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나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

자폐성 장애인과 살아가는 사회를 보여주는 드라마 시리즈

박주연 | 기사입력 2020/01/08 [22:29]

‘별나도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

자폐성 장애인과 살아가는 사회를 보여주는 드라마 시리즈

박주연 | 입력 : 2020/01/08 [22:29]

새해가 되면, 해낼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보곤 한다.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을 꾹꾹 눌러 담아서 쓰는 버킷리스트를 여태껏 100% 실행한 일은 없지만 그래도 써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달까.

 

이제 와서 밝히는 2019년의 버킷리스트엔 <장애인 친구 사귀기>가 있었다. 이상한 목표이기도 하다. 꼭 찍어서 ‘장애인’과 친구가 되려는 게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CBS TV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나온 장혜영 감독의 “여러분에게는 왜 장애인 친구가 없을까요?”라는 질문을 듣고서였다.

 

요즘 만나는 사람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일은 없지만,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상황에서 유추하건대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친구도 있고, 인종이나 출신 국가가 다르고, 하는 일도 다 다르고, 서로가 놓인 위치가 다르기도 하다. 성격이나 기질도 다르고,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의 스펙트럼도 각기 다르다. 이렇게 나름 다양한 친구들이 있다고 생각했건만, 둘러보니 장애를 가진 친구는 없다.

 

물론 누군가는 드러나지 않는 신체적 혹은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내가 무신경하고 무지해서 그들이 보낸 신호를 읽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고, 그들이 자신의 장애를 드러낼 만큼 신뢰나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끼지 못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사실 문제가 있는 상황이다.

 

<장애인 친구 사귀기>라는 버킷리스트는 ‘장애’에 대해 더 알아보자는 의미도 있었다. 관련 책도 좀 더 읽어 보고, 장애인 인권 활동에도 더 가까이 다가가 보고 함께 목소리도 내어보자는 목표였다.

 

▲ 미국 드라마 시리즈 <별나도 괜찮아>(Atypical) 장면 중     © Netflix

 

2020년 버킷리스트에 다시 ‘장애인 친구 사귀기’를 넣으며, 무모한 도전이 되지 않기 위해 뭔가 시작해야겠다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첫 번째 일은 자폐 장애인을 가족, 친구, 연인, 주변인으로 그려보고 이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해보는데 도움을 준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별나도 괜찮아>(Atypical)를 기사로 소개하는 거다.

 

자폐성 장애인인데 너무 평범하잖아?

 

<별나도 괜찮아>는 간단하게 말하면 ‘자폐성 장애를 가진 18세 고등학생 샘의 성장 스토리’다. 샘은 자폐스펙트럼 장애/자폐범주성 장애(Autistic Spectrum Disorder, ASD)를 가지고 있다. 타인과의 소통과 감정 표현에 서투르지만 남극, 그 중에서도 펭귄에 엄청난 관심과 애정을 보인다. 방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한 마디로 엄청난 ‘펭귄 덕후’다.

 

이 사실을 빼면 샘의 삶은 의외로 꽤 평범하다. 모두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지옥 같은 고등학생 생활을 보내고 있고, 성실한 고등학생처럼 전자제품 판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인 자히드와도 꽤 괜찮은 우정을 쌓고 있다. 샘이 자히드의 농담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샘의 가족도 미디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백인 중산층’ 모습이다. 샘의 일이라면 앞뒤 안 가리고 뛰어드는 엄마가 있고, 일을 핑계로 때때로 샘에게 무심한 아빠가 있고, 엄청 투닥거리지만 언제나 샘의 편이 되어 주는 든든한 여동생이 있다. 솔직하게 말하면, 이런 설정들이 처음엔 조금 작위적으로 보이기도 했다.

 

내가 아는 유일한 자폐성 장애인은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동생이다. 당시 나의 눈에 그는 상당히 ‘이상했다’. 그가 어린 탓도 있겠지만 항상 어머니랑 같이 다녀서 혼자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고, 누군가와 말을 섞는 모습을 본 적도 없다. 종종 알 수 없는 소리를 내거나 행동을 하는 그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았다. 그런 기억만 가졌으니 그가 샘처럼 ‘꽤 평범한 모습으로 성장한 장면’을 상상할 수 없었다.

