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사태로 본 일본 사회

오카모토 유카 “검열에 맞서 표현을 교류하는 장 만들 것”

시미즈 사츠키 | 기사입력 2020/02/03 [10:21]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사태로 본 일본 사회

오카모토 유카 “검열에 맞서 표현을 교류하는 장 만들 것”

시미즈 사츠키 | 입력 : 2020/02/03 [10:21]

작년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유명 국제예술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 전시를 둘러싼 논란이 불거져, 겨우 사흘 만에 기획전인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가 중단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우익의 외압에 의한 전시 중단 사태에 대해 시민단체와 예술계의 반발, 트리엔날레 참가 작가들의 보이콧, 그리고 나고야 시민들의 항의가 빗발쳤고, 이후 전시는 75일간의 일정 중에서 폐막을 한 주 앞둔 10월 8일 재개되었다.

 

▲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 기획전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에서 논란이 된 김운성·김서경의 작품 “평화의 소녀상”     ©출처: 오카모토 유카 페이스북 페이지 facebook.com/kazekobo

 

일본 사회에서 ‘표현할 수 없는 것들’

 

[표현의 부자유전] 실행위원으로, 전시 중단을 결정한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회장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지사, 예술감독 츠다 다이스케)와 언론 대응을 하며 동분서주하던 오카모토 유카(岡本有佳) 씨에게 어떻게 된 건지 질문을 던지자 거침없는 답변이 쏟아져나왔다.

 

“트리엔날레 실행위원회의 가처분 신청(전시 재개를 요구하며 나고야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까지 하면서 이뤄낸 전시 재개이지만, 굉장히 복잡한 심경”이라고.

 

“화해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입장규제 조건(추첨에 당첨된 인원만 입장 허용)을 받아들이는 등의 타협을 한 것은 관람객이나 출품 작가들에게 면목이 없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전시장은 관람자들끼리, 혹은 관람자들 간에 그리고 작품과도 교류하는 ‘장’이 되었다. 평화의 소녀상을 보고 “이런 날조!”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조용히 작품 감상합시다”라고 제지하는 목소리가 관람자들 사이에서 오가기도 했다고.

 

애초에 [표현의 부자유전]은 오카모토 유카 씨와 동료들이 2015년에 도쿄에서 개최한 [표현의 부자유전-지워진 것들]에서 시작되었다. 일본군 ‘위안부’ 주제나 ‘천황과 전쟁’을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회 등에서 철수되거나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항의의 의미로 기획했다. 전시 기간 중에 우익과 역사수정주의자들의 공격을 당했지만, 동료들과 대책을 강구하며 기획을 성공시켰다.

 

그 전시회를 예술감독인 츠다 다이스케가 관람했고 “그 이후를 포함, [표현의 부자유전]을 꼭 트리엔날레에 출품해줬으면 한다”는 의뢰를 받았다.

 

이번 전시가 중단된 대외적인 이유는 ‘안전’ 문제였다. 하지만 2015년에 이미 전시회 성공의 경험이 있는 [표현의 부자유전] 실행위원은 당연히 전시 방해가 있으리라고 처음부터 예측했고, 트리엔날레 측에 대처방법을 제안했지만 실제로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게 몇 가지나 있었다.

 

중단을 결정한 것은 오무라 아이치현지사와 츠다 예술감독이었다. 참여 작가들에게 사전 통보조차 없었고, 계약 주체인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실행위원회와의 협의도 없었다.

 

▲ [표현의 부자유전] 실행위원 오카모토 유카 씨. 1963년 도쿄 출생. 프리랜스 편집자이자 기자. 공 편저로 [<평화의 소녀상>은 왜 계속 앉아 있을까] 등이 있다.     © 촬영: 오치아이 유리코

 

‘저항’이 내 인생의 키워드

 

유카 씨가 사회문제에 눈을 뜬 것은 대학 시절이다. 입학한 여자대학교 생활이 전혀 흥미롭지 않아 수업에서 도망쳐 나와 만난 것이 잡지 [신일본문학](현재 폐간)이다. 유카 씨는 이 잡지의 편집 어시스턴트가 되었고, 일하면서 알게 된 제3세계 민중운동 정보에 충격을 받았다. 전쟁 전부터 현재까지 이어지는 일본의 식민지주의와 한일문제 등과도 만나게 되면서, 그 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활동의 초점을 맞추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다.

