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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마, 내 목소리”
극단 춤추는허리 정기공연 <빛나는>이 준 위로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박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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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을 기억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겠지만, 개인적으론 JTBC에서 방영된 리얼리티 예능 쇼 <캠핑클럽>을 통한 핑클의 재결합을 꼽지 않을 수 없다. ‘겨울이 온다’(Winter is coming, 미국 인기 드라마 시리즈 <왕좌의 게임>에 나오는 유명 대사)가 아니라 ‘핑클이 온다!!’고 불러야 할 만큼 설렘이 컸고 기대도 높았다.

 

몇 년 동안 TV를 켜지 않았고 케이블도 해지해버린 탓에 OTT 서비스로 방송을 시청해야 했지만 본방을 꼬박꼬박 챙겼다. 한동안 일요일 밤은 ‘핑클 언니들과 함께 하는 밤’이었고 ‘학창 시절에 모았던 진이 언니 사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등을 생각하며 오래간만에 동년배 친구들과 수다를 떠는 밤이기도 했다. <캠핑클럽>이 끝난 지 몇 개월이 지나도 그 여운이 쉽게 가시지 않았다.

 

그러다 몇 주 전, 극단 <춤추는허리> 정기공연 소식을 접하고 외마디 탄성을 내질렀다.

 

“10년 전 참사랑재활원의 핑클이었던 4명의 장애여성 지영, 수희, 은수, 정은은 핑클 리마인드 콘서트 팬미팅 소식을 듣고 다시 뭉친다. 팬미팅 당일 콘서트에 오기 어려운 이유가 생기는데… 과연 이들은 핑클 콘서트장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 -연극 <빛나는> 소개

 

▲ 연극 <빛나는>의 홍보물과 티켓을 들고     ©일다(박주연 기자)

 

동년배들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탁월하게 주제를 선정한 건지 놀랍다는 생각을 하며 속으로 박수를 쳤다.

 

한편으론 조금 뜨끔하기도 했다. 사실 난 <캠핑클럽>에서 팬미팅 응모 안내가 나왔을 때 ‘당첨될 수 있나 없나’만 생각했지 ‘내가 거기 갈 수 있는지, 불편함 없이 즐길 수 있는 환경인 건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여전히 나의 상상력은 ‘비장애인’으로 한정되어 있었던 거다.

 

극에 대한 소개 세 줄만으로 하나의 깨우침을 얻고, 바로 연극을 예매했다. 2년 전 춤추는허리를 만났을 때,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던 그 열정적 모습은 변함없을까?(관련 기사: ‘더 다양한 장애여성’을 보여주고자 하는 사람들 http://ildaro.com/8085) 이번엔 또 어떤 이야기가 기다리고 있을까?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극장에 들어섰다.

 

‘넷이 함께 핑클 리마인드 콘서트에 가자’는 약속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참사랑재활원’이라는 시설에서 청소년기를 보내는 지영(김미진 역), 수희(서지원 역), 은수(조화영 역), 정은(진성선 역)은 편지 봉투를 접는 노동을 한다. 재활원 선생님들의 ‘보호’라는 이름의 간섭과 눈치를 보는 생활이지만, 그들에게도 즐거움은 있다. 바로 핑클 언니들이다.

 

각자 포지션도 하나씩 맡은 지영, 수희, 은수, 정은은 핑클의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 핑클의 <영원한 사랑> 노래 가사처럼 언제나 함께할 것을 약속하면서.

 

▲ 연극 <빛나는> 중     © 춤추는허리

 

하지만 핑클이 해체되고 멤버들이 각자의 길을 간 것처럼 지영, 수희, 은수, 정은도 언제나 함께하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헤어진다.

 

시설에 남은 건 지영뿐. 수희는 탈시설 후 장애인권을 위해 투쟁하는 활동가가 되었고, 은수는 알바를 하지만 돈이 부족해 종종 지영에게 월세를 빌리면서 그래도 독립 생활을 이어간다. 정은은 비장애인 남성과 결혼한 후 ‘주부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게 달라져 버린 삶, 아무리 단톡방이 있다고 해도 넷이 함께 모이는 건 점점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핑클 리마인드 콘서트 소식을 전해 들은 넷은 오랜만에 의지를 불태운다. ‘참사랑재활원의 핑클이었던 우리가 빠질 수 없지!’ 무조건 꼭 함께 가자고 단단히 약속했건만, 넷은 각기 다른 이유로 콘서트장에 가기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다.

 

‘핑클 재결합’ 소재로 엮어낸 장애여성들의 생애사

 

연극 <빛나는>은 재활원이라는 시설에서 노동력을 착취당하고, 때로 폭력적인 상황을 맞이하면서도 ‘우정과 연대’로 함께 10대를 보낸 장애여성들이 이후 어떻게 각기 다른 30대를 보내고 있는지 보여주며 장애여성의 생애사 중 일부를 과감하게 드러낸다.