 

▲ <별나도 괜찮아> 장면 중     © Netflix

 

한편으로는 당연한 일이다. 그는 샘이 아니니까. 그는 수많은 자폐성 장애인 중 한 명일 뿐이고, 자폐성 장애라는 범주에 묶여 있을 뿐이지 그 역시 한 사람으로서 다양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단편적인 모습만 알고 있으면서 함부로 그의 성장이나 삶에 대해 추측할 수는 없다.

 

사실 난 그에게 말을 건 적도 없었다. 말을 걸어선 안 되는 존재, 아니 말을 걸어도 (대화가 안 될 테니까) 소용없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니까. 그의 존재 자체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결국 그에 대한 기억은 ‘자폐성 장애인’이라는 것 말곤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얼마 전, 엄마를 통해 “OO이가 XX에 취직해서 OO이 엄마가 좋아하신대”라는 친구의 소식을 들었을 때 문득 그의 동생이 생각났다. 심지어 그의 이름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근데 걔 동생은 뭐해?”라고 물었더니 “글쎄…”라는 답이 돌아왔다. 별거 아닌 짧은 우리의 대화 속에서 다시 한번 그의 ‘없음’을 느꼈다. 그는 여전히 다른 세계에 있는 걸까?

 

자폐성 장애인과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습

 

<별나도 괜찮아>에서 내가 작위적이라고 생각했던 설정들이 실은 꽤 ‘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은 건 샘이 주변인들과 대화하는 방식을 보고 나서다. 샘의 가족, 친구, 상담사 등의 주변인들은 당연하게 샘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때때로 대화의 핀트가 엇나가고 샘이 대화 자체에 흥미를 잃기도 하지만 모두 각자만의 방식으로 샘과 대화한다.

 

그 대화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샘은 고정되지 않는다. 샘은 단지 자폐성 장애인이 아니라 (상담사의 조언에 따라) 연애에 도전하기 위해 고심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를 두고 혼란스러워하기도 하고, 부모의 보호 아래에서 벗어나 조금씩 독립을 위해 발을 내딛는 사람이다. 오해로 친구와의 관계가 틀어져 슬퍼하기도 하고, 동생에게 동성 여자친구가 생겼을 때 ‘게이 펭귄 커플’ 이야기를 꺼내며 편견 없이 그들의 관계를 이해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 드라마 시리즈 <별나도 괜찮아> 장면 중     © Netflix

 

샘과 주변인/주변 환경의 관계가 늘 원만한 건 아니다. 다양한 장벽이 있다. 시끄러운 음악이 장악하는 ‘졸업파티’ 에피소드가 그랬다. 샘이 도저히 발을 디딜 수 없는 공간인 졸업파티에 과연 샘은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별나도 괜찮아>는 그 질문을 ‘어떻게 하면 샘이 졸업파티에 참여할 수 있을까?’로 바꾼다. 그리고 샘의 여자친구인 페이지가 학교운영위원회를 설득하여 ‘자폐성 장애 친화적인 졸업파티’(스피커로 음악을 트는 게 아니라 참여자들이 무선 이어폰을 쓰고 음악을 즐김)를 만들어 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끄러운 공간을 못 견디는 건 네 탓이니까 파티에 못 오는 건 어쩔 수 없지’가 아니라, 배제되는 사람이 없도록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찾아내는 방법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과정은 결코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리더십과 추진력, 의지를 기반으로 지난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것도.

 

시즌2에 나오는 경찰과의 문제를 다루는 에피소드에서도 ‘도전행동’을 하는 자폐성 장애인이 경찰과 마찰을 일으키지 않도록 지역사회가 어떤 방식으로 대비할 수 있는 상상하게 한다. 스트레스를 받아 불안정한 상황에 놓인 샘이 야심한 밤거리를 걷고 있을 때 경찰이 그를 마약한(혹은 폭력적인) 사람으로 오해하고 무작정 경찰서로 끌고 간 이야기가 시사하는 바는 여러 가지다.