 

[신일본문학] 시절에 편집장에게 많은 가르침을 받으며 모든 것이 재미있었고, 편집에 빠져들었다. 졸업 후에는 생협(생활협동조합)이 출간하는 북가이드 [책 꽃다발]을 편집하였고, 전쟁 전날 밤 같은 일본 사회에 대한 저항을 주제로 한 잡지 [전야](前夜, 제1기 종료)의 편집장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도 한일문제를 중심으로 한 문화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때 큰 병을 얻어 투병 생활도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타고난 근성으로 견뎌냈고, 지금은 연 1회 검사만 받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엉망진창인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혈연을 거부하면서 살아왔어요. 저항이 당연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가정환경이 나빴던 덕이죠.”

 

유카 씨는 호적제도를 거부하고 동거인과도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검열에 맞서, 표현하고 대화하는 장을 만들어갈 것

 

[표현의 부자유전·그 후] 전시가 중단된 이후, 열 명 이상의 해외작가가 검열에 항의하는 연대의 뜻을 표하며 트리엔날레에서 작품을 철수했다.

 

“저는 이번 사태가 검열이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검열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의가 열리기도 했지만 일본에서는 검열을 법적으로 좁게 해석하죠. 하지만, 세계 기준으로 보면 이것은 검열입니다.”

 

▲ 2019년 12월 19일~2020년 1월31일 제주4·3 71주년을 기념하는 동아시아평화예술프로젝트 ‘섬의 노래’ 기획특별전에 [표현의 부자유전]이 초청됐다. 제주4·3평화재단과 동아시아평화예술프로젝트조직위원회가 주최한 ‘섬의 노래’ 기획특별전은 제국주의와 국가폭력에 희생된 제주, 오키나와, 타이완 등 섬의 역사를 예술로 표현하고 연대하는 행사로 기획되었다.   ©출처: 오카모토 유카 페이스북 페이지 facebook.com/kazekobo

 

작가들의 보이콧이 확산되면서, 전시 기간 중에 일본 작가들이 모여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이 자리에 참가한 해외작가들의 관점에 상당히 고무되었다. “지금 정도의 검열에 굴복하면 나중에는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한다”든지, “안전을 핑계로 한 검열은 전체주의 국가나 하는 짓”이라는 단호한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츠다 예술감독은 마지막까지 ‘검열은 아니’라고 하는 등, 일본 작가들의 예민하지 못한 반응에 실망했다.” ‘언론의 자유’와도 이어지는 문제임에도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기사가 극히 적었던 것도 심각한 문제였다. 반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국이나 중남미 여성 작가들과 만나 서로 생각이 통했던 일은 기쁜 성과였다.

 

“‘표현자의 자유와 관람자의 권리, 쌍방향의 교류와 정보 전달의 장이 보장되는 것이 헌법 21조에서 말하는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학자의 해석에 크게 수긍했습니다. 제가 계속 고민하는 것은 이런 ‘장’을 만드는 일. [표현의 부자유전]도 작품 진열보다는 표현이 교류하는 장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대화의 장을 만드는 데 힘을 쏟으려고 합니다.”

 

오카모토 유카 씨는 [표현의 부자유전]의 전말을 되돌아보는 책을 이와나미쇼텐에서 출간할 예정이다.

 

“(트리엔날레에서) 절반 이상 여성 작가를 등용하겠다고 내세웠지만, 일본의 베테랑 페미니스트 작가가 포함되지 않은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참, 이 [표현의 부자유전]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검열하는 측의 언어가 황당무계했거든요.”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고주영 님이 번역하였습니다.

  • 도배방지 이미지