이란 ‘만남’이다.”

 

“흔히 사람들은, 예술가들은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아서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그 누구보다도 ‘나’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뒤집어 보고 돌려 보고 괴롭히고 놔 버리고 무섭도록 열심히 못살게 굴어서 결국엔 마음이 온전히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명확히 알기 때문이 아닐까요.”

 

“이들은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수 없고 아무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면서도 ‘우리는 진짜 예술가는 아니에요. 하하하’라고 말한다. 이 말은 동시에 ‘그럼 누가 진짜 예술가일까요?’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미술 행위를 하는 비미술인들이 예술가냐, 예술가가 아니냐를 따지기보다는, 예술을 향유하는 또 다른 형태의 그룹을 소개하고, 그들만의 새로운 역할을 기대해 보려고 한다. 궁금증에서 시작된 이들의 즐거운 미술 행위들이, 예술에 있어 경계의 조건에 대한 또 다른 시각과 궁금증들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술이 너무 재미있다고 말하는 이 사람들, 예술을 하고 있지만 예술가는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예술계를 향해 던지는 궁금증과 질문들은, 유쾌하고 통쾌하고 종종 뜨끔하다.”

 

▲ 따라따라프로젝트_키스아넷 「I'M A REAL ARTIST」 따라하기_디지털 프린트_42×60cm_2019     © 따라따라프로젝트

 

누군가는 ‘이제 그만 따라 해도 되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답니다. 하지만 저는 따라따라프로젝트가 더 많이 따라 했으면 좋겠어요. 현대미술은 ‘독창성’ 개념이나 ‘원작자’의 권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을 더 섬세하게 느끼면서 자신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니까요!

 

*제목: 따라따라프로젝트 <로얄키치아방가르드비급비글아트프로젝트>展

*장소: 갤러리 175 (서울 종로구 자하문로53 2층, 02-720-9282)

*기간 : 2019년 11월 6일~ 21일 (화요일~일요일 12시~18시)

*아티스트 토크: 11월 16일 토요일 오후 2시

*아티스트: 이옥자, 김경애, 조나정, 이윤성, 황선희, 허은주, 임정은, 조영은, 이은지, 신윤덕, 신윤희, 이수진, 정정미, 송민주, 오경선

*기획 : 임은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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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1/15 [19:50]  최종편집: ⓒ 일다
 
재미 19/11/15 [22:14] 수정 삭제  
  오호~~~ 언니들 머찐걸?
. 19/11/18 [13:24] 수정 삭제  
  좋네요!!
kimchi 19/11/18 [14:08] 수정 삭제  
  내가 했던 생각을 누군가는 실행하고 있다는 걸 보게돼서 기분 좋다. 기쁘다.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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