 

이 에피소드는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와 비장애인이 서로를 잘 알지 못할 때 일이 삐끗할 수 있는 상황들, 그리고 이후 상황을 해결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별나도 괜찮아>에선 응급구조사인 샘의 아빠가 경찰서에 샘의 사진을 붙여두고 샘의 상태를 공공연하게 알리는 방법을 첫 번째로 선택한다. 그러나 그걸로 부족하다고 판단한 후 경찰관들을 대상으로 자폐성 장애인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교육하는 걸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인 대책은 아닐 테다.

 

시즌3에선 드디어 대학에 진학한 샘의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의 고군분투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낸다. 학교, 교수, 친구들의 샘과의 공존 방식이 차이를 보이는 것도 흥미로운 지점이다. 이 드라마 시리즈를 보다 보면 저렇게 당연한 일들이 내 주변에서는 한 번도 없었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학교에서, 지역에서, 주변에서 장애인 친구를 만나게 되는 일이 왜 이렇게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는지, 왜 우린 다른 세계로 분리되었는지 강력한 의문이 든다.

 

▲ <별나도 괜찮아>에 등장하는 샘의 서포트 그룹 친구들은 자폐성 장애인 배우들로 채워졌다. (https://youtu.be/4kq3HWxbDVU)     ©Netflix

 

자폐 장애인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었나요?

 

이렇듯 <별나도 괜찮아>는 자폐성 장애인의 삶을 보여주며 이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하는 재미있고 흥미로운 작품이다. 하지만 한계도 있다. 시즌1이 처음 공개된 후, 정형화된 자폐성 장애의 재현이라는 비판과 함께 장애인 캐릭터를 비장애인이 연기하는 것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다.

 

시즌1 제작 당시 자폐성 장애 ‘전문가’들의 감수와 의견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자폐성 장애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던 부분에 대해 당사자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제작진은 시즌2부터 당사자를 컨설턴트로 합류시켰고, 시즌3에선 프로듀서로 그 역할로 확대했다.

 

샘을 비장애인이 연기하는 것에 대한 지적에 대해서도 제작진들은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다. 시즌2부턴 자폐성 장애인 배우들을 샘의 친구로 더 많이 등장시켰는데, 단지 표면적으로 수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연기를 통해 자폐성 장애인들의 소통 능력을 개발하고 새롭고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미라클 프로젝트’ 출신의 배우들을 캐스팅함으로써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줬다.

 

▲ ‘더 미라클 프로젝트’ 홈페이지 메인 화면.     https://themiracleproject.org

 

파키스탄 출신 아버지를 둔 비(非)백인 여성 총괄제작자인 로비아 라쉬드(Robia Rashid)는 여성 감독, 여성 작가의 참여가 늘어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시즌이 더해 갈수록 좀 더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기사에선 샘의 이야기를 주로 했지만, <별나도 괜찮아>엔 샘뿐만 아니라 엄마 엘사, 아빠 더그, 여동생 케이시의 각개전투도 듬뿍 담겨 있다. ‘장애아’의 부모가 겪는 여러 가지 상황 그리고 그들의 흔들리는 부부관계, 종종 관심의 대상에서 밀려나는 ‘비장애인’ 형제의 고민 등이 개인의 성장과 함께 잘 버무려져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든 점도 탁월하다.

 

시리즈를 보다 보면 <별나도 괜찮아>의 별난 사람은 샘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사실 누구나 ‘별난’ 지점이 있고, 때론 그게 그 사람을 ‘특별하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사회는 여전히 어떤 ‘별남’에 대해선 ‘문제행동’이라고 낙인찍고 분리시켜 버린다. 그렇게 단절된 채 살아가다 보니 우린 서로의 별남을 더더욱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단단한 장벽은 날카로운 말이라는 가시넝쿨로 덮이게 된다.

 

다시 버킷리스트에 쓰기로 했다. <장애인 친구 사귀기>라는 말 대신 <서로에게 ‘별나도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건넬 수 있는 친구 만들기>로. 그렇게 별난 친구들을 만나다 보면 가시넝쿨 장벽도 한번 어떻게 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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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euvre 2020/01/09 [14:57] 수정 | 삭제
  • 미라클 프로젝트 홈페이지 들어가봤는데 좋은 정보가 될 것 같다
  • 딜란 2020/01/09 [07:45] 수정 | 삭제
  • 마리 매트린이라는 청각장애인 배우가 생각이 나네요. 한국에서 장애인 배우를 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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