 

▲ 연극 <빛나는> 중     ©춤추는허리

 

시설을 둘러싸고 상반된 견해를 보이는 지영과 수희의 다툼을 통해 ‘탈시설’의 의미를 질문하고, 발달장애를 가진 은수가 노동 현장에서 만나는 차별과 편견을 보여주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간주되는 장애여성이 결혼을 통해 만나게 된 이중 기준의 문제도 짚는다. 그리고 제한적인 장애인 이동권과 문화예술 향유권에 대해 다양한 물음을 던진다.

 

주인공들의 경험을 일일이 열거하거나 장황하게 늘어놓지 않으면서 몇 마디 대사, 몇 장면만으로 주요한 이야기를 탁월하게 짚어내는 건, 역시 극단을 촘촘하게 이끌어 온 춤추는허리만의 강점이다 싶었다.

 

거기다 ‘핑클의 재결합’이라는 현실의 소재를 녹여냄으로써, 이런 ‘핫함’이 비장애인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거라는 얄팍한 편견도 깬다. 비장애와 장애의 경계란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부분도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지영, 수희, 은수, 정은이 몇 년 전, 오랜만에 노래방에서 만나 핑클의 <내 남자친구에게>를 부르다 가사 속 여성의 소극적인 모습을 지적하며 “근데 이건 아니지 않아?”라고 하는 장면도 그랬다. <캠핑클럽>에서 핑클 멤버들이 했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무슨 의미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 연극 <빛나는> 중     © 춤추는허리

 

너의 확성기를 이제 내가 들게

 

사람을 웃기다 울리는 게 춤추는허리의 전매특허인가 싶을 정도로, 이번 연극에서도 그 텐션이 살아있었다. 핑클 노래를 부르다가 ‘꿘노래’인 민중가요 <불나비>를 부르는 장면에선 웃음이 나다가도 비장한 마음이 들어 생경한 기분이었다. 관객들이 자연스럽게 노래를 따라 부르는 모습이 뭉클하기도 했다.

 

“조용히 있지 마. 누구에게도 빌려주지 마, 너의 인생을, 너의 시간을…

조금 힘내, 많이 힘내려다가 너무 쉽게 지칠지 몰라.

봄밤이 깊어만 가는데… 모든 게 그리운데… 갈 길은 먼데… 휠체어가 서버렸어.

지금 충전 중. 지금 고민 중. 지금 변신 중.

소나기 온다, 가만히 가만히 움직여 볼까… 이 빗속을”

-노래 <빛나는 목소리> 중

-작곡: 권아신, 작사: 경민선, 노랫말 협의: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극이 마지막을 향해 갈수록 감동은 더해졌고, 노래 <빛나는 목소리>가 나올 땐 포근함을 넘어서는 뜨거운 열정과 열기에 물들어 버렸다. ‘아, 나도 지금을 살아가고 있구나. 이게 살아있다는 기분이구나.’ 더할 나위 없이 큰 위로의 순간이었다.

 

최근 ‘슬프다’는 말로는 표현이 안 되는 가슴 아픈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났고,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추스를지 몰라 헤매고 있던 시기에 <빛나는>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은수가 수희에게 선물했던 확성기가 지영에게 건네지고 “잊지마, 내 목소리”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차오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지만 그건 슬픈 눈물이 아니었다. 후회의 눈물도 아니고, 회피의 눈물도 아니었다. 그건 용기의 눈물이었다, 힘이 나는 용기.

 

▲ 연극 <빛나는> 중     © 춤추는허리

 

<빛나는>을 보던 그날 저녁, 홍대입구역에선 #미투운동과함께하는시민행동이 개최한 “애도하고, 말하고, 노래하는 밤- 그녀들의 싸움을 기억한다”는 행사가 열렸다. 그 장소에 함께 있지는 못했지만, 어떤 분위기였을지, 어떤 사람들이 모여 어떤 마음을 나눴을지 그림이 그려졌다. 그곳에서도 누군가의 목소리를 전하던 확성기를 건네받으려는 사람들이 모여 노래하며 용기를 나눴겠구나 하고.

 

우리는 여전히 여기 있다. 사라졌다고 생각되는 이들의 목소리도 여전히 남았다. 그 목소리를 잊지 않는 사람들이 남아 있으니까. 그리고 우린 결국 ‘빛나는’ 시간을 맞이할 거다. 소나기가 오더라도 잠시 쉬며 휠체어를 충전할 뿐, 햇볕으로 나아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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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9/12/09 [09:36]  최종편집: ⓒ 일다
 
령이 19/12/10 [16:14] 수정 삭제  
  아이템 신박하네 글만 봐도 뭉클하다요
k 19/12/10 [17:44] 수정 삭제  
  빛나는 목소리 같이 부